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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악한 인간을 구원하는 건 선한 인간이 아니다

by오마이뉴스

고전으로의 여행,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

오마이뉴스

▲ 지하로부터의 수기 ⓒ 민음사

고전을 읽는다는 건 쉽지 않은 작업이다. 아주 재밌게 읽히는 경우도 있지만 고전은 대체로 인내심을 요한다. 이해하지 못해도 포기하기 싫은 뭔가가 있다. 오기라고 해야 할까? '기필코 완독하고 말리라' 나에게 그런 오기가 작동했던 최초의 작품이 바로 도스토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었다.


무려 3권으로 된 이 소설은 등장인물들의 이름부터 어마무시하다. 단순히 긴 것으로도 모자라 한 사람이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그 인물들 파악만 해도 만만치 않다. 그러고 보면 도스토예프스키만큼 인간 자체에만 온통 집중하는 작가도 드물 것이다. 등장인물들의 아주 잡다한 생각과 끝없는 대화만으로 그 많은 편폭이 다 채워진다.


그런데 읽다보면 그 지루한 인간관계 속에 나도 모르게 빠져든다는 게 아이러니다. 모든 에너지를 끌어 모아 읽고 나면 다시는 쳐다보기도 싫을 것 같은데 다시 잡게 되는 것이 또 고전이다.

20년 동안 지하에서 살아온 남자의 이야기

오늘 도스토예프스키의 또 다른 고전 <지하로부터의 수기> 얘기를 해보고자 한다. 이 소설을 읽었을 때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도스토예프스키의 다른 작품과는 결이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이 소설 참 독특했다. 하물며 은근 재미도 있어서 입가에 웃음이 자주 피어올랐던 기억. '도 작가의 책이 이렇게 재밌고 수월하게 읽히는 날도 있구나' 혼자 뿌듯해하기도 했던 바로 그 책.


이 소설을 좀 더 일찍 읽었더라면 <죄와 벌>, <악령> 그리고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 같은 후기 작품들이 조금은 덜 어려웠으려나. 바로 그 <지하로부터의 수기>를 최근 집에 머물면서 다시 읽었다.


<지하로부터의 수기>는 20년 동안 지하에서 살아온 40세의 주인공이 20년 전에 있었던 에피소드 세 가지를 떠올리는 이야기이다. 가기 싫었던 동창회에 갔던 기억, 길에서 어떤 군인이 자신을 밀쳤던 사건, 그리고 어느 매춘부와의 추억이 그것이다.


이 작품에는 도스토예프스키 후기 대작들의 근간을 이루는 철학적 사유가 곳곳에 숨어 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그의 문학세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 이 작품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평한다.


우리가 <지하로부터의 수기>를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체르니셰프스키의 소설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1860년대 당시 러시아의 젊은 지성인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던 체르니셰프스키는 '푸리에주의'에 기초한 유토피아적 사회주의를 꿈꾸었다. '푸리에주의'란 18∼19세기 프랑스의 사상가 샤를 푸리에가 사회주의 이론을 근간으로 창시한 이상주의적 공상적 사회주의 철학이다. 인간의 선함을 믿으며 지배계층이 존재하지 않고 단지 형제애를 바탕으로 한 생산자 협동조합인 '팔랑주'에 근거를 둔 이상사회의 건설을 주장했던 이론이다.


체르니셰프스키는 인간의 본성은 원래 선하며 사회구조야말로 악이라고 말한다. 선한 인간을 잘 교육하면 올바른 유토피아적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는 것. 그가 제시하는 지상낙원인 '수정궁'은 수학과 과학 법칙, 자연과 이성이 지배하는 한마디로 완벽한 사회다. '수정궁'에서는 모든 인간들이 서로 사랑하며 살 수 있는 행복한 삶이 보장된다.


극심한 가난 속에서 억압된 자들에 대한 동정으로 어린 시절을 보낸 도스토예프스키에게 있어 물질적 풍요와 인생의 행복을 약속하는 이상 사회 건설 이론은 대단히 매력적이었다. 젊은 시절 이 사상을 직접 체험하고 그것에 대한 깊은 회의의 날들을 보냈기에 도스토예프스키는 그 사상의 허구성과 위험성을 간파할 수 있었다.


페트라셰프스키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된 도스토예프스키는 시베리아 감옥에서 보내는 동안 죄수들 간 힘의 역학관계로부터 인간 본성의 심연에 숨겨진 악마성을 적나라하게 보게 된다. 그가 신념으로 받아들였던 '선'에 대한 믿음이 깨지면서 동등한 개인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사회주의적 유토피아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는 이 공상적 사회주의를 비판하기 위해서 <지하로부터의 수기>를 쓴다.


<지하로부터의 수기>는 이처럼 체르니셰프스키의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을 염두에 두고 쓴 작품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작품에서 체르니셰프스키의 이론과 그의 작품에 대해 비난과 풍자, 그리고 적개심까지 드러내고 있다.


이 작품의 사상적 배경과는 무관하게 나의 관심을 끌었던 부분은 <지하로부터의 수기>가 보여주는 '시대를 초월한 현대적이고 보편적 가치이자 인간의 테마'였다. 즉 지하생활자의 고독과 자유, 그리고 정체성과 구원으로서의 사랑의 문제 말이다. 이런 주제야말로 그 오랜 시간이 흐른 현대에 이르러서도 변함 없이 사람들의 가슴 속에 파고드는 울림을 준다. 이 또한 고전이 갖는 힘이 아닐까.

구원은 기적처럼 오지 않는다

망치를 든 철학자라고 불리는 니체에게 유일하게 해체되지 않고 극찬 받은 작가가 바로 도스토예프스키다. 니체가 도스토예프스키를 위대한 심리학자로 평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선악의 문제에 천착하고 정신분석학의 토대를 마련'했던 철학자의 깊은 통찰을 엿볼 수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 내면의 무의식 속에 숨어 있는 악마성을 낱낱이 까발리면서도 그 악으로부터의 인간에 대한 구원을 속시원하게 보여주는 법이 없다. 인간 본성의 가장 악랄한 부분까지 파헤치고 인간의 밑바닥을 보여주는데 그 깜깜한 어둠 속에서도 결코 환한 빛을 보여주지 않는다.


도스트예프스키는 이처럼 인간의 복잡한 심리 속에서 드러나는 악함에 대한 묘사가 탁월하다. 그는 악한 인간에 대한 구원이 또 다른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밑바닥 인생으로부터 희미한 불빛으로 온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그의 작품에서 매춘부로 상징되는 또 다른 불행한 인생이 결국 주인공의 구원자가 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이런 지점이 바로 도스토예프스키의 위대함이 아닐까 싶다.


우리 인간에게는 절대적 선도 절대적 악도 없다. 인간의 의식은 선할지 몰라도 그의 무의식에는 '악'이 존재할 수 있는 게 인간이다. 그래서 니체는 그 어떤 인간도 타자에 대해서 윤리적으로 섣불리 판단할 수 없으며 그저 '선악의 저편'에서만 도덕적 가치 판단이 가능하다고 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악한 인간을 구원하는 게 절대적으로 선한 인간이 아님을 일관되게 보여준다. 인간의 악랄함 이면의 또 다른 인격을 통해 치유자의 모습을 구현시킨다. 매춘부와 같은 사회적 약자들을 통해서 구원의 빛을 조금씩 드러내면서 악의 어둠과 대조시키는 것이다. 우리에게 구원은 결코 획기적으로 기적 같은 환한 빛으로 오지 않음을 그의 작품들은 말해주고 있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더 희망적이다.


<지하로부터의 수기>는 도스토예프스키의 가장 인간적인 부분이 제대로 드러난 작품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지하'라는 공간이 갖는 어두운 면과 비극적 요소를 가장 현실적인 모습으로 그려냄으로써 구체적 경험담처럼 친근하게 다가온다. 이렇듯 관념적이 아닌 실제적 접근이 독자들로 하여금 이 소설에 쉽게 감정 이입하게 함으로써 깊은 공감을 이끌어낸다.


도스토예프스키의 후기 작품인 <죄와 벌>, <악령>, <백치>,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도전하기 두려운 사람이라면 인간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혀줄 이 중편소설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 제안해본다.


김혜경 기자(ginablue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