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동변속기가 멸종 위기에 처한 이유

우리 가슴을 뛰게 만드는 수동변속기는 왜 멸종 위기에 처했을까요?

여러분의 차는 어떤 타입의 변속기가 탑재돼 있나요? 아마 거의 대부분이 자동변속기일 것입니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승용차 중 99%, 상용차를 모두 합쳐도 90% 이상이 자동변속기를 달고 판매됩니다. 수동변속기만의 손맛을 선호하지 않는 이상 굳이 수동 차량을 구입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입니다.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닙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수동변속기가 설 곳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10% 가까이 유지하던 미국의 수동변속기 비율은 오늘날 2~3%에 그치고,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도 수동변속기의 점유율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유럽에서는 아직 수동변속기의 비중이 더 높지만, 그마저도 자동변속기가 빠르게 치고 올라오는 추세죠.​

과거에는 '오토매틱' 엠블럼이 부의 상징이었습니다.

과거의 자동차는 수동변속기가 기본이었고, 자동변속기가 옵션이었죠. 심지어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자동변속기 옵션을 넣으면 '오토매틱'이라는 엠블럼을 붙여 줄 정도였습니다. 그랬던 수동변속기는 어쩌다가 30년여 만에 멸종 위기를 맞이한 걸까요?


가장 큰 이유는 조작의 편의성입니다. 회전수 한계가 있는 내연기관의 특성 상 변속기는 필수이고, 과거에는 '운전=수동 운전'으로 여겨질 만큼 수동변속기가 보편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경제 성장과 함께 마이카 붐이 일면서 운전자가 크게 늘었고, 이들에게 수동 변속은 번거롭고 피곤한 일일 뿐이죠.​

마이카 붐과 도시화로 인한 교통 정체는 수동변속기가 설 자리를 없애고 있습니다.

특히 자동차의 대량 보급과 도시화는 필연적으로 교통 정체의 심화를 불러 오는데, 변속할 때마다 클러치 페달을 밟아야 하는 수동변속기는 자동변속기 대비 운전의 피로도가 훨씬 높습니다. 때문에 도시화율이 높고 자동차가 늘어날 수록 운전자들의 자동변속기 선호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수동변속기는 그 구조를 이해하고 능숙하게 조작하지 않는 이상 변속 충격을 동반할 수밖에 없는 반면, 자동변속기는 누가 운전하더라도 부드러운 주행이 가능합니다. 결과적으로 봤을 때 운전의 진입 장벽이 낮아지고 피로도 저감되는 자동변속기가 선호될 수밖에 없습니다.​

최초로 자동변속기 옵션을 제공했던 1940년식 올즈모빌. 자동변속기의 역사는 80년이 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자동변속기의 장점은 하루 아침에 생긴 게 아닙니다. 자동차의 핵심 조작 장치 중 하나가 자동화되니 훨씬 편리하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죠. 자동변속기가 처음 상용화된 것이 1940년의 일인데, 왜 이렇게 최근 들어서야 자동변속기의 점유율이 급속도로 높아지는 걸까요?


초창기 자동변속기와 오늘날의 자동변속기는 기본적으로 유압을 통해 엔진 출력을 전달하고 변속하는 구조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설계의 발전과 전자 제어 기술의 추가로 그 효율 측면에서는 엄청난 진보가 이뤄졌습니다.​

자동변속기의 원론적인 구조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지만, 성능은 눈부시게 진화했습니다.

과거에는 수동변속기 대비 자동변속기의 동력손실율이 월등히 높았습니다. 동력손실율이 높다는 건 그 만큼 성능도 떨어지고 연비도 나쁘다는 뜻인데요. 지금보다 엔진 성능이 떨어지던 시대, 높은 동력손실율은 체감되는 출력 저하로 이어져 대중차 시장에서는 자동변속기의 선호도가 낮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행 성능을 중시하는 스포츠카나 경제성을 중시하는 소형차는 더욱 말할 것도 없고요.


그러나 자동변속기의 성능이 좋아지면서 동력손실율이 수동변속기와 비교해도 별반 차이 나지 않는 수준까지 좁혀졌습니다. 또 무단변속기(CVT), 듀얼클러치 변속기(DCT)와 같이 새로운 형태의 자동변속기들이 등장하면서 기존 토크컨버터 변속기의 단점을 만회하는 효과까지 냈죠.​

요즘은 고성능차에도 자동변속기가 일반화됐습니다. 그만큼 변속기 성능도 좋아졌다는 방증입니다.

2021년 현재는 자동변속기의 성능이 수동변속기를 넘어섰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DCT의 경우 이미 수동변속기보다 주행 성능도, 효율도 더 좋은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토크컨버터 자동변속기와 수동변속기의 차이도 무시할 수 있는 수준까지 좁혀졌습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쉽게 들을 수 있었던 "주행 성능을 위해 수동차를 구입했다"는 말도 옛말이 된 것입니다.


이 같은 추세는 고성능 시장도 마찬가지입니다. 2010년대 이후 제어 기술의 발달과 터보차저, 하이브리드 시스템 등의 추가로 자동차의 성능이 엄청나게 높아진 가운데, 오히려 수동변속기가 이처럼 강력한 성능을 감당하기 어려워 자동변속기를 채택하는 스포츠카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성능을 가장 중요시하는 고성능차가 자동변속기를 도입한다는 건, 그 만큼 자동변속기 성능이 높아졌다는 의미겠죠?​

전기차와 자율주행차는 근본적으로 수동변속기와 조합되기 어렵습니다.

미래차 산업에 있어서도 수동변속기는 불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선 요즘 대세인 전기차만 하더라도 수동변속기는 커녕, 변속기 자체가 필요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전기모터는 내연기관과 달리 사용할 수 있는 회전 영역이 매우 넓기 때문에, 그저 모터 회전수를 주행에 맞게 전환하는 감속기만 있으면 됩니다. 높은 속도를 내기 위해 변속기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기껏해야 2~3단 정도에 그칩니다.


기술적으로는 전기모터와 수동변속기를 조합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미 고도의 전자 제어를 통해 움직이는 전기차에, 굳이 수동변속기를 조합하는 것은 괴짜가 아니고선 무의미한 일이죠.


자율주행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율주행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차량 스스로 가·감속을 해야 하는데, 속도에 따라 운전자가 직접 변속을 해야 하는 수동변속기에서는 구현될 수 없습니다. 제조사 입장에서도 신차에 각종 첨단 주행보조기능을 탑재하려면 수동변속기를 배제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최근 출시된 현대 캐스퍼는 아예 수동변속기 사양이 출시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이유로 자동변속기를 택하는 소비자가 늘면서, 많은 제조사들이 수동변속기 생산을 줄이는 추세입니다. 한국 시장을 기준으로 보자면 승용차 중 수동변속기를 선택할 수 있는 모델은 한 손에 꼽을 정도인데요. 심지어 이제는 경차에도 자동변속기가 기본 사양으로 적용될 정도죠. 자동변속기가 보편화 되면서 과거보다 가격이 저렴해 진 것도 이러한 흐름에 한 몫 합니다.


'수동 텃밭'인 유럽의 수동 차량 비율도 갈 수록 줄어들고 있습니다. 과거 신차 판매 중 수동 차량 비율이 99%에 달했던 프랑스, 이탈리아 등지에서도 이미 몇 년 전부터 자동변속기 비율이 급증해 10%에 육박하고, 주요 제조사들도 수동변속기 감산을 예고했습니다. 폭스바겐은 2023년부터 독일에서 수동 차량 판매를 중단하고, 2030년까지 전 모델에서 수동변속기를 없애겠다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신흥 시장에는 아직까지 경제적이고 구조가 단순한 수동변속기의 수요가 남아 있습니다.

미래차 시대에 수동변속기는 내연기관과 함께 구시대의 유물로 사라질 위기에 놓였지만, 여전히 그 가치를 간과할 수는 없습니다. 수동변속기의 가장 큰 장점 : 단순한 구조와 뛰어난 정비성, 낮은 가격은 여전히 저렴한 교통수단이 필요한 신흥 시장에서 유효하기 때문입니다.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를 대체하는 것이 주요 선진 시장에 국한된 이야기인 것과 마찬가지로, 수동변속기 또한 선진 시장에서는 자취를 감출지언정 신흥 시장에서 그 명맥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수동변속기 만의 손맛은 어떤 자동변속기로도 대체될 수 없습니다.

또 한 가지, 자동변속기가 절대 대체할 수 없는 수동변속기만의 장점은 바로 "손맛"입니다. 자동변속기가 더 빠르고 효율적인 시대에도 많은 자동차 마니아들이 수동 차량을 찾는 이유는 자동차와 운전자가 교감하며 느끼는 고유의 조작감입니다.


고성능 스포츠카를 만드는 포르쉐, BMW 등의 브랜드가 여전히 수동변속기 모델을 소량이나마 생산하는 것도 그런 까닭입니다. 제조사가 이런 마니아들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는 한, 적어도 내연기관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까지는 수동변속기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내연기관과 수동변속기가 더 좋은 건, 나이를 먹었기 때문일까요?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다"는 故김광석의 노랫말처럼, 작금의 자동차 시장은 매일 조금씩 낭만과 이별하고 있습니다. 우렁찬 소리를 내던 내연기관은 이미 시한부 선고를 받았고, 더 이상 내 손끝으로 변속하는 수동 차량을 찾기도 쉽지 않아졌죠.


더 편하고, 빠르고, 친환경적인 차가 등장해도 퇴물 취급 받는 전통적인 자동차가 더 좋은 건, 첨단 기술이 대체할 수 없는 짙은 감성 때문일까요? 아니면 그저 나이를 먹었기 때문일까요? 비록 저도 매일 타는 차는 자동변속기를 택하지만, 아직은 수동변속기가 우리 곁에 좀 더 남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글 · 이재욱 에디터 <피카몰 매거진>

2022.12.29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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