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차 이름의 유래는? 자동차 작명 체계의 역사

[비즈]by 피카미디어

자동차의 이름은 어떻게 지어지기 시작했을까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시의 한 구절처럼, 이름은 우리에게 정체성을 부여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사람도, 차도 마찬가지죠. 특히 자동차의 이름은 직관적으로 차의 콘셉트와 특징, 성능 등을 알아볼 수 있어야 하는 중요한 마케팅 수단인 만큼, 자동차 회사들은 차명을 아주 공들여 짓습니다.


요즘은 세대가 바뀌어도 기존의 이름을 계승하는 경우가 늘었지만, 처음부터 이런 이름들이 지어진 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처음에는 아예 이름조차 제대로 없는 차들이 부지기수였죠.


자동차가 모델 별로 고유의 이름을 갖게 된 건 대량 생산이 본격화된 이후의 이야기입니다. 그 이후 많은 변화 과정을 거쳐 대중차 브랜드는 명사를, 프리미엄 브랜드는 알파벳과 숫자를 사용하는 형태로 정착하는 추세인데요. 오늘은 자동차 작명 체계가 어떻게 탄생하고 발전해 왔는지, 그 역사를 간략히 살펴보겠습니다.

저마다 달랐던 자동차 이름​

초기의 자동차들은 구분하기 어려운 외모만큼이나 이름도 난해했습니다.

종종 클래식카 경매 소식이 전해지면, 브랜드 명 외의 이름이 아주 복잡하다고 느낀 적이 있을 것입니다. 초창기 자동차의 이름에는 아주 많은 정보가 들어가야 했기 때문인데요. 자동차의 설계와 생산이 오롯이 한 회사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지 않았을 뿐더러, 한 대 한 대마다 주문 제작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의 자동차는 엔진·섀시와 차체 제작사가 다른 경우가 많았습니다. 자동차 회사에서 엔진과 구동계가 얹힌 섀시를 생산한 뒤, 차체를 만드는 코치빌더(coachbuilder, 이탈리아어로는 '카로체리아'라고 부르기도 합니다)에 보내 주문한 고객의 취향에 맞는 차체를 완성하는 방식이 보편적이었는데요. 때문에 자동차마다 형태도, 성능도 제각각이었습니다.​

포드 모델 T 등장 이전까지 자동차는 한 대씩 수제작되는 물건이었습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자동차는 새로운 탈것이 아닌, 말 대신 엔진을 장착한 마차처럼 여겨졌습니다. '완성차'라는 개념이 희박했죠. 주문에 따라 차체 형상이 달라지거나, 특별한 이름이 붙여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엔진이 지금처럼 표준화·규격화되지 않고 주문 받는 대로 제작됐기 때문에 성능도 제각각이었죠.


때문에 이런 차들은 아예 제대로 된 이름이 붙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후세에 이런 차들을 구분하고 역사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이름을 붙였는데, 상술한 이유로 그 이름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임러 메르세데스-심플렉스 40HP 2시터. 여기에 소장가치가 높은 차들은 차대번호까지 더해 호칭합니다.

가령 '메르세데스-심플렉스 40HP 2시터' 라는 모델을 보자면, 이 차는 다임러가 브랜드화 한 '메르세데스'라는 브랜드 명을 달고, 시동과 변속 장치를 간소화한 '심플렉스(Simplex)' 라인업의 모델이자, 40마력의 최고출력을 냈으며, 2인승으로 만들어진 차였습니다. 단어를 하나씩 뜯어보면 그 차의 브랜드는 물론 특징, 차체 형태, 성능까지 알 수 있는 셈입니다.


이 때까지는 특정 모델에 특정 차명이 부여된다는 개념이 희박했지만, 포드 모델 T(Model T)의 등장과 함께 본격적인 자동차 대량 생산 시대가 도래하면서, 하나의 설계로 생산된 차종에 통일된 제품명을 붙이게 됐습니다.


모터리제이션 이후에는 각 나라마다 다양한 대량 생산 모델이 등장했고 차종 별로 이름이 붙여졌는데, 흥미롭게도 미국과 유럽의 자동차 회사들은 서로 다른 작명 방식을 도입합니다.

고유명사와 알파뉴메릭 작명 체계​

대량 생산 이후, 유럽과 미국에선 서로 다른 작명 방식이 사용됐습니다.

이처럼 본격적으로 자동차의 이름을 붙여주기 시작하면서, 미국과 유럽에서는 서로 상이한 작명 양상이 나타나는데요. 미국에서는 고유명사로 된 이름을 사용한 반면, 유럽에서는 알파뉴메릭(alphanumeric) 방식이 주류로 자리잡습니다.


알파뉴메릭이란 알파벳과 숫자를 조합해 이름을 짓는 방식인데요. 일반적으로는 공산품의 품번이나 규격 따위에 주로 사용됩니다. 사실 많은 공산품들이 알파뉴메릭 방식으로 제품명을 짓지만, 우리는 주로 브랜드를 보고 소비하기 때문에 복잡한 이름을 크게 신경쓰지 않죠. 그렇다면 왜 자동차만 이례적으로 알파뉴메릭 작명 체계를 쓰게 된 걸까요?​

메르세데스-벤츠의 현행 작명 체계. 다양한 언어가 혼재하는 유럽의 특성 상 알파뉴메릭 체계가 힘을 얻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여러 자동차 회사들이 약속하고 지은 이름이 아니기 때문에 명확한 사유가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전문가들은 다양한 언어가 두루 사용되는 유럽 시장의 특성을 가장 큰 이유로 듭니다. 미국의 경우 거대한 시장 전체가 하나의 언어, 즉 영어를 사용합니다. 반면 유럽은 각 나라마다 언어가 달라 고유명사 차명을 사용할 경우 국가 별로 발음이 달라지고, 결과적으로 마케팅이나 커뮤니케이션에 어려움이 많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기본적으로 유럽 전체는 라틴 알파벳을 사용하고, 숫자는 만국 공통이기 때문에 알파뉴메릭 방식을 사용하면 어느 나라에서나 차명에 대한 해석이나 번역 없이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 집니다. 이것이 유럽에서 알파뉴메릭 방식이 유행했던 이유로 꼽힙니다. 오늘날에는 고유명사 차명을 쓰는 브랜드도 늘었지만, 이들은 가급적 어느 나라 언어로 읽더라도 발음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 단어를 차명으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프리미엄 브랜드는 브랜드 인지도가 높아 굳이 차명을 강조할 필요가 없다는 설도 있습니다.

조금 다른 견해를 보이는 입장도 있습니다. 알파뉴메릭 시스템을 주로 사용한 건 프리미엄 브랜드였는데, 프리미엄 브랜드는 이미 브랜드 인지도가 높기 때문에 굳이 헷갈리는 고유명사 대신 차급과 성능만 알아볼 수 있도록 알파벳과 숫자만 표기했다는 것입니다. 반면 대중차 시장에서는 수많은 브랜드에서 신차가 쏟아져 나오니, 브랜드보다 특정 차종을 각인시키기 위해 고유명사를 애용했다는 것이죠. 어느 견해가 정설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러한 경향성이 보였던 것은 명백합니다.


아무튼 이런 알파뉴메릭 시스템을 사용하면서, 제조사들은 다양한 차종과 차급을 직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체계를 고민합니다. 알파뉴메릭 초기에는 그저 차가 개발된 순서나 배기량 따위를 기준으로 이름을 지었는데요. 그러다 보니 브랜드가 친숙하지 않고선 차명 만으로 차급이나 성능을 파악할 수 없었고, 회사마다 비슷한 이름을 사용해 혼동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습니다.​

BMW는 1세대 5시리즈를 통해 처음으로 작명 체계를 도입했습니다. 이 시스템은 오늘날까지 이어집니다.

처음으로 체계화된 알파뉴메릭 시스템을 사용한 건 BMW입니다. 노이에 클라쎄(Neue Klasse, 뉴 클래스)라 불리던 라인업의 차명이 너무 복잡하고 직관성이 떨어져, 쉽게 차급과 성능(배기량)을 알아볼 수 있는 체계를 만들고자 한 것이죠. 그래서 첫 자리 숫자로 차급을, 뒤의 두 자리 숫자로 배기량을, 마지막 알파벳으로 연료의 종류 내지는 분사 방식을 표현하는 최초의 체계화된 시스템이 완성됩니다.


이러한 작명 체계는 1972년 1세대 5시리즈에 처음으로 적용됐고, 오늘날까지도 거의 그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후일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 등 다른 프리미엄 브랜드도 이러한 BMW의 방식을 참고해 각자의 방식으로 작명 체계를 완성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이처럼 알파뉴메릭 시스템으로 차급과 성능, 연료 타입 등의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이 프리미엄 브랜드의 표준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고유명사 차명도 쉽게 지어지지는 않습니다. 쉐보레 카마로는 무려 2,000개의 후보 중 선택된 단어입니다.

한편, 고유명사 차명 체계도 단순히 아무 단어나 갖다 붙이지는 않았습니다. 일반적으로 차의 콘셉트를 나타낼 수 있는 단어를 사용했는데요. 단어의 발음이나 어감 등을 다양하게 검토하며 이름을 짓습니다. 강력한 성능의 스포츠카에 너무 귀엽거나 온순한 이름을 붙이면 어색할테니까요.

브랜드 별로 돌림자나 작명 규칙을 정하기도 합니다. 현대 SUV의 경우 거의 대부분이 미국 지명을 따 왔습니다.

또한 브랜드 별로 같은 발음을 '돌림자'처럼 사용하거나, 동일한 규칙에  따라 작명하기도 합니다. 가령 포드의 SUV 라인업은 모두 'E'로 시작하는 단어를 사용해 에코스포츠-이스케이프-익스플로러-익스페디션 으로 이름을 지었고, 현대자동차의 SUV 라인업은 캐스퍼-코나-투싼-싼타페-팰리세이드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라인업이 미국의 지명을 따 왔습니다(베뉴는 제외). 지프처럼 개성 강한 브랜드는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명, 모험과 관련된 단어, 남성성 강한 단어를 차명으로 쓰기도 합니다.

미래차 시대, 자동차의 이름은 어떻게 바뀔까?

미래차 시대에는 자동차의 이름마저 사라질 지도 모를 일입니다.

130년 넘는 역사를 거치며, 오늘날 우리는 자동차에 붙은 이름이 당연하다고 여기게 됐습니다. 하지만 미래차 시대에는 이 같은 자동차의 이름들 마저 사라지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아직은 자동차의 이름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최근 들어 출시되는 전기차들의 이름이 과거와는 다른 걸 느끼고 계신가요? 고유명사 이름이 줄어들고 알파뉴메릭 방식을 사용하는 차종이 크게 늘고 있습니다. 현대 아이오닉 5, 기아 EV6, 폭스바겐 ID3 등 많은 차종들이 전기차 서브 브랜드 내지는 라인업을 의미하는 알파벳에 숫자를 더하는 작명 방식을 사용하기 시작했는데요.​

제조사들이 심플한 이름을 추구하는 건 MaaS에 적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새로운 트렌드라는 이유로 이런 방식을 채택하는 건 아닙니다. 미래차 시대에는 완성차 회사와 개별 모델의 아이덴티티가 지금보다 훨씬 약해지고, 그저 서비스로서의 모빌리티(Mobility as a Service, MaaS)만 남게 될 것이라는 전망에 따라 이런 이름을 짓는 것입니다.

MaaS 시대에는 차명은 물론, 브랜드의 차별화조차 무의미해 질 수도 있습니다.

가령 미래 시대에는 자가용 자동차를 구입하지 않고, 카셰어링이나 구독 서비스를 통해 자동차를 서비스로 소비하게 될 텐데, 심지어 자율주행을 통해 운행되니 차종 같은 건 서비스 사용자의 관심사가 아니라는 것이죠. 그저 '아이오닉' 서비스에서 혼자 탈 때는 '5'를,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갈 때는 '7'을 선택하기만 하면 되므로 차명에 개별 차종의 특징을 담는 것보다는 그저 브랜드와 차급 정도만 표현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논리입니다. 우리가 택시나 버스의 차종에 관심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요.


물론 이는 온전히 자동차 업계의 예상일 뿐이므로, 실제로도 그런 형태의 MaaS가 우리 생활에 안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언제나 미래가 업계나 전문가들의 생각대로만 돌아가지는 않으니까요. 미래에도 자가용 수요가 공고히 유지되면서, 자동차 회사들이 새로운 차명 체계를 포기하고 현재처럼 고유명사 네이밍을 부활시킬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 자동차의 이름은 어떻게 바뀔까요?

하지만 확실한 건, 급변하고 있는 미래차 환경이 자동차의 이름까지도 바꾸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앞으로 자동차의 이름이 어떻게 바뀔지, 그렇다면 기존에 오랫동안 전통을 쌓아 온 모델들의 이름은 그저 역사의 뒷편으로 사라져 버릴지도 관심 있게 지켜볼 대목이겠죠?


글 · 이재욱 에디터 <피카몰 매거진>​

2022.10.30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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