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못 생겨서 역사에 남은 차, 피아트 물티플라

[자동차]by 피카미디어

피아트 물티플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못 생긴 차입니다.

매년 전 세계에서는 수많은 신차가 출시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유럽, 미국, 일본, 우리나라 등지의 메이저 브랜드 외에도 중국이나 신흥 시장에서 출시되는 신차까지 포함한다면 족히 수백 종은 될 것입니다. 이들 중 자동차 역사에 비중 있는 모델로 기록되는 건 극히 일부에 불과하고, 나머지 차들은 평범한 대중차로 쓰이다가 조용히 단종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요.


특히나 승용차와 승합차, 상용밴의 중간 어디쯤 있는 MPV가 오래도록 기억되는 건 매우 드문 일입니다. 그런데 여기, 출시된 지 2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MPV가 한 대 있습니다. 심지어 유럽에서만 팔았는데 지구 반대편 우리나라에서도 아는 사람이 꽤 있을 정도죠. 바로 피아트 물티플라(Multipla)입니다.

어쩌다 이런 외모가 돼버렸을까요?

이 차가 이토록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이유는 아주 명료한데요. 바로 "못 생겨서" 입니다. 출시 이래 지금까지 수많은 '못 생긴 차 랭킹'에서 항상 순위를 다투는 비범한 외모의 소유자인데요. 사실 그 이면에는 자동차 디자인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이 담겨 있습니다. 너무 못 생긴 덕(?)에 역사에 남은 숨겨진 명차, 피아트 물티플라의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이탈리아에 꼭 맞는 6인승 MPV

피아트의 상징과도 같은 누오바 500. 피아트는 이탈리아의 소형차 강호입니다.

흔히 '이탈리아 차'라고 하면 떠오르는 건 두 가지입니다. 페라리, 람보르기니, 마세라티 등 억대를 가뿐히 호가하는 스포츠카들, 그리고 이탈리아의 오래된 골목길을 누비고 다니는 소형차들이죠. 이탈리아의 국민차 브랜드인 피아트 역시 500(친퀘첸토)로 대표되는 전통의 소형차 강호입니다.​

500과 거의 비슷하지만 조금 더 큰 600이라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피아트의 상징과도 같은 차는 누오바 500(우리가 아는 그 차)이지만 그보다 조금 뒤에 나온, 그리고 조금 더 큰 600(세이첸토)라는 차도 있었습니다. 그래봐야 요즘 경차보다도 훨씬 작은 차라서 여러 사람이 짐을 싣고 함께 이동하기에는 어려웠죠.​

600 물티플라는 600의 캐빈룸을 차체 앞쪽으로 대폭 확장한 피아트의 첫 MPV입니다.

그래서 탄생한 600의 파생 모델이 바로 600 물티플라(600 Multipla)였습니다. 후드를 없애고 좌석을 앞으로 당겨 성인 4명과 짐을 실을 수 있는 공간이 생겼고, 뒷문을 추가해 승하차 편의성도 높였습니다. 그럼에도 전장이 3.5m에 불과해 좁은 골목길을 다니기에도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디자인과 실용성 양면에서 호평 받은 600 물티플라는 1967년까지 11년 간 13만 대 가까이 팔리며 인기를 끈 모델이었죠.

흔히 '이탈리아의 거리' 하면 떠오르는 모습. 큰 MPV가 다니기 어려운 길입니다.

그로부터 약 30년이 지난 1990년대, 과거의 500이나 600보다 훨씬 큰 차들이 보편화됐지만 여전히 이탈리아의 거리는 좁고 굽어져 있었습니다. 피아트가 새로운 MPV를 개발하면서 600 물티플라를 떠올린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죠.


당시 유럽에서 판매되던 6~7인승 MPV는 대부분 2+2(3)+2 구조의 3열 시트가 탑재됐고, 이 때문에 전장이 길어 좁은 도로에서 몰기 불편한 데다 3열 탑승객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3열까지 사람을 태우면 짐을 실을 수 없는 것 또한 단점이었죠.

90년대 중반, 피아트의 차세대 MPV는 타이트한 조건 하에 개발됐습니다.

'타입 186'이라는 프로젝트 명의 새 MPV는 이런 문제점들을 극복하는 방향으로 기획됐습니다. 기획 총괄 파올로 칸타렐라(Paolo Cantarella)가 내건 요구 조건은 상당히 타이트했는데요. 좁은 골목에서도 쉽게 운행할 수 있도록 전장은 4m를 넘지 않으면서 6명의 성인과 400L 이상의 짐을 실을 수 있어야 했습니다. 실내 공간은 다양한 형태로 활용할 수 있으면서 CNG 사양에 대응할 수 있도록 연료 봄베를 탑재할 공간도 마련해야 했죠.


타입 186의 예산은 빡빡했습니다. MPV 자체가 주력으로 많이 팔리는 차는 아니었으니까요. 피아트의 C-세그먼트(준중형) 해치백 브라보(Bravo)의 플랫폼에 손을 많이 대지 않고 이런 요구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전고를 1,670mm까지 높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신 높아진 전고 만큼 유리창의 면적이 넓어졌고, 이는 탑승객들에게 뛰어난 개방감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됐습니다.​

물티플라와 로베르토 지올리토. 그는 훗날 뉴 500의 선행 디자인을 담당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까다로운 조건들을 모두 충족하는 새 MPV의 디자인은 로베르토 지올리토(Roberto Giolito) 피아트 수석 디자이너가 맡았습니다. 혁신적인 구성과 파격적인 디자인을 두른 차는 클래식 MPV의 이름을 계승해 '물티플라'라는 뱃지를 달고 1996년 파리 모터쇼에 출사표를 던집니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의 잘못된 예

파리 모터쇼에 등장한 물티플라는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파리 모터쇼에서 공개된 물티플라는 콘셉트카였지만, 휠과 범퍼 정도를 제외하면 2년 뒤 출시될 양산차와 거의 동일했습니다. 피아트 내부에서도 이 파격적인 디자인에 대한 '적응 시간'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이례적으로 일찍 디자인을 공개한 것이었죠.


물티플라를 처음 본 사람들의 반응이 어땠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건 확실합니다. 기존의 자동차 디자인 논법과는 완전히 다른 접근을 통해 까다로운 조건들을 모두 달성한 대신, 말 그대로 "이 세상 차가 아닌" 것 같은 생김새로 완성됐기 때문이죠.​

물티플라는 파격적인 3:3 시트 배치를 통해 트렁크 공간을 확보했습니다.

짧은 차체를 유지하면서 성인 6명이 탈 공간을 만들기 위해 물티플라는 폭을 넓히고 같은 모양의 시트를 3+3 구조로 배치하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2열 시트 뒤에는 최소 430L의 트렁크 공간이 확보됐고, 시트를 다양한 형태로 접거나 아예 탈거해 최대 1,900L의 적재 공간을 만드는 것도 가능했습니다.​

헤드라이트처럼 보이는 앞쪽 조명은 차폭등이고, 진짜 헤드라이트는 윈드실드 바로 밑에 있습니다.

또 한 가지 특징은 전면부 설계였습니다. 물티플라의 전면부는 낮은 보닛 위에 한 층이 더 쌓여있는 듯한 독특한 형태인데, 윈드실드 바로 아래에 전조등이 들어가고 차체 앞쪽에는 차폭등이 배치됩니다. 후드 높이를 낮춰 전방 시야를 더 넓게 확보하고, 높이 배치한 전조등 덕에 앞을 더 환하게 밝힐 수 있었죠. 이 특이한 설계와 비례 때문에 커피 주전자(coffee pot)라는 별명도 얻었습니다.


이처럼 지올리토는 물티플라를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는 개념 하에 디자인했습니다. 기능성과 실용성에 초점을 맞추면 미적 완성도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는 것인데요. 그러나 하나씩 떼 놓고 보면 장점 뿐인 모든 요소들이 한 데 모였을 때, 그것이 아름다움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물티플라의 난해하기 짝이 없는 디자인은 두고두고 놀림거리가 됩니다.

짧지만 넓고 높은 차체, 극단적으로 긴 휠베이스, 비정상적으로 넓은 유리창, 난해한 레이어드 구조의 전면부와 여기저기 흩어진 헤드라이트, 툭 튀어나온 뒷유리와 캐슈넛처럼 생긴 테일램프, 심지어 곤충 더듬이처럼 튀어나온 사이드 미러까지... 무엇 하나 혼란스럽지 않은 게 없었죠.

한 술 더 뜨는 인테리어. 사무용 책상 배치에서 영감을 얻었다지만, 글쎄요...

인테리어 역시 난해하긴 매한가지였습니다. 1열 가운데 좌석을 확보하기 위해 센터 터널을 삭제하고 모든 기능을 대시보드 위에 배치했는데요. 운전석 주변은 횡한 반면 계기판, 공조장치, 변속 레버, 송풍구, 오디오, 컵홀더, 수납공간까지 하나로 뭉친 거대한 '덩어리'가 한가운데에 위치했습니다. 그것도 나름 미래지향적인 둥글둥글한 형태로 말이죠.


지올리토는 물티플라의 인테리어 디자인이 "책상 위에서 필기구나 문구류를 모두 한 곳에 모아두고 필요한 것을 골라 쓰는 것처럼 직관적으로 모든 기능을 제어할 수 있도록 배치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괴기스럽기까지 한 모습에 "종양 덩어리 같다"는 소릴 듣기도 했습니다.

물티플라는 1999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된 '다음 세기의 자동차' 전시에 출품됐습니다.

자동차 디자인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한 부분이 '현대미술적' 관점에서는 호평을 받아 뉴욕 현대미술관에 전시되는 영예를 얻기도 했지만, 대중의 평가는 극과 극이었습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거부감을 느낀 이들이 훨씬 많았습니다.


언론이 물티플라의 디자인에 대해 내린 평가를 보면 그야말로 참담한 수준인데요. 영국 텔레그래프는 "정신병 걸린 만화 속 오리를 닮아 친구와 이웃들의 비웃음거리가 될 것"이라 적었고, 선데이 타임즈는 "코끼리 인간을 닮은 외관이 실용적인 공간과 괜찮은 주행 감각을 모두 가려버린다. 이 차를 타고 있는 꼴을 보이느니 걸어 다니는 게 낫다"고 촌평했습니다.

2004년에는 훨씬 평범한 디자인으로 바뀝니다.

자동차의 디자인에 호불호가 갈리는 건 흔한 일이지만, 물티플라 만큼 욕을 많이 먹은 디자인이 또 있을까요?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명제를 강력히 고집했던 피아트도 결국 지나치게 미래적인 이 MPV의 디자인이 실패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2004년 부분 변경에서 외관을 대대적으로 뜯어 고쳐 비교적 평범한 스타일로 바뀌었습니다. 어정쩡한 비례와 괴이한 인테리어는 그대로 였지만요.

못 생겼지만 날 기억해 줘!

외모에 대해선 말이 많았지만, 물티플라의 상품성 하나는 호평 일색이었습니다.

디자인에 대한 악평이 쏟아졌던 것과는 별개로, 물티플라의 상품성 자체는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유럽의 교통 환경에 최적화된 차체 크기, 성인 6명이 타도 불편하지 않은 실내 배치와 다양한 시트 구성을 통한 막강한 공간 활용도, 소형차에 강한 피아트 답게 탄탄한 주행 성능까지 갖췄기 때문인데요.

실제 판매에 있어서도 물티플라는 성공적인 편이었고, 의외로 부분 변경 이전에 더 잘 팔렸습니다.

실제 판매량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출시 당시 피아트 개발 총괄이었던 주세페 스칼리올라(Giuseppe Scagliola)는 물티플라의 연간 판매 목표가 4만 대 정도라고 밝혔는데요. 출시 첫 해인 1999년 3만 9,189대를 시작으로 2001년에는 4만 9,841대까지 늘었습니다. 12년 간 유럽에서의 총 판매량은 33만 대 가량을 기록했으니, MPV로선 제법 성공적이라고까지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유럽에서는 2010년 단종됐지만, 중국에서는 2013년까지 생산되며 전기차로 마개조 당하기도 합니다.

2008년부터는 중국의 중타이(Zotye) 자동차가 물티플라 후기형의 라이선스 생산을 시작합니다. 중국에서는 M300이라는 이름으로 팔리고, 심지어 나중에는 전기차 버전이 출시되기도 했는데요. 애초부터 CNG 연료 봄베를 탑재할 수 있도록 설계된 덕에, 큰 개조 없이 배터리를 실을 수 있었던 거죠. 여러 모로 시대를 크게 앞서나간 설계 사상이 돋보이는 대목입니다.​

흔히 '못 생긴 차 3대장'으로 꼽히는 차들. 여러분의 픽은 무엇인가요?

물티플라는 흔히 쌍용 로디우스, 폰티액 아즈텍과 함께 '못 생긴 차 3대장'으로 불립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로디우스는 법규 탓에, 아즈텍은 원가 절감 탓에 당초 의도를 벗어나 기형적인 모습이 된 반면, 물티플라는 처음부터 철저히 의도된 디자인이었다는 것이죠. 혹자는 이 때문에 물티플라의 죄질(?)이 더 나쁘다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직 사용자를 위한 기능성과 실용성, 편의성을 바라보며 진행된 물티플라의 개발 과정은 2000년대 이후 주목 받은 소위 '인간 중심 설계'를 선진적으로 도입한 것이었습니다. 디자인 논란에도 불구하고 목표 수준의 판매량을 이어 갈 수 있었던 것도 뛰어난 상품성 덕분이었죠. 디자인에 치중한 나머지 기본적인 사용 편의성을 포기하는 차가 늘어나는 요즘, 물티플라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자동차 업계의 전장에서, 어떻게든 오래 기억된다는 건 좋은 일이 아닐까요?

어쨌거나 서두에 이야기한 것처럼 매년 수백 대의 신차가 출시되고 사라지는 자동차 업계에서, 파격적인 디자인 하나로 오래도록 화제거리가 되며 기억되는 건 결국 자동차 입장에서는 행복한 일이 아닐까요? 비록 좀 놀림을 받기는 하지만요.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글 · 이재욱 에디터 <피카몰 매거진>​

2022.11.04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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