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장식품이 아니었다고? 후드 오너먼트의 역사

[자동차]by 피카미디어

고급차의 상징인 후드 오너먼트는 원래 장식품이 아니었습니다.

요즘은 많이 줄었지만, 불과 15년 전쯤까지도 고급차를 타면 심심찮게 볼 수 있었던 것이 있습니다. 바로 후드 오너먼트(hood ornament)입니다. 후드 엠블럼이나 본넷 엠블럼 등으로도 불리는데요. 명칭 자체가 낯설어 좀 더 쉽게 풀어 이야기하자면, 차체 맨 앞쪽 보닛 위에 부착된 세워진 엠블럼이 바로 후드 오너먼트입니다.


후드 오너먼트는 운전자에게 큰 만족감을 주는 아이템입니다. 햇빛이나 가로등 불빛 아래를 달릴 때, 운전자의 시야 앞에서 반짝이는 후드 오너먼트가 눈을 즐겁게 해 주죠. 때문에 따로 이를 구입해 직접 부착하는 운전자도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이 후드 오너먼트가 원래는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었습니다. 자동차에 기능적 목적으로 장착된 부품이 시간이 지나면서 심미적 기능을 더하는 건 흔한 일이지만, 후드 오너먼트는 그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음에도 장식적 목적으로 꽤 오랫동안 존속한 특이 케이스입니다. 후드 오너먼트에는 어떤 역사가 숨어 있을까요?

처음에는 수온계였다!​

투탕카멘 파라오의 마차. 앞쪽의 매 조형물은 인류 역사상 첫 후드(?) 오너먼트로 여겨집니다.

신분에 따라 탈것을 치장하는 건 인류의 오랜 관습입니다. 고대 이집트 시대 파라오의 마차에서도 이 같은 장식용 조각상을 찾아볼 수 있죠. 하지만 내연기관 자동차에 부착된 최초의 후드 오너먼트는 보다 실용적인 목적이 강했습니다.​

초기 자동차의 라디에이터는 사이펀의 원리로 냉각수를 순환시켰습니다.

공랭식 엔진을 지나 수냉식 엔진이 도입되면서, 자동차에는 냉각수를 식히기 위한 라디에이터가 장착되기 시작합니다. 지금은 엔진 힘으로 구동하는 워터펌프가 냉각수를 강제로 순환시키지만, 초기의 라디에이터는 그저 사이펀의 원리를 활용해 냉각수를 천천히 순환시키는 게 최선이었죠. 엔진보다 높고 큰 세로형 라디에이터가 적용된 건 그런 까닭입니다.


그런데 냉각수를 순환시키는 워터펌프도, 엔진 온도에 따라 자동으로 여닫히는 써모스탯도 없으니, 냉각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작동할 리가 없었습니다. 언제나 과열로 엔진이 치명적인 고장을 일으킬 가능성이 상존했고, 운전자 입장에서는 냉각수의 온도라도 쉽게 파악할 수 있길 원했죠.​

보이스 모토미터는 최초의 수온계 겸 라디에이터 캡이었습니다.

그러던 1912년, 독일계 이민자 헤르만 슐라이흐(Hermann Schlaich)가 개발한 최초의 수온계가 등장합니다. '보이스 모토미터(Boyce MotoMeter)'라는 이름의 제품이었는데요. 원리는 아주 간단했습니다. 라디에이터 상단 캡에 직경이 맞는 온도계를 끼워 넣은 제품이었죠. 내부의 수온이 비정상적으로 오르면 수온계의 눈금이 올라와 운전 중에도 빠르게 인지할 수 있었습니다. 최초의 수온계 겸 라디에이터 캡이었던 보이스 모토미터는 크게 히트했고, 이내 자동차 회사들의 순정 부품으로 납품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여러 회사들이 보이스 모토미터를 납품 받으면서 제조사마다 고유의 디자인을 적용하기 원했고, 또 애프터마켓용으로 판매되는 제품에도 소비자의 수요에 따라 다양한 디자인의 제품이 추가됩니다. 차의 얼굴이나 다름없는 전면부의 한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우뚝 솟은 수온계에 장식적 요소가 더해지기 시작한 것이죠. 이것이 바로 후드 오너먼트의 시작입니다.

기술 발달로 기능을 상실한 뒤에도 후드 오너먼트는 여전히 명맥을 잇고 있습니다.

수온계가 운전석 주변으로 자리를 옮긴 후에도 라디에이터 캡을 브랜드 고유의 장식품으로 꾸미는 유행은 이어졌습니다. 심지어는 워터펌프 방식의 강제 순환식 냉각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라디에이터가 그릴 안쪽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후드 오너먼트는 '근사하다'는 이유 만으로 살아남아 1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명맥을 잇고 있습니다.


사실 후드 오너먼트에는 숨겨진 공적이 하나 있는데, 바로 오늘날 당연하게 여기는 자동차 엠블럼의 원형이 됐다는 점입니다. 초창기 자동차는 아무나 살 수 없는 물건인 데다 수제작으로 만들어져 굳이 대중이 브랜드를 구분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대량생산과 모터리제이션이 이뤄지면서 제조사들의 경쟁이 치열해졌고, 마침 등장한 후드 오너먼트에 고유의 엠블럼이나 장식을 삽입해 브랜딩을 시작한 것이죠. 이후 후드 오너먼트가 위치했던 라디에이터 상단에 브랜드 로고가 부착되는 게 당연시된 걸 생각하면, 후드 오너먼트야말로 자동차 엠블럼의 원조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역사에 길이 남을 후드 오너먼트들

롤스로이스의 스피릿 오브 엑스터시는 인류 역사 상 가장 유명한 후드 오너먼트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후드 오너먼트는 브랜드나 차종의 아이덴티티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요긴하게 쓰였습니다. 그 중에서는 현재까지도 존속 중이거나 사라졌지만 오래도록 회자되는 것들이 적지 않은데요. 자동차 역사에 길이 남을 후드 오너먼트를 몇 가지 소개합니다.


후드 오너먼트 중 가장 유명한 건 단연 롤스로이스일 것입니다. 1911년, 라디에이터 캡 부착용 장식품으로 니케 여신을 본따 만든 것이 바로 그 유명한 환희의 여신상, 스피릿 오브 엑스터시(Spirit of Ecstasy)입니다. 초창기에는 선택 사양이었지만, 언제부터인가 모든 롤스로이스에 부착되면서 판테온 그릴과 더불어 롤스로이스 전면부 디자인의 대표적인 상징이 됐습니다.

스피릿 오브 엑스터시는 가장 비싼 후드 오너먼트이기도 합니다.

스피릿 오브 엑스터시는 오늘날 양산차에 부착되는 후드 오너먼트 중 가장 비싼 가격으로도 유명한데요. 기본적으로는 크롬 도금된 합성수지로 제작되지만, 주문자가 원한다면 어떤 소재로든 주문할 수 있습니다. 빛을 발하는 반투명 폴리에틸렌, 금도금, 백금 주물, 심지어 다이아몬드를 박아 장식하는 것도 가능하죠. 기본 가격은 250만 원 정도지만, 주문 사양에 따라 최대 수천만 원에 달하기도 합니다.


BMW에 인수된 이후에는 이 스피릿 오브 엑스터시에 전동 수납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도난 및 파손을 방지한다는 명목인데, 꼭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시동을 걸면 튀어나오는 여신상의 모습이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죠. 100년 넘게 롤스로이스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만큼, 앞으로도 가장 오랫동안 존속할 후드 오너먼트 중 하나로 꼽힙니다.​

메르세데스-벤츠도 100년 넘게 삼각별 오너먼트를 사용해 왔습니다.

후드 오너먼트 사랑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회사가 바로 메르세데스-벤츠입니다. 오늘날까지 사용 중인 삼각별 로고는 1909년 상표 등록 후 1921년부터 라디에이터 엠블럼으로 활용됐으니,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데요.


과거에는 C-클래스부터 S-클래스까지 모든 승용 모델에 삼각별 오너먼트가 부착돼 있었지만, 최근에는 대다수 모델에서 사라졌습니다. 후술할 안전 상의 이유와, "젊은 고객들이 후드 오너먼트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이죠. 하지만 아직도 일부 승용 모델에는 남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재규어의 독특한 리퍼 오너먼트는 2010년대 이후 완전히 자취를 감췄습니다.

영국의 재규어도 흔히 리퍼(Leaper)라 불리는, 뛰어오르는 재규어 형상의 후드 오너먼트로 유명합니다. 대다수의 후드 오너먼트가 브랜드의 로고나 조각상 형태로 세로로 긴 모양인데 반해, 재규어는 가로로 길게 뻗은 디자인이 특징적이었죠. 하지만 재규어 역시 XF 이후로 점차 후드 오너먼트를 삭제하기 시작해, 현재 판매 중인 신차에서는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그 밖에도 자사의 로고를 후드 오너먼트로 만든 회사가 많았습니다. 특히 미국 고급차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데요. 링컨, 캐딜락, 뷰익 등이 로고 형태의 후드 오너먼트를 1990년대까지 사용했습니다.

귀여운 후드 오너먼트도 있습니다. 사진은 맥 트럭의 불독 오너먼트.

언제나 고상한 후드 오너먼트만 있는 건 아닙니다. 미국의 상용차 회사인 맥 트럭(Mack Truck)은 불독 형태의 후드 오너먼트로 유명하며, 후드 오너먼트의 전성기였던 1950년대에는 아메리카 원주민(폰티액), 로켓(올즈모빌) 등 다양한 형태의 후드 오너먼트가 존재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본격적인 국산 고급차가 소개된 1980~1990년대에는 후드 오너먼트를 단 고급 승용차가 많았습니다. 현대 그랜저, 에쿠스, 기아 포텐샤, 엔터프라이즈, 대우 로얄 시리즈 등이 대표적입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오늘날 국산차에서는 완전히 자취를 감췄습니다.

사라져 가는 고급차의 아이콘

후드 오너먼트는 제작 난이도나 비용 대비 심미적 효과가 큰 장식물입니다.

후드 오너먼트가 당초의 기능적 목적을 상실한 뒤에도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제작 난이도나 비용 대비 얻는 심미적 효과가 크다는 이유가 주효했습니다. 적은 비용으로 만들 수 있지만, 운전자에게 주는 만족도는 매우 크다는 것이죠. 게다가 공기 저항 등 차의 성능에 미치는 영향도 거의 없다시피 해 제조사로선 부담 없이 고급스러움을 더하는 수단으로 각광 받았습니다.


그런 후드 오너먼트가 공룡처럼 '대멸종'을 겪은 일이 있었는데요. 바로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후드 오너먼트에 대한 규제가 강화된 것입니다. 후드 오너먼트는 보기에 근사하지만, 보닛 위에 비죽 튀어나와 보행자 충돌 사고 시 보행자에게 큰 부상을 입힐 우려가 컸습니다. 이에 미국 정부는 1968년 이후 시판되는 신차에 고정형 후드 오너먼트의 사용을 금지했습니다.

1970년대 이후까지 존속한 후드 오너먼트는 안전을 위해 접히는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유럽 역시 1974년부터 고정형 후드 오너먼트를 금지하면서, 많은 제조사들은 후드 오너먼트의 적용을 포기하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고급차들은 생각이 달랐죠. 비용이 늘더라도 후드 오너먼트를 유지하는 게 브랜드 이미지에 더 이롭다는 판단을 내린 겁니다. 그래서 롤스로이스, 메르세데스-벤츠 등 후드 오너먼트를 애용하는 회사들은 장식 하단에 스프링을 부착, 강한 충격을 받으면 자동으로 접히는 설계를 도입합니다.


현재까지 사용되는 후드 오너먼트들은 모두 이와 비슷한 완충 기능을 탑재하고 있습니다. 또 이렇게 접히지 않는 오너먼트의 경우, 의도적으로 연결 부위를 깨지기 쉽게 만들어 충돌 시 부러지도록 설계하고 있습니다.

이제 후드 오너먼트는 정말 몇 종류의 차를 빼면 그 자취를 거의 감췄습니다.

오늘날에는 후드 오너먼트가 적용된 신차를 손에 꼽을 정도로, 과거에 비하면 그 입지가 크게 줄었습니다. 안전 장치에도 불구하고 보행자 보호 규제가 갈 수록 강해지는 데다, 후드 오너먼트의 후신이라 할 수 있는 엠블럼이 점점 커 지면서 굳이 별도의 후드 오너먼트를 부착할 필요성이 낮아진 까닭입니다. 또 젊은 세대의 선호도도 낮고, 그렇다고 이를 미래차에 필요한 센서와 결합하기에는 그 부피가 너무 작아 한계가 뚜렷하니, 여러 모로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습니다.​

아직도 이런 화려한 오너먼트가 좋은 건 저 뿐일까요? :)

하지만 여전히 적잖은 운전자들이 시야에 아른거리는 영롱한 오너먼트에 대한 로망을 품고 있습니다. 좀 더 기술이 발전한다면, 안전을 해치지 않으면서 더욱 세련된 후드 오너먼트가 부활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가령 홀로그램으로 구현한 환희의 여신상과 같이 말이죠. 시대의 흐름 만큼이나 자동차도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지만, 고급차의 아이콘과도 같은 후드 오너먼트를 조금만 더 오래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글 · 이재욱 에디터 <피카몰 매거진>

2022.11.23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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