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흔한 자격증? 운전 면허의 역사

[자동차]by 피카미디어

매년 겨울이면 인기를 끄는 자격증, 운전 면허입니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반짝 호황을 누리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자동차 운전 면허 학원인데요. 수능 시험을 마친 학생들이 생애 첫 운전 면허를 따기 위해 몰리면서 문전성시를 이룹니다. 운전 면허는 성인의 증표이자(사실 법적으로 성인이 아니어도 취득할 수 있지만요), 일상 생활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자격증이며, 또 대표적인 신분증으로도 활용되니까요.


너무 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된 나머지 쉽게 체감이 안 되지만, 운전 면허는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취득하고, 실제로 활용하는 자격증입니다.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취득할 수 있는 운전 면허 체계의 탄생은 자동차가 지구 상에서 가장 보편적인 운송 수단이 되는 데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운전 면허는 자동차가 탄생한 순간부터 존재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것은 아니고, 지난 100년 간 자동차의 발전과 함께 서서히 체계화 돼 왔습니다. 오늘은 우리에게 자유로운 이동을 허락해 주는 자격증, 운전 면허의 역사를 살펴보겠습니다.

시끄러운 기계 마차를 위한 허가증​

칼 벤츠는 세계 최초로 내연기관차를 상용화한 사람이자, 최초의 면허 취득자였습니다.

내연기관 자동차가 탄생한 건 1886년의 일입니다. 얼핏 생각하기에는 자동차가 보편화된 이후에 운전 면허가 만들어졌을 것 같지만, 의외로 최초의 운전 면허는 자동차가 탄생한 직후인 1888년 발급됐습니다. 심지어 세계 최초의 자동차를 발명한 칼 벤츠가 면허를 발급받은 장본인이었죠.


1886년 페이턴트 모터바겐의 특허를 출원한 뒤, 칼 벤츠는 종종 자신의 자동차를 타고 거리를 누볐습니다. 하지만 주변 이웃들에게는 벤츠의 자동차가 썩 달가운 존재는 아니었는데요. 괴기스러운 소음을 내는 말 없는 마차가 사람들을 깜짝 놀래키거나, 심지어 공포감을 조성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가령 요즘 기준으로 운전석에 아무도 타지 않은 무인 자동차를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요?

벤츠가 받은 바덴 정부의 운행 허가증. 세계 최초의 운전 면허입니다.

동네 사람들의 항의가 빗발치고 자동차의 마을 운행을 거부하는 일까지 생기자, 칼 벤츠는 아예 정식으로 운행 허가를 받아 이런 불만을 잠재우기로 합니다. 그는 바덴 지방 정부에 운행 허가증 발급을 요청했고, 얼마 뒤 당국으로부터 허가증을 받았습니다. 행정 당국이 발급한 권위 있는 자동차 운행 허가라는 측면에서, 이 허가증은 세계 최초의 운전 면허로 여겨집니다. 유럽 곳곳에서 탄생한 태동기 자동차와 그 운전자들은 모두 비슷한 일을 겪었기에,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를 전후해 유럽 각지에서 비슷한 형태의 운행 허가증이 발급되기 시작합니다.


모든 운전자에게 운전 면허 취득을 강제하는 제도는 영국에서 시작됐습니다. 1904년 새로운 자동차법이 시행되면서, 모든 운전자는 소재지 관청에 차량을 등록해 번호판을 발급받고, 운행 허가증을 의무적으로 취득하도록 했습니다. 다만 별도의 운전 면허 시험은 없었고, 소정의 발급 비용만 내면 즉시 발급됐습니다. 이러한 제도는 이후 자동차 등록·번호판 제도와 운전 면허 제도로 파생됩니다.


한편, 1903년 독일 프로이센에서는 조금 다른 형태의 면허 제도가 도입됐는데요. 바로 자동차 운전자로 하여금 자동차를 운용할 수 있는 공학적 지식을 요구하는 것으로, 증기기관감독협회가 주관하는 자동차 정비 시험을 통과해야만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었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운행 허가와는 별개로 자동차를 관리할 능력이 있는지를 평가하는 것이었지만, 최초의 자동차 면허 시험이라 할 수 있습니다.​

1920년대 미국의 운전면허. 20세기 초 대부분의 나라에서 운전 면허 제도가 시행됩니다.

1910년에는 독일 전역에서 운행 허가가 아닌, 시험을 통해 취득하는 운전 면허 제도가 세계 최초로 도입됐습니다. 자동차의 증가로 인한 교통사고가 사회적 문제로 비화되면서 각국은 독일의 제도를 참고해 운전 면허 제도를 도입하기 시작했고, 20세기 초 대부분의 나라에 운전 면허 제도가 정착됩니다.


하지만 자동차에 대한 정의조차 모호했던 20세기 초의 면허 시스템은 각 나라마다 상이했습니다. 자동차 조작법도, 각국의 교통법규도 제각각이었으니까요. 우리나라처럼 자동차를 타고 해외에 나갈 일이 거의 없다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유럽은 각국이 육로로 연결돼 자동차의 국가 간 왕래가 잦은 만큼 어느 나라에서나 적용될 수 있는 통일된 교통 법규 및 면허 체계의 필요성이 대두됩니다.

현대 국가 대다수가 비슷한 교통 법규를 공유하는 건 운전 면허 통일을 위한 논의에서 시작된 국제 협약 덕분입니다.

이런 국제 운전 면허 제도는 1920년대부터 논의가 시작됐지만, 세계 대전 등 국제 사회의 혼란을 거치며 논의는 지지부진했습니다. 때문에 본격적인 제도 도입은 1949년 도로 교통에 관한 제네바 협약이 체결되면서야 이뤄질 수 있었습니다. 제네바 협약에서는 모든 국가의 도로 구조, 교통 법규, 표지, 신호 등 기본적인 제도적 통일이 이뤄졌고, 이에 맞는 운전 면허 및 국제 운전 면허 제도를 도입해 어느 나라에서나 동일한 규칙 하에 운전할 수 있는 면허 시스템을 확립합니다.


이 협약은 1968년 체결된 도로 교통에 관한 비엔나 협약에서 더욱 발전되었고, 오늘날에는 여러 차례의 개정을 거쳐 협약국 간에는 동일한 법규 및 시스템을 준수하는 운전 면허 제도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각 나라마다 운전 면허의 형태는 조금씩 달라도, 두 협약에 가입한 세계 각국에서는 큰 어려움 없이 운전을 하고, 상호 간 운전 면허의 효력을 인정하는 체제가 마련됩니다.

한국 운전 면허의 탄생과 발전

우리나라의 운전 면허 제도는 1910년대, 일제강점기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외국보다 자동차 보급이 늦었던 우리나라에는 언제 운전 면허가 도입됐을까요? 1903년 포드 모델 A가 고종황제의 어차로 수입되면서 한국의 도로에도 자동차가 등장했지만, 국내 최초의 운전 면허는 그로부터 10년여가 지나서야 등장합니다. 그것도 처음에는 사설 무허가 면허였죠. 그 배경에는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가 숨겨져 있습니다.


때는 1910년대 초, 일제강점기를 맞이한 조선 땅에서 운전을 할 줄 아는 사람은 고작 세 명 뿐이었습니다. 고종황제와 순종황제, 그리고 조선 총독을 위한 운전 기사가 그들이었죠. 그나마도 전부 일본인이었습니다. 이 때까지 자동차는 엄청나게 비싼 서양의 신문물이었고, 심지어 조선인들 사이에서는 자동차가 "다루기 어렵고 사람을 치어 죽이는 무서운 쇠 망아지"라는 공포감마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본인 사업가 곤도와 오리이, 그리고 한국인 갑부 이용래는 식민지 조선에서 노선 버스 사업을 준비 중이었습니다. 이들은 미국에서 포드 승합차 10대를 주문했지만, 운전수를 구할 수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조선에는 운전수가 없었고, 당시만 해도 일본에도 자동차를 몰 줄 아는 사람이 20여 명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일제강점기 운전수의 모습. 우리나라 최초의 운전 면허는 무허가 사설 강습소에서 발급됐습니다.

이들은 고민 끝에, 직접 운전 교습소를 차리고 자신들의 회사에서 일할 운전수를 양성하기로 합니다. 1912년, 오늘날의 갈월동 일대에 세워진 경성 운전수 양성소가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운전 교습 시설입니다.


하지만 자동차에 대한 두려움에 지원자는 전혀 없었습니다. 결국 이들은 수강료를 면제하고, 성적 우수자에게는 보너스까지 지급하며, 심지어 졸업 후 회사에서 채용하겠다는 '파격조건'을 내걸고서야 교습생을 모집할 수 있었습니다. 그 마저도 10명 중 9명이 일본인이었고, 투자자인 이봉래의 아들인 이용문 만이 조선인이었죠.


어찌됐건 이들은 우리나라 최초의 무허가 사설 면허 학원(?)에서 교육을 받아 운전 면허를 취득했고, 대다수가 오리이의 운수 회사에 채용돼 많은 월급을 벌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조선은 물론 일본에도 제대로 된 면허 체계가 없었기에 일어난 일입니다.​

조선시대 승합차를 이용하는 사람들. 운전 면허 법제화는 일제시대에 이뤄졌고, 현대적인 면허 제도는 1961년 제정됩니다.

운전 면허의 법제화는 1915년 이뤄졌는데요. 조선총독부의 자동차 취체 규칙에서는 운전 면허 취득을 원하는 사람이 경무부(현재의 경찰청)에 서류를 제출한 뒤, 실기 시험을 통과하면 '자동차 운전수 감찰'이라는 명패를 발급받았습니다. 이것이 국가 기관에서 도입한 한국 최초의 운전 면허입니다.


한국 전쟁이 지나가고 1961년에야 현대적인 도로교통법이 제정되면서 지금과 같은 운전 면허 제도가 도입됐습니다. 당시에는 경찰이 직접 운영하는 자동차 운전 교습소에서만 교육을 받을 수 있었지만, 1995년부터는 국가 지정 면허 시험장 외에도 교육부터 면허 취득까지 한 곳에서 마칠 수 있는 자동차 운전 전문학원이 도입돼 현재에 이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총 11종의 운전 면허가 존재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운전 면허는 총 11종입니다. 1종 면허가 6종, 2종 면허가 3종이며, 운전 교육 중 사용하는 연습 면허가 2종입니다. 1종 보통 면허는 수동 1톤 트럭으로, 2종 보통 면허는 오토 승용차로 시험을 보는 탓에 1종은 수동 면허, 2종은 오토 면허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 도입 취지는 좀 다른데요.


정확히는 1종은 사업용 차량, 2종은 승용 차량을 위한 면허로 도입됐습니다. 1종 면허에 대형 면허나 트레일러, 구난차(견인차) 등을 몰 수 있는 특수 면허가 있는 것도 그런 까닭이죠. 하지만 1996년 2종 보통 면허에 자동변속기 전용 면허가 도입되면서 2종 보통 면허가 빠르게 '오토 전용' 면허로 여겨지기 시작했고, 오늘날에는 그 취지가 다소 퇴색됐습니다.​

현행 면허 시험은 장내 기능과 도로 주행으로 나뉩니다. 그러나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여전히 적지 않습니다.

1997년에는 실제 도로 주행 시험이 처음으로 도입돼 오늘날과 같은 '장내 기능+도로 주행'의 구성이 완성됩니다. 2011년 운전 면허 간소화가 이뤄지며 면허 시험 난이도가 크게 내려가는 일이 있었는데, 이후 미숙련 운전자의 교통사고율이 증가하는 등 부작용이 발생하면서 2016년에는 현재와 같은 수준으로 다시 면허 취득 난이도가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강화 방침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운전 면허는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게 취득이 쉬운 편입니다. 해외에서는 짧아도 수 개월, 길면 3~4년에 달하는 교육 및 관찰 기간을 거쳐야만 면허를 취득할 수 있습니다. 자동차는 빠른 속도로 달리는 쇳덩이인 만큼, 안전을 위해서는 철저한 교육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어느덧 100년 넘는 역사를 지닌 우리나라의 면허 제도도 '물면허'를 탈피해 보다 강력한 교육 시스템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자율주행 시대에도 운전 면허가 필요할까?​

SAE의 자율주행 기술 분류법에 따르면, 현재 상용화된 자율주행 시스템은 레벨 2~3 수준입니다.

오늘날에는 세계적으로 적어도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운전 면허를 취득하고, 매일매일 도로에 나서고 있습니다. 자동차가 제공하는 놀라운 이동성을 누리기 위한 최소한의 자격 요건인 셈인데요. 하지만 자율주행 시대가 도래하면서 운전 면허 제도의 미래 역시 바뀔 전망입니다.


미국자동차공학회(SAE)의 자율주행 기술 단계 별 분류에 따르면 자율주행 기술은 총 5단계로 나뉩니다. 그 중 현재 상용화된 건 레벨 2~레벨 3 수준으로, 부분적으로 자동화가 이뤄지고 특정 조건에서는 페달과 운전대를 조작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여전히 시스템의 한계는 뚜렷하기 때문에, 운전 면허를 취득한 운전자가 항시 탑승해 전방을 주시하고, 필요 시에는 즉시 개입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시험 차량은 최대 레벨 4 수준의 기술력을 구현했지만, 여전히 인간의 통제가 필요합니다.

현재 실제 도로에서 주행 테스트 중인 자율주행 시험 차량의 경우, 레벨 3~레벨 4 수준의 기술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즉, 목적지만 입력하면 대부분의 도로에서 차량이 스스로 주변을 인식하고, 판단하며, 주행하지만, 아주 예외적인 특정 상황에서는 운전자가 조작에 개입해야 합니다. 이 또한 운전의 주도권은 자율주행차가 갖지만, 여전히 운전 면허가 있는 운전자를 요구하죠.


궁극의 자율주행 단계인 레벨 5에서는 어떨까요? 현재 SAE가 규정하는 레벨 5 자율주행 차량은 완전 자율주행이 가능합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인공지능 로봇 택시인 셈인데요. 완전 자율주행은 오류나 사고가 없다는 전제를 갖기 때문에 운전석을 비워도 되고, 전방을 주시할 필요도 없으며, 심지어 안전벨트를 맬 필요도 없습니다.​

레벨 5 자율주행차는 운전 면허 없이도 운전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레벨 5 자율주행차를 이용할 때는 운전 면허가 없어도 될까요? 운전 면허는 운전을 할 자격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운전 중 발생하는 사고에 대한 책임 또한 진다는 의미입니다. 즉, 운전 면허를 지닌 운전자 없이도 달릴 수 있는 자동차가 탄생한다는 건, 바꿔 말하면 운전 중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자동차 회사가 책임진다는 뜻이 됩니다.


때문에 자율주행이 고도화되고 운전자의 개입이 줄어들면 운전 면허 제도와 자격 요건, 범위 등에 대한 전면적인 개정 또한 요구됩니다. 또 제조사와 운전자, 보행자, 사법 당국 등 여러 이해관계자가 논의를 통해 권한과 책임 소재 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 합니다.

자율주행 시대에도 운전 면허는 존속할 것입니다. 아마도요.

완전한 레벨 5 자율주행차가 등장한다면 아예 운전 면허가 없거나, 차 안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최소한의 조치법을 교육받고 취득하는 자율주행차 전용 면허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최소한의 인지 능력만 있다면 누구나 부담 없이 이동성을 누릴 수 있는 시대가 오는 것이죠.


물론 그 시대에도 직접 운전하는 걸 즐기는 이들은 지금과 같은 운전 면허를 따려고 할 겁니다. 어쩌면 운전 면허가 지금처럼 보편적인 자격증이 아닌, 소수의 유별난 사람만 취득하는 기능 자격증이 될 지도 모를 일입니다.


글 · 이재욱 에디터 피카몰 매거진

2022.12.20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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