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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 ] Startup’s Story #454

하고 싶은 건 무조건 한다. 우주로 갈 때까지.

by플래텀

플래텀

전동근 더쎄를라잇브루잉 대표 ⓒ플래텀

더쎄를라잇브루잉(The Satellite Brewing) 전동근 대표는 인생을 압축해 사는 사람이다. 고교 시절 특목고 축구리그, 연예인 자선축구 경기, 전국 경제동아리 학생들을 주축으로 소논문을 발표하는 포럼 등 행사를 기획, 개최하며 대한민국인재상(대통령상)을 수상했다. 당시부터 그의 꿈은 전문경영인이었다. 고교 졸업 이후부터 5년 간은 글로벌 비영리 단체(세이즈코리아) 한국 대표를 맡아 학생 창업경진대회를 주최하기도 했다. 당시의 경험은 자신감이 되어 창업으로 이어졌다.


스스로 문제 학생이었다 말하지만, 그가 학업에 소홀했던 것은 아니다. 미국 미시간으로 유학을 가 경제학을 전공했고, 한국으로 돌아와 대학원에 진학해 석사 학위를 마친 뒤 올해 박사 과정에까지 도전한다. 사업 마케팅에 활용하기 위해 경비행기 운전까지 배우고 있다. 전 대표는 하루라도 빨리 창업하기 위해 대학을 2년 6개월 만에 조기 졸업하기도 했다. 그렇게 창업을 시작한 것이 3년 전, 그의 나이 올해 스물여덟이다.


듣는 입장에서 그의 이력은 재미있다. 하지만 당사자 입장에서 녹록한 과정은 아니었을거다.


“거절당하는 것은 익숙하다. 한 번에 된 건 없었다. 그래도 열심히 하니 결과는 나왔고, 뭔가가 바뀌더라. 그러면서 성취감과 근거없는 자신감이 생겼다”


전 대표가 찾은 창업 아이템은 ‘수제 맥주’다. 유학시절 펍에서 마신 복숭아맛 맥주가 시발점이 되었다. 한국 시장에서 충분히 통할거라 판단한 그는 그 맥주를 제조한 기업 ‘쇼트브루잉’에 무작정 찾아갔고, 우여곡절 끝에 노하우를 전수 받았다. 당시 그가 보여준 진정성은 사업 파트너를 얻는 배경이 되었다.


1인 기업으로 태동한 회사는 차근차근 성장 중이다. 서울에 양조장을 세우고 얼마 전 크래프트 펍도 오픈했다. 2019년 대비 1년 사이 400%이상 매출 성장도 이뤘다.


전 대표는 우주를 좋아하고 인연도 깊다. 맥주 제조 회사에 잘 쓰지 않을 것 같은 ‘인공위성(satellite)’이라는 단어도 회사명에 넣었다. 회사 양조장 정문에도 ‘우주가 여기에 있다’라고 쓰여져 있고, ‘로켓필스’나 ‘우주IPA’처럼 제품 명칭에도 관련 키워드가 들어간다. 비영리단체 시절 아폴로 11호에 탑승한 우주인 버즈 올드린을 한국으로 초청하는 등 우주비행사들과도 친분이 있다. 맥주를 헬륨풍선에 묶어 우주로 보내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종국에는 인공위성과 관련된 사업을 꿈꾸고 있다.


전동근 대표를 서울 강남구 선릉역 부근 카페에서 한 번, 그리고 회사 오피스와 양조장, 그리고 크래프트 펍이 위치한 가산디지털단지에서 또 한 번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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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건 무조건 한다.”

술은 좋아 하나. 이 사업 어떻게 시작했나.


사실 좋아하지 않는다. 4년 전만 하더라도 내가 이 분야 창업을 할거라 상상도 못 했다. 심지어 이 사업을 한다고 결정했을 때도 주류 제조 공정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었다.


빨리 창업하고 싶었다. 대학 재학 시절 생각한 아이템은 지역 농가와 도시를 잇는 O2O 비즈니스였다. 그러다 창업계 대선배인 고영하 회장(한국엔젤투자협회), 전화성 대표(씨엔티테크)를 만났는데, ‘해당 사업은 손 대기 어려운 영역이니 조심하라’, ‘대학 먼저 졸업하라’는 조언을 들었다. 하고 싶은 건 무조건 하는 편이라 아이템 포기는 안 됐지만, 학업을 마쳐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했다. 빨리 창업하고 싶어서 조기 졸업했다. 그런데 학교를 마친 사이 내가 하려던 비즈니스에 잘 하는 선도 사업자들이 자리 잡고 있더라. 타이밍이 지나갔다 여겼다.


그러다 다가온 것이 수제 맥주다. 미국에서 학사 과정 마지막 학년에 가까운 펍에서 수제 맥주를 마신게 계기가 되었다. 그전까지 나한테 수제 맥주는 맛없는 술이었다. 처음 수제 맥주라 불리우는 것을 접한게 스몰비어 체인이었기 때문일거다. 병맥주에 꿀이나 복숭아 액을 타주는 거였는데 그리 인상적이지 않았다. 그러다 제대로 된 수제 맥주를 접하며 그 선입견이 깨졌다. 복숭아를 발효시켜 만든 ‘피치팜팜‘이라는 제품이었는데 신세계였다. 한국에서 수제 맥주 제품이 막 등장하려던 시기였고 스타트업 개념을 이 사업에 도입해 시도하면 기회가 많겠다 판단했다.


그리고 선택권을 되찾고 싶었다. 한국인은 맥주 선택의 자유가 없다. 음식점에 가면 고를 수 있는 맥주 선택폭이 좁다. 사람이 맛있는 맥주를 자유롭게 마실 수 있어야 하잖나. 그런 권리 침해를 없애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술을 안 좋아하던 내가 느꼈던 것을 대중에게도 제공하고 싶었다.


사업을 하려고 마음 먹었을 때 과정이 명확히 보이진 않았지만, 할 수 있다는 근자감(근거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간 안 된다고 주변에서 말리는 일 많이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실행했고, 결과를 낸게 그 자신감의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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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브루잉의 ‘스페이스락’ ⓒ플래텀

사업 아이템을 결정하고 제일 먼저 한 구체적 행동은 뭔가.


피치팜팜을 제조한 쇼트브루잉으로 찾아갔다. 그 회사의 노하우를 배우고 싶었고 함께 사업하면 성과가 있을거라 여겼다. 회사측에 메일을 보냈지만 답변은 없었다. 거절당하고 회신 못 받는 건 고등학교 때부터 익숙했다. 관건은 어떻게 하면 조 쇼트(쇼트브루잉 대표)를 만나느냐였다. 그래서 회사에서 운영하는 투어 프로그램을 신청하고 무작정 갔다. 다행스러웠던 건 투어 가이드가 조 쇼트 대표의 멘토였다. 그를 붙잡고 조 쇼트 대표를 만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버즈 올드린과의 인연을 어필한게 그의 관심을 끌었다. 미국인에게 버즈 올드린은 닐 암스트롱과 함께 달을 밟은 영웅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일거다.


금방 연락이 오던가?


두 달 뒤에 보자고 연락이 왔다. 그때는 한국에 있을 땐데, 바로 비행기 표를 끊었다. 기다리고만 있었던 건 아니다. 앞서 한 달 동안 유럽에 있는 양조장을 돌아다니면서 수제 맥주 트랜드를 살펴보고 왔다. 맥주를 많이 마셔서 역류성 식도염이 오기도 했다. 늦게라도 만나자는 회신이 왔기에 기쁜 마음으로 사업 계획안을 만들어서 갔다. 그런데 막상 얼굴을 본 조 쇼트 대표는 내가 만든 서류는 보지도 않더라. 한국 시장에 기회가 크다는 설명에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자신한테 이렇게 접근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사기도 당했기에 탐탁스런 마음으로 만난건 아니었다 한다. 그저 열심히 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어서 그 이유가 궁금했을 뿐이었다고 한다.


조 쇼트 대표를 결국 설득한건데, 어디서 반응이 왔나.


수제 맥주 기업은 하이네켄 등 수백 년된 기업과 동일선상에서 경쟁하면 상대가 안 된다. 레드불처럼 마케팅으로 풀어야 승산이 있다. 그래서 나라면 버즈 올드린 등 우주인 네트워크를 총동원하고, 시리즈B나 C 펀딩을 받을 때 맥주를 우주로 보낼거라고 말했다. 테슬라가 전기자동차를 우주로 보낸 것과 같은 맥락의 아이디어였다.


거기서 조 쇼트 대표의 태도가 바뀌었다. 알고보니 그도 우주에 대한 동경이 있는 사람이었다. 바로 냉장고에서 맥주를 한 캔 꺼내왔는데, 본인의 얼굴과 우주 배경이 그려진 ‘스페이스락‘이라는 제품이었다. 그걸 우주로 보내고 싶다며 뭐부터 해야하냐고 묻더라. 그래서 우선 한국에 와서 시장을 함께 살펴달라고 했다. 그리고 내가 맥주에 대한 지식이 없으니 노하우를 알려달라고 했다. 이론보다는 실제 맥주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알고 싶어서 공장에 투입시켜달라고 요청했다. 이후 한국과 미국을 두 달에 한 번씩 오가며 2주씩 맥주 제조 공정을 배웠다. 어느날부터 조 쇼트 대표가 나를 ‘코리안 브라더’, ‘코리안 조 쇼트’라 부르기 시작했다.


조 쇼트 대표가 마음을 연 건 내가 공장에서 맥주 제조 과정을 배울 때였다고 한다. 쇼트브루잉은 하루 6시간씩 4교대로 공장이 가동된다. 나는 빨리 배우고 싶어서 잠자는 시간 6시간 빼고 3교대를 소화했다. 25kg 포대를 나르며 기계 다루는 법, 원재료 관리, 양조장 안전 관리 등 모든 과정을 볼 수 있었다. 조 쇼트 대표는 내가 하다 말줄 알았는데 열심히 하는 것을 보고 믿게 됐단다. 나중에는 제품 레시피까지 다 알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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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근 대표와 조 쇼트 쇼트브루잉 대표 / 사진=더쎄를라잇브루잉

일면식없던 사이에서 친구가 되고 사업 파트너가 됐다.


한국에 양조장을 만들 때 직원들을 몇달 씩 한국으로 파견해 줘서 빠르게 적용할 수 있었다. 내가 뭘 해줘야 한다는 약속도 하기 전이다. 비행기표도 끊어왔고, 페이를 바라지도 않았다. 왜 그렇게 도와주냐고 나중에 물어보니 21살 때 고생하며 창업을 시작한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고 한다. 열심히 하기에 도와주는 거고 성공했으면 좋겠다고 격려했다.


제일 처음 만든 수제 맥주 제품은 뭐였나.


내가 처음 레시피를 써서 만든 제품으로는 ‘서울브로‘라는 제품이 쇼트브루잉에서 출시되었다. 출시되는 건 알았지만 디자인에 콧수염 기른 내 얼굴이 들어가는 줄은 몰랐다. 조 쇼트 대표의 서프라이즈였다. 회사로는 ‘망고야’라는 제품이 첫 출시 제품이었다.


가산디지털단지에 양조장이 있다. 도심의 양조장이 흔한 사례는 아니다. 왜 여기에 지었나.


국내 수제 맥주 주소비층은 20대 중후반에서 30대 초반 연령대, 남성 보다는 여성이 더 선호한거라 생각했다. 그런 회사원이 많은 상권이 어딘지를 파악하기 위해 서울 전체를 돌아다녔다. 가산디지털단지는 우연히 아침에 지나가다 직장인들이 많이 보여 조사하게 된 케이스다. 오피스가 밀집되어 있고, 주변에 수제 맥주 펍은 고사하고 맥주집 자체도 많질 않았다. 자료를 살펴보니 반경 1.5km 안에 유동인구가 30만 명이 있었다. 유레카, 여기다 싶었다.


입주 지역을 정한 다음에는 공장이 들어갈만한 건물을 찾아봤다. 하중을 잘 받쳐줘야 하고, 탱크가 크기에 층간도 높아야 했다. 당시는 공장과 펍이 함께 있어야 근린생활시설 2종으로 허가가 나서 음식점 면허가 나왔다. 조건을 맞출 수 있는 곳을 찾다보니 지금의 아파트형 공장으로 오게 됐다. 감에 의지한 측면이 큰데, 결과적으로 나쁘지 않은 결정이었다.


현재 연간 86만 리터 생산이 가능한 양조장을 아파트형 공장에서 가동 중이다. 사실 국내 규모있는 업체에 비하면 작은 규모이다. 하지만 서울에 있는 업체치고는 큰 편에 속한다.


제품 배송은 어떻게 하나. 규모있는 곳은 물류회사를 쓴다.


쉽지 않지만 직접 한다. 아직 물류회사에 맡길 사이즈가 아니다. 정해진 리소스 내에서 효율적으로 전국을 돌고 있다. 겨울은 괜찮은데, 성수기인 여름은 쉽지 않다. 주말과 평일 구분이 없다. 명절 등 바쁠땐 개인차에 싣고 내려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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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쎄를라잇브루잉 양조장 내부 전경 ⓒ플래텀

빠르게 창업에 도전한 케이스다. 학창시절 창업 외 다른 길을 생각해 본 적 없나.


고민을 안 한 건 아니다. 이 길이 정말 맞나 스스로에게 자문하며 보낸 시간도 있었다. 내가 창업을 생각하던 2010년에는 스타트업에 대한 이야기 자체가 드물던 시절이라 정보가 많지도 않았다. 결국 나 자신을 믿기로 하니, 잘 가고 있구나라는 확신이 따라왔다. 가족들은 어릴 때부터 나를 믿어줬다. 학생으로 크게 어긋나지 않은 과정을 이어왔기에 가능했을거다. 하지만 내가 처음에 수제 맥주 사업을 한다고 했을 때 긍정적인 반응은 아니었다. 그래서 제대로 된 수제 맥주 투어를 함께 다니며 납득시켰다.


고등학교 때 꿈은 전문경영인(CEO)이나 컨설턴트였다. 경제나 경영 공부하면 큰회사 들어가서 경영진으로 가는게 코스인 줄 알았다. 세이즈 활동을 시작한 스무살 이후부터 생각이 바뀌었다. 회사에 들어가서 전문경영인이 될 수도 있지만, 내가 창업한 회사에서 전문경영인이 될 수도 있잖나. 대기업도 시작은 스타트업이었다. 나한테는 창업이 맞겠다 싶었다.


비영리 섹터와 영리 섹터 둘다 겪어봤다. 차이는 뭐라고 보나.


공통점은 지속가능하려면 자본을 조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에서 받든 민간에서 받든 필요한 부분이다. 차이점은 비영리는 돈을 써서 임펙트를 일으켜야 한다는 것이고, 영리는 임펙트 뿐만 아니라 돈을 벌어 투자자에게 환원까지 해야한다. 비영리는 프로그램과 콘텐츠만 좋으면 성공적인 모델이지만, 영리는 아무리 콘텐츠가 좋아도 대중에게 소구되어야 한다. 제품이 좋다고 반드시 잘 팔리는 건 아니다. 맥주를 잘 만드는 것을 넘어서 잘 팔리게끔 하는 과정까지 영리 섹터는 필요한 거다.


준비를 하고 도전했겠지만, 여전히 부족한게 있었을텐데.


순탄했다고 말할 순 없을거다. 시행착오도 많았고. 예상치 못 한 상황이 나와서 비용이 발생하기도 했다. 조직과 시스템을 잘 모르는 상황에서 시작한 것도 아쉽다. 잘 되는 조직에 대한 배고픔 같은거다. 경륜이 있으면 원만히 넘어갈 일도 쉽게 안 넘어가는 경우가 있었고, 잘 모르면서 내 의견을 관철시킨 적도 있다. 조직을 겪어봤다면 그보다는 더 잘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부족함이 있을 때마다 큰 기업들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하더라. 그래서 외부 네트워킹을 하면서 조언을 많이 듣는다.


이 사업은 시작부터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간다. 시드 자금은 어떻게 마련했나.


보통 스타트업이 창업할 때 쓰리F(가족, 친구, 바보)로부터 초기 투자를 받는다고 하잖나. 나도 마찬가지다. 우린 거기에 G(정부)가 하나 더 붙었다. 중학교 시절 학원에서 처음 만난 12년 지기 친구가 1억 5천을 투자했다. 아울러 또래지만 많이 배우고 있는 개인 투자자가 7억 원을 투자했다. 두 사람은 나와 이 사업에 믿음을 준거다. 체계적으로 더 크게 키우기 위해 추가 투자 유치도 고려 중이다.


창업 과정에서 가장 많이 도와준 사람은 누구인가.


한국청년기업가정신재단 금기현 사무총장이다. 존경하는 멘토이자 나한테는 제 2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다. 고등학교 때 재단에서 알바와 인턴을 할 때부터 시작된 인연이다. 늘 관심을 가져주고 격려해주고 자신의 일처럼 도와줬다.


추가 투자를 유치하면 뭘 할건가. 공장 규모를 넓혀 생산량을 늘릴건가?


공장 짓는 것 보다 전체 산업을 키우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우린 맥주도 생산하지만 90여 개 업체에 원재료 공급도 하고 있다. 이들의 니즈를 맞추려면 폭넓게 수입해야 한다. 보통 수제 맥주 기업은 규모가 크지 않고, 원재료를 각각 수입하기 어렵다. 그 문제를 해결한다면 판이 커질거다. 그리고 우리 맥주를 맞볼 수 있는 펍을 더 늘리고 싶고 도심 속 양조장을 보여주는 투어 프로그램을 생각하고 있다. 제 2 공장은 그 다음에 지어도 된다. 공장을 새로 짓는다면 도심이 아니라 외곽으로 가서 부지를 키워서 해야할거다.


현재 매출 비율은 어떤가.


2018년까지는 원재료 매출이 많았다. 투자유치를 하고 마케팅도 하면서 작년에는 맥주 매출이 더 많아졌다. 올해도 그럴거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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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쎄를라잇브루잉 크래프트 펍 ⓒ플래텀

몇년 전 수제 맥주 스타트업이 다수 등장하던 시절이 있었다. 몇년 간 투자도 많았는데, 근래에는 주춤한 듯 싶다. 원인이 뭐라고 보나.


맥주에 매기는 세금 기준이 기존 ‘종가세’에서 ‘종량세’로 바뀌는데 오래 걸린 점, 대규모 자본이 필요한 점, 맥주시장이지만 하드웨어가 필요한 사업이라는 점, 기존 주류 세력의 견제, 그로인한 미미한 수익개선이 원인이라고 본다. 시장은 성장하고 있지만 벤처캐피털이 눈여겨볼 정도로 폭발적 성장은 아니었던 거다.


올해 1월에 종량세로 바뀌었는데, 어떻게 될까.


다양성과 본인의 기호를 추구하는 게 트랜드이다. 수제 맥주의 핵심이 다양성이기에 가능성이 큰 것은 분명하다. 다만 시장이 작던 크던 간에 본인만의 경쟁력이 있어야 살아 남는다. 커피 시장은 매년 커지고 있고 전망이 밝음에도 모두가 잘 되지는 않잖나.


수제 맥주 분야 규제가 하나 둘 개선되고 있다. 하지만 사업하는 입장에서 아쉬운 것이 있을거다.


여러 스타트업이 건의를 해서 치킨 등 음식과 함께 주문할 때 생맥주 배달이 합법화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남은 건 많다. 국내법은 청소년이 온라인에서 주류를 살 수 없게 규제하고 있다. 당연히 동의한다. 그런데 지역 특산주는 온라인에서 팔 수 있다. 같은 술이고 더 도수가 높은 술인데 규제는 상반되게 적용되는 거다. 그런 부분이 공평하게 풀리면 시장이 더 크게 성장할거다.


맥주는 관허사업이다. 시어머니도 둘이다. 국세청과 식약처 양쪽에서 허가를 받아야 한다. 불필요한 과정이 줄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허가 받아서 출시할 때까지 두 달 넘게 걸리기도 한다. 마음은 빨리 내고 싶은데 쉽게 되지 않는다. 우리 양조장 가봤을니 알겠지만, 납세증지가 붙은게 있고, 안 붙은게 있다. 붙은것만 팔 수있는데, 증지 하나 붙이는데 2개월이나 기다려야 한다. 절차가 너무 옛날 기준이다.


국내 수제 맥주 제조사는 어느 지역에 있든 새로운 맥주 판매 허가를 받으려면 제주도로 가야 한다. 국세청 산하 주류 면허 지원센터가 서귀포 혁신도시에 있기 때문이다. 양조장을 새로 만들면 서귀포에서 공무원이 비행기를 타고 와서 검사를 하고 통과가 되어야 최종 허가 난다.


담당 공무원도 업무에 익숙해질만하면 바뀐다. 홈택스에 주세 신고 시스템이 있지만, 제대로 안 되어 있다. 그래서 오프라인으로 문의를 종종 하는데 명확히 설명을 못 하는 부분이 있다. 확실한 가이드가 없는 상황에서 자칫 실수를 하면 우린 범법자가 되어 책임을 져야 한다. 음영이 있다.


수제 맥주 신제품 하나를 만들었다 치자. 뭐부터 해야 하나.


우선 숫자와 비율이 들어간 제조방법을 작성해 국세청에 보내야한다. 그걸 받는 부서가 제주도에 있기에 서신으로 보내고 서신으로 가부 판단을 받는다. 이 과정만 1~2주 걸린다. 국세청 면허센터에 있는 공무원 한 사람이 전국에 있는 모든 맥주 제조방법을 검토하기에 그렇다. 숫자만 확인하는 건데 전자화만 되면 빨리 끝날 과정이 이렇게 오래 걸린다.


그다음에 세무소에 가서 주류견본 체취표를 받는다. 그걸 받아서 캔이나 병에 500ml씩 포장해서 다시 제주도로 보낸다. 제주도는 알다시피 택배가 하루 정도 늦게 가고 늦게 온다. 그 분석 과정도 1~2주 걸린다. 결과가 나오면 다시 세무소에 보내고 가부여부를 기다려야 한다. 그게 통과되면 납세증지 신청서를 세무서에 내고 허가서가 나오면 인쇄업체에 줘야 한다. 디자인하고 컨펌받고 증지가 오기까지 또 1~2주 걸린다. 그 다음에 상표 신고하고 가격 신고서를 세무서에 내야 출고를 할 수 있다. 하나라도 틀리면 1~2주 더 추가된다. 불필요한 규제와 절차가 많으니 행정적으로 소모해야하는 리소스 낭비가 심하다. 일부는 없어도 되고 전산화만 되면 단축시킬 수 있다고 본다. 수제맥주 산업이 빨리 발전하려면 꼭 필요한 부분이다. 인터케그 사례처럼 모멘텀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우리나라 수제 맥주 경쟁력은 어떻다고 보나.


우리나라는 주류 소비량이 많기로 유명한 나라다. 글로벌 맥주 브랜드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환경이다. 주류 상품이 관광 상품이 될 수 있다. 샌디에고에서 온 미국인이 우리 펍에 들러서 마시고 간 다음에 소셜네트워크에 호평을 남긴 것이 기억에 남는다. 우리나라 수제 맥주 기업들 상당수가 세계적인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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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근 더쎄를라잇브루잉 대표 ⓒ플래텀

회사이름에 ‘인공위성(satellite)’이 들어간다. 본인에게 우주는 어떤 의미인가.


내 꿈은 앨런 머스크와 같은 연쇄창업자가 되는 것이다. 쎄를라잇이라고 정한건 한참 뒤에 인공위성과 관련된 일을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성공해 자본이 넉넉해진다면 도전할거다. 사업을 하다보면 어려운 일이 부지기수지만 회사이름을 보면서 늘 생각하는 것이 초심을 잊지 말자는 것이다. 무조건 이 사업을 성공시키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인생을 압축해서 사는 것 같다. 번아웃은 없었나.


왜 없었겠나. 크래프트 펍 셀프 인테리어 할 때 제대로 왔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주말에는 쉬려고 한다. 이전에는 7일 내내 일했는데, 그게 항상 능률이 좋은건만은 아니더라. 시야가 좁아진다는 느낌이 들 때는 독서를 한다. 힘든 일이 생기면 스타트업 인터뷰를 보면서 위안과 에너지를 얻는다. 그러다보면 내 사례는 별거 아닌것처럼 보이더라.


작업하면서 장화를 많이 신는데, 그 과정에서 발 건강이 나빠졌다. 장화는 내화학성이고 세척하려면 화학약품을 써야 하고 꽉 막혀있다. 이걸 열 시간 넘게 신으니 살이 파이더라. 사람 발인가 싶을 때가 있다. 한편으론 이렇게 살면 뭐든 다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든다.


힘들기도 하지만 성취감도 있었을거다.


수제 맥주를 만들려면 홉이 필요하다. 사업 초기 살펴보니 신선한 홉 구하기가 지금처럼 쉽지 않았다. 게다가 원재료 공급을 대형업체 하청업체만 하고 있어서 품질관리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우린 원재료를 미국에서 항공으로 냉장수입하고 있다. 180년 역사를 가진 홉 생산 기업 독일 홉스테이너와 140년째 고품질 맥아를 생산하는 미국 브리즈사의 국내 판매 독점권을 획득하고, 콜드체인 시스템을 갖춘 항공기로 운송해 온다. 이를 국내 90여 개 맥주 기업에 공급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기존 업체도 결국 콜드체인을 바꾸더라. 매출을 떠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는 것이 좋았다.


창업한지 3년이 지났다. 죽음의 계곡은 넘어온 셈이다. 여전히 재밌나?


생각한 것 만큼 속도가 안 나오는 게 아쉽긴 하지만, 재미있다. 안 좋은건 맥주를 많이 마셔서인지 창업하고 25kg이나 몸무게가 늘었다.


자금을 제외하고 지금 회사에 꼭 필요한 건 뭔가.


사람이다. 모든 팀원이 일당백으로 일하고 있지만, 더 크게 성장하려면 역시 사람이 중요하다. 다음 팀원은 마케팅, 브랜딩, 재무 쪽 인재였으면 좋겠다. CFO나 CMO가 합류한다면 큰 도움이 될거다. 자원을 효율적으로 쓰면서 가는 게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 있나.


이 인터뷰 기사를 보는 사람들이 한 잔이라도 국내 수제 맥주를 마셔주면 좋겠다. 수제 맥주 시장에 조금 더 관심을 가져달라. 손해 볼 관심사는 아닐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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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손요한(russia@platu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