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과 함께 ‘자유’ 여행하는 법
* 이 글은 해외 자유 여행 초보인 60~70대 부모님을 모시고 간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부모님과의 자유여행을 준비하는 이 땅의 모든 아들, 딸들이 조금 덜 시행착오를 겪기 바라는 마음을 담아 썼습니다.
얼굴도 안나오는 그림자 사진을 왜찍냐고 투덜거리셨지만 포즈는 취하심 |
사실, 20대의 나는 시간도 없었고 돈도 없었다. 부모님 또한 평생을 그래 왔던 것처럼 먹고사는 데 열중하셨다. 해외여행은 팔자 좋은 남들의 이야기라 생각하시며 하루하루 사는데 열심이셨다.
하지만 아직 창창할 나이인 50대 중반이던 엄마가 오래도록 말썽인 무릎 수술을 하시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가장 가까이서 병원 생활을 돕고, 힘든 재활 훈련을 곁에서 지켜보며 생각이 많아졌다. 무릎이 아파 꿈도 못 꾸던 부모님과의 여행을 해봐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더 늦기 전에 시작해야 한다는 강한 압박감이 밀려왔다. 그래서 무릎 수술 후 재활 훈련에 땀을 흘리던 엄마를 이끌며, 우리 다리 나으면 꼭 여행을 가자고 말했다. 한 해 한 해 노쇠해지는 부모님을 보면 더 늦장을 부릴 수가 없었다.
부모님의 시간은 자식들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마음먹은 즉시 비행기 표를 끊었다. 시작은 어색하고 어려웠지만 이제 부모님은 나와의 여행을 손꼽아 기다리신다.
0단계 : 부모님과의 여행은 내 여행의 카운트로 치지 않는다
부모님과 여행을 가기로 마음먹었다면 나의 즐거움은 다음으로 미루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다. 이 여행을 통해 얻게 되는 가장 큰 수확은 여행을 통해 부모님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내 눈으로 담는 것, 그리고 다녀와서 부모님께서 주변 분들께 자랑할 거리를 만들어 드리는 것으로 충분하다.
평생을 나를 위해 희생하신 부모님을 위해 여행하는 며칠간 나를 잠시 내려놓는 것… 이것이 바로 부모님과의 여행을 해피엔딩을 이루는 방법이다.
1단계 : 부모님의 여행 성향을 파악해 여행지를 정한다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듯 여행에는 취향이라는 게 있다. 개인적으로는 관광지보다는 소도시, 사진 찍기보다는 맛있는 거 먹기에 중점을 두는 여행이 취향이다. 하지만 체력 빵빵한 친구들과의 여행이 아닌 황혼의 부모님과의 여행에서는 부모님과의 취향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자연경관 vs 도시 풍경 / 숙박비 아껴서 먹는 것에 투자 vs 무조건 잠자리는 좋은 곳 / 여행의 생명은 호텔 조식 vs 여행의 생명은 야밤 맥주 / 유유자적 산책하기 vs 도전적인 액티비티 / 한결같은 한식 사랑 vs 현지식 도전 등등 보는 것, 즐기는 것, 먹는 것의 취향을 파악해 선택하는 것이 좋다.
2단계 : 부모님과의 여행은 짐 싸는 것부터 달라야 한다
나의 여행과 부모님과의 여행은 여행의 결 자체가 다르다. 그러니 여행할 때 짐 싸는 것부터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 초기에는 한식 마니아인 아빠님을 위해 캐리어의 반은 누룽지나 김, 튜브 고추장, 라면 수프로 채웠다.
요즘은 워낙 한국 음식점이나 한국 식자재를 파는 곳들이 많아서 짐은 줄일 수 있다. 대신, 숙소 가까이 있는 한국 음식점, 한국 식자재 판매점의 위치를 파악해 놓고 비상시 언제든 갈 수 있게 동선을 짜 놓는다.
부모님과 여행 갈 때 챙기면 좋은 것
- 넉넉한 비상약(소화제, 지사제, 변비약, 두통약, 감기약, 상처연고, 일회용 밴드 등)
- 자외선 차단 용품(선크림, 모자, 손수건, 긴팔 옷 등등)
- 에너지 충전용 영양제(피로 회복제, 짜 먹는 홍삼 등)
- 큰 글씨 현지어로 숙소의 주소와 연락처, 간단 회화를 적은 종이 + 넉넉한 비상금을 담은 봉투 (일행과 떨어지거나 길을 잃었을 때 어디서든 택시를 타고 올 수 있을 정도의 금액과 주소)
3단계 : 여행지에서는 자녀의 역할은 멀티 플레이어야 한다
여행지에서 나의 역할이 궁금할 때 가장 참고하기 좋은 것은 바로 <꽃할배>의 마스코트 이서진이다. 그곳에서 그는 짐꾼, 내비게이터, 통역사, 운전기사, 포토그래퍼, 요리사 등등 그 어떠한 상황이 닥쳤을 때 만능으로 변신한다.
부모님과의 여행에서 자녀도 마찬가지다. 오직 자식만 믿고 여행을 온 부모님에게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다. 좋은 의도로 시작했지만, 여행의 현실은 생각보다 냉정하다. 평정심과 인내심을 시험하는 무수한 상황들이 몰려올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이성의 끈을 놓지 말고 기억해야 할 것은 “부모님과의 여행에서 자식은 조연”이란 사실이다.
부모님과의 여행 중 해보면 좋을 꿀팁
- 사진을 찍으면 바로 모니터 할 수 있게 보여드리면 다음번엔 좀 더 만족스러운 사진을 얻을 수 있다.
- 요즘 젊은이들이 유행하는 것들 시도할 수 있도록 부추기면 찍을 때 즐겁고 나중엔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예- 손가락 하트 만들기, 커플티 혹은 가족티, 동영상 찍기, 특정 포즈 똑같이 취해 보기, 생일 기념 여행시 미리 뜨거운 물만 부으면 되는 인스턴트 미역국을 준비하기 등등)
- 호텔 예약할 때, 미리 부모님의 결혼 기념 여행을 가는 거라고 언질을 해두면 크고 작은 서비스를 종종 준비해주기도 한다. (룸 업그레이드, 침대 꽃 장식 이벤트, 과일바구니, 와인, 케이크, 바 이용권 등등)
4단계 : 여행의 아름다운 마무리로는 포토북만 한 게 없다
부모님 세대에 많은 분은 여행에서 남는 것은 사진뿐이라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다. 그런 분들에게 사진은 사진 그 이상의 의미다. 예전처럼 사진을 찍어 현상해 앨범에 끼우는 일이 번거롭다 보니 요즘엔 아예 포토북을 만드는 편이다.
포토북으로 만들어 두면 여행지마다 한 권씩 책이 쌓여 언제든 꺼내 보는 것도 간편하고, 무엇보다 주변 분들께 자랑하기 쉽다. 비교적 시간도, 비용도 많이 투자해야 하지만 그 이상으로 효과가 좋은 게 포토북이다. 흐뭇한 눈빛으로 포토북이 닳고 닳도록 보시는 부모님을 볼 때면 부모님께서 더 나이 들기 전에 한 번 더 함께 여행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덧붙임
여행지에서 보는 부모님의 모습은 평소 내가 보던 부모님의 모습이 아니었다. 낯선 환경, 익숙지 않은 말, 말이 안 통하는 사람들, 입에 맞지 않는 음식 등등 혹시나 불편하고 힘들어하시면 어쩌나 하는 생각은 기우였다. 평생을 살아온 노하우로 낯선 곳에서 말도 안 통하는 사람들과 바디 랭귀지로 대화를 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니 내가 너무 걱정했구나 싶었다.
게다가 한국과는 다른 모든 것을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보며 신나 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니 하루라도 더 빨리 떠나 오지 못한 것이 미안해졌다. 그래도 더 늦지 않았음에 안도하며 언젠가 또다시 떠날 날을 위해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
만약 자신이 없고 이도 저도 싫다면 “부모님과 함께 떠난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패키지 투어를 택하는 것이 모두에게 이롭다.
필자 호사
혼신의 깨춤 전문가. 여행하고 먹고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