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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예 ]

‘1000:1의 경쟁률’을 뚫고 투캅스3의 여형사로 데뷔한 미스코리아 진 출신 그녀

by근황올림픽

90년대를 대표하던 톱 여배우 권민중. 그녀를 모르면 간첩이었죠. 1996년 미스코리아에 출전하여 당당히 충북 진의 자리를 꿰차고 1997년 투캅스 3에서 형사 역할을 맡아 당시 여배우들과는 다른 걸크러시의 매력으로 깊은 인상을 남기며 성공적인 데뷔를 했습니다. 투캅스 3 이후 많은 러브콜을 받으며 10년간 활발한 작품 활동을 선보였지만 최근에는 활동이 뜸했는데요. 여전히 아름다운 미모를 자랑하는 그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투캅스 3’의 여형사, 권민중의 첫인상이었어요.
출처 – ‘근황올림픽’ 유튜브

당시에는 여형사 역할로 남녀 단독 주인공을 하는 작품은 거의 첫 시도였던 거 같아요.


카리스마 있고, 섹시한 이미지였어요.
출처 – ‘근황올림픽’ 유튜브

제가 시리즈 3일 때니까 ‘투캅스 2’ 때는 박중훈을 이기는 김보성으로 보성 오빠는 로보캅 같은 느낌이었어요. 근데 ‘김보성을 이기는 여자’로 나와서 사람들이 “쟨 뭐지?” 이랬을 거 같아요. 그때 거의 여자 주인공은 비련의 여자 주인공으로 청순가련하고 불쌍해 보여야 했는데 저는 카리스마 있는 역할의 여자 캐릭터였죠.


첫 영화가 시즌 3의 대작..
출처 – ‘근황올림픽’ 유튜브

캐스팅이 된 건 오디션을 통해서였어요. 당시 기억으로는 1000:1 정도의 경쟁률이었다고 했는데 오디션을 보는 건 처음이었어요. 그때 당시 현장에 보성 오빠가 계셨는데 같이 맞붙는 대사를 읽어보라 해서 현장에서 읽어보고 그날부터 캐스팅이 됐는데 그림이 감독님이 생각하셨던 느낌이랑 잘 맞았나 봐요.


당시 인기가 정말 대단했죠.
출처 – ‘근황올림픽’ 유튜브

근데 그 시기를 약간 제가 잘 못 거쳐 간 것 같아요. 한 30~40일 정도는 스포츠신문 1면에 대문짝만 하게 났던 건 알았는데 다 볼 새가 없었죠. 편지들이 회사로 오기도 했는데 비둘기 그림이 그려진 감옥에서 온 편지들도 있었어요.ㅎㅎ 그리고 옛날에는 영화 홍보하러 롯데월드 같은 데 돌아다녔는데 남학생들이 “우와~ 권민중 누나다!”이러면서 몰래 엉덩이를 만지고 머리카락 뜯어가서 “아!!” 이러면 “야~ 누나 짜증 낸다 짜증 낸다” 애들이 이랬던 기억이 나네요.


1996년 미스코리아로 얼굴을 알렸죠.
출처 – ‘근황올림픽’ 유튜브

전년도에 나왔던 언니가 미용실에서 있는데 “우리 조카 딸이 훨씬 더 예쁘다”라는 큰 어머니 말에 사람들이 말만 하지 말고 데리고 와보라고 해서 저를 부르셨어요. 전 아무것도 모르고 갔었는데 구석진 방으로 데리고 가서 파란 수영복이랑 흰색 뾰족구두를 입어보라고 주시는 거예요. 일단 시키니까 아무 생각 없이 했었는데 갑자기 줄자로 사이즈를 재고 이러다가 미스코리아에 나오게 됐었죠.


2004년도에는 가수로도 데뷔했어요.
출처 – ‘근황올림픽’ 유튜브

와우라는 곡으로 음악방송도 한 6개월 했었죠. 그때 효리가 나오고 그 바로 뒤 시즌 정도여서 미디엄 템포의 여자 가수들이 진짜 많이 나왔어요. 다른 가수들이 소프트한 느낌이었다면 제 노래는 약간 센 느낌이었죠. ㅎㅎ 음악방송 활동은 정말 너무 재미있게 활동했어요.


‘투캅스’ 이후, 활발한 활동
출처 – ‘근황올림픽’ 유튜브

그 뒤로 10년은 뭘 하는지도 모르게 작품을 많이 했던 거 같아요. 그렇게 한 10년 정도 내달리니까 몸이 지쳤다 이랬다기보다는 ‘한숨 고르고 가야 되지 않나’ 이런 생각이 너무 들었죠.


아버지의 사업 실패,, 힘든 시절도 있었다고
출처 – ‘근황올림픽’ 유튜브

아버지가 신경 쓰실까 그간 잘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인데 사업하면 안 될 때도 있는 거죠. 근데 제가 데뷔할 때가 IMF였고 그때 집안 사정이 급격하게 안 좋아지면서 출연료 등 방송 쪽으로 차입되는 것들이 많았어요. 근데 늘 생각하는 거지만 망하려고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은 없어요. 우리도 어른이 되고 살다 보면 생길 수 있는 일이죠. 그래도 제가 이쪽 일을 하고 있는 덕분에 빚을 빨리 탕감할 수 있어서 너무 다행이었다고 생각하죠.


아쉬움이 남지는 않나요?
출처 – ‘근황올림픽’ 유튜브

제가 좋아하는 선배들 처음 만났을 때 “민중 씨 데뷔도 너무 좋았고 작품 골라가면서 하지” 이런 이야기를 들었는데 거기에 미주알고주알 제 속사정을 얘기할 수는 없고 “그냥 되는 대로 열심히 하는 거죠”, “들어오는 거 열심히 하고..” 그렇게 대답했었어요. 사실 조금 안정적이고 여유롭고 그랬다면 하고 싶은 작품들, 잘 어울리는 작품들 골라가면서 했었으면 또 다른 결과가 있었을지도 모르겠죠. 그렇지만 살아가는 거잖아요. 어차피 선택은 내가 하는 거고 가족을 두고 나만 잘 되는 그런 삶은 별로 원하지 않아요.


내려놓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데..
출처 – ‘근황올림픽’ 유튜브

다른 직업은 모르겠지만 배우는 자기 주제 파악 못하면 배우 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요. 나이 들어가는 보편적인 삶이라면 그 안에 나도 들어가야 되는 거죠. 30대 중반 넘어서부터는 시집 안 간 말썽쟁이 이모, 고모 역할을 주로 맡았어요. 결혼도 안 하고 이미지가 그렇지가 않으니까 엄마로도 잘 안써주더라고요.ㅎㅎ 여러 가지 가지고 있는 이미지나 이런 것들 때문에 연기에 있어서 국한되는 게 있긴 하죠.


최근에는 유튜브 ‘권민중 라디오’로 소통..
출처 – ‘근황올림픽’ 유튜브

“앞으로 뭐 하고 싶냐” 그랬을 때 라디오 DJ를 늘 꿈꿨는데 특히 “영화 음악 라디오 DJ 하고 싶다”라고 얘기를 한 적이 되게 많았었어요. 이제 유튜브로 넘어와서 DJ 활동을 하고 있는데 내가 뭘 솔루션을 준다기 보다 같이 거기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나도 이랬어요, 저도 이랬고”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채널이에요.


영상 마지막으로 인사 부탁드려요.
출처 – ‘근황올림픽’ 유튜브
출처 – ‘권민중’ 인스타그램

그냥 여러분들이 편안한 옆집 누나나 동생, 언니, 오빠? 그렇게 그냥 느끼셨으면 좋겠고요. 다들 정말 많이 지치고 특히 다시 작년으로 돌아간 거 같이 좀 울적해지는 기분인데 조금만 더 힘내서 이 시기를 우리 잘 견뎌내고 건강한 모습으로 자주 만날 수 있기를 바랄게요. 여러분, 파이팅입니다.


편한 옆집 누나, 동생, 언니, 오빠로

느껴졌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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