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변의 푸르름 속에 황금색 색채의 대비 – 남양주 물의정원 테마길
가을의 하늘, 손을 들면 그 쪽빛 푸른색이 손 끝에 뭍어날 것만 같은 청량함이 걷는 이를 매료시킨다. 그 하늘을 오롯이 담은 강변은 무엇이 그리 급하냐며 느긋이 흐른다.
온통 푸르름으로 대변되는 가을 날, 곳곳에서 만나는 단풍과 가을 꽃들의 향연은 또다른 강렬한 색채의 대비로 눈을 황홀하게 만든다. 하늘거리는 은빛 억새의 춤사위는 지나간 계절에 대한 송영이자 다가올 절정에 대한 환영이다.
가만히 북한강 강변따라 걷기 좋은 그 길, 남양주시 조안면에 위치한 물의정원은 세가지 테마의 길로 꾸며져 가을날 간편히 걸을 수 있는 길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사랑하는 가족과, 소중한 연인과 함께 그 찬란한 들판으로 떠나보자. 분명 그 누구보다 가을을 만끽하고 있다는 뿌듯함이 가슴을 채울 것이다.
남양주 물의정원은 경의중앙선을 타고 운길산역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다. 마을버스와 일반버스가 각각 대성리와 남양주 유기농박물관에서 오가지만 차편이 자주 있지 않으니 대중교통을 이용할 예정이라면 경의중앙선을 이용하는것이 제일 합리적이다.
물의정원 입구를 도착하니 멋진 글귀가 여행객을 반긴다.
‘강물이 흐른다, 갈대들이여 그리움으로 흔들려라’
유독 가을의 감성은 그리움과 추억으로 매듭지어진다. 갈대의 몸사위와 머리가 흰 억새의 굽은 등, 찬란한 색을 마지막으로 땅으로 떨어져 수북히 쌓이는 낙엽이 고하는 석별의 바스락진 소리가 그렇다. 하지만 이 물의정원이 가지고 있는 세가지 테마의 길은 그리움보다는 환희와 풍성함, 여유로 채운다.
물의정원의 세가지 테마길은 각각 물향기길, 물마음길, 강변산책길이다. 초입에 만나는 길은 잘 조성된 산책로를 따라 둥글게, 그리고 여유롭게 걸을 수 있는 물마음길이며 이윽고 아름다운 유선형의 다리를 건너 노란 코스모스가 한창인 코스모스군락지에 들어선다. 그 드넓은 코스모스밭을 따라 강변산책길을 걸어보자. 환상적인 색채의 대비는 모든이를 로맨티스트로 바꾼다. 길게 걸어 황포돛배 전망대를 돌아 되돌아오면 다리에 도착하기 전에서 물향기길로 빠지는 안내판이 있다. 연꽃습지 둘레를 따라 걸으며 만나는 하트벤치는 로맨티스트가 된 당신을 위한 소중한 공간이다.
- 추천코스 : 물마음길(15분) – 강변산책길 (1시간 30분) – 물향기길(30분)
물마음길
표지판을 따라 주차장에서 우측으로 들어선다. 앞서 보이는 멋진 다리를 건너 노란 코스모스 군락으로 들어서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겠지만 이 길은 말 그대로 물의 마음처럼 둥글게 난 코스를 따라 걸으며 마음을 가라앉히며 북한강 강변의 경치를 가볍게 담을 수 있는 길이다.
전체적으로 완만히 곡선을 이룬 산책로는 둥글게 둥글게 작은 곶을 따라 걷게 만든다. 잘 정비된 잔디는 그대로 이 곳을 찾은 이들의 소풍공간이다. 벤치가 아니더라도 누구라도 잔디밭에 앉아 바람의 노래와 강물의 속삭임을 담을 수 있다.
북한강변을 따라 걸으니 저 너머로 노란 코스모스 군락지가 보인다. 푸른 물결과 그보다 더 짙은 산세 속에 빛나는 노란색은 물의 마음처럼 둥글게 걸은 이를 유혹하고 있다.
다리를 향해 올라가며 물마음길은 끝나게 된다. 여유를 가지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가볍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또한 한 없이 쉬기에도 좋은 길이다. 강변을 따라 난 벤치, 전망대와 잔디밭은 짧은 코스이지만 쉽게 발걸음을 옮기기 힘들게 만든다.
강변산책길
강변산책길은 물의정원 다리를 지나 시작된다. 이 아름다운 다리의 유선형 곡선은 주변의 운장산과 물의정원을 돌아흐르는 북한강의 형세를 그대로 닮아있다. 쭉 뻗은 다리 양 옆으로 빼어난 경치가 펼쳐진다.
눈 앞에 펼쳐진 장대한 노란 코스모스 군락은 눈을 의심케 한다. 북한강변따라 끝없이 펼쳐져 있는 이 군락지는 가을논의 풍성함을 넘어선 또 다른 황금물결이다. 그 사이사이 분홍색 코스모스는 자리를 잘못 잡은 것에 당황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 부끄러움을 이기고자 태양을 바라보며 꼿꼿이 서 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화려한 비단을 깐 모양새일 것이다. 푸르른 하늘과 강변덕에 그 밝은 빛은 더욱 더 도드라진다. 그 도드라짐이 비단 색채뿐이겠는가, 이 곳을 찾아 강변산책길을 걷는 모든 이의 추억 속에도 그 어떤 가을 풍경보다 도드라진 자욱을 아로새길 것이 틀림없다.
앞서 걸은 물마음길에서 북한강변을 지척에서 만났다면, 이 강변산책길은 본격적으로 북한강변과 하나되는 길이다. 화려한 뒷배경 앞에 자리한 강변이 주는 자연스러움은 소박함 또한 얼마나 큰 풍취를 자아내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강물에 가지를 담근채 누워자란 나무들이 주는 신비로움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우아하다.
가을의 상징이지만 물의정원에서는 한참 밀려나 억울한 억새의 몸짓도 담아본다. 바람에 나부끼는 그 가녀린 몸사위를 어찌 가볍다고 탓할쏘냐. 그만큼 구부리고 받아줘야 휘영청 은빛머리를 나부낄만큼 자랄 수 있을 것이다. 그 생존에 대한 타협속에서 우리는 가을의 정취와 고독, 쓸쓸함만을 찾고 있으니 억새로서는 억울할 따름이다. 이때만큼은 그 은빛 숱을 쓰다듬고 또 쓰다듬어 본다.
가을강아지풀이 부드럽게 자란 길을 따라 걸으면 황포돛배 전망대에 도착한다. 이제는 황포돛배가 북한강변을 오가며 세곡과 갖가지 어물 및 산물을 부리는 모습을 볼 수 없지만, 이렇게 형상화되어 전망대로 남아 그 여운을 길게 이어주고 있다. 이 곳이 강변산책길의 종점인 셈이다. 여기에서 왔던 길을 따라 되돌아간다.
나무 사이 숨은 작은 배, 일엽편주에 불과한 크기이지만 당당히 이름을 가지고 있다. 가면서 보지못한 풍경, 쉽게 지나친 풍경이 새로운 시선속에 피어난다.
가을걷이에 한창인 것은 인간만이 아니다. 이 화려한 군락지가 지기 전에 부지런히 제 할일을 다 하는 벌들의 움직임이 감탄스럽다.
저마다 즐기는 가을의 만개함속에 강변산책길을 되돌아 온다. 코스모스 군락 사이로 난 길은 마치 요정의 길과도 같다. 그 아찔한 가을내음은 점순이가 ‘나’를 쓰러트려 눕히던 메밀꽃의 아찔함에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설레이는 가을 마음을 들킬까 황망히 시선을 돌리면 깊은 강물의 고요함이 발그레한 볼을 식혀준다. 그 길에서 느낀 달뜬 감정을 깔끔히 갈무리하는 데에 이만큼 어울리는 색깔이 또 있던가.
물향기길
노란 코스모스 군락지의 시점으로 돌아와 물향기길의 표지판을 따라 걷는다.
운장산의 수려함을 바라보며 잘 정비된 산책로를 따라 걷는 이 길은 드넓은 연꽃군락을 멀리 돌아 물의 향기와 들꽃의 향기를 맡는 길이다. 그러나 노란 코스모스가 제철인 이 때에는 연꽃의 순결함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이다. 모든것을 다 손에 담을 수 없지만, 연꽃이 없더라도 불어오는 강변의 바람따라 초록빛 가득한 길을 걷는 것도 충분히 차고도 넘치는 운치가 있다.
시원하게 다듬은 은행나무 주목들. 아마도 한참 후에야 이렇게 가지치기 한 보람이 나타날 것이다. 그 때엔 늦가을의 또 다른 황금물결이 이 길을 뒤덮으리라.
푸르름 가득한 길을 따라 물 맑고 땅 좋기로 유명한 조안면의 비옥함을 느낀다. 물의정원에 속하는 테마길이지만 이 길은 정원의 길보다는 자연, 더 들어가 농촌의 들녘을 걷는 기분이 드는 다소곳한 길이다.
그래서 걷다가 만나는 하트벤치는 이 길의 화룡점정이자 도드라지는 포인트이다. 그 푸르름 속에 빨갛게 자리한 하트는 물빛에 잠잠해진 여행자의 가슴을 다시 뜨겁게 만드는 데 충분하다. 저 의자에 홀로 앉아 즐기는 책 한권과 좋아하는 음악을 듣노라면 어느 새 그 나머지 빈 자리의 설렘은 자연스레 그 옆자리에 앉는 다른 누군가로 채워지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 본다.
억새와 버드나무가 어우러진 길은 가을빛 정취가 가득하다. 이 길을 따라 걷고 또 걸으면 물의정원 주차장 입구로 나오게 된다.
물마음길이 평화로운 전경속에 쉬엄쉬엄 걸으며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길, 강변산책길이 노란 코스모스 군락지와 강변이 주는 더 없이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하는 길이라면 이 물향기길은 소박함 속에 속마음을 숨길듯 말듯 고민하는 풋풋함에 녹아있는 길이다. 오히려 누군가와 걷는다면 그 옆모습을 바라보며 더 집중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그렇게 속마음을 내보일가 끝없이 고민하는 순간 길이 끝나니 아쉬움의 여운이 길게 간다.
각각의 다른 테마와 풍경으로 이루어진 이 세 길은 저마다 꼭 걸어볼만 한 가치가 있다. 그리고 그 세 길을 모두 걸어봐아 물의정원이 간직한 곳곳의 풍경과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다. 전체적으로 길지 않은 코스라 어린 자녀들과도, 연인들도 가볍게 걸을 수 있을 뿐더러 길마다 만나는 포토존 및 전망대는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아 한나절 가을 나들이로 더욱 제격이라 할 수 있다. 온전히 주변을 즐기고 싶다면 운장산 등산이나 운장산역을 출발하여 운정산 기슭과 물의정원을 지나는 슬로시티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늦가을의 마지막 향연을 만끽하고 싶다면 북한강변을 따라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이제 그 황금물결을 즐길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by 장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