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박함 묻어나 더 아름다운 섬 울릉도② – 내수전옛길, 관음도
내수전일출전망대에서 본 풍경. 좌측의 해안과 붙어있는 섬이 관음도, 우측의 섬은 죽도이다. |
울릉도 저동을 바라보며 내려오던 저동옛길, 저동항 너머 유유히 떠 있던 섬 둘이 있었다. 해안에 바짝 붙은 섬은 관음도이고 그보다 우측에 자리한 섬은 죽도였다.
두 섬 모두 해안절벽이 잘 발달하여 어찌 사람의 발이 닿을 수 있겠는가 싶지만 관음도는 다리가 놓여 도보로 이동이 가능하고, 죽도의 경우는 한 부부가 더덕밭을 일구며 살고 있다고 하니 둘 다 갈 마음이 있다면야 갈 수 있는 섬이기도 하다. 그 중 관음도는 입장료 (성인 기준 4,000원)를 내고 들어갈 수 있는 관광지로 많은 이들에게 알려진 섬이다. 섬 자체를 둘러볼 수 있는 산책로도 조성이 잘 되어있다 하여 위시리스트에 넣었다.
오늘의 여정, 내수전옛길과 관음도를 이어 울릉도의 또 다른 맛을 보려한다.
내수전마을(저동3리)에 들어선다. |
좌측의 오르막 도로를 이용한다. |
저동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내수전, 석포 방면으로 나아간다. 조금만 걷다보면 저동항의 활기는 사라지고 한적한 해안도로가 시작된다. 이윽고 내수전마을을 알리는 알림돌이 답사객을 맞이한다.
내수전마을로 향하면 울릉도 해안일주도로 내수전터널 방면의 도로와 좌측으로 내수전을 향해 올라가는 포장도로가 나 있다. 좌측의 길을 따라 올라간다.
올라가면서 바라보는 이 거대한 돌덩어리 산에 왜 밭 전(田) 글자가 붙었는지 궁금하다. 유래를 찾아보니 싱겁게도 조선시대에 ‘김내수’라는 사람의 밭이 있었다 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오늘 걸을 길은 유난히 그렇게 사람의 이름이 붙은 지명이 눈에 띈다. 정매화골이란 곳이 그렇다.
내수전 도로를 오르는 김태일 GNSS 조사팀장 |
내수전 자체가 울릉도의 경사를 닮고 있는지라 달 닦아놓은 도로라도 꽤나 긴 오르막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부지런히 나선지가 방금인데 벌써 구슬땀이 쏟아진다.
거대한 내수전의 석벽 뒤로 보이는 동그스름한 봉우리는 알봉이다. 알봉이란 명칭이 울릉도 내에 몇개가 더 있지만 나중에 내수전 전망대에서 호박식혜를 들이키며 할머니에게 물은 즉, 저 봉우리도 알봉이라는 것이다. (현지인들은 소불알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그 알봉은 도로를 따라 걷는 내내 잡히지 않아 애를 태우게 만든다.
기나긴 도로를 따라 걷다보면 약수터를 만난다. 화장실도 잘 조성되어 있어 하이킹의 초반에 용변을 해결하기에도 좋다. 그러나 아쉽게도 약수터의 약숫물은 3월 말 답사기준으로는 음용불가. 바닥이 빨갛게 물 들 정도로 철분이 많이 섞여있다. 울릉도의 산세를 타고 내려온 약수를 시원하게 들이켜볼까 하는 마음은 잠시 접어두기로 하고 도로를 마저 오른다.
갑자기 만난 오솔길 |
내수전옛길 안내표지판을 만나면 도로의 오른쪽으로 작은 오솔길로 들어가게 되어있다. 물론 도로를 따라 크게 돌아올라가도 되지만 경사는 꽤 가파른 편이더라도 바로 산등성이를 올라 단숨에 높은곳에 도달하는 이 길이 내수전옛길의 일부였을 것이기에 주저않고 발을 옮긴다.
처음에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올라가는 숲길이 어느새 꽤나 거친 숨을 내쉬게 하는 길로 변한다. 도로가 닦이기 전, 이 길이 내수전을 통과하는 사람들의 유일한 방법이었을 것이다.워낙 크고 거대한 돌산이기에 그 자락이라도 더듬어 오르는 이 길은 난이도가 꽤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리 오래지 않고 다시 도로를 만난다는 것이다.
도로를 만나 조금 더 올라가면 내수전일출전망대를 만난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는 내수전 일출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바다의 풍경도 일품이지만 역시 양 옆에서 파는 마가목식혜와 호박식혜에 더 눈길이 간다.
내수전일출전망대에서 바라본 알봉과 전경. 저 너머는 나리분지일 것이다. |
내려와서 호박식혜 한 잔을 마신다. |
전망대에서 충분히 경치를 감상한 후 내려와 가건물에서 파는 호박식혜를 사 마신다. 생각했던 것 보다 달지 않아 더욱 시원하고 건강하게 느껴진다.(설탕통이 놓여져 있어 단 맛을 원한다면 첨가할 수 있다.)
호박식혜만으로는 이 곳을 기념하기에 부족해 마가목식혜도 한 잔 부탁해본다. 울릉도에 지천인 마가목은 중풍및 갈증 해소, 담에 좋다고 한다. 허브에서도 민트향이 강할 정도로 시원한 맛이 상상을 완전히 비껴간다. 마치 약초를 우린 물을 한 잔 들이키는 기분이다.
“저것이 알봉인데 여기 사람들은 소불알맨키 생깃다캐서 소불알산이라 불렀지요.”
“어르신은 이 곳에서 오래 있으셨나요?”
“나야 시집와서 50년을 있었지요. 여기 와서 다른데 한나 못가보고. 집도 요 바로 밑이래요. 한번 들러 보이소. 앞에 널찍허니 펼쳐져 있고 텐트치기도 좋심더.”
어르신의 밭에서 내려다 본 풍경 |
양해를 구하고 그 50년 세월이 그대로 녹아있는 경겨운 집을 구경한다. 아래로 내려가니 밭이 펼쳐진다. 한뼘의 땅도 소중하다는 울릉도. 그 말을 그대로 보여주는 풍경이다. 아찔한 경사의 산은 돌이 아닌 흙이 있다는 이유 하나로 경사면마다 완벽하게 밭이 조성되어 있다. 그 웅장한, 아니 치열한 삶의 흔적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분명 어르신은 이 곳에서 수 많은 관광객과 탐방객을 상대로 장사를 하며 “경치 정말 좋네요. 이런 곳에서 살고 싶어요.”라는 소리를 수 없이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삶 자체가 불편함을 넘어 얼마나 고된 여정이었는지 생각해본다면 쉽게 꺼내지 못 할 말이다. 50년동안 다른 곳(아마 뭍이리라.)은 가보지도 못했다는 그 말 한 마디가 이 밭에 녹아있다.
“여기 고로쇠물이 다른데와 맛이 틀려요. 유명해서 많이들 사 가요. 여기가 아니면 이 맛이 안난다카데.”
영업의 말이 아니더라도 울릉도의 고로쇠물을 여기까지 와서 안 먹을 수 없다. 큰 병 하나를 사 배낭에 넣고 마저 여정을 이어간다. 길어질 오늘 답사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걷기 좋은 오솔길이 이어진다. |
출렁다리를 건너면 정매화골이다. |
정매화골쉼터 |
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어느새 도로는 끊기고 작은 오솔길로 이어진다. 내수전옛길의 석포구간의 시작인 셈이다.
오솔길을 따라 한참을 내려가다 보면 출렁다리가 나타난다. 또 다른 인명(人名)이 지명(地名)이 된 곳, 정매화골이다. 정매화골은 이 험한 골짜기에 집을 짓고 산 이의 이름인 정매화를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내수전도, 정매화골도 그 화려하고 깊은 풍경과는 달리 너무나 소박한 내력이다. 울릉도 답지 않은가?
이 정매화골 쉼터는 최초 이 곳에 살았던 정매화 보다는 1980년대까지 이 곳에서 살며 조난된 수 많은 등산객들을 구조하고 살핀 이효영씨 부부의 이야기로 더욱 널리 알려진 곳이다.
1961년 이 곳에 터를 잡고 산 이효영씨는 1981년 이 정매화골을 떠날 때 까지 무려 300여 명의 목숨을 구했다고 한다. 폭우나 폭설이 휘몰아칠때면 혹시 누군가 조난당해 도움을 절박하게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걱정하여 이 골짜기를 누볐다 하며 그 공로로 1982년에는 군수로부터 표창을 받았다고 한다.
지금은 그 집터 위에 이렇게 쉼터가 조성되어 깊은 산골짜기에서 만날 수 있는 멋진 휴식공간이 되었으니 그 뜻은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셈이다. 쉼터 한 켠의 비상전화가 더욱 더 도드라져 보인다.
길은 다시 오르막으로 이어진다. |
고로쇠 수액 채취가 한창이다. |
정매화골까지 내려온 걸음은 쉼터를 기점으로 다시 오르막길로 이어진다. 잠시 걸음을 걷다보면 양갈래길이 나오는데 왼쪽은 오르막이요, 오른쪽은 평탄하게 진행되다 급격하게 내려가는 길로, 와달리로 향하는 길이다.
잠시 조사를 위해 와달리로 향하는 길을 걸어보기로 했다. 잘 닦였다 싶은 길은 어느새 급경사로 이어지고, 좁디좁은 보폭을 유지하며 내려가노라니 길이 무너지지 않도록 대놓은 나무마저 삭아 부스러진다. 얼추 절반가량 왔을까, 칡넝굴이 무성하고 천연림 수준으로 풀들이 무성하여 나는 대기하고 김태일 팀장이 배낭을 내려놓고 끝까지 가보기로 한다.
약 30여 분쯤 지나 되돌아온 김태일 팀장의 말에 따르면 길이 있기는 있는데 너무 위험해서 가지 못 할 수준이며 결국엔 해안도로로 닿는다고 한다. 나중 행사때엔 살릴 수 없음을 체크하고 다시 오르막을 올라 되돌아와 최초 갈림길에서 왼쪽 방향으로 나아간다.
와달리길까지 포함하면 방금 걸어올라온 거리가 냐수전 높이에 육박할텐데도 거침없이 올라가는 그 뒷모습을 힘겹게 쫓는다. 한참을 올라갔을까, 고개 하나를 넘어 길은 다시 걷기 좋게 수월해진다. 길 옆의 고로쇠 나무들마다 수액채취 비닐이 달려있다. 마침 보니 아까 산 고로쇠물이 생각이 나서 둘 다 잠시 숨을 고르며 들이킨다. 역시 어르신 말대로 틀리긴 틀리다. 이런 물이 몸에 안 좋을리 없지.
흙길이 끝나고 석포마을로 향한다. |
정면으로 두리봉이 보인다. |
이런 산 속에도 집이 있구나 싶은 길을 따라 걷다보면 어느새 발 밑의 보드라웠던 흙이 콘크리트 포장으로 바뀐다. 내수전옛길의 숲길 구간의 종점이다. 여기에서 석포마을까지는 포장된 도로를 따라 이동한다. 종점에는 화장실이 갖추어져 있어 탐방객들의 편의를 돕고 있다.
안용복 기념관과 독도의용수비대기념관을 지나 석포와 현포 방향의 울릉도 북쪽 해안을 조망하며 걷는 맛은 이루 말 할 수 없다. 물론 도로를 걷는것이 녹음 가득한 숲길을 걷는것에 비할셈이냐 만은 지금까지의 조금은 힘든 걸음에 대한 완벽한 보상이라 생각하면 이 기쁨은 무시하지 못 할 만큼 크다.
그렇게 울릉도 북쪽을 눈에 담으며 현포4리를 지나 내려가면 어느새 길 앞에 봉우리가 하나 나타난다. 두리봉(보루산)이다. 예까지 왔으니 산을 하나 더 품어볼까 하는 찰나, 이 봉우리 정상에 석포일출전망대가 있음을 깨닫는다. 꼭 올라가 볼 이유가 생긴 셈이다.
두리봉 오르는 길 |
석포일출전망대에 오르다. |
두리봉은 초반부의 급경사만 참으면 이후 비교적 순탄한 오르막을 따라 산 둘레를 돌아 정상에 이를 수 있는 산이다. 산에 오르면서는 예전 일제강점기때 이 곳에 지어진 일본군의 군사시설의 흔적을 볼 수 있다. 현재는 터만 남아있는데 일제 패망 이후 마을주민들이 이 건물을 허물고 벽돌 하나까지 뜯어가 썼다고 하니 사필귀정이라 할 수 있으리라. 결국 그 벽돌 하나까지 어디에서 나왔을것인가.
석포일출전망대에서는 좀 더 탁 트인 풍경 속에서 북면의 해안가를 조망할 수 있을 뿐더러 다음 날 걸을 코스도 대략 눈대중해 볼 수 있다. 시원하게 부는 바람을 맞으며 참으로 쉽지 않지만 그 길 하나하나마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봉우리의 정상에 설 때마다 그림같은 비경을 보여주는 울릉도에 감탄을 느낀다.
석포로 내려간다. 관음도의 모습이 아름답다. |
석포마을로 내려가는 도로는 경사도 상당히 가파른데다 구불구불 이어진 길이 또한 길어, 도저히 끝이 나지 않는다고 둘 다 탄식할 정도로 인상이 깊은 구간이다. 그래도 그 도로를 따라 내려오는 가운데, 보물처럼 존재감을 자랑하는 관음도가 손에 잡힐 듯 가까워지는 모습은 심장을 흔들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매양 질러댄 탄성이건만, 저 섬에 간다는 사실 하나가 다시 새롭게 힘을 끌어올린다.
해안 도로로 내려와서 좌측으로 나아간다. 관음도와 함께 눈길을 끄는 것은 도로의 반대편, 관음도를 바라보며 서 있는 삼선암(三仙巖)이다. 마치 백령도의 두무진과 비슷하게, 파도에 깎이고 깎인 바위는 억겁의 세월을 안고 우리를 멀리서 배웅한다.
삼선암의 풍경 |
입장료를 내고 관음도로 향한다. |
너무나 아름다운 바다의 색채 |
관음도 입구에서는 입장료를 내고 엘레베이터를 이용, 데크를 따라 관음도를 잇는 다리를 건너 섬에 다다를 수 있다. 엘레베이터를 이용치 않고 계단을 올라 갈 수도 있지만 입장료는 동일하게 내야 한다.
관음도를 잇는 다리 밑으로 흐르는 물 색깔은 눈을 의심케 한다. 얼마나 더 맑아야 이렇게 맑을 수 있을까, 얼마나 더 깨끗해야 이렇게 깨끗할 수 있을까 싶은 바다 색이다. 저렇게 맑은 물 위에 깎아지는 절벽에 둘러쌓인 섬이 당당히 떠 있다니, 어쩌면 삼선암의 신선들은 이 섬을 구경왔다가 지금 모습으로 굳어졌을지 모를 일이다.
유명 관광지라 하지만 워낙 오기힘든 울릉도의 관광지이기에 그 청정함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이 참으로 좋다. 섬 내에 잘 조성된 산책로를 따라 섬을 천천히 한 바퀴 둘러보는데에는 20~30여 분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예까지 왔으면 한 걸음 한 걸음마다 좀 더 천천히 걷기를 추천한다.
산책로를 따라 곳곳에 전망대가 조성되어 있다. |
다시 꼭 오고 싶은 섬, 밤을 지샐 수 없어 아쉬운 섬 관음도. |
생태관찰로라는 이름으로 누인 8자 모양으로 조성된 관음도의 산책로는 큰 경사가 없어 누구나 편안하게 걸을 수 있다. 위험한 해안절벽을 안전히 걸을 수 있도록 설치된 나무난간은 바다와 절벽, 해송이 어우러져 잊을 수 없는 풍취를 자아낸다.
울릉도도 제주도 만큼이나 바람이 많다. 거기에 온 방향의 바람을 다 맞는 도드라진 섬인 관음도, 죽도는 오죽할까. 관음도를 걷는 이를 감싸는 바람의 시원하다못해 청아하다. 그 기품있는 해풍은 걷는 이의 정신을 온전히 새로 일깨워준다.
내수전옛길에 이어 이어진 관음도, 산을 넘고 고개를 지나 봉우리를 휘어감고 마을을 내려왔던 오늘의 여정으로 쌓이 피로가 눈녹듯이 사라진다. 좋은 것을 발견해서 어쩔 줄 모르는 아이마냥, 그 발걸음이 가볍기 그지없다. 잰체하는 기분속에 여기저기 사진기를 드러낸다. 누군가는 나잇값 못 한다고, 덩칫값 옷한다고 비웃을 일이다. 그런데 이 풍경과 이 길을 보고도 그럴 수 있을까?
도대체 다음 풍경은 어떤 모습을 보여주려고 벌써부터 이렇게나 놀래키는지, 걱정반 기대반 속에 하루가 지난다.
by 장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