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길 두번 갈아타도 하늘이 허락해야 밟는 그 곳, 독도를 가다

[여행]by 로드프레스

왜 그리도 설레었는지 모르겠다. 울릉도 입도 전날, 밤 11시에 포항에 도착해 피곤한 몸을 눕혔던 그 날 밤. 꿈 속에서, 독도로 추정되는 어느 섬의 벼랑에 서 있다가 발 밑이 무너져 내리면서 떨어져 깊은 물 속에 빠졌다. 그 물에 빠지면서도 “카메라 젖는데…”라며 그 안의 기록이 사라지지 않기만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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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내 모든 신경을 가져간 것은 울릉도와 독도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나 독도였다. 무슨 궐기대회를 하러 가는 비장한 심정도 아니거니와 대마도를 내놓아라, 야욕을 버려라 하며 일장훈시를 늘어놓을 정도의 기개도 갖추지 못한, 그저 필부인 나다. 그런 내가 흥분한 이유는, <로드프레스>에 있어서 ‘독도를 밟는다’는 것은 다름아닌 ‘대한민국의 동쪽 끝, 동쪽에서의 길의 시작’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민간인이 갈 수 있는 북쪽 끝인 강원도 고성통일전망대, 그리고 서쪽 끝인 백령도의 두무진에도 발을 딛었다. 아직 마라도를 미답하였으나 그야 언제나 갈 수 있는 곳, 적어도 이 울릉도 – 독도 만큼의 난이도를 가진 곳은 아니다. 길 여행을 알리는 로드프레스가, 대한민국 사방위의 끝을 밟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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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에서 1박 후 입도하는 날 아침.

밤새 검색해 본 인터넷의 독도 여행기들에 나타난 “기상악화로 안타깝게 취소”, “입도하지 못하고 돌아서 회항”, “어두운 구름, 울릉도나 포항과는 전혀 다른 날씨”등의 글들로 걱정이 많았다. 울릉도의 날씨가 아무리 좋아도, 쾌속선으로 1시간 반을 가야하는 독도의 날씨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한다. 그래도 일단 비가 내리지 않으니 출항에는 문제가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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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동항에서 08시 30분에 출항하는 <엘도라도 호>를 타기위해 일찍 선착장에 다다른다. 밤새 어화(漁火)를 밝혔을 오징어잡이 어선의 단잠을 깨울까 조심히 옆을 지난다. 잔잔한 물결에 출렁이며, 그 바다의 흔들림이 요람이 되어 노곤한 몸을 어루만지고 달랜다. 울리는 삐걱임은 고단한 코골음이다. 그 고단한 노동 후의 휴식을 어찌 방해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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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배가 <엘도라도 호>이다. 이름처럼 아침 햇살을 받아 황금색으로 빛나는 측면을 보여준다. 독도까지 1시간 30여 분에 주파하는 쾌속선이다. 아무래도 포항에서 울릉도까지 3시간 30분의 항해도 좀처럼 배를 많이 탈 일이 없는 사람들에겐 멀미때문에 곤욕과도 같았던 길이다. 더 먼 바다로 나왔으니 오르내림이 만만치 않으리라, 아직 손에 잡히지 않은 입도의 기대는 멀고 당장의 뱃멀미 걱정이란 현실은 가깝다.

 

자리에 앉아 눈을 감는다. 잠시 단 잠에 빠져있을 무렵, “독도다!”는 외침에 눈을 뜬다. 거짓말같이, 정말로 눈을 뜨자마자 창문 밖으로 그 섬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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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의 서도이다. 서도나루터와 주민숙소가 손에 잡힐 듯 보인다. 그 푸르른 하늘 아래, 더 푸르른 바다위에 떠 있는 견고한 섬, 이 바위섬이 한반도의 동쪽 끝이다. 배 안의 수많은 사람들이 – 곧 독도에 입도하게 될 것이건만 – 이 첫 조우를 기념하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창가로 모여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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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는 동도선착장에 도착한다. 배에서 내린 관람객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20분이다. 그 20분 동안 갈 수 있는 곳도 한정되어 있다. 선착장을 지나 숫돌바위를 거쳐 걷다보면 독도 경비대원들이 더 이상의 진입을 금지한다. 그래도 그 작은 구간, 짧은 시간이라도 <로드프레스>가 독도를 밟았다는 기억은 온전히 남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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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착장에서 서도와 대한봉을 온전히 담아본다. 우측의 엄지를 편 모양의 바위 옆, 하얀 바위는 촛대바위(장군바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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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대바위와 삼형제굴바위의 모습을 온전히 담아보며, 이 아름다운 섬에 드리운 무거운 짐을 생각치 않을 수 없다. 그래도 오늘, 이 자리에 선 이 때만큼은 축제의 마음으로 즐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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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를 충분히 밟고 동도로 발걸음을 옮긴다. 경비대가 상주하고 있는 이 동도는 독도등대와 더불어 여러 시설이 들어서 있는 섬이다. 전체 면적은 서도보다는 작지만 선박이 입도하기에 좋은 입지를 가졌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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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돌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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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갈 수 없는 길이다.

대한민국 영토여도 군사시설에 민간인이 들어갈 수는 없다. 다만 그 지역이 독도이기에 그 ‘들어갈 수 없음’이 주는 여운은 깊디깊다. 길이라면 어디든 걷는다는 모토를 가진 <로드프레스>이건만, 독도 경비대가 오르내리는 저 나무 데크 오르막 계단은 너무나 멀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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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련하게 태극기가 보인다.

간 밤에 거센바람 맞으며 휘날리던 몸짓은 오전에도 그대로일 것이다. 그 무생물이 빚어내는 웅대한 생명력은 보는 이를 아득하게 만든다. 한달음에 오르고 싶다. 그리고 묵은 몸 속 깊은 곳에서 터져나오는 함성으로 섬을 쩌렁쩌렁 울리고 싶다. 무언가 의미가 없는 악다구니일지라도, 이 곳의 정상, 대한민국의 모든 길의 시작과도 같은 곳에서 그렇게 미친듯이 외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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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더 있고 싶건만, 출항을 알리는 뱃고동이 울린다.

하나가득 아쉬운 마음속에 한번 더 담기 위한 노력은 계속된다. 그렇게 떠나가고 나면 또한 외로운 섬으로 남을 것이다. 코리아둘레길은 그렇더라도, 칼럼에서 적어보았던 KCT(Korean Central Trail)의 출발점이 독도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 한반도의 횡단을 독도에서 백령도로 한다면 너무 근사할 것 같다. 그렇게 한다면 시작지점의 스탬프 만큼은 군경에 협조를 얻어서라도 독도등대나 한반도바위 조망점에 비치하면 어떨까. 주어진 시간동안 갈 수 없는 곳이지만 머릿속에서 상상해보면 즐겁기 그지없다. 동쪽에서 시작되는 모든 길의 시작인 곳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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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선하기 전 서도를 바라본다.

언젠가 또 다른 기회가 어떻게 올 지 모르지만, 서도에 올라 동도를 조망하는 날이 오리라고는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그래도 그렇게 바라만 보는 아쉬움도 운이 좋아야 얻을 수 있다. 1년 중 독도에 입도할 수 있는 날은 기껏 5~60일, 3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이렇게 푸른 하늘 속에 입도할 수 있는 날은 더더욱이 드물어, 누구 말마따나 5대가 덕을 쌓아야 할 노릇이다. 그래도 대한민국의 동쪽 끝, 거기에 설 수 있다는 것은 이름모를 조상님들의 공덕을 다 써버릴 만큼의 보람이 있는 일임엔 틀림없다. 여하간 이젠 당당히 남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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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길을 걷다, 로드프레스가 2017년 11월 2일 오전 10시 17분, 동경 131°52′ 북위 37°14′ 한반도의 동쪽 끝이자 모든 길의 시작지점인 독도를 밟았습니다.>

 

by 장재원

2019.03.11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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