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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SIDance 2015

몸의 움직임
그 원초적인 아름다움에 빠질 시간

by예술의전당

9.30(수) - 10.1(목) CJ 토월극장 스페인 국립 안달루시아 플라멩코 발레단

10.3(토) CJ 토월극장 자그레브 무용단

10.5(월) CJ 토월극장 올가 호리즈 무용단


‘현대무용은 그들만의 예술’이라는 오랜 편견이 서서히 깨져가고 있다. 지인이나 무용계 관계자들로 근근이 채워나가던 객석에는 일반 관객들의 발길이 여느 때보다 늘었다. 젊은 무용수들은 마니아 팬들을 몰고 다니고, TV 예능 프로그램과 대중가수들도 현대무용을 자신들의 콘텐츠와 접목해 시선을 모으고 있다.


현대무용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것은 다양한 측면에서 그 배경을 짚어볼 수 있다. 공연시장의 팽창과 함께 관객들은 현대무용 공연에도 눈을 돌리고 있고, 무용의 대중화를 위해 구슬땀을 흘려온 예술가들의 노력도 이제 과실을 맺기 시작했다. 건강한 몸에 환호하며 몸 가꾸기에 열중하는 사회의 트렌드 역시 한몫하고 있다. 무엇보다 신체의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무용의 원초적인 아름다움이 뒤늦게나마 관객들에게 ‘발견’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생활수준은 높아졌지만 정신은 피폐해져 가는 현 사회에서, 무용수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이 뿜어내는 힘은 본능을 억누른 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안겨주기 때문이다.


현대무용의 강렬한 에너지에 흠뻑 젖고 싶은 관객이라면 올가을 찾아오는 서울세계무용축제 ‘시댄스SIDance 2015’를 놓쳐선 안 된다. 국제무용협회 한국본부가 주최해 올해로 18회를 맞은 서울세계무용축제는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 현대무용의 최신 트렌드를 한눈에 조망할 기회다. 세계 각국을 대표하는 전통 있는 무용단과 쉽게 볼 수 없는 파격적이고 과감한 작품들이 관객을 기다리고 있으니 이제 현대무용의 황홀경으로 빠져들 시간이다.

몸의 움직임 그 원초적인 아름다움에

스페인 국립 안달루시아 플라멩코 발레단 '이미지들' ⓒ Luis Castilla

스페인 국립 안달루시아 플라멩코 발레단 - 이미지들

올해 서울세계무용축제는 예술의전당에서 시작을 알린다. 스페인과 크로아티아,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무용단의 공연이 CJ 토월극장 무대를 수놓는다. 이중 축제의 문을 여는 단체는 스페인 국립 안달루시아 플라멩코 발레단이다. 스페인 남부에 위치한 안달루시아는 지중해의 뜨거운 햇볕 아래 정열의 예술인 플라멩코를 태동시켰다. 이 플라멩코의 정신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스페인 국립 안달루시아 플라멩코 발레단은 처음 한국을 찾아 고혹하고 강렬한 몸짓으로 플라멩코의 정수精髓를 보여준다.


현대적인 플라멩코로 유명한 이스라엘 갈반, 2009년 시댄스로 한국 관객과 만난 이사벨 바욘 등 스페인 플라멩코의 세계적인 스타들이 스페인 국립 안달루시아 플라멩코 발레단에서 배출됐다. 현 예술감독인 라파엘라 카라스코는 단체가 창단된 1994년 무용수로 입단해 플라멩코를 대표하는 안무가로 자리매김했다. 자신의 무용단을 창단하기도 한 그에게는 ‘플라멩코의 세계적 홍보대사’라는 호칭이 제격이다.


이들은 창단 20주년을 맞아 지난해 9월 초연한 <이미지들>을 선보인다. <델 마에스트로>, <빛의 어둠 속에서>, <전설>, <남쪽에 직면>, <네 모서리> 등 발레단 역사상 최고의 레퍼토리로 꼽히는 다섯 작품을 되돌아보는 공연이다. 그러나 단순 반복이 아닌 카라스코만의 재해석에 기반을 두었다. 이번 공연이 기다려지는 건 플라멩코가 뿜어내는 다채로운 빛깔을 한 무대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기타의 짙은 선율에 맞춰 치맛자락을 휘날리는 무용수, 사파테아드(구두 소리), 팔마(손뼉 치는 소리), 피트(손가락 퉁기는 소리)와 관중의 할레오(장단에 맞춰 지르는 소리) 등 정통 플라멩코의 붉은 빛깔은, 검정 정장을 입은 남녀 무용수들의 매끈하고 힘이 넘치는 군무, 흰 드레스를 입은 여성 무용수의 우아한 몸짓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다양한 변주 속에 플라멩코의 외연은 확장되지만, 플라멩코만이 가진 매혹과 정열은 한층 무르익는다.

몸의 움직임 그 원초적인 아름다움에

자그레브 무용단 'Z를 위한 레퀴엠' ⓒ Andi Bancic

자그레브 무용단 - Z를 위한 레퀴엠

크로아티아의 현대무용을 전 세계에 알리고 있는 자그레브 무용단도 한국을 찾는다. 올해로 세 번째 방문이다. 이 단체가 ‘유고슬라비아 자그레브현대무용단’으로 불리던 1988년 성사된 초청공연은 우리나라와 공산국가의 사상 첫 무용 교류로 기록된다. 20년이 지나 2008년 제11회 시댄스를 통해 다시 한국을 찾은 이들은 역동적인 몸짓으로 그릇된 젠더 관념을 비꼰 <벗겨진>으로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로마 가톨릭 문화를 꽃피운 크로아티아는 중세 시대 오스만튀르크의 침략을 막아내며 ‘유럽 문화의 방파제’로 불렸다. 서유럽의 문화적 뿌리와 동유럽 질곡의 역사를 지나온 크로아티아는 주변 여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하고 오묘한 빛을 뿜어낸다. ‘유럽의 숨겨진 보석’ 크로아티아를 대표하는 자그레브 무용단은 1972년 설립된 이래 40여 년간 독자적인 예술세계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무용뿐 아니라 시각예술과 패션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과 협업하며, 댄스 앤 넌버벌 시어터 페스티벌을 창설해 전 세계의 무용과 마임 등이 어우러지는 축제를 일구고 있다.


지난해 7월 초연된 <Z를 위한 레퀴엠>은 일상적인 정서 속에 삶과 사회, 인간관계를 꿰뚫는다. 음악과 효과음, 무대장치를 걷어낸 텅 빈 무대, 원형의 조명 아래 평상복 차림의 남녀 배우들이 한데 모여 웅크리고 있다. 이들은 서로 기대고, 손을 잡고, 포옹하면서도 상대를 밀어내고 뿌리치며 외면한다. 참여하려는 개인과 소외시키는 집단, 사회로부터 개인이 느끼는 무력감과 소외감, 덧없음과 소멸 등은 불안한 실존을 상징하듯 부산한 움직임으로 드러난다.

또한 영상을 결합한 무대는 새로운 차원의 언어로 관객들에게 말을 걸어온다. 무용수들은 카메라를 들고 눈앞의 다른 무용수들을 포착한다. 익살스럽거나 서글프고, 광기에 차 있기도 한 이들의 신체와 표정은 적나라하게 카메라에 담겨 무대 뒤 스크린에 투사된다. 무대 위에 실재하는 ‘진짜’와 스크린에 펼쳐진 ‘이미지’, 카메라에 찍히는 이와 찍는 이,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는 관객과 배우 등 한 공간 안에 존재하는 모든 관계에 대해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몸의 움직임 그 원초적인 아름다움에

올가 호리즈 무용단 '애완동물' ⓒ Alipio Padilha

올가 호리즈 무용단 - 애완동물

무용은 심미적 아름다움을 통한 감동을 안겨주는 데 그 역할이 국한되지 않는다. 몸의 움직임은 인간의 그 어떤 활동보다도 인간 본성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때로는 감추고 싶은 심연의 본능과 욕구까지 숨기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올가 호리즈 무용단의 <애완동물>은 불편하지만 피할 수 없는 만남이다. 애써 외면하고 싶은 인간 내면의 지배욕과 폭력성을 적나라하게 펼쳐 보이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애완동물’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사랑스러운 개와 고양이의 눈망울, 그런 동물을 쓰다듬는 인간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인간의 편의를 위해 동물의 자유를 속박하고 길들이는 과정이 수반된다는 사실은 불편함을 안기기도 한다. <애완동물>은 이와 같은 인간과 애완동물의 관계를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대입한다.


무대에는 소파와 선풍기, 비닐, 상자, 쓰레기통 등 집 안에 있을 법한 오브제들이 산만하게 널려져 있다. 지극히 일상적인 공간으로 관객들을 안내하는 작품은 이내 이 일상 속에서 펼쳐지는 지배와 복종의 양상을 마주하게 한다. 남자는 여자를 밀치고 발로 찬다. 호스로 몸을 꽁꽁 묶어 이리저리 끌고 다니기도 한다. 여기에는 남녀 구분이 없다. 저항하던 이는 반복되는 폭력에 익숙해져 간다. 그러나 모순적으로도 폭력과 지배, 소유가 있기에 사랑은 이어진다. 지배와 복종, 조련과 길듦, 강제와 순응이 무용수들이 보여주는 우리 인간관계의 이면이다. 그저 아름답고 이상적일 것 같은 인간관계 속 숨겨진 모순을 되돌아보게 한다.


포르투갈 출신의 안무가 올가 호리즈는 1995년 자신의 이름을 딴 ‘컴퍼니 올가 호리즈’를 창단했다. 20년 동안 90여 편의 작품을 만들면서 포르투갈 현대무용에서 굳건한 입지를 다졌다. 무용뿐 아니라 오페라 안무, 영화 연출 등 장르를 넘나드는 예술적 조예가 깊은 그녀는 연극적이고 문학적인 예술세계로 명성이 높다. 지적인 성찰과 창의적인 상상력이 결합한 올가 호리즈 무용단의 작품을 처음으로 국내 무대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다.


서울세계무용축제는 CJ 토월극장 외에도 서울 마포구 서강대학교 메리홀, 서울 강동구 강동아트센터, 서울 중구 남산골한옥마을 국악당에서 9월 30일부터 10월 18일까지 이어진다. 유럽 현대무용계에서 주목받는 안무가 예프타 반 딘테르의 <디스 이즈 콘크리트>와 <그라인드>, 브라질 출신의 젊은 안무가 사미르 칼리스투의 <사계> 등 해외 화제작들과 후즈 넥스트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되는 차세대 거장들, 한국과 일본, 아시아와 아프리카 안무가들의 합작 프로젝트 등 풍성한 작품으로 관객들을 손짓한다.


글 김소라 (서울신문 문화부 기자)

사진 제18회 서울세계무용축제 조직위원회

 

위 글은 월간 「예술의전당과 함께 Beautiful Life!」 2015년 9월호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