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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강수진 &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오네긴

강수진의 마지막 무대
마지막 춤!

by예술의전당

11.6(금) - 11.8(일) 오페라극장

강수진의 마지막 무대 마지막 춤!

강수진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은 고국 무대 마지막 전막 발레 공연으로 존 크랑코 안무작 <오네긴>을 선택했다. ‘강수진=타티아나(발레 <오네긴> 주인공)’라는 공식이 국내 관객들에게 깊이 박혀 있는 데다 그녀 자신에게도 좋은 추억이 많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2004년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내한공연에서 그녀가 온몸으로 오열하는 마지막 장면은 두고두고 회자될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오네긴>은 1996년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프리마 발레리나(수석무용수)로 등극한 강수진의 가치를 올려준 작품이기도 하다.  1998년에는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뉴욕 공연 개막 무대에 올라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강수진 감독은 “이 작품을 한 번 해보면 발레리나로서는 후회 없이 죽을 수 있는 정도다”라고 말할 정도로 <오네긴>을 사랑한다.

“저한테 많은 것을 준 작품이에요. 공연하면 할수록 저 자신이 더 성숙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죠. 20년 전부터 지금까지 매일 변화하는 저를 표현해왔어요. 발레 은퇴작으로 이보다 더 좋은 작품이 없어요.”

20세기 최고의 드라마 발레로 꼽히는 <오네긴>은 자유분방하고 오만한 남자 오네긴과 순진한 소녀 타티아나의 엇갈린 사랑을 춤으로 이야기한다. 크랑코는 러시아 문호 푸시킨의 소설 「예브게 니 오네긴」의 스토리와 작곡가 차이콥스키의 ‘녹턴’과 ‘사계’ 선율을 차용해 3막 6장의 발레로 만들었다. 명작 소설과 대가의 음악에 힘입은 춤은 강렬하고 폭발적이다. 글자 대신 몸이 엇갈린 사랑의 운명을 처절하게 써내려간다.

 

스토리는 이렇다. 소녀 타티아나는 바람둥이 청년 오네긴에게 반해 사랑을 고백하지만 비웃음만 당하고 절망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돌아온 오네긴은 성숙한 여인이 된 타티아나의 가치를  알아 보고 어리석었던 지난 날을 후회한다. 이번에는 오네긴이 구애하지만 타티아나는 남편에 대한 의리를 저버리지 못해 그의 사랑을 거부한다.

타티아나로 선보일 강수진 발레 인생의 시작과 끝

강수진의 마지막 무대 마지막 춤!

타티아나는 감정 표현의 폭이 넓은 역할이다. 첫사랑에 설레는 순수한 소녀부터 애써 그 사랑을  외면하며 가정을 지키는 성숙한 여인까지, 한 여인의 일생을 춤춰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고 어떤 때는 속으로 아픔을 삼켰어요. 무대에서 다른 인생을 살아볼 수 있어 행복해요. 제 안에  있는 것을 다 뿜어낼 수 있는 드라마 발레는 건강에도 최고죠. 표현하지 못하면 화병에 걸려요. 입으로 꺼내지 못하면 운동해서 땀으로 빼내든지 해서 독을 바깥으로 내보내야 해요.”

안무가 크랑코는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전성기를 이끈 예술감독이었다. 강수진은 슈튜트가르트 발레단의 주요 레퍼토리이자 자신에게도 의미가 깊은 <오네긴>을 입단 30주년이 되는 내년에 은퇴 공연으로 선택했다. 그에 앞서 11월 6일부터 8일까지 오페라극장에서 슈투트가르트 발레단과 함께 공연한다. 은퇴 무대를 앞둔 강수진은 “정상에 있을 때 그만두고 싶었다”고 말했다.

“은퇴는 타이밍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힘에 부쳐 기어 다니면서 춤추는 느낌을 받고 싶지 않아요. 발레를 사랑하고 나를 존중하기 때문이죠. 가장 만족스러울 때 마지막 공연을 하고 싶었어요.  무대에서 100퍼센트를 보여주는 게 제 책임이죠.”

아무리 관리를 잘해도 마흔여덟 발레리나에게 전막 무대는 벅차 보인다. 전성기보다 체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제가 느끼는 전성기는 달라요. 1999년 ‘브누아 드 라 당스(무용계의 오스카상)’ 를 받은 직후 다리 부상으로 1년 넘게 쉬었어요. 세상을 다 가졌다고 느꼈을 때 지옥으로 곤두박질 쳤죠. 젊고 패기 넘쳤을 때는 정신과 몸의 균형을 맞추는게 힘들었어요. 원래 파워가 많아 가장 피곤한 상태에서 공연할 때 좋았어요. 공연 전에 일부러 몸을 지치게 만들었는데 40대가 넘어가면서 조절이 잘 됐죠. 당연히 예전처럼 쉬지 않고 팔짝팔짝 뛰지는 못하지만 좀 더 여유를 갖고 즐기면 서 춤출 수 있게 되었어요.”

 

국립발레단 행정 업무로 바쁜 나날들이지만 틈틈이 연습에 매진하고 있다. 새벽 네다섯 시에 일어나 스트레칭을 한다.

 

그녀가 마지막 열정을 다할 <오네긴> 무대에서 사랑은 나무에 투영된다. 1막에서 타티아나가 오네긴을 향한 짝사랑으로 들떠 있을 때 나뭇잎은 무성한 초록빛이다. 그러나 2막 파티에서 오네긴이 타티아나의 사랑 고백 편지를 찢어버릴 때는 앙상한 나무다. 이렇듯 나무는 이뤄지기 힘든 두 사람의 미래를 암시한다.

 

오네긴이 재미 삼아 친구 렌스키의 약혼녀이자 타티아나의 여동생 올가를 희롱하면서 비극이 전개된다. 화난 렌스키는 오네긴에게  결투를 신청하고 결국 오네긴이 쏜 총에 목숨을 잃는다. 그 후 15 년이 흘러 타티아나는 그레민 공작의 아내가 된다. 돌아온 오네긴은 성숙한 여인이 된 타티아나를 보고 넋을 잃는다.

 

3막 무대에는 나무 대신 무거운 돌기둥이 서 있다. 돌기둥은 완전히 굳어버려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사랑을 의미한다. 타티아나는 때늦은 오네긴의 구애를 뿌리친다. 사랑을 애원하는 오네긴과 흔들리는 타티아나의 2인무는 그래서 더욱 애절하다. 남편에 대한 의리와 옛사랑에 대한 연민에 고통받는 타티아나의 떨리는 몸이 관객의 눈시울을 붉게 만든다.

 

타티아나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한 오네긴의 필사적인 몸짓도 애끓기는 마찬가지이다. 오네긴은 혼신을 다해 타티아나의 몸을 쉴 새  없이 들어 올리고 설득한다. 발레리노들이 이 역할을 꺼릴 정도로  리프팅 동작이 많다.

 

글 전지현 (매일경제신문 기자) 사진 크레디아

 

위 글은 월간 「예술의전당과 함께 Beautiful Life!」 2015년 10월호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