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컬처 ]

한층 더 성숙하고 깊어진
남자 베르테르 그리고 작품 베르테르

by예술의전당

뮤지컬 베르테르_ 극단 갖가지 대표, 베르테르 예술감독 심상태

11.10(화) - 2016.1.10(일) CJ 토월극장 

한층 더 성숙하고 깊어진 남자 베르테

삶의 모든 것을 사랑에 바친 한 남자가 있다. 오롯이 사랑으로 몸과 마음을 모두 태워버린 남자의 이름은 베르테르. 그 아름답고 고귀한 이름을 가진 남자의 사랑이 뮤지컬로 완성될 수 있었던 건 베르테르를 향한 극단 갖가지 심상태 대표의 순정 덕분이다. 뮤지컬 <베르테르>의 15년 역사를 기억하고 있는 그에게 베르테르의 사랑에 관해 물었다. 그는 극장을 찾는 관객 모두가 “한층 더 성숙하고 깊어진” 베르테르의 사랑을 가슴에 품길 바라고 있었다.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실내악

한층 더 성숙하고 깊어진 남자 베르테 한층 더 성숙하고 깊어진 남자 베르테

2000년 초연


뮤지컬 <베르테르>가 올해로 15주년을 맞이했다.

감회가 새롭다. 15년이란 긴 시간 동안 꾸준히 관객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 감사하고 또 감사할 따름이다.

 

지난 2000년, 독일의 대문호 괴테의 실연을 담은 고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무대로 옮겼다. 어떤 계기가 있었나?

1990년대 후반은 춤추고 노래하는 화려한 쇼 뮤지컬이 뮤지컬의 전부인 것처럼 인식되던 시기였다. 창작 뮤지컬의 제작 편수도 매우 적었고. 그런데 당시 체코에서 뮤지컬 <드라큘라>를 보고 굉장히 큰 감동을 받았다. 연극적인 뮤지컬이 전할 수 있는 드라마의 가능성을 본 거다. 세계적인 고전을 가지고 창작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고, 그 시작으로 괴테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선택했다.

 

수많은 고전 중에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중학생 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처음 읽고 베르테르란 남자가 품은 사랑에 감동을 받았다. 도대체 얼마나 사랑하기에, 도대체 어떤 사랑이기에 죽을 수밖에 없었을까. 너무나 순수한 사랑의 여운이 짙었다. 연극적인 뮤지컬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베르테르의 순정’이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뮤지컬로 만들면서 가장 주력한 점은 무엇인가?

주제는 한 남자의 순수한 사랑, 형식은 수채화 같은 실내악, 이 두 가지를 중심으로 나머지는 과감하게 정리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원작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원작이 전하는 정서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이토록 오래 사랑받을 수 있었던 건 베르테르란 남자의 사랑에 모두가 공감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 마음을 헤아리는 게 가장 중요했다.

 

고선웅 작가와 정민선 작곡가는 한국 공연계를 이끌어가는 대표적인 창작자지만, 뮤지컬 <베르테르>를 작업할 당시엔 잘 알려지지 않은 신인이었다. 두 사람을 선택한 이유가 뭔가?

베르테르의 마음을 잘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고선웅 작가가 얼마나 순수한 눈망울을 가진 사람인가(웃음). 돌아보면 <베르테르>를 만들면서 배우든 스태프든 항상 그 사람의 눈을 중요하게 봤던 것 같다. 고선웅이란 작가가 가진 선한 심성이 이 작품을 완성하는 데 큰 힘이 될 거라는 믿음이 있었고 그 믿음 그대로 작품이 나왔다. 정민선 작곡가도 마찬가지고. 정민선 작곡가는 당시 플루트 작곡을 주로 하는 클래식 음악 전공자였다. 뮤지컬은 처음이었지만 뮤지컬 <베르테르>의 음악 스타일을 ‘실내악’으로 정한 만큼 기존에 뮤지컬을 작업해온 작곡가보다 좋은 선택이 될 거라 확신했다.

 

두 사람과 오랫동안 공들여 작품을 완성했지만 첫 공연의 성적이 좋지 않았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뮤지컬로 작업하면서 10년을 계획했다. 애초부터 첫술에 배부를순 없을 거다, 멀리 천천히 가자고 마음을 먹고 시작했다. 그런데 첫 공연 성적이 생각보다 너무 안 좋았다. 당시 뮤지컬 관객 수가 대략 5만 명 정도였다. 그중 10분의 1만 와도 성공이라고 생각했는데 900여 명 정도만 극장을 찾았다. 2억 원의 제작비를 탕진하고 나니 도저히 다음을 기약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 구원투수로 등장한 게 팬클럽 ‘베사모(베르테르를 사랑하는 모임)’다. 베사모의 투자로 재공연을 올린 건 지금까지도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다. 당시 실제 상황은 어땠나?

특정 배우가 아닌 작품의 팬클럽이 생긴 건 처음이라 굉장히 놀랐다. 베사모 회원들이 찾아와 “절대 포기하면 안 된다”고 하더라. 좋은 작품이 사장되는 걸 그냥 두고 볼 수 없다며 십시일반 모아서 작품에 투자를 해주었다. 베사모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뮤지컬 <베르테르>를 만날 수 없었을 거다. 그들의 응원에 힘입어서 공연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다.

 

베사모를 비롯한 관객들의 열렬한 지지는 물론이거니와 배우들의 열망도 높은 작품이다. 이유가 뭘까?

아무래도 정해진 동선에 맞춰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쇼 뮤지컬이 아니라 연극적인 성향이 짙은 작품이기 때문에 그만큼 배우의 기량을 향상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서가 아닐까. 베르테르 역을 캐스팅할 때 연기를 잘하고 못하고보다는 얼마나 베르테르에 어울리느냐를 고민한다. 베르테르의 순수한 눈망울이 살아 있는 배우를 늘 캐스팅해왔다. 이번에 조승우가 연기하는 걸 보니 2003년 당시 오디션 볼 때의 눈빛이 떠올랐다. 그 눈빛은 그대로, 감정은 훨씬 더 성숙해진 느낌을 받았다. 베르테르라는 한 남자를 완성해가는 건 거의 배우의 몫이다. 어떤 배우가 연기하느냐에 따라 베르테르의 느낌이 다른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거다.

순수한 사랑을 향한 열망

한층 더 성숙하고 깊어진 남자 베르테

2013년 공연

지난 15년 동안 수많은 배우가 뮤지컬 <베르테르>의 무대를 거쳐 갔다. 기억에 남는 배우들이 많을 것 같다.

일일이 손에 꼽을 수 없다. 모든 배우가 기억에 남는다. 아무래도 초연을 함께한 서영주, 김법래, 이혜경, 최나래에게 늘 고마운 마음이 남아 있다. 최나래는 <베르테르> 초연부터 지금까지 가장 많이 출연한 배우다. 오르카는 베르테르의 사랑을 응원하고 슬픔을 위로해줄 뿐 아니라 극 전체에 활력을 주는 중요한 역할이다. 최나래라는 배우가 가진 좋은 기운이 오르카의 캐릭터를 완성했다. <베르테르>가 꾸준히 사랑받은 데에는 배우들의 공이 크다.

 

배우뿐 아니라 연출에 따라 극의 느낌이 달라지는 것 또한 <베르테르>의 특징이다. 15주년을 기념하는 이번 작품의 지휘를 맡은 조광화 연출이 그리는 <베르테르>는 어떤 느낌인가?

조광화 연출은 배우의 기량을 최고로 끌어올릴 수 있는 연출이다. 애초에 연극적인 뮤지컬을 지향한 만큼 <베르테르>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배우의 연기다. 그 배우가 가진 감정이 효과적으로 무대에 드러나야 관객 또한 그 감정에 자연스레 동화될 수 있다. 조광화 연출은 배우와 관객이 베르테르의 감정을 공유할 수 있도록 최고의 컨디션을 만든다. 믿고 의지할 수밖에 없다.

 

2013년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 공연을 기점으로 제목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베르테르>로 교체했다. 이유가 뭔가?

애초에 기획부터 제목을 ‘베르테르’로 생각했었는데, 국내에서 번역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돼 있다 보니 그대로 따른 감이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해를 거듭해가면서 이 작품을 시작할 당시의 마음을 계속 되짚어보게 되고, 결국 베르테르의 순수한 사랑에서 시작한 것인 만큼 <베르테르>로 가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

 

제목을 뮤지컬 <베르테르>로 바꾸고 첫 해외 공연을 나섰다. 일본에서의 반응은 어땠나?

한국 공연 그대로 일본 도쿄에서 올렸는데 관객 반응이 굉장히 좋았다. 한국어로 공연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베르테르가 가진 정서를 그대로 느끼더라. 베르테르의 사랑을 한국뿐 아니라 외국 관객들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는 걸 확인하는 좋은 기회였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진출도 계속 추진 중이다.

 

2010년을 기점으로 CJ E&M과 공동제작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CJ E&M에서 관객들을 대상으로 창작 뮤지컬 제작을 원하는 작품에 대해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 가장 많은 득표수를 기록한 작품이 <베르테르>였다고 하더라. 홀로 <베르테르>를 계속 제작하는 데 있어 부담이 됐던 차에 좋은 파트너를 만나 든든하다. 특히 일본 공연을 준비하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베르테르>는이제 유년기를 거쳐 청년기에 들어섰다. 점점 무르익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함께 노력하고 있다.

 

성숙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작품이 홀로 성숙해지는 건 불가능하다. 한 작품이 시간을 머금고 성숙해지기 위해선 관객과 함께 성장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뮤지컬 <베르테르> 초연 당시 32회 공연을 했는데 32회 공연을 전부 다 본 관객이 있다. 그 관객은 15년 동안 늘 극장을 찾는다. 내가 살아 있을 때까지 언제까지고 이 작품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관객이 외면한 공연은 절대 좋은 공연이 될수 없으니까.

 

15주년을 맞이하는 이번 <베르테르>에서 관객이 가장 주목했으면 하는 지점이 있다면?

당연히 배우. 엄기준, 조승우, 규현의 베르테르가 각자 다른 설득력을 갖는다. 엄기준과 조승우는 이미 베르테르로 관객의 마음을 훔친 전적이 있으니 굳이 더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웃음). 이번에 처음 베르테르의 옷을 입은 규현은 베르테르가 품은 순수한 사랑의 열망을 잘 표현한다. 티 없이 해맑고 깨끗한 느낌의 베르테르다. 어떤 배우의 베르테르를 보느냐에 따라 마음에 담기는 감정의 색이 달라질 것이다. <베르테르>를 보고 마음에 품은 감정의 색을 오래도록 간직해주길 바란다.

 

글 이유진 (「맥스무비」 매거진 기자, 공연 칼럼니스트) 사진 CJ E&M

 

위 글은 월간 「예술의전당과 함께 Beautiful Life!」 2015년 12월호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