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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연극의 계절, 가을

by예술의전당

결실의 계절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이번 여름은 유난히 더웠기에 가을이 더욱 반갑습니다. 올가을, 여러분은 어디서 누구와 함께 어떤 멋진 추억을 만드실 계획인가요? ‘11월에 반드시 봐야 할 작품 리스트’에 넣을 연극 두 편을 추천해드립니다.

연극의 계절, 가을

© 김솔

11월 6일(화)부터 25일(일)까지 러시아 연출가 유리 부투소프가 선보이는 입센의 <인형의 집>이 CJ 토월극장 무대에 오릅니다. 러시아 하면 체호프와 스타니슬랍스키의 나라 아닙니까. 현재 러시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연출가 유리 부투소프는 까다로운 자국 내 다수의 연극평론가와 관객으로부터 오랜 세월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아티스트입니다.

 

제가 2016년 상트페테르부르크 렌소베타극장에서 관람한 유리 부투소프 연출의 <세 자매>는 만약 제목을 모르고 봤다면, 도저히 안톤 체호프의 <세 자매>라고 추측조차 못할 정도로 파격적이었습니다. ‘이런 연극을 관객들이 좋아할까?’ 보는 내내 의구심이 커져갔지만, 커튼콜에 쏟아지는 환호와 박수에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 그가 노르웨이 작가 헨릭 입센의 대표작 <인형의 집>으로 한국 관객과 10년 만에 재회합니다. 여성 인권 문제를 넘어 자아를 찾고 타인을 존중하는 관점을 다룬 이 희곡이 세기가 바뀌어서도 왜 여전히 빛을 발하는 고전인지 이제 여러분이 극장에서 직접 확인할 차례입니다.

젊고 유능한 배우와 노련한 크리에이티브 스태프와의 만남

연극의 계절, 가을

연극 '인형의 집' 연습 장면 © 김솔

주인공 ‘노라’ 역의 정운선 배우는 <시련>, <유리동물원>, <아워 타운> 등의 작품에 출연하며 연기력을 인정받고 있는 베테랑 배우입니다. 그는 2008년 당시 학교 수업도 빠져가며 유리 부투소프 연출의 <갈매기>를 보았고, 언젠가 유리 부투소프가 연출하는 무대에 서겠다는 꿈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인형의 집>으로 그 꿈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헬메르’ 역의 이기돈, ‘린데’ 역의 우정원, ‘크로그스타드’ 역의 김도완, ‘랑크’ 역의 홍승균 모두 치열한 오디션을 거쳐 캐스팅되었습니다.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는 젊고 재능 있는 배우들이 뿜어낼 에너지와 완벽한 앙상블이 많은 기대감을 자아냅니다.

 

또한 최근 연극 <발렌타인 데이>의 무대디자인으로 많은 연극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알렉산드르 쉬시킨이 시노그래퍼로 합류하고, 독창적인 움직임으로 연극의 생동감을 불어넣기로 정평이 난 니콜라이 레우토프가 안무가로 참여합니다. 평소 무대미술과 춤에 관심 있는 관객 여러분에게 다채로운 볼거리를 선사할 것입니다.

프로그레시브 클래식의 정수를 보여줄 <인형의 집>

학창 시절, 저는 팝송을 즐겨 들으며 빌보드차트를 매주 외우다시피 했던 팝 마니아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의 소개로 영국의 록그룹 에머슨레이크앤파머(Emerson Lake & Palmer)의 ‘전람회의 그림’을 듣고, 소위 프로그레시브록 또는 아트록이라는 음악 장르에 빠져들었습니다. 이후 재즈·클래식 음악까지 챙겨 듣는 단계로 발전했으니, 이제 와 생각해보면 클래식 음악을 재해석한 음반 하나가 저에게는 음악적 도약의 계기를 만들어준 일생일대의 선물이었던 셈입니다. 유리 부투소프가 선보일 <인형의 집>도 고전을 재해석한 내용과 구성으로 여러분에게 신선한 극적 충격과 감동을 선사하며 여러분 인생에 새로운 창窓을 열어주리라 믿습니다. 부디 이 작품이 연극에 대한 통념을 뛰어넘어 보다 실험적인 연극에 도전하고 즐길 수 있는, 연극 감상의 스펙트럼을 확장할 수 있는 터닝포인트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강백, 이수인 콤비가 선보이는 기대작 <어둠상자>

연극의 계절, 가을

연극 <어둠상자> 연습 장면 © 김솔

11월 7일(수)부터 12월 2일(일)까지 이강백 극작, 이수인 연출의 <어둠상자>가 자유소극장에서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극작을 공부하거나 연극을 꽤 봤다는 분들에게는 이강백 작가야말로 살아 있는 전설입니다. 희곡 「파수꾼」, 「결혼」, 「들판에서」는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고, 예술의전당 공연기획부 사무실 책꽂이 한편에는 이강백 작가의 희곡들이 빼곡하게 꽂혀 있을 정도니 말입니다.

 

최근 연극 <춘향>, <우리가 아직 살아있네요>, <심청>의 이수인 연출 또한 꾸준히 히트 작품들을 만들어내며,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중견 연출가입니다. 이강백 작가와 의기투합해 작품을 올린 경험도 있어 그야말로 찰떡궁합, 완성도 높은 작품을 기대해도 좋습니다.

 

<어둠상자>는 고종이 풍전등화 격인 나라의 불씨를 살리는 심정으로 루스벨트 대통령의 딸 앨리스에게 선물한 자신의 사진을 매개로 시작되는 이야기입니다. 궁중 사진사였던 김규진은 이를 자신의 과오라고 생각하며, 고종의 유언에 따라 앨리스가 가지고 있는 그 사진을 반드시 찾아서 없애라고 아들에게 부탁합니다. 결국 이 유언은 증손자에게까지 전달되어 종지부를 찍게 됩니다.

 

얼핏 보면 비장한 스토리지만, 작가는 시종일관 유쾌한 유머를 관객에게 던집니다. 또한 연출은 관객이 흥미와 감동의 현 위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극에 팽팽한 긴장감을 장면마다 조율해나갑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했습니다. 이 연극이야말로 그런 경험명제를 정확히 무대 위에 구현한 듯합니다. 또한 연극은 주체와 객체를 바라보는 동서양의 관점 중 어느 쪽이 옳은지에 대한 선택을 관객에게 맡깁니다. 정답은 없겠지만, 아무튼 그 대답과 선택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108년의 시간, 17명의 배우, 34개의 역할

<어둠상자>는 4대에 걸친 108년의 시간이 담긴 이야기 상자입니다. 17명의 배우와 악사가 34개의 역할을 쉴 새 없이 연기하며 극장판 대하드라마를 펼칩니다. 연극 마니아라면 익히 알고 계실 송흥진, 백익남, 신안진, 이춘희 등의 선배 배우들과 젊고 패기넘치는 후배 배우들의 앙상블이 조화를 이루며, 극 중간에 흘러나오는 옛 노래는 관객 여러분을 추억에 젖게 할 것입니다.

 

1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카메라와 일상 속 단어의 변천을 살펴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자칫 옛날얘기라 고루하지 않을까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흥미롭고 빠른 전개에 2시간이 언제 지나갔나 싶으실 겁니다.

이런 취향엔 이런 연극

연극의 계절, 가을 연극의 계절, 가을

© 김솔

예술의전당 개관 30주년을 기념해 비슷한 시기 CJ 토월극장과 자유소극장에 오르는 <인형의 집>, <어둠상자>는 예술의전당이 25년간 직접 기획·제작해왔던 90여 편의 연극 스타일을 대변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두 작품 모두 보시면 좋겠지만, 굳이 하나만 보셔야 하는 분에게는 다음과 같이 약간의 팁을 드립니다.

Q. 안톤 체호프의 연극과 고전문학을 즐기는 분이라면?

A. <인형의 집>을 추천합니다. 다만 여러분이 상상했던 무대 연출과는 전 혀 다른 파격의 신선함을 각오(?)하시기 바랍니다.

 

Q. 뮤지컬 <명성황후>나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을 재미있게 보신 분이 라면?

A. <어둠상자>를 권해드립니다. 대한제국 멸망의 감춰진 뒷얘기와 근대사의 스펙트럼이 다이내믹하면서도 아기자기하게 펼쳐져 잔잔한 재미와 감동을 선사할 것입니다.

아무쪼록 두 편의 연극과 함께하는 2018년의 가을이 특별한 추억으로 여러분 생의 한편에 오래도록 기억되길 바랍니다. 가을은 연극의 계절이니까요!

 

글 양우제 예술의전당 공연기획부

 

위 글은 월간 「예술의전당과 함께 Beautiful Life!」 2018년 11월호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