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컬처 ]

자신의 소리를 마음으로
끌어안는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

by예술의전당

성숙한 음악가의 무한 에너지를 느낄 최적의 기회

 

2.15(월) 오후 8시 콘서트홀

자신의 소리를 마음으로 끌어안는 바이

클라라 주미 강 CLARA-JUMI KANG

지난해 10월, 시드니 심포니와의 내한공연을 앞둔 바이올리니스트 바딤 레핀을 런던 위그모어홀 근처에서 인터뷰 차 만났다. 그런데 “올해 차이콥스키 콩쿠르 우승자는 클라라(주미 강)가 돼야 했다”는 게 그의 첫마디였다. 차이콥스키 콩쿠르 심사위원으로 모든 참가자의 예선을 지켜본 그는 일정상 부득이 결선 심사를 맡지 못했다.

 

“레핀의 코멘트가 실린 국내 신문 기사를 보기 전에, 사실 레핀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여러 경로로 전해 들었어요. 어려서부터 레핀과 벤게로프의 팬이기도 했고요. 러시아에서 직접 만나 이런저런 조언도 들었는데, 그 시간이 참 소중했어요.”

 

두 달 뒤 로마에서 다시 레핀을 만났다. 그때도 그는 “시드니 심포니 서울 공연이 끝나고 클라라와 만나 식사를 같이하면서 격려했다”고 내게 말했다. 레핀의 격려는 단순히 말에 그치지 않았다. 자신이 감독을 맡은 트랜스 시베리아 축제에 클라라를 초청했고, “경연 결과로 낙담하지 말았으면 한다. 러시아에 더 많이 알려지면 좋겠다”고 공개적으로 지지를 밝히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마린스키 오케스트라 투어를 위해 영국에 온 발레리 게르기예프도 자신이 위원장으로 있는 차이콥스키 콩쿠르 입상자 갈라를 이끌면서 바이올린은 상위 입상자들 대신, 4위 클라라를 불렀다. 메시지는 간명했다. “내가 너를 인정하고 있으니 너는 나와 연주할 준비가 됐는지만 알려주면 된다.”

 

유수의 콩쿠르가 인터넷으로 전 세계에 중계되면서 거장들도 신인의 활약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게 된 것은 예전과는 다른 중대한 변화다. 기돈 크레머는 차이콥스키 콩쿠르 결과가 발표된 뒤 그동안 별다른 면식이 없던 클라라 주미 강에게 “네가 어떻게 연주했는지 잘 봤다”고 먼저 메일을 보냈고, 이후 크레메라타 발티카 투어를 함께했다.

 

“콩쿠르가 끝나고 여러 음악가로부터 따뜻한 메시지를 받았어요. 음악과 콩쿠르 결과는 다른 세계잖아요. 지금 생각하면 나가기 참 잘했다, 안 나갔으면 어쩔 뻔했나 싶어요. 크레머는 저에겐 너무나도 특별한 음악가죠. 소리가 원래부터 남다르니까요. 직접 만나니까 더욱 인간적이고 편해서 좋았어요. 제 아버지보다 한 살 많으신데 전혀 불편하지 않았어요. 같은 바이올리니스트니까 나눌 이야기도 많았고.”

 

사실 콩쿠르 도전을 매니지먼트 계약의 교두보로 바라보는 시선도 적지 않다. 클라라는 어려서부터 미국과 유럽의 유수한 매니지먼트들과 만났고, 그 덕분에 지금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잘 알고 있다. 현재 그녀는 해외 활동의 제반 사항을 대부분 스스로 처리하고 있다.

 

“연습에만 집중하고 싶은데 이메일을 써야 하는 상황을 빼면, 매니지먼트가 없는 단점을 못 찾겠어요. 제가 제 매니저가 되는 건데요. 어쩌다 비행 루트를 잘못 짜서 스무 시간씩 비행기를 타야 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그런 실수 말고는 매니저 없이도 연주 의뢰가 잘 들어오니까 아직 운이 좋은 거죠. 연주를 잘하면 다시 초청받을 확률이 높다는 것도 알죠. 이렇게 계속 가진 않겠지만, 제 음악을 사랑하는 매니저를 만나기 전까지는 회사 이름만 보고 계약하는 일은 없을 것 같아요. 음악가에게 있어 순수하게 자신의 음악을 좋아해서 도와주려는 매니저를 만나는 건 축복이에요. 요즘은 부킹 에이전시로 독립하는 매니저들도 많이 생기고, 비즈니스 환경이 점점 바뀌고 있어요.”

운명의 악기와 나누는 꿈의 대화

2010년 인디애나폴리스 콩쿠르에서 우승한 이후 클라라는 솔로 앨범을 발매하고 연주 여행을 하는 내내 자신의 음악이 정체된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타성을 견제하려는 강박감에 시달렸다. 특히 바이올린이 바뀔 때 더욱 그랬다. 현재 사용하는 1708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Ex-Strauss’(삼성문화재단 후원)를 만나기 전, 4년간 인디애나 우승 자격으로 대여한 깅골드 스트라디바리우스와는 누가 봐도 애증의 관계였다. 깅골드로 처음관객과 만난 2011년 고양 신년음악회에서 클라라는 “이 악기와 어떻게 이야기를 풀지 나도 궁금하다”고 했다. 독주와 체임버, 협주곡에 모두 능한 명기를 찾는 건 노력이나 행운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연주자 고유의 루틴에 악기가 순응하지 않을 경우, 차라리 하루 빨리 새 악기를 찾는 것이 현명하다.

 

“악기를 많이 보는 편이에요. 제가 손이 얇고 새끼손가락이 짧아요. 그런데 지금 악기는 제게 불편함을 안 줘요. 더 편해졌어요. 항상 소리에 관해 연구하지만, 돌아보면 나이를 한 살씩 더 먹으니까 제 소리 찾는 것도 발전하고 있음을 느껴요. 2011년 드레스덴 카펠졸리스텐 ‘사계’ 영상을 보며 비교해도 지금은 비브라토를 훨씬 덜 하고 있어요. 왼손이 내용물을 주입하고 오른손이 노래를 한다고 어릴 때부터 배웠지만, 확실히 달라진 점은 요즘은 제가 상상하면서 꿈꾸던 소리가 쉽게 나온다는 거예요. 옛날에는 연습을 해야 소리가 나온다고 생각했거든요. 경험이 쌓인 것도 있지만, 지금의 악기도 어느 정도 역할을 한 거죠.”

 

‘Ex-Strauss’를 손에 쥔 클라라 주미 강의 2016년 국내 스케줄은 눈부실 만큼 화려하다. 2월 15일 베를린 바로크 솔리스텐의 내한공연(바흐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오보에-바이올린 현을 위한 협주곡, 비발디 ‘사계’ 중 ‘겨울’, 네 대의 바이올린과 현을 위한 협주곡)을 시작으로 2월 말에는 평창 음악제(차이콥스키 피아노 트리오, 브람스 2중 협주곡)에 출연하고, 3월에는 리오넬 브랑기에 지휘의 서울시향(생상스 협주곡 3번), 4월에는 크리스토프 포펜이 지휘하는 쾰른 체임버(모차르트 협주곡 5번, 멘델스존 협주곡)와 협연한다. 슈만 바이올린 소나타집 앨범은 3월 독일에서 녹음해 9월 국내에 발매될 예정이며, 11월엔 리사이틀(피아노 손열음) 투어가 이어진다. 언제나 그랬듯 활동의 중심은 예술의전당이다.

20년이 흘러 다시 콘서트홀에서

클라라 주미 강에게 예술의전당은 엄마 품처럼 포근한 마음의 고향이다. 독일에서 태어나 만 여덟 살에 예술의전당 무대에 오른 그녀는 뜻하지 않은 손 부상으로 음악 생활에 중대 위기를 겪었지만 한국 유학(한국예술종합학교)을 결정했다. 그리고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콩쿠르와 여러 공연을 통해 성장해 다시 태생지인 독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예술의전당은 다양한 기획 공연에 클라라를 초대해 관객과 친숙해지는 기회를 지속해서 제공했다.


자신의 소리를 마음으로 끌어안는 바이

1996년 4월 30일 서울바로크합주단 협연 후 콘서트홀 백스테이지에서

나는 1996년 4월 30일 서울바로크합주단 공연에서 프로그램북을 나눠주는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강주미의 공연을 보게 되었다. 그날의 연주곡은 공교롭게도, 그때로부터 정확하게 20년 뒤인, 2016년 4월 30일 쾰른 체임버와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할 모차르트 협주곡 5번 ‘터키’였다. 만 여덟 살 어린아이의 무대 매너라고는 믿기 어려운, 차분한 인사 예절이 인상적이었다. 공연이 끝난 후에도 강주미는 냉정함을 유지했다. 박수갈채 속에서 결과를 관조하는 표정이 내가 클라라를 기억하는 첫인상이다. 그로부터 20년이 흘러 “음악과 콩쿠르 결과는 다른 세계잖아요”라고 힘주어 말하는 클라라의 뉘앙스를 들으니, 자신을 돌아보는 데 자연스러웠던 한 소녀의 얼굴이 그대로 겹친다.

 

“베를린 바로크 솔리스텐 공연은 2014년부터 기획된 건데 2년째 설레게 하는 공연이에요. 이 단체의 소리를 직접 듣진 못했지만 좋은 리뷰를 여러 곳에서 보았어요. 바로크나 고전, 낭만시대 모두 비브라토가 다르잖아요. 그래서 첫 리허설이 중요해요. 베를린 바로크 솔리스텐이 지금 완전히 바로크 스타일인지, 중간을 찾는 건지. 제 생각엔 중간을 찾을 거라고 봐요. 큰 홀에서 여는 거고, 저는 바로크식 넌비브라토가 맞고. 서울시향 공연은 2013년에 정명훈 선생님과 투어를 할 때 제안이 왔어요. 브랑기에가 취리히 톤할레 감독으로 가는 유망주인 것도 기대되고, 무엇보다 어린 시절 제 장기였던 생상스 협주곡 3번을 지금 연주하게 되어 기뻐요. 정말 좋아하는 곡이거든요. 보통 20대를 넘긴 연주자들은 이 곡을 잘 연주하지 않는데, 제겐 어렸을 땐 못느낀 섬세한 면과 색깔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곡이에요.”

 

클라라는 체임버에서 불꽃 튀는 시너지를 발휘하다가 편성이 큰 오케스트라 공연에선 준비한 것과는 다른 양상으로 흘러가는 모습을 보인 적도 있다. 성장이 절실할 때, 그녀는 독일로 건너가 뮌헨음대에서 바이올리니스트 겸 지휘자 크리스토프 포펜과 대화하면서 자신의 좌표를 찾아나갔다. 어릴 때 잠시 클라라를 가르친 포펜은 메이저 콩쿠르에서 우승한 후 다시 자신을 찾아온 20대 중반의 제자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건 바로 음악에 대한 주관, 그리고 자신감이었다.

 

“2011년에 다시 독일로 이사했어요. 고향으로 돌아간 거잖아요. 저는 독일어를 하고, 독일 작품을 하는 게 어떤 건지 잘 알아요. 그래서 바로크 사운드를 찾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어요. 환경이 바뀌니 어렸을 때 알던 사운드로 자연스럽게 돌아온 거 같아요. 자유자재로 제어가 되는 걸 느껴요. 로맨틱하게 혹은 시대악기 스타일과 절충하는 단체와 만나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포펜을 다시 만나고 연주 경험을 쌓으면서 조금 더 자신감이 붙었어요. 포펜의 바흐 바이올린(ECM)을 들어보세요. 바이올린에서 포펜 따라갈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예요. 제가 무언가를 시도하면 “지금 클라라가 하는 게 맞아, 확실해” 라고 격려하고 잘 들어주세요. 이제는 활로 노래한다는 걸 제대로 보여드릴 수있을 것 같아요.”

 

클라라는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한 20대를 지나 서른이 되는 생일이 기대된다”면서 인터뷰를 마쳤다. 지난해 10월 런던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한때 뷰티 아이템 모델로 지면에 오른 것 때문에 관객들이 내 음악을 듣는 데 방해를 받진 않았는지 되돌아본다”고 했다. 이쯤 되면 ‘성찰 전문가’다. 더 나은 음악을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채근하는 클라라 주미 강을 만날 기회가 어느 때보다 많아진 2016년이다.


글 한정호 (음악 칼럼니스트)

 

위 글은 월간 「예술의전당과 함께 Beautiful Life!」 2016년 2월호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