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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읽는 예술, 말하는 예술법 ①

차용예술의 대가 제프 쿤스와 포스트모던 시대의 저작권

by예술의전당

현대예술의 세계에서 법은 예술을 읽는 척도가 된다. 예술가의 작업실에서부터 제작 과정과 유통 공간에 이르기까지 법적 이해관계가 관통하지만, 특히 포스트모던 예술에서 예술법arts law은 개념화, 융복합화, 탈장르화 되어가는 복잡하고 다양한 예술 창작 형태를 이해하는 데 유용한 도구가 된다. 예술의 미학적·사회적 측면을 넘어 예술법이 동시대 예술을 읽어내는 하나의 언어로 자리를 잡아가는 시점에서, 앞으로 연재할 ‘읽는 예술, 말하는 예술법’은 예술과 법이 교차하는 영역의 의미에 주목한다. 앞으로 다양한 예술 현장의 이슈와 논쟁을 예술법이라는 프리즘으로 투사해 봄으로써, 더욱 풍부하고 흥미로운 예술 읽기에 도전해보고자 한다.

차용예술의 대가 제프 쿤스와 포스트모

© Kobby Dagan / Shutterstock.com

지난해 12월 해외 주요 언론은 한 주류 광고에 쓰인 사진 이미지를 도용하였다는 이유로 저작권 소송의 피고가 된 미술작가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뉴욕의 사진가 미첼 그레이는 뉴욕 연방법원에 낸 소장에서 해당 작가의 1980년대 작품에 자신이 찍은 사진이 “거의 변경 없이 통째로” 복제되었다고 주장했는데, 그에 대한 어떠한 허락도 보상도 없었다는 것이다. 연말연시에 유쾌하지 않은 저작권 송사에 휘말리게 된 문제의 작가는 바로, 비슷한 시기 해외 예술전문매체에 의해 최고의 생존 아티스트 10인 가운데 하나로 선정된 제프 쿤스Jeff Koons다. 10인에는 쿠사마 야요이, 아이 웨이웨이, 프랭크 스텔라, 데미안 허스트 등도 포함되었는데, 사진 속 쿤스는 마치 본인이 일으킨 소음을 즐기기라도 하듯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제프 쿤스는 원고석과 피고석을 유유히 오가며 활동하는 예술가 중 하나로, 현대 예술시장은 그의 대담함을 즐기는 대가를 톡톡히 내고 있다.

논란의 중심에 선 미술계 악동 제프 쿤스

제프 쿤스는 1955년 뉴욕 태생의 작가로, 2013년 11월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10피트 높이의 강철 조각인 <풍선개Balloon Dog>가 생존 미술가 경매 사상 최고가인 5,840만 달러에 팔리면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가’로 등극했다. 기성 예술을 조롱하는 도발적이고 파격적인 작품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는 한편, 동심을 자극하는 상반된 작품세계를 보여주기도 하는 쿤스는 상품 자체를 예술의 맥락으로 승화시켰고, 자신을 예술의 대상으로 삼아 이른바 ‘상품 가치로서의 아티스트’의 지위를 획득, 20세기 앤디 워홀의 뒤를 이어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미국 아티스트로 자리매김했다. 워홀이 뉴욕 유니언스 퀘어에 작업실 개념의 ‘공장Factory’을 운영했다면, 쿤스는 이러한 개념을 더욱 확장해 첼시에 유한 회사를 차리고 100여 명의 직원을 지휘 감독하는 기업 CEO로서의 모습을 자랑한다.

 

그의 작품에 대해서는 “치명적 자아도취”라든가 “저급하고 혐오적”이라는 등 부정적 견해도 상당하다. 영리한 쿤스는 자신의 작품을 저속하고 세속적이라고 폄하하는 이들에게 아티스트로서 자신이 대중과 결코 다르지 않음을 강조하면서, 결과적으로는 상업적 ‘대중 스타’의 이미지를 한층 더 견고히 다지는 행보를 보인다. 이처럼 대담한 상업주의를 표방하는 쿤스에 대한 극단적 평가와 무관하게, 세계 미술시장에서 그의 영향력은 막강하기만 하다.

 

현대미술의 수수께끼같이도 느껴지는 제프 쿤스에 대해 미술사적으로도 할 말이 많겠지만, 예술법적으로도 그가 만들어낸 분쟁의 양과 질은 독보적이어서, 쿤스는 이 분야에서도 스타에 가깝다. ‘쿤스-저작권-차용예술’이라는 주제는 현재진행형 포럼으로 예술법 전문가들의 지속적 관심사다. 기존의 다양한 이미지 차용을 주요한 모티브로 삼는 쿤스의 작업 방식은 저작권과의 관계에서 크나큰 도전이 아닐 수 없는데, 그것은 저속하거나 음란하다는 등 취향의 차원을 넘어 타인의 재산과 인격을 침해하는 법적 차원의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저작권과의 전면전을 선포한 듯 보이는 미술계의 악동 제프 쿤스의 ‘차용’에 대한 애착이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것은 아니다. 남의 작품을 가져다 영리하게 활용하는 그의 소질은 어린 시절부터 남달랐다. 쿤스는 여덟 살의 나이에 옛 거장들의 그림을 모사한 후 ‘제프리 쿤스’라는 서명을 덧붙여 부친의 가게에서 판매했다. 미대를 졸업하고 뉴욕현대미술관MOMA 영업직으로 근무할 때는 염색과 콧수염으로 달리의 이미지를 차용하기도 했다. 주식중개인 등의 직업을 전전하며 별다른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그는 곧 대담한 자기 홍보 기술에 기초, 대량 생산되는 상품들을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예술로 재탄생시키며 차용예술의 대가로 거듭났고, 순식간에 미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다른 관점의 창작인가, 아니면 절도인가

차용예술의 대가 제프 쿤스와 포스트모

© MR. INTERIOR / Shutterstock.com

시각예술 분야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차용appropriation이란, 실재하는 객체나 기존의 예술작품에서 빌려온 이미지를 활용해 또 다른 예술작품을 창조하는 제작 방법을 의미한다. 차용이 창작에 있어 하나의 방법론인 만큼 그 방식과 의미는 그것을 사용하는 작가들만큼이나 다양한데, 현대미술의 특징적 동향은 점차 차용한 요소 및 차용의 원리 그 자체가 작품의 본질을 이루는 경우가 많아진다는 것이다. 저작권 의식이 향상되고 관련 법제가 강화되면서, 이러한 기법을 사용한 차용예술appropriation arts은 저작권 침해로 인해 끊임없는 논란의 중심에 선 예술 분야가 되었다.

 

차용을 내세운 포스트모던 예술은 예술작품에 저작권성이 있다는 명제에 파문을 일으켰고, ‘포스트모던 예술의 법적 보호’라는 화두는 예술 현장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골칫거리의 하나가 되었다. 피카소, 마티스, 몬드리안, 칸딘스키 등 고전적 모던 예술가들 이후 포스트모던 예술의 주요 유파로는 추상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 팝아트Pop Art, 극사실주의Superrealism와 함께 차용예술을 들 수 있는데, 이 중 팝아트와 차용예술은 겹치는 측면이 없지 않지만, 저작권 보호라는 관점에서 앞의 세 유파와 차용예술은 분석의 초점이 다소 다르다. 전자에서는 개념이 근본을 이루는 예술작품에 있어서 그것이 저작권성이 있는 ‘표현’의 영역에 머무르고 있는지 또는 저작권성이 없는 ‘아이디어’의 영역으로 벗어났는지 아닌지가 저작권 침해 여부의 관건이 된다면, 차용예술의 경우 상당 부분 개념적이기는 하나 저작권성을 전제로 하여 차용예술가가 저작권자로부터의 라이선스 취득 없이 저작권 있는 재료를 복제할 수 있는 범위를 검토하는 것이 논의의 초점이라고 할 수 있다. 차용예술은 다른 세 유파보다 저작권 소송에 취약한데, 공개된 타인의 저작물 일부나 전부를 이용하므로 복제와 차용이라는 예술계의 전통과 관습에 따라 정당성을 부여받는다 하더라도 독창적 저작물의 저작권자에게 배타적 권리를 허용하는 저작권법과의 충돌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지적재산권법의 대가 랜디스와 포스너에 의하면 차용예술은 “예술작품에서 손을 들어내고 두뇌를 집어넣는 것”으로 표현된다. 원저작물을 원래의 문맥으로부터 제거해서 감상자가 해당 이미지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도록 변형한다는 측면 때문이다. 뒤샹이 남성용 소변기나 자전거 바퀴, 삽 같은 레디메이드 오브제를 예술작품으로 전시한 것처럼 공공영역에 속한 작품을 복제할 때는 법적 문제가 없지만, 저작권이 있는 이미지를 복제할 경우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당할 수 있다. 차용예술을 법적으로 어떻게 취급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예술가와 법률가가 서로 다른 견해를 보이는 경향이 있는데, 예술가는 차용에 대한 법적 제약을 예술의 자유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하는 반면 저작권법 관점에서는 차용예술이라는 용어자체를 절도를 암시하는 도발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바로 이러한 법조계의 관점을 반영한 소송인 로저스 대 쿤스 사건에서, 차용예술의 수호자 쿤스는 패배를 맛보게 된다. 이 사건은 두 남녀가 강아지 여덟 마리를 안고 있는 쿤스의 1988년 작 <강아지들String of Puppies>이라는 컬러 목조각에 대해 1980년 사진작가 아트 로저스가 자신이 촬영한 흑백사진의 저작권을 주장하며 불거진 소송이다. 쿤스는 강아지 탄생을 기념한 로저스와 달리 자신의 작품은 현대사회의 대량 생산과 탐욕을 비판한 공정 이용fair use이라고 항변했지만, 법원은 이를 배척하고 쿤스의 저작권 침해를 인정했다. 해당 작품은 1988년 휘트니 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회를 위해 준비한 것으로, 이 전시회에 출품한 쿤스의 다른 두 개의 조각에 대한 저작권 침해 소송에서도 쿤스가 패소했다.

문화적 전유 시대의 뛰는 저작권법, 나는 현대미술

차용예술의 대가 제프 쿤스와 포스트모

© 360b / Shutterstock.com

평론가들은 쿤스의 작품에 저속함과 음란함을 개의치 않는 당당한 자유로움이 깃들어 있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세계의 부호들은 천문학적 비용을 들여 경쟁적으로 그의 작품을 수집한다. 만일 제프 쿤스의 작품을 미국 자본주의의 천박함을 풍자하고 그 저변에 깔린 위선을 꼬집는 패러디로 해석한다면 그의 차용예술은 공정 이용으로서 저작권 보호에서 자유로운 영역으로 볼 여지가 있지만, 실제 소송에서도 승패가 엇갈리듯 단언하기 어려운 문제다. 현대예술이 개념화되면서, 그것이 무엇이든 아이디어가 작품이 되는 세상이 되었기에, 이제 아티스트가 무엇을 해도 그것은 충분히 예술이고, 그는 충분히 예술가인 것이다.

 

쿤스는 자신의 저작권 침해를 주장하는 데도 적극적인 아티스트이다. 지난 2006년 블랜치대 쿤스 사건에서 미 제2연방항소법원은 쿤스가 충분히 원래의 광고를 변형했으므로 공정 이용 요건을 충족한다고 보아 원고인 쿤스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쿤스 이외에 유명 작가들의 차용예술 관련 저작권 분쟁은 대부분 합의로 마무리됐다. 앤디 워홀과 사진작가들 간 분쟁, 사진작가 모튼 비비와 로버트 라우센버그 간 분쟁,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 캠페인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 후보의 <희망Hope> 포스터에 이용된 뉴스 사진에 대한 AP와 셰퍼드 페어리 간 분쟁 모두 합의가 이루어졌다. 최근 미 제2연방항소법원은 패트릭 카리우의 사진을 차용한 리처드 프린스의 <운하 지대Canal Zone>가 카리우의 사진과 “전적으로 다른 미학적 특징”을 나타낸다는 이유로 공정 이용을 인정해 파문을 일으켰는데, 차용예술가들의 승리로 평가되는 이 판결 이후에도 사실상 기존 저작물을 바탕으로 창작되는 차용의 관행이 지속되는 한 저작권 분쟁 역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차용이 근대 이후 가장 주도적인 예술 양식적 특징 중 하나임은 분명하나 차용예술은 결코 최근에 발생한 새로운 현상이 아니며 미술계에서 복제와 차용은 오래된 전통이기도 하다. 최초의 차용미술 작품으로 일컬어지는 르네상스 시대 라이몬디의 에칭에서 거장 마네와 피카소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차용은 계속됐다. 그런데도 현대 저작권법은 여전히 ‘독창적 개인에 의한 저작물의 창작’이라는 낭만주의적 사고를 고수하면서 저작권 보호의 배타적 근거로 저작자성과 독창성을 요구하고 있다. ‘모방을 통한 독창성’의 개념은 예술계에서는 일반적 규범으로 인정될 수 있으나 현 저작권법상 독창성 개념과는 양립할 수 없기에 저작권자의 배타적 권리와의 충돌은 불가피하며 많은 포스트모던 예술가들을 분쟁의 불구덩이에 빠뜨려온 것이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차용은 한층 더 과감하게 미술사적 전통에 도전하고 모더니즘의 독창성에 대한 숭배를 비웃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으로 사용되며, 이는 <모나리자>의 복제에 수염을 그려 가치의 전복을 기도한 뒤샹의 작업 방식과 상통한다. 제프 쿤스로 대변되는 포스트모던 시대 차용예술 작가들에게 저작권 송사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문화적 전유의 시대를 사는 현대의 아티스트는 실시간으로 차용하고, 차용된다. 현대사회가 포스트모던 시대 저작권 게임에 능숙한 쿤스를 존중하는 이유는 피소를 두려워하지 않는 그만의 예술가적 확신 때문일 것이다. 시시비비는 별론으로, 그러한 자유로움이야말로 포스트모던 시대 예술가가 저작권과의 어려운 게임을 지속할 수 있게 하는 일종의 특권이 아닐까.

 

글 강은경 (「공연예술법 마스터클래스 4막 36장」 저자)

 

위 글은 월간 「예술의전당과 함께 Beautiful Life!」 2016년 2월호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