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 빛과 어둠의 향연

[컬처]by 예술의전당

2015.12.19(토) - 4.3(일) 한가람디자인미술관 1, 2, 3전시실

색채, 빛과 어둠의 향연

폴 세잔 '엑상프로방스의 서쪽 풍경', 1885~1888

자연은 화가들에게 가장 친밀하면서도 낯선 존재다. 화가는 자연과 더불어 살며 그것을 응시하고 자신의 내부로 받아들인다. 다시 바라보기 위해 그리는 것, 그것이 풍경화다. 인상주의자들은 자연의 빛이 도달하는 사물의 표면을 그리고자 했기에 기존의 객관적인 색채가 아닌 주관적인 색채로 세계를 표현했다. 대문호인 괴테는 색채에 관한 중요한 연구를 남겼는데, 뉴턴의 절대적이고 물리적인 색채관에서 벗어나, 객관적인 자연의 색채와 주관적인 시각의 관계성에 주목했다. 괴테에 따르면 자연의 빛이 육안의 빛을 일깨움으로써 우리는 저마다 색채를 지각할 수 있다. 그리고 괴테의 색채론에 깊은 영감을 받은 헤겔은 괴테의 체계를 옹호하고 발전시켰다. 헤겔은 색채를 빛과 어둠, 이 두 가지의 결합으로 보았다.

풍경화의 시작

자신을 둘러싼 모든 공간과 교감하고 그것을 그리고자 하는 화가들의 욕망은 오랜 역사를 지닌다. 회화사에서 풍경이 주제의 부수적인 배경에 머물지 않고 풍경 그 자체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15세기경이다. 뒤러와 알트도르퍼 등이 인물 없는 순수한 풍경화를 그리기 시작하면서 르네상스 회화와 더불어 풍경화의 역사도 시작되었다. 고전적인 풍경화는 이상적인 자연을 충실히 재현하고, 주로 역사, 신화, 영웅적인 모티브들을 소재로 삼았다. 17세기 푸생은 고대 신화를 알레고리로 재현했고, 18세기 이탈리아의 카날레토는 도시 경관과 건축을 그 지역의 공간적 특성과 관련지어 비교적 충실하게 묘사하는 ‘베두테Vedute’라고 부르는 이상적 풍경화를 그렸다. 낭만주의 시대에 이르러, 숭고와 아름다움, 노스탤지어를 테마로 풍경화는 꽃을 피웠다. ‘픽처레스크picturesque’는 ‘그림과 같은’ 풍경을 의미하며, 당시 복고적인 중세 고딕 취향과 전원 풍경이 결합된 특정한 낭만주의 풍경화를 일컫는 신조어였다. 보들레르가 비평한 것처럼 낭만주의 회화에는 현대적인 요소가 내재한다. 특히 들라크루아의 색채는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중요한 선례가 되었다. 낭만주의 풍경화는 고전주의에 비해서 형태의 엄격함이 덜하고 감정 표현을 중요시했기에 비교적 자유로운 화풍을 지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실보다는 이상과 초월을 지향했다.

 

고전적인 풍경화에서 벗어나 새로운 창조적 변화의 기운이 싹튼 것은 영국의 낭만주의 풍경화에서다. 컨스터블은 미묘한 색채 변화를 통해서 풍경화의 새로운 전환점을 가져왔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자신이 성장한 고향 풍경을 작품의 소재로 선택했다는 것이다. 처음에 그러한 시골 풍경은 관람객들에게 초라하고 보잘것없이 보였을 것이다. 한편, 마치 산업혁명의 거센 폭풍이 불고 있는 시대상을 상징하듯이, 터너는 부유하는 대기와 빛을 소용돌이 기법으로 표현하면서 화면을 정적인 것에서 역동적인 것으로 변화시켰다.

프랑스 인상주의

풍경화는 그 장소의 자연적 지형과 분위기를 잘 드러낸다. 파리에서 한 시간 떨어진 거리의 아름다운 숲 지대인 퐁텐블로 인근의 바르비종Barbizon은 광활한 산림과 부드러운 대지가 장관을 이루는 곳으로, 사실주의와 초기 인상주의 작가들의 아지트였다. 바르비종파의 선구자격인 카미유 코로의 <아침, 요정들의 춤>(1850)은 낭만주의 화풍이 남아 있는 작품이다. 숲 속의 빈터에서 춤추는 요정들을 상상으로 그렸기 때문에 사실주의와는 거리가 먼 듯 보이나 정확한 관찰을 통해서 자연을 묘사한 작품이다. 그리고 초기 인상주의 화풍의 <아브레 마을>(1860년경)은 밝은 하늘빛과 큰 나무로 인해 드리워진 들녘의 그림자가 대조적인 깊이를 만들어낸다. 바르비종파는 루소, 도비니, 밀레, 뒤프레가 활동하면서 전성기를 이룬다. 이들은 일체의 과장이나 인위성을 배제하고 전원적이고 목가적인 일상의 풍경을 사실적으로 그려 사실주의를 견인하는 역할을 한다.

 

바르비종파의 영향을 받은 쿠르베는 그의 고향 오르낭을 떠나 파리로 와서 그림을 그리다가 퐁텐블로 숲의 일원이 되면서 사실주의 걸작들을 완성했다. 그리고 전시에 소개된 <바다 풍경>(1865)은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작품으로, 작품의 소재지는 노르망디의 트루빌 해변이다. 쿠르베는 이곳을 무척이나 좋아했고 ‘무아지경에 빠진 것 같은’ 감동을 느꼈다고 한다. 화면을 수평선으로 분할하고, 신비로운 색조로 표현된 바다와 하늘은 환영적인 공간을 구성하기 보다는 물질적인 평면에 가깝다. 쿠르베가 이러한 풍부한 색조의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은 외젠 부댕으로부터 풍부한 영감을 받았기 때문인데, 부댕의 <케호르의 고기잡이 여인들>(1870)과 <트루빌 해변>(1881)은 두 작품의 시간적 간극이 말해주듯이, 비교적 명확한 묘사로부터 점차 화면이 모호해지고 해체되는 인상주의 화풍으로 변화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한편, 프랑스 인상주의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풍경은 센 강la Seine 유역이다. 파리를 통과해서 북서쪽의 영국해협으로 흘러가는 센 강은 프랑스를 상징하면서 그 풍광이 매우 아름다워 풍경화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소재다. 모네, 르누아르, 카이유보트, 모리조, 시냑, 고갱, 보나르 등은 센 강의 유려한 물결을 따라서 백여 년전 파리의 모습과 아름다운 다리와 명소, 교외의 나룻배가 한가로이 정박해 있는 강변 풍경을 저마다의 시선으로 화면에 옮겨 놓았다.

분할된 시공간, 색채의 편린들

‘인상’은 찰나에 마음에 새겨지는 사물의 이미지다. 순간적이고 단편적인 이미지이며, 시간상으로는 현재의 것이다. 이 용어는 처음에 긍정적인 비평용어가 아니었다. 미술평론가 루이 르루아가 풍자 신문 「르 샤리버리Le Charivari」에 제1회 <무명예술가협회 展>에 출품된 작품들을 조롱하기 위해 비평문을 게재하면서 모네의 작품 <인상, 해돋이>(1872)의 제목에서 따온 말이다. 루이 르루아는 조셉 빈센트와의 대담에서 새로운 미술의 경향을 비난하면서 아이러니하게 그것을 정의하기도 한다. 요컨대 인상주의는 정확한 묘사가 결여된 채색 기법도 불만스러울 뿐만 아니라, 색채는 객관적인 자연의 색채가 아닌 주관적인 색채이며, 소재는 이제까지 한 번도 주제가 될 수 없었던 기이하고 의미 없는 것들 이라는 점이다. 하찮은 사물이나 사소한 일상들이 회화의 소재로 등장한 것은 이미 사실주의 회화에서 선취한 것이지만, 주관적인 색채의 편린들과 애매모호한 형태, 원근법이 점차 사라진 것은 가장 새롭고 결정적인 것이다.


인상주의는 자본주의와 기술문명의 발달로 빠르게 변해가는 세계와 전체적이고 통일적인 역사주의적 시간에 반하는, 부분적이고 파편화된 반역사주의적 시간성에 대한 표상이다. ‘지금’과 ‘여기’라는 시공간적 의미가 새롭게 조성되면서 화가들은 과연 진실로 실재하는 것은 무엇이고, 그것을 회회가 어떻게 실현해야 하는가를 두고 고민했다. 또한 사진이 발명된 이후, 더 이상 회화는 사실적인 재현에 매달릴 필요성을 상실했다. 결국 광학과 색채, 그리고 그동안의 시지각에 대한 축적된 연구는 쿠르베와는 다른 결론을 내리게 한다. 빛이 실재하는 것이며 사물은 빛을 통해서 드러난다. 더 이상 사물의 선험적인 형태와 색채를 관념적으로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화가들은 경험적인 현실로부터, 외부로 나가서 그들의 시선이 머무는 풍경에서 매 순간 새로운 감각적 국면을 발견한다.


모네는 사물 고유의 색채로부터 점차 대기와 안개, 습도에 따라 변하는 색채의 톤을 포착해 그렸다. <팔레즈의 안개 속 집>(1885)은 그의 인상주의 풍경화의 전형을 보여준다. 피사로는 코로와 모네의 영향을 받았고 세잔과 고갱의 스승이라고 할 만한 인상주의자들의 대부였다. 그는 신인상주의자들의 점묘법에 관심을 가져 <바쟁쿠르의 농장>(1884)과 같은 점묘주의 작품을 남겼으나 지속적이지는 않았다. 한편으로, 마네는 인상주의 작가전에 한 번도 출품하지 않았지만 인상주의의 선구자로 빼놓을 수 없다. 마네의 작품은 윤곽을 강조하거나 상세하게 묘사한다는 점에서 인상주의의 특성과 다소 분리되는 듯이 보인다. <아스파라거스 다발>(1880)은 무심히 놓여 있는 아스파라거스 다발을 그린 것으로, 아스파라거스의 청보라색 꼭지들의 미묘한 색채는 인상주의적이다. 그리고 화면 내부의 빛은 그 방향을 정확히 가늠할 수 없고 미약한데, 이것은 마네의 다른 작품과 동일한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 마네는 작품 내부의 빛을 말살함으로써 대상의 공간적인 부피감을 제거하여 화면을 평면으로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원근법이 화면에서 사라지게 된다. 이 작품을 그러한 맥락에서 보면, 아스파라거스 다발은 하얀 평면처럼 보이고, 단지 그 자체의 색채로서만 탁월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색채, 빛과 어둠의 향연

에두아르 마네 '아스파라거스 다발', 1880

인상주의를 넘어

프랑스 남부 지중해 연안의 엑상프로방스는 세잔의 고향이자 그가 말년을 보낸 곳이다. 풍요로운 숲과 함께 빨간 지붕과 석조로 지어진 집들은 이 지방의 독특한 풍경이다. <엑상프로방스의 서쪽 풍경>(1885)은 그러한 지방색을 잘 드러낸다. 드문드문 서 있는 집들은 입체적이며 그 입체감으로 원근을 가늠할 수 있을 뿐, 숲과 하늘은 마치 이미지를 쌓아 올린 듯이 견고하고 평면적이다. 세잔은 인상주의를 일부 수용하면서 후기인상주의 화풍을 개척했다. 인상주의자들이 빛과 사물을 가변적인 관계로 파악했다면 세잔은 그것의 내적인 본질을 찾고자 했다. 자연에서 불변하는 기하학적인 형태를 발견하여 인상주의의 문제를 극복하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엑상프로방스를 지나 서쪽으로 가다 보면 아를 지역이 나온다. 고흐는 아를에서 일 년 동안 머물렀고,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쓰고 있다.

“강렬한 태양을 보고 싶다. 우리가 그 빛을 경험해보지 못한다면 들라크루아의 그림들을 기술적인 관점에서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해. 북부에서는 다양한 색채들의 프리즘을 안개에 뒤덮인 것처럼 어슴푸레하게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야.”

고흐는 아를에서 북부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강렬한 태양 빛을 느꼈다. 고흐는 인상주의의 밝은 색채를 수용했지만 색채를 단지 빛을 그리기 위한 매개가 아니라 적극적인 의미로 전환했다. 그래서인지 고흐의 작품에서 내면의 감성과 결합한 색채는 더욱 강렬하다. 아를에는 론 강이 흐르고 강을 따라 남쪽으로 가다 보면 운하 위에 세워진 도개교인 ‘레지넬 다리’가 나온다. 고흐는 파란 하늘과 오렌지색 강둑, 노란색 물비늘이 반짝이는 풍경을 연작으로 그리고, 다리 관리인의 이름을 따서 <랑글루아 다리>(1888)라는 제목을 붙였다.

 

후기인상주의와 표현주의는 인상주의의 전통 속에서 탄생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또한 신인상주의도 인상주의의 색채관을 이어 받았고, 더욱 과학적으로 색채를 연구했다. 그리고 중요한 차이점은 색들을 점으로 병치해서 견고한 형태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점묘주의 또는 분할주의는 각각의 색을 섞지 않고 작은 필촉으로 상반된 색을 동시에 찍어 혼합색으로 보이게 하는 기법이다. 사실상 들라크루아, 모네, 피사로가 이미 분할주의 기법을 사용했으나, 자신의 엄밀한 회화적 원리로 삼은 것은 쇠라였다. 그리고 그것은 시냑에 의해서 더욱 확산되었다. 시냑의 <콩가르노의 항구>(1933)는 수많은 색 점들의 구성과 조화의 엄밀성을 추구하면서 인상주의의 직접적인 인상을 반영한 자유롭고 시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색채, 빛과 어둠의 향연

폴 시냑 '콩카르노의 항구', 1933

비非유사적인 색채

인상주의와 표현주의 이후 다양하고 새로운 예술 형식이 지속적으로 모색되었다. 상징주의와 야수파, 나비파는 색채에 관하여 새로운 단계로 진입한 예다. 상징주의의 선구자인 고갱은 피사로의 지도를 받으면서 그림을 시작했고, 초기에는 센 강이나 루앙의 풍경을 인상주의적으로 그렸다. 고갱이 파리를 떠나 브르타뉴에서 자신의 독창적인 예술 형식을 창조했을 때, 그것은 대상의 인상을 종합해서 그린다는 이유로 ‘종합주의’라고도 불린다. 고갱의 형식은 현실과 유사성이 없는 상징적인 색채와 형태의 단순함, 뚜렷한 굵은 윤곽선, 평면성 등이 특징이다. <브르타뉴 소년의 누드>(1889)는 그러한 상징주의 양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또한 고갱의 상징주의와 일본 목판화로부터 영향을 받아 반인상주의를 표명한 나비파는 자연을 그대로 모사하는 것과 인상주의의 분할주의를 따르지 않고 대상을 단순하고 평면적이며 주관적인 순수한 색채로 묘사했다. 모리스 드니의 <티욜루아의 분홍빛 교회>(1921)가 그러한 예이다. 한편 마티스의 풍경화 <코르시카의 오래된 방앗간>(1898)은 점묘법이 사용된 과도기적인 작품으로, 화면을 강렬한 순수 색 면으로 칠하고 장식적인 구성과 구조로 화면에 펼쳐놓는 야수파적인 작품과는 거리가 있지만, <붉은 스튜디오>(1911)의 벽면에 세워진 여러 캔버스 중 맨 앞에 <코르시카의 오래된 방앗간>이 세워져 있다는 점은 재밌는 발견이다. 오히려 마티스와 더불어 야수파의 중심 작가인 블라맹크의 <샤투의 다리>(1908)는 온통 푸른 색조의 변주가 화면에 흘러넘친다. 파리 근교의 샤투 또한 ‘인상주의자의 섬’으로 유명한 장소이며, 르누아르가 그린 밝고 화사한 사교장인 카페가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색채, 빛과 어둠의 향연

폴 고갱 '브르타뉴 소년의 누드', 1889.

결론적으로, 풍경은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서 친밀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전혀 낯선 세계로 탈바꿈할 수 있다. 그것은 경이와 감동, 공포와 충격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화가의 시선과 색채로 표현된 세계, 천상의 빛과 지상의 어둠, 풍경화 앞에서 우리는 그 시절 그 장소로 여행을 떠날 수 있다.

 

글 이지현 (홍익대학교 강사) 사진 한국i문화사업단 © Wallraf-Richartz-Museum & Fondation Corboud, Cologne, Germany

 

위 글은 월간 「예술의전당과 함께 Beautiful Life!」 2016년 3월호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2016.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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