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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연극 '레드' 붉게 물든 무대
무엇이 보이는가

by예술의전당

캔버스 위로 선명한 레드가 일렁인다. 황홀하리만큼 강렬한 붉은빛은 그 자체로 살아 숨 쉬는 듯하다. 생동하는 이 그림을 완성하고 한 달 뒤, 작가는 붓 대신 면도칼을 손에 쥔다. 1970년 2월, 미국 추상 표현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마크 로스코(1903~1970)는 뉴욕의 작업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피처럼 붉게 물든 <무제>(1970)는 그래서 ‘레드’ 또는 ‘피로 그린 그림’이라 불린다. 마지막 순간 가장 화려하게 타오르는 불꽃처럼, 생명력 넘치는 레드는 역설적이게도 로스코의 유작이 됐다.


6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천재 미술가가 한 편의 연극으로 관객을 찾아온다. 무대를 거대한 캔버스 삼아 로스코와 가상의 인물인 조수 켄의 대화로 풀어가는 팽팽한 대립과 논쟁은 로스코의 고뇌와 그가 추구했던 예술을 풀어내고, 그렇게 선명한 물감이 되어 무대 와 객석을 물들인다. 6월 5일부터 7월 10일까지 자유소극장 무대에 오르는 연극 <레드>다.

연극 '레드' 붉게 물든 무대 무엇이

그는 왜 그랬을까? 질문을 던지다

<레드>는 마크 로스코의 일생 중 1958년에 일어난 한 일화를 모티브로 만든 작품이다. 당시 마크 로스코는 미국 뉴욕 씨그램 빌딩의 포시즌 레스토랑에 걸릴 벽화를 의뢰받아 40여 점의 연작을 완성했지만, 돌연 계약을 파기한다. 왜 그랬을까? 작가인 존 로건은 로스 코가 실제 했던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여정을 시작한다. 로스코와 가상의 인물인 조수 켄. 단 두 사람의 대화로 끌어가는 촘촘하고 밀도 높은 드라마는 2009년 런던 초연에서 호평을 받은 뒤 이듬해 미국 브로드웨이로 진출했고, 제64회 토니  어워즈 최우수 작품상을 비롯해 주요 여섯 개 부문을 휩쓸며 최다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대립과 충돌

100분의 러닝타임을 지배하는 것은 대립과 충돌이다. 2인극인 이 작품에서 로스코와 켄은 쉴 틈 없이 대화를 나눈다. 아니 ‘논쟁을 벌인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미술과 음악, 문학, 철학을 넘나드는 다양한 주제를 두고 벌어지는 두 사람의 날선 대립은 이전 세대와 신세대, 생명과 죽음, 레드와 블랙의 구도로 확장된다. 로스코를 상징하며 실제 그가 천착했던 레드가 생명을 의미한다면 그 대척점엔 블랙이 있다. “내가 두려운 건 언젠가 블랙이 레드를 삼켜버릴 거라는 거야.” 로스코의 말처럼 블랙은 레드를 덮쳐올 죽음이다. 실제로 당시 막 부상하던 앤디 워홀과 팝아트는 로스코와 그의 추상  표현주의에는 ‘아버지 세대를 밀어낼 아들 세대’ 같은 존재였다. 한때 로스코와 그의 친구들이 피카소와 마티스의 큐비즘을 ‘몰아내고’ 표현주의의 새 시대를 열었던 것처럼. “자식은 아버지를 몰아내야 해. 존경하지만 살해해야 하는 거야….” 로스코가 켄을 향해 퍼붓는 독설은  어쩌면 ‘자신(레드)을 집어삼킬 블랙’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두 사람이 쏟아내는 대사가 다소 어렵게 느껴지지만, 그 내용이 중요한 게 아니다. 두 사람의 대화는 로스코라는 한 인간이 변화하는 세대,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느낀 고뇌와 공포를 드러내는 장치다.

연극 '레드' 붉게 물든 무대 무엇이

소통과 순환

극이 전개되며 흥미로운 변화가 생긴다. 극 초반엔 로스코가 속사포 같은 질문과 질타를 쏟아내며 켄을 압도한다. 그저 물감을 짜고 캔버스를 만들며 단순히 그를 보조하던 켄은 그러나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자기 목소리를 키우고, 어느 순간 로스코와 대등한 위치에서 충돌한다. 도도한 자의식에 사로잡혀 새로움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로스코와 이 편협함을 지적하며 변화를 주장하는 켄. 치열한 대립과 충돌 끝엔 생명과 죽음, 생성과 소멸 어느 하나의 승리가 아닌 화합과 순환이 자리하고 있다. 옛것이 자리를 내어줌으로써 새것이 탄생하고, 그 새것이 다시 옛것이 되길 반복해온 인간의 삶처럼.


극 말미에 로스코는 켄을 해고하며 말한다. “네 인생은 저 밖에 있어. 새로운 것을 만들어.” 애초 자연광조차 용납하지 않던 로스코의 작업실에 문을 열고 들어온 켄은 세대의 만남이자 소통의 시작을 의미했는지도 모른다. 두 사람이 경쟁하듯 캔버스를 레드로 밑칠한 뒤 거친 숨을 몰아쉬는 장면은 그래서 쉽게 잊히지 않는다. 하나의 캔버스를 채워가던 두 개의 붓과 두 남자의 열정적인 뒷모습은 생명력 넘치는, 이 작품을 관통하는 레드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붉게 칠한 캔버스를 가리키며 로스코가 묻는다. “뭐가 보이나?” 켄은 말한다. “레드요.” 극 초반 나온 두 사람의 문답은 마지막에 또 한 번 등장한다. 각자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대사는 변한 게 없지만, 관객에겐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 느낌이야말로 연극 <레드>가 전하려는 메시지가 아닐까. 완성된 그림과 이를 바라보는 로스코의 뒷모습은 관객 에게도 묻는 듯하다. 무엇이 보이느냐고.

로스코의 그림 같은 연극

“나는 추상주의에 속하는 화가가 아니다.” 로스코는 생전에 ‘추상화가’라고 불리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의 관심사는 색채나 형태가 아닌, 인간의 근본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데 있었다. 그래서일까.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색면으로 보이는 로스코의 작품 앞에서 많은 사람이 기쁨과 슬픔, 분노와 아픔을 발견한다. 지나가던 이들의 발길을 멈춰 세우고 서서히 시선을 빨아들이는 로스코의 그림. 연극 <레드>가 딱 그러하다.


글 송주희 (서울경제신문 문화부 공연 담당 기자) 사진 신시컴퍼니

 

위 글은 월간 「예술의전당과 함께 Beautiful Life!」 2016년 6월호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