를 말하다

[컬처]by 예술의전당

2001년에 <위성신은 거북이를 좋아한다>라는 제목으로 위성신 연극제를 올렸다. 다섯 개의 작품을 올렸고, 많이도 망했다. 그리고 결혼하면서 아내에게 망하는 작업은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서 1년 동안 부지런히 일하고 빚을 갚았다. 그런데 2003년에 다시 한번 사고를 쳤다. ‘위성신의 러브 페스티벌’이라는 기획전을 열면서 네 번째로 올린 신작이 <늙은 부부이야기>의 첫 번째 작업이었다.

우리가 이야기해야 하는 노인의 사랑

위성신 (Wi Seongsin)

<늙은 부부이야기>는 1998년부터 쓰기 시작한 작품이다. 매듭을 못 지은 채 절반 정도를 써 놓고 방치했던 작품을 2003년에 친구 오영민과 공동 작업으로 드디어 무대에 올리게 됐다. 초연 때 그가 쓴 ‘작가의 글’을 보면 당시 우리의 고민을 엿볼 수 있다.

 

2002년 겨울, 어느 일요일 저녁에 오영민은 <늙은 부부이야기> 구성안을 가져왔다. 영화 <죽어도 좋아>가 화제를 불러일으키던 때였다. “영화 <죽어도 좋아>가 먼저 나오지 않았다면 <늙은 부부이야기>가 화제가 됐을 텐데”라고 말하며, 그 자리에서 그의 구성안을 읽어 내려갔다. 처음 읽고 난 느낌은 ‘시리면서도 풋풋한 늙은 부부의 사랑 이야기가 어떻게 전달이 될까’라는 의문점이 들면서도 ‘이 이야기라면 많은 의미를 가질 수 있겠구나’ 하는 것이었다. 이후 자료조사를 하고 노인들과 전화 인터뷰를 하면서 우리 시대의 노인들도 세월 따라 변해 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 시대의 노인들이 겪고 있는 딜레마 또한 세월이 만들어 낸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인들도 사랑을 하고 섹스를 한다. 사별 또는 이혼 후에 재혼을 하는 노인이나 연애를 하는 노인들은 대부분 “성적 욕구와 애정의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서”라고 이야기했다. 어쩌면 성적 욕구나 본능은 사람이 살아가는 생명력이나 활기와도 같을 것이다. 문제는 노인들이 변한 만큼 우리의 젊은 세대들, 즉 그들의 자녀들은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노인들도 사랑을 원한다. 늙어도 연애를 하고, 섹스도 하고, 결혼도 꿈꾼다. 그러나 자녀들은 그런 노인들의 삶을 부정하려 한다. 많은 노인들이 재혼을 하고 싶어 하지만 자녀들 때문에 재혼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늙은 부부이야기>의 모토가 되기도 했다. 노인들의 사랑과 성 은 이제 물레방앗간 스캔들처럼 숨어서 하는 사랑이 돼서는 안 된다. 별빛이 아름다운 어느 봄날 밤, 평상이나 돗자리를 깔아 놓고 하늘의 송송한 별들을 바라보며 알콩달콩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풀어놓는 그런 늙은 부부를 말하고 싶었다. 어느 비 오는 여름밤, 나란히 모기장 아래에 누워 후드득 후드득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자장가를 불러 주는, 나이 들수록 깊어지는 배려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가을날 낙엽 지는 어느 햇볕 따가운 날, 홀로 있으매 가슴 아파하고 그래서 같이 있음을 감사할 줄 아는 삶의 이야기, 겨울날 혼자 남아야 하는 고독을 견딜 수 있는 힘을 지닌 그런 늙은 부부의 건강한 사랑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늙은 부부이야기>의 작품 의도는 노인들의 사랑을 다루는 것이다. 더불어 연출로서 부모님들의 사랑과 성이라는 터부에 대한 도전 의식도 있었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천대’받는 세대에 대한 공감대를 만들고 싶었다.

늙은 부부와 함께한 여러 배우들

(좌) 박동만 役 / 정한용. (우) 이점순 役 / 이화영

2003년 <늙은 부부이야기>가 초연을 하고, 그해 서울공연예술제에서 손종학 배우가 남자 연기상을 받았다. 연말에는 ‘올해의 한국연극 BEST 7’에 뽑히며, 장기 공연을 위한 공동 제작을 시작했다. 손종학과 김담희, 선배인 두 배우의 힘으로 ‘동두천 신사 박동만’과 ‘욕쟁이 이점순’이라는 늙은 부부가 만들어졌다. 2004년에는 국립극단의 엉뚱하고 코믹하신 오영수 선생님과 정확하고 깔끔하신 이혜경 선생님이 새롭게 참여해 다른 늙은 부부가 탄생했다. <늙은 부부이야기>는 배우들의 색깔에 따라 공연이 참 다르게 보이는 작품이다.

 

2005년에 또 다른 늙은 부부들이 새로이 만들어졌다. 진지하고 정확하신 이순재 선생님과 귀엽고 긍정적이신 성병숙 선생님의 <늙은 부부이야기>와 능글맞고 재미있으신 이호성 선생님과 항상 조용하고 소녀 같으신 예수정 선생님의 <늙은 부부이야기>는 연륜 있는 선생님, 선배들과의 작업으로 ‘긴장’과 ‘편안’의 연속이었다. 질감이 다른 이야기를 통해 한 수 배우는 작업이기도 했다.

 

2006년에는 이순재·성병숙·이호성 선생님과 더불어 모든 이들에게 웃음을 자아내시는 양택조 선생님과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아이 같은 천진함을 지니신 사미자 선생님이 합류해 두 분의 오랜 친분만큼 편안한 늙은 부부가 탄생했다. 2007년 이후에도 오랫동안 정종준·윤여성·이호성·사미자·성병숙 등 많은 선생님이 작품에 참여하셨고, 2005년부터 10년 동안 전국문예회관 우수공연 프로그램에 선정돼 전국의 150여 개 공연장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2012년에는 <노래하는 늙은 부부이야기>라는 음악극 형식으로 변화를 모색하기도 했으며, 당시 정종준·사미자 선생님과 최주봉·우상민 선생님이 배우로 참여하셨다. 2014년까지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서울과 지방 공연에 참여하고 마지막까지 함께한 배우는 정종준·사미자 커플이었다. 10년 이상을 줄기차게 달려 공연한 <늙은 부부이야기> 공연은 그렇게 잠시 쉼을 맞이했다.

가을이 기다려지는 이유

(좌) 이점순 役 / 차유경. (우) 박동만 役 / 김명곤

<늙은 부부이야기>를 시작으로 본의 아니게 여러 실버 콘텐츠 공연을 연출하게 됐다. 점점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실버세대의 삶과 문화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필요해지고 있다. 이 때문일까. 현재 연극 <늙은 부부이야기>는 전국 곳곳에서 각 지역 배우들이 공연하고 있다. 전라도 부부 버전도 있고 경상도 부부 버전도 있다. 올해는 제주도에서 실제 부부인 배우들이 공연을 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작품의 진정성과 이야기가 관객과 소통하기를 희망해 본다.

 

올해 들어 생각지도 못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선배는 “<늙은 부부이야기>를 다시 기획·제작하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오랫동안 잊었던 옛 애인의 전화만큼 설레는 제안이었다. 그리하여 지금 김명곤·차유경 선생님의 늙은 부부와 정한용·이화영 선생님의 늙은 부부를 만나게 됐다. 또다시 새로운 늙은 부부를 만날 기회가 생긴 것이다. 9월이 기다려진다. 풋풋한 사랑과 함께 누구보다 설레는 가을을 맞이할 듯하다.

 

글 위성신 연출가

 

위 글은 월간 「예술의전당과 함께 Beautiful Life!」 2019년 9월호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2019.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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