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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모전여전,
춤으로 정을 나누다

by예술의전당

아티스트가 직접 소개하는 ‘내 인생의 공연’

이번 연재는 무대에 서는 아티스트가 직접 소개하는 ‘내 인생의 공연’을 다룹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공연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요즘, 무대에 오르지 못하는 아티스트들의 목소리를 관객분들께 색다른 방식으로 전달하고자 기획했습니다. 예술가들의 인생에서 크게 힘이 되었던 공연이나 지금의 ‘나’를 있게 만들어준 공연을 소개함으로써 위기 극복에 대한 희망이 여러분께 전해지길 바랍니다.


이번 호에서는 한국무용가 박지선이 ‘한국춤’이라는 같은 길을 걷는 두 모녀가 함께 공연한 <모전여전>을 돌아보았습니다.

인간이 첫 말문을 트며 내는 소리, 국적을 넘어 통하는 말,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존재,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하며 그 깊이를 혜량할 수 없는 그 이름은 바로 ‘엄마’다. 세상의 빛을 본 이들에게는 누구나 엄마라는 존재가 주어진다. 모두가 갖고 있다는 점에서는 지극히 보편적이지만, 그 관계는 특별하다. 한 몸에서 둘로 나뉜 것처럼 주객(主客)과 소유를 초월하나 끊어진 탯줄이 무색하리만치 오묘하게 연결되어 있다. 엄마와 자식의 관계는 인류의 역사를 이어가는 원천일 것이다.

한국무용가 박지선은 <모전여전>에서 어머니께 배운 ‘황무봉류 산조춤’을 처음으로 무대에 올렸다.

녹음이 짙어지는 6월의 어느 날이었다. 전통이 살아 숨 쉬는 남산골한옥마을 서울남산국악당에서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엄마와 딸들의 합동 무대가 막을 올렸다. 한 여자의 몸을 관통해 나온 작은 아이는 어릴 때부터 제 어미를 동경해왔고, 어느덧 커서 둘도 없는 춤 인생의 동반자가 되었다. 춤이란 길을 걸어온 지 60여 년, 딸이 어미의 길을 좇은 30여 년이 더해지는 역사적인 무대의 서막이었다.


이날 무대에 오른 두 모녀의 인연은 꽤나 깊다. 임현선과 김은희는 한국춤의 격동기에 우리의 전통춤을 이어왔고, 한국창작춤의 태동기에도 함께 왕성하게 활동했다. 그들의 딸인 박지선과 노한나는 대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동고동락하는 사이다. 춤 활동뿐 아니라 한국춤의 근원인 동양철학의 지혜를 탐하는 성향 또한 비슷한 귀한 도반(道伴)이다.


60여 년 춤길을 함께 걸어온 임현선과 김은희, 그리고 이들의 딸인 박지선과 노한나, 이 두 모녀는 춤으로 통했다. 춤으로 마음이 동해 함께 춤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보자고 무대를 꾸민 것이 이날의 공연 <모전여전>이다. 한국춤의 대를 잇는 <모전여전>은 각자의 독무와 모녀지간인 임현선과 박지선, 김은희와 노한나의 듀엣으로 총 여섯 작품을 선보였다. 임현선의 <춘앵전>은 ‘절제’, 김은희의 <전통굿거리춤>은 ‘기품’, 임현선·박지선의 <태평무>는 ‘태평’, 노한나의 <소고춤>은 ‘흥’, 박지선의 <산조춤>은 ‘조화’, 김은희·노한나의 <승무>는 ‘초탈’의 미를 무대에 그려냈다.


한국인으로서 한국춤을 춘다는 것은 나의 뿌리를 더욱 굳건히 하는 작업이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면서도 내가 태어나기 이전부터의 세계를 춤으로, 몸으로 겪는다. 그 과정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태 속에서도 중심을 잡아가는 일이다.

임현선과 박지선 모녀는 ‘강선영류 태평무’를 다양한 대칭 구성으로 연출하여 교감의 폭을 확장했다.

<산조춤>은 20세기 최고의 작품으로 꼽히는 신무용이다. 버선발의 고운 내디딤과 꺼질듯 말듯 한 춤가락의 여운으로 우리 춤의 격조와 여인의 자태를 마음껏 드러낸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춤추는 엄마를 보며 “참 곱다”라는 감탄사를 연발했던 작품이다.


‘산조’는 흩어질 ‘산(散)’, 어울릴 ‘조(調)’ 자를 쓴다. ‘흩어지고 어울리다.’ 모순되지만 잘 생각해보면 이보다 더 좋은 말은 없는 것 같다. 흩어져 있지만 함께할 때 어우러지는 것은 결국 우리가 사는 세상을 말해준다. 그래서인지 발을 내딛는 것으로 시작하는 이 춤을 배우며 “네 인생길에 첫발을 내딛는다고 여겨라”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그 뜻을 새기니 춤을 추는 발걸음이 결코 가벼울 수 없었다.

엄마 임현선이 딸 박지선을 바라보는 눈빛에 따뜻함이 담겨있다.

스승에게 춤을 익힐 때는 예의와 규율을 같이 배웠다. 그런 춤을 어미가 딸에게 전할 때는 법도를 뛰어넘는 끈끈한 핏줄에 사제간의 가르침이 뒤엉켜 미묘한 감정이 발생한다. 때론 엄마로, 때론 스승으로 춤을 벗 삼는 모녀의 교류는 애정과 애증 사이 어딘가를 표류하기도 한다. 이러나저러나 결국 속 깊은 ‘사랑’이지만 말이다.


<태평무>는 엄마에게 처음 배운 작품이다. 대학에 진학하기 전 무대 경험을 쌓기 위한 콩쿠르 준비였으니 벌써 20년 전의 일이다. 스승이었으면 어림도 없지만, 엄마와의 레슨은 전쟁이었다. 그때는 어린 마음에 엄마의 가르침을 수긍하기보다는 따져 물었던 기억이 난다. 서로 마음 상하고 화해하기를 반복했던 그 시절의 추억은 지금도 가끔 도마 위에 오른다.


국가무형문화제 제92호로 지정된 <태평무>는 20세기 초반 한성준이 창작한 춤으로 왕실의 번영과 나라의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내용을 담은 춤이다. 이 춤은 기교가 많기로 유명하다. 왕 또는 왕비의 근엄한 모습으로 시작하지만, 장단이 빨라질수록 춤사위가 현란해진다. 휘몰아치는 장단에 빠르게 돌아가는 발짓과 섬세하며 화려한 손놀림은 이 춤의 가장 큰 특징이다. 다채로운 장단에 맞는 춤사위를 가르치기도, 배우기도 어려운 춤이다.


엄마 밑에서 20년간 공부한 <태평무>는 엄마와 가장 오랜 추억이 쌓인 만큼 경험치도 높아졌다. 지금도 배우는 중이지만, 그래도 점점 춤의 호흡과 결이 그럴싸하게 맞아떨어져간다. 해가 거듭될수록 내게 엄마의 모습이 투영되겠지. 나의 몸짓에서 젊은 날의 엄마를 마주한다. 손끝, 발끝, 눈썹 움직임까지 빼닮은 딸은 그 어미의 젊은 날의 초상이자 사랑하는 분신일 것이다.

두 모녀는 당일 사회를 맡아주신 양종승(전통춤협회 부이사장·샤머니즘박물관장)과 기념사진을 남겼다.

한없이 커 보였던 나의 우상이자 멘토인 엄마. 이제 작은 소녀는 훌쩍 커버려 엄마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오로지 춤이 좋아 외로이 춤길을 걸어온 엄마는 이제 딸과 동행 중이다. 외롭고 힘든 길이지만 춤추는 순간의 행복을 뼛속 깊이 알아서일까. 자식이 뒤따르겠다는 그 길을 먼저 걸어본 선배로서 인도해주고 싶은 마음에서일까. 앞날이 걱정될 때 엄마도 그 길에 서 있었다는 것, 피가 섞인 동료와 그 길을 공유한다는 것은 엄마나 딸에게 큰 위안과 용기가 되는 것 같다. 눈빛을 마주하고 호흡을 같이하며 그렇게 우리는 동화되어간다.

‘춘앵무’를 연습하는 임현선과 그 옆에서 함께 춤추는 손녀(박지선의 큰딸)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다.

세기의 사상가 공자는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라고 했다. 또한 “예술에서 완성한다”, “예술에서 노닌다”라며 생의 완성 단계로서의 예술을 논했다. 제대로 된 예술은 사람을 바르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힘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춤으로 몸을 바르게 한다. 춤으로 마음을 가다듬는다. 나의 작은 몸에 엄마를, 스승을 담으며 우리 선조들의 예술혼을 느껴본다. 언젠가 나의 딸들 중 하나도 엄마를 동경해 그 길을 걷겠다고 한다면, 척박하지만 아름다운 삶을 배워나가는 춤길을 응원해주겠노라 생각해본다. 우리 엄마처럼.

박지선 한국무용가

선화예술고등학교를 거쳐 성균관대학교에서 학사·석사·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유가예술문화콘텐츠 선임연구원으로서 성균관의 석전대제에 올리는 춤, <문묘일무>에 관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또한 서울시 지정 전문무용단 ‘임학선댄스위’ 단원으로 활동하며 한국춤의 깊이와 폭을 넓혀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