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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프랑스 근대 오페라의
가장 빛나는 기념비

by예술의전당

국립오페라단 <마농>

6.25(목), 6.28(일) │온라인 생중계

오페라 <마농>. ⓒ국립오페라단

쥘 마스네의 <마농>은 19세기 프랑스가 탄생시킨 가장 기념비적인 명작이다. 무릇 프랑스 오페라는 감각적인 세련미로 유명하다. 아름다운 목소리에 집중하는 이탈리아 오페라나 강력하고 논리적인 관현악 전개가 중시되는 독일식 음악극과는 달리, 프랑스의 오페라는 언어 자체의 정묘한 울림을 중시한다. 감미롭게 울려 퍼지는 낭송조의 대사가 있고, 오케스트라 음악 또한 극의 전개와 장면을 장악하여 해설하기보다는 인물이 처한 정황과 섬세한 내면 심리를 목탄화처럼 조심스레 묘사한다. 아름다운 아리아들이 나오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탈리아처럼 귀에 착 달라붙어 수많은 사람이 흥얼거릴 정도는 또 아니다. 순간순간 황홀한 선율이 끝도 없이 쏟아지지만, 그것들은 우리의 귀와 마음을 스치고는 삽시간에 휘발해 어디론가 사라져버린다. 이 미묘한 거리감과 덧없는 화려함이야말로 프랑스 오페라가 지닌 매혹의 핵심이라 할 것이다. <마농> 또한 근대 프랑스 오페라의 이 같은 매력과 장점을 모두 지니고 있는 최고의 작품이다.

사랑과 쾌락을 쫓던 한 인간의 비극적인 초상

화려한 컬러와 실루엣이 돋보이는 무대의상과 미니멀한 무대가 즐거움을 더한다. ⓒ국립오페라단

프랑스 어느 시골의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난 주인공 마농은 아주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는 소녀였으나 향락과 사치, 소유욕이 심해 가족의 걱정거리였다. 그런 딸을 두고 볼 순 없었던 부모는 결국 마농을 속세의 유혹이 없는 수녀원으로 보내기로 한다. 그런데 사촌오빠 레스코의 손에 이끌려 수녀원으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마농은 귀족 출신의 대학생 데 그리외와 운명적으로 만나게 되고, 두 연인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파리로 사랑의 도피를 떠난다.

마농의 열정적인 삶과 변화무쌍한 심리가 작곡가 마스네의 화려하고 관능적인 음악과 조화를 이룬다. ⓒ국립오페라단

오페라 속의 마농은 빛나는 미모를 지녔다. 세상의 모든 쾌락에 눈을 돌린 나머지, 금전에 대한 욕망과 뜨거운 사랑에 대한 갈망 두 가지 모두를 충족시키려 한다. 그는 이들 모두를 원했고, 어느 하나도 포기하지 못한다. ‘만족을 모르는 끝없는 갈증과 갈구’. 이 치명적인 성격적 결함이 그를 서서히 파멸의 늪으로 인도한다. 그의 남자친구인 데 그리외는 아직 학생 신분으로 패기 넘치는 젊음이 있지만, 마농의 허영심을 뒷받침해줄 경제력은 없었다. 사랑의 열병 속에서도 금전 없는 궁핍한 생활을 견디다 못한 마농은 데 그리외를 매정하게 버리고는 고관대작의 애첩으로 변신해 온 파리 시내를 휘저으며 매일 밤 환락의 파티와 엄청난 과소비를 즐긴다. 마농의 배신에 큰 충격을 받은 데 그리외는 파리 생쉴피스대성당의 사제가 되어 세상을 등진다.


여기까지는 동서고금의 수많은 이야기와 드라마에서 숱하게 다뤄졌던 ‘믿음과 배신의 신파적 로맨스’처럼 보인다. 그러나 프랑스 낭만주의 문학으로의 새로운 길을 개척한 것으로 평가받는 『기사 데 그리외와 마농 레스코의 이야기』의 결말은 이렇게 끝나지 않는다. 선을 넘으면 안 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면서도, 기어이 금단의 불구덩이로 들어가 스스로를 불태워 파멸해버리는 불완전한 인간의 실존적 비극, 그것이 <마농>의 이야기다. 그리고 이 오페라 최고의 명장면이자, 프랑스 오페라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음악으로 손꼽히는 제3막 2장 ‘생쉴피스성당의 2중창’이 펼쳐진다. 마농이 다시금 데 그리외를 찾아가 그를 유혹하는 것이다.

마농이 사제가 된 데 그리외를 찾아가 유혹하는 장면. ⓒ국립오페라단

마농:

아, 새장에 갇힌 이 새는 밤마다 처절히 날갯짓하며 쇠창살을 부수려 한답니다.

날 용서해줘요, 데 그리외! 차라리 당신의 발치에서 죽겠어요.

다시 날 사랑해줘요, 아니면 차라리 여기서 죽어버리겠어요.


데 그리외:

아니, 내 사랑은 모두 죽어버렸어. 나를 떠나!


마농:

지금 당신을 쓰다듬는 이 손은 더 이상 제 손이 아닌가요?

당신께 들리는 이 목소리는 더 이상 제 목소리가 아닌가요?

이 부드러운 손길이 더 이상 당신에겐 행복으로 느껴지지 않는단 말인가요?

마농의 거듭된 유혹에, 뻔뻔할 정도로 솔직한 태도에 데 그리외는 다시금 무너져 내린다. 대성당의 한편을 장식하고 있던 들라크루아의 장엄한 제단화 <악마를 무찌르는 대천사 미카엘>도, 신을 향한 그간의 간절한 기도도 마농의 유혹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자신의 경험담을 반자전적 형태의 소설로 써내려간 원작자 아베 프레보는 이 대목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그 여자의 그렇게도 곱고, 그렇게도 사랑스럽고, 그렇게도 매혹적인 자태 앞에서 힘을 잃고, 데 그리외는 그녀와 함께 속세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오페라의 피날레에 해당하는 5막에서 마농은 몸을 파는 여인이라는 죄목을 뒤집어쓰고 투옥되어 미국으로 추방될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데 그리외가 간신히 그녀를 찾아내고, 두 사람의 절절한 2중창이 오페라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마농은 회한에 젖지만 그렇다고 지나온 인생을 반성하거나 종교적 윤리관에 귀의하지는 않는다. 단지, 그래도 빛났던 지난 세월을 반추하며 그리워할 뿐이다. 철없는, 그러나 너무도 인간적인 그녀의 모놀로그가 어느덧 관객의 눈시울을 붉게 물들인다.

마농:

지나간 날들을 다시 한번 이야기해요.

여관, 마차, 가로수길, 당신의 편지, 우리의 작은 테이블,

생쉴피스에서 당신이 입었던 검은 신부복,

아, 어찌 이리도 생생한 기억인지요!

섬세하고 감각적인 프랑스 오페라의 정수, <마농>

이번 <마농>은 마농 역의 소프라노 손지혜, 데 그리외 역의 테너 국윤종을 비롯해 세계 정상급 성악가들의 열연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국립오페라단

이번 공연의 연출가 뱅상 부사르는 섬세한 스타일의 무대를 통해 관객과의 공감대를 폭넓게 형성하는 연출로 유명하다. 그는 독일 함부르크 국립오페라에서의 <나비부인>으로 센세이셔널한 명성을 얻었는데, 거대한 서사로 점철된 스펙터클한 작품보다는 운명과 환경에 부딪히며 서서히 추락해가는 나약한 주인공의 비극적 내면세계를 그리는 데 보다 탁월한 모습을 보여왔다. 그의 <마농>은 다섯 막을 넘나들며 계속해서 변모해가는 주인공의 다양하고도 복잡한 심리적 추이를 시적인 공백과 미니멀한 감각으로 세련되게 표현해 격찬을 받았다. 2년 만에 리바이벌되는 이번 무대를 다시금 지켜봐야 할 중요한 이유다.

노래하는 마농과 데 그리외. 작곡가 쥘 마스네의 음악이 관객을 몰입시킨다. ⓒ국립오페라단

쥘 마스네는 가장 프랑스적인 오페라를 쓴 작곡가였다. <마농>, <베르테르>, <타이스> 등의 대표작을 발표하면서 전 세계에 프랑스 오페라가 지닌 독특한 매력을 널리 알렸다. 세련되고 화려한 스타일, 프랑스어의 섬세한 뉘앙스 위에 실린 감각적인 관현악법 등이 그의 특징이다. 특히나 <마농>은 자기 파괴의 비극을 섬세한 음악적 필치로 그려낸 일대 명작으로, 스스로를 비극의 늪에 빠뜨리는 남녀 주인공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두 사람 모두 그들의 선택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대답은 ‘어쩔 수 없다’다. 돌이킬 수도 없고, 되돌아갈 마음도 없는 그들. 세 시간이 넘어가는 긴 공연 시간 동안 관객들은 눈과 귀를 휘감는 황홀하고도 신비로운 프랑스 음악의 매력에 흠뻑 젖었다가도, 몰락으로 점철된 두 주인공의 인생사를 지켜보며 애잔한 안타까움을 느낀다. 음악이 주는 감각적인 황홀함과 드라마가 자아내는 가슴 시린 비극적 연민 사이의 격렬한 대비가 아마도 <마농>을 영원불멸의 오페라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19세기 근대 프랑스 오페라의 놀라운 매혹을 모두 지니고 있는 이 위대한 명작은 코로나19로 인해 무관중 공연으로 전환되어 6월 25일, 28일 두 번 네이버TV로 생중계될 예정이다. 오페라 <마농>의 감동만큼은 온라인 공연으로도 고스란히 전해지리라 확신한다.

국립오페라단 <마농>


기간 : 2020.06.25(목) 7:30PM, 06.28(일) 3PM 네이버TV, VLive 생중계
관람등급 : 8세 이상 관람
관람시간 : 180분
장르 : 오페라
주최 : 국립오페라단
주관 : 국립오페라단
문의 : 1588-2514
후원/협찬 : 셀트리온, KB금융그룹, 유유제약, KBS, 아시아나항공

사진 국립오페라단

글 황지원 오페라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