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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새로운 장르의 개척,
스테이지 무비 '늙은 부부이야기'

by예술의전당

공연 무대를 영상으로 만나다

스테이지 무비 <늙은 부부이야기> 공연 장면(2019).

코로나19가 일상을 변화시키고 있다. 초기만 하더라도 한두 달 지나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지만, 이제는 코로나19와 함께하는 새로운 일상을 준비하려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 대면 접촉을 통한 라이브 공연이 기본인 공연계는 특히 그 변화의 폭이 크다. 지금까지 서서히 변화 발전했던 공연계의 흐름은 코로나19라는 문턱에 걸려 급격한 방향 전환이 불가피해졌다. 현대 공연의 대표적인 경향인 이머시브(관객 참여형) 공연은 관객들과 친밀감을 유지하는 형식 때문에 주목받았지만, 코로나19 이후 바로 그 친밀한 형식 때문에 제동이 걸렸다. 비대면으로 운영되는 온라인 공연이 뜨겁게 부각된 것도 공연계가 새로운 일상에 적응하기 위한 과정이다.

싹 온 스크린을 통해 영상으로 제작돼 2020 전주국제영화제에 소개된 <늙은 부부이야기>.

코로나19 이전에도 메트오페라의 Live in HD와 NT 라이브 같은 공연을 영상화한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끌었다. 영상화를 통해 경제적·물리적 거리의 장벽을 낮추고 새로운 환경에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좋은 작품을 경험하게 한 것이다. 2013년 예술의전당의 싹 온 스크린 역시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시작됐다. 클래식 음악, 연극, 뮤지컬 등 우수한 작품의 공연 영상을 접근성이 떨어지거나 문화 향유의 기회가 적은 지역 문예회관이나 해외 문화원, 군부대나 중고등학교에 공급해왔다. 여러 번 촬영해서 완성된 편집본을 상영하기도 하고, 공연 특유의 생생한 현장감을 최대한 살려 라이브로 전송하기도 했다. 싹 온 스크린은 공연 아카이빙을 넘어 문화 향유의 저변 확대라는 공적 역할까지 고려한 공연 영상화 사업이었다. 지금까지의 공연 영상은 고화질 영상과 고음질 음향으로 공연의 매력을 최대한 온전히 전하는 데 있었다. <늙은 부부이야기>는 그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새로운 도전과 실험에 나섰다.

공연과 영상, 그 이상의 새로운 도전

영상으로 옮겨진 연극 <늙은 부부이야기>의 무대.

싹 온 스크린으로 제작된 <늙은 부부이야기>가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한국 독립·예술 영화의 흐름을 조망할 수 있는 ‘코리안시네마’ 부문에 소개되었다. 2019년 10월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의 무관중 공연을 촬영한 버전에 현지 촬영본을 추가해 선보인 것이다. 싹 온 스크린은 이 영화를 ‘스테이지 무비(Stage Movie)’라고 소개했다. 기존 공연 영상과 비교한다면 스테이지보다는 ‘무비’에 방점이 찍힌 명칭이다. 그간의 공연 영상은 객석에서는 볼 수 없는 새로운 뷰를 제공하고 영상미를 담아내려는 시도를 했지만 근본적인 목적은 공연을 온전히 담아내는 데 있었다. 그러나 이번 영화제에 출품한 <늙은 부부이야기>는 그것을 넘어 공연과 영상의 장르를 포괄하는 새로운 장르의 출현을 의도한 도전으로 읽힌다.

영상으로 옮겨진 연극 <늙은 부부이야기>의 무대.

스테이지 무비 <늙은 부부이야기>는 현지 촬영 장면으로 시작한다. 소박한 들꽃과 무심히 되새김질하는 소, 벚꽃잎이 날리는 한적한 시골 마을의 풍경이 펼쳐지는 가운데 꽃분홍색 정장을 차려입은 주인공 박동만이 모범택시를 타고 마을로 들어선다. 골목을 지나 마침내 찾던 집으로 들어서면 장면은 무대 위 이점순의 집으로 공간이 전환된다. 카메라는 무대 위에서 박동만의 동선을 쫓으며 영상으로 보여준 현실 공간과 무대 공간을 연결시킨다. 4분 남짓한 이 오프닝 장면은 스테이지 무비 <늙은 부부이야기>가 어떤 정체성을 추구하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박동만을 따라 무대 위로 올라간 카메라의 시선은 확실히 낯설다. 공연 영상에서 카메라의 역할은 주로 객석에 앉은 관객의 시선이 되어왔다. 그런데 스테이지 무비 <늙은 부부이야기>에서는 극의 초반과 후반에 카메라를 무대 위로 올려 기존의 공연 영상, 특히 라이브 공연의 영상에서는 불가능한, 무대 한가운데에서 배우를 바라보는 시선을 제공했다. 정면보다 측면 숏(Shot)이 많은 것도 이 작품의 특징이다. 정면 숏은 무대 세트를 그대로 노출해 관객으로서의 시선을 느끼게 하는 반면, 측면 숏은 공연 무대라는 인상을 완화시킬 수 있다. 대신 정면에서 바라보는 숏의 안정감은 포기해야 한다. <늙은 부부이야기>는 촬영 방식에서 공연을 온전히 담아내겠다는 의지보다 영상의 매체성을 적극 시도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도전과 투자가 필요한 스테이지 무비

춤추는 장면을 느리게 보여줌으로써 무대와 다른 스테이지 무비의 성격을 표현해냈다.

연극 <늙은 부부이야기>는 수다스럽고 겉치장이 요란하지만 심지가 굳은 박동만과, 거칠고 투박하지만 마음은 여린 욕쟁이 할머니 이점순의 황혼 로맨스 2인극이다. 날라리 할아버지와 욕쟁이 할머니의 로맨스는 젊은이들의 달달한 연애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깊이를 담아낸다. 이 연극은 여백이 많지 않은 작품이다. 박동만과 이점순은 쉴 새 없이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밀고 당긴다. 서로의 의지처가 된 이후에도 말잔치는 멈추지 않는다. 따라서 기존의 공연 영상보다 영상미를 부각시키려는 스테이지 무비로의 전환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단순히 실사 영상을 덧붙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무대 위에서의 시간을 그대로 영상의 시간으로 담아내서는 스테이지 무비의 취지를 살리기 힘들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대사를 영상이 대신할 수 있도록 틈을 열어주어야 한다. 서로의 가족을 챙기는 마음까지 확인한 동만과 점순이 춤을 추는 모습을 느린 화면으로 연출한 장면은 스테이지 무비로서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스테이지 무비에서는 현지 촬영과 새로 작곡한 음악을 더해 노년의 아름다운 로맨스를 전달하고자 노력했다.

<늙은 부부이야기>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려는 노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러한 스테이지 무비가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다음 행보가 더욱 중요하다. <늙은 부부이야기>는 현지 촬영을 추가하고 영상에 어울리는 음악을 새롭게 작곡하는 등 크고 작은 노력을 기울였다. 무관중으로 촬영된 공연 영상은 기존 싹 온 스크린의 작품처럼 지역 문예회관 상영용으로도 활용됐다. 즉 무대 관객의 시점에서 공연을 보여주어야 하는 목적도 어느 정도 염두에 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마음껏 스테이지 무비 형식을 실험하기는 어려웠을 터. 따라서 스테이지 무비가 새로운 장르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온전히 스테이지 무비 제작만을 위한 영상 촬영과 그에 적합한 투자가 향후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늙은 부부이야기>에는 카메라가 관객의 시선이 되어 배우의 움직임을 쫓아가는 팔로(follow) 숏이 많았는데, 장면의 상황이나 의도와 상관없이 배우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장면이 발생해 불안정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스테이지 무비라 명명한 만큼 추후엔 관객의 시선에 연연하지 말고 철저히 계획된 컷 편집으로 영상미를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 그런 맥락에서 더 많은 제작 지원과, 때로는 장면 장면을 끊어 촬영해야 하는 결단도 필요해 보인다. 이미 <늙은 부부이야기>에서도 그런 시도를 하고 있다. 카메라가 무대 위에 올라간 장면은 별도로 촬영해 편집한 것이다.

스테이지 무비에 거는 기대

스테이지 무비 형식을 어디까지 실험할 수 있을까.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도그빌>이 좋은 예시가 될 것이다. <도그빌>은 무대 세트에서 촬영한 영화다. 바닥에 집과 거리의 위치를 지도처럼 그려놓은 무대에서 극이 펼쳐진다. 지극히 연극적인 방식이지만 영화적인 촬영 방식을 적용해 공연 영상이 아닌 독특한 영화로 인정받았다. 스테이지 무비가 기존 공연 영상과 차별화되기 위해서는 영상으로서의 매체성이 강조된 장르로 태어나야 한다. <늙은 부부이야기>는 이러한 형식에 화두를 던졌다. 이 장르가 어떤 형식으로 발전해나갈지는 앞으로의 행보가 중요하다. 더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제2, 제3의 스테이지 무비가 탄생하길 기대해본다.

스테이지 무비 <늙은 부부이야기>는 8월19일, 전국 CGV를 통해 개봉합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글 박병성 월간「더뮤지컬」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