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깊은 곳 음악의 오아시스

[컬처]by 예술의전당

〈로켄하우스 실내악 축제(Das Kammermusikfest Lockenhaus)〉

Just about the Music 오직 음악만을 위해

로켄하우스 궁전. ©Niklas Schnaubelt

비엔나에서 약 100킬로미터 떨어진, 헝가리 국경 가까이에 위치한 작은 마을 로켄하우스. 매년 여름 이곳에서는 <로켄하우스 실내악 축제>가 열린다. <로켄하우스 실내악 축제>는 전설적인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Gidon Kremer)가 1981년 창설한 축제다. 오스트리아에서 코로나19로 인한 록다운 이후 처음으로 개최된 이번 음악 축제는 깊은 우려를 딛고, 많은 이의 관심 속에 열흘 동안 하루에 최소 2회, 많게는 4회의 공연을 선보이며 연주 없이 몇 달을 견뎌온 음악가들과 관객들의 갈증을 시원하게 해소해주었다.


1812년, 올해로 탄생 250주년을 맞은 베토벤을 만난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그를 이렇게 묘사했다. “(그보다) 더 집중력 있고, 힘이 넘치는 진정한 예술가는 본 적이 없다. 그가 이 세상에 어떻게 대항해야 하는지 잘 이해한다(Zusammengeraffter, energischer, inniger habe ich noch keinen Künstler gesehen. Ich begreife recht gut, wie der gegen die welt wunderlich stehen muss).“ 여기에 착안해 나온 올해 <로켄하우스 실내악 축제>의 모토는 ‘진정한(Inniger)’이다. 자본주의, 표면주의 사회와 스마트폰으로 상징될 수 있는 복잡한 현대사회 속에서 인간 자체의 진정성을 나타내는 감정, 사랑, 관심과 음악 자체에 대해 표현하고자 올해 축제의 주제로 선택하였다고 예술감독 니콜라스 알트슈태트(Nicolas Altstaedt)는 말한 바 있다. 물론, 이 주제가 발표된 당시에는 아무도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공연계가 180도 달라질 거라 상상도 못 했지만,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다시 연주를 접하는 연주자와 관객이 초심으로 돌아가 음악만을 위한 진정성을 탐구하는 자세와 잘 들어맞았다.

실내악 축제의 오아시스

예술감독 니콜라스 알트슈태트. ©Niklas Schnaubelt

왜 이렇게 멀고 잘 알려지지 않은 마을에서 음악 축제를 시작했느냐는 질문에 기돈 크레머는 그 당시를 회상했다. 그와 가까웠던 신부 요제프 헤로비치(Joseph Herrowitsch)로부터 로켄하우스 곳곳에서 연주할 수 있는 금전적인 후원과 심정적 지지를 받은 기돈 크레머는 자신의 친구들을 불러들여 음악 축제를 시작한다. 현재 프로그램은 대부분이 축제 시작 전에 공표되지만, 당시에는 계획에 없던 연주가 갑자기 추가되고 변경되는 경우가 허다했고, 혹은 축제가 열리는 동안에 만들어진 곡들이 바로 초연되는 등 축제는 창의적인 모습을 보였는데 이러한 특성을 즐기는 관객들은 해마다 로켄하우스를 방문해 높은 수준의 실내악을 원 없이 즐겼다. 기돈 크레머는 그때만 해도 서유럽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동유럽이나 소비에트연방 출신 작곡가들의 작품을 초연하기도 했다.


현재는 정기적으로 들을 수 있는 러시아 작곡가 소피아 구바이둘리나, 알프레트 시닛케 혹은 아르보 패르트의 작품들은 로켄하우스를 통해 서부 유럽에 알려지게 됐다. 또한, 기돈 크레머는 실력 있는 스타 연주자들을 오스트리아의 작은 마을인 로켄하우스로 데려왔다. 이름만 들어도 놀라운 마르타 아르헤리치, 카티아 부티아티쉬빌리, 안드라스 쉬프 경,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 하겐 콰르텟, 하인츠 홀리거 등이 무대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사이먼 래틀 경, 다니엘 바렌보임, 블라드미르 아슈케나지,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등 전 세계 최고의 지휘자들이 여러 곳에서 모인 연주자로 이루어진 <로켄하우스 실내악 축제> 앙상블의 지휘를 맡아왔다.

기돈 크레머와 친구들의 시닛케 연주. ©Niklas Schnaubelt

로켄하우스에는 매해 정기적으로 축제를 위해 일하는 이도 많고 비하인드 스토리도 넘쳐난다. 벌써 18년 동안 연주장과 리허설장의 모든 피아노의 조율을 맡아온 미헬 에렌바움과 축제 첫해부터 거의 모든 해의 녹음을 맡고 있는 전설적인 톤 마이스터 페터 랑에에게서 듣는 <로켄하우스 실내악 축제> 비하인드 스토리는 감탄을 자아낸다. 예를 들어,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는 매번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실력 있는 젊은 연주자들과 함께 이곳에서 연주를 펼치곤 했는데 차이콥스키국제음악콩쿠르 우승을 차지하며 무서운 실력으로 스타 피아니스트의 반열에 오른 다닐 트리포노프도 그중 한 명이었다. 기돈 크레머와 로켄하우스에 왔을 당시, 유명하지 않은 신예였던 이 신예 피아니스트가 그에게는 아주 큰 연주복을 입고 무대에 올랐을 때, 너무나 대단한 연주에 받았던 충격을 잊을 수 없다고 에렌바움은 회상한다.


<로켄하우스 실내악 축제>의 특징은 유명한 연주자와 지휘자의 공연을 경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연주자와 관객 모두 음악에 대한 깊은 탐구와 연주 자체를 즐기는 데에 있다. 현재까지도 로켄하우스의 연주 프로그램 팸플릿은 연주가 시작되기 직전까지 쓰이고 출력되어 따끈따끈하게 관객에게 전달된다. 이는 연주곡목이나 연주자가 변경되거나, 새로운 곡목이 추가되는 <로켄하우스 실내악 축제>에 유연하게 반응하고자 만들어진 전통이다. 이 덕분에 프로그램 편집부서는 밤낮으로 일이 끊이지 않는다. 예전에는 연주자들이 공연 중에 계속 새로운 연주곡을 추가하는 바람에 저녁 6시 반에 시작된 연주가 밤 12시나 1시까지 연장되는 경우가 허다했다고 한다. 늘어나는 연주 시간에도 관객들은 연주장을 떠나지 않고 연주가 끝난 뒤에는 연주자들과 함께 오스트리아 고급 음식점을 운영하는 크리스티안의 뷔페 요리를 즐기며 음악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연주를 마친 안드라스 쉬프 경. ©Niklas Schnaubelt

더 놀라운 사실은 모든 연주자들이 공연료를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아껴지는 예산은 더 큰 팀을 꾸리고, 더 좋은 음식, 더 나은 리허설 환경을 조성하는 데 사용된다. 음악가들은 자연이 아름답고 조용한 이곳에 머물며 최고 수준의 쾌적한 리허설장에서 하루 내내 연주하고, 다른 이의 연주를 듣는다. 금전적인 이유가 아닌 오직 음악을 위한 2주 동안 연주자들은 자유로운 토론과 소통으로 프로그램을 바꾸기도 하고 새로운 곡을 시도해보기도 한다. 현재 예술감독인 니콜라스 알트슈태트는 음악가를 초대할 때 음악성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면에서 잘 소통이 되는지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평소에는 솔로 연주자로 세계를 누비지만, 이미 서로가 잘 아는 연주자이자 돈독한 친구 사이이므로 1년에 한 번 모여 집중적으로 함께하는 연주는 세계 최고의 수준의 조합을 보여준다. 세계적 바이올린 연주자인 빌데 프랑과 파트리샤 코파친스카야, 베를린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콘서트 마이스터인 다이신 카시모토가 함께한 실내악 앙상블에게서 연주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은 정말 경이롭다.

코로나가 바꾸어놓은 축제 일상

음악 축제 개최 여부를 두고 많은 찬반과 의견이 있었고 음악 축제 운영 방식에 대한 토론 뒤, <로켄하우스 실내악 축제>는 축제 시작 4주 전에야 개최가 공식적으로 발표되었다. 개최가 확정이 되고도 코로나19 확산 방지 및 예방에 대한 많은 의논이 오갔다. 물론, 참가할 음악가들은 벌써 선정돼 있었지만, 짧은 시간 안에 정부 지침에 따른 음악가들의 참가 가능 여부, 관객석 수의 변동으로 인한 연주회 횟수 및 시간 변경, 벌써 연주표를 구입한 관객의 참가 여부 등이 다시 결정되어야 했다.


드디어 축제 개막날, 관객도 음악 축제 관계자도 마스크를 필수로 착용해야 하는 데다가 교회 연주장 관객석의 반이 빈 탓인지 침착하고 긴장된 분위기가 흘렀다. 관객석은 오스트리아 정부 지침에 따라 최소 1미터의 간격을 두고 2인석과 1인석이 섞인 새로운 형태로 짜여졌다. 430여 명의 관객이 함께할 수 있는 교회 연주장은 최대 174명이 앉을 수 있는 형태로 변형되었다. 안전 수칙을 더 효율적으로 관리하고자 올해 모든 연주는 한곳에서 열렸다. 연주회 티켓 판매장에는 플라스틱 벽이 설치되고, 연주장으로 쓰이는 로켄하우스 교회와 사무실, 연습실 입구에는 코로나19 예방 수칙 정보 안내판과 손 위생제가 놓였다.

코로나19 확산 방지와 예방을 위한 다양한 노력들. ©라비아트/김주혜

축제가 시작되기 전 유럽 전역에서 모인 스태프들은 로켄하우스에 도착하기 전 비엔나에서 코로나19 감염 테스트를 받았다. 관객이나 외부인들과 접촉이 있을 팀과 접촉이 거의 없을 팀으로 두 팀이 구성되었고, 최대한 팀 사이에 접촉이 없도록 당부받았다. 그 뒤에 도착한 팀원들의 테스트 키트는 매번 비엔나의 검사실로 보내졌고 결과는 적게는 하루, 많게는 이틀이 지나 나왔기 때문에,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서로를 피해 다녀야 하는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다행히, 스태프 전원은 코로나 음성 판정을 받아 걱정 없이 함께 일을 계속할 수 있었지만, 매일 유럽의 여러 곳에서 도착하는 음악가들은 오스트리아 정부 방침의 변경으로 테스트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열이 나거나 몸이 불편하다면 바로 축제 운영팀으로 알려주기를 당부받았다.


유럽 여러 나라에서 초대된 연주자들은 로켄하우스까지 오는 데 여러 고초를 겪었다. 정부의 여행 경보 정책의 변화에 따라 영국과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의 하늘길이 막혀버려, 몇몇 연주자는 다른 나라를 통해 비엔나로 오는 비행기를 바꾸어 타야 했다. 많은 대비를 한 축제였지만, 물론 비상사태는 일어났다. 한 앙상블의 연주자에게 고열이 났다는 연락을 받은 축제 운영팀은 아쉽게도 앙상블이 축제에 오지 않도록 하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축제 후반부에 도착한 어떤 연주자는 며칠간 고열 증세가 있었다고 알려져 그와 접촉한 팀원들 모두 테스트 결과가 나올 때까지 호텔에 격리되는 사건도 일어났다.

로켄하우스 교회 안. ©Niklas Schnaubelt

<로켄하우스 실내악 축제>의 유연한 축제 운영 덕분에 비상사태에도 별 타격 없이 음악 축제를 잘 끝낼 수 있었다. 오지 못한 앙상블의 연주는 연주자 사이의 빠른 의논 뒤에 다른 연주곡으로 대체되었고, 열이 났던 연주자의 대체곡도 정해져 있었다. 록다운 후 오스트리아에서 처음 열린 음악 축제라는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개최된 <로켄하우스 실내악 축제>의 성공적인 마무리는 코로나19 바이러스와 함께 지내야 하는 사회에서 앞으로 어떻게 음악 행사를 치를 수 있을지에 대한 현명한 방법을 보여준다.

<로켄하우스 실내악 축제>를 진두지휘하는 축제 단장 게자 롬베르그. ©Nancy Horowitz

축제 단장인 게자 롬베르그(Géza Rhomberg)는 펜데믹 시기에도 음악 축제 개최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며 내년 <로켄하우스 실내악 축제>의 개최 여부에도 자신감을 내비쳤다. 올해는 연주 스케줄상 한자리에 다 모이기 힘든 연주자들이 코로나19 덕분에 시간을 낼 수 있었다는 역설적인 장점도 있었다. 올해의 연주는 굉장히 높은 수준이었다는 톤마이스터 페터의 말처럼, 우리 모두 음악의 진정성을 다시 알아가는 2주의 시간은 연주자에게도 관객에게도 잊을 수 없는 시간으로 남을 것이다.

글 김주혜 라비아트매니지먼트 대표이사

2020.08.18원문링크 바로가기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Copyright © ZUM internet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