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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사진이 당신을 부를 때

by예술의전당

〈퓰리처상 사진전 – Shooting the Pulitzer〉

7.1(수)~11.15(일) | 한가람디자인미술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이오지마섬 전투에서 승리한 미군의 모습. 조 로젠탈, <성조기, 수리바치산에 게양되다(Old Glory Goes Up on Mount Suribachi)>, 1945년 수상작. ⓒThe Associated Press

화려한 조명과 온갖 렌즈가 우리를 감싸는 ‘빅 브라더’ 시대, 네모난 프레임에 갇힌 사진의 영향력은 어느 정도일까. ‘사진은 객관적으로 무엇인가를 재현한다’라는 말은 지금도 통용되는 명제일까. 과거보다 ‘셔터 욕구’를 자극하는 사건·사고가 줄어든 데다 초상권까지 강화된 오늘날, ‘역사의 한 장면’을 남기겠다는 사명감은 여전히 보도사진가의 클리셰로 존재하고 있을까. 포털사이트 검색 한 번이면 비슷한 사진 수백 장이 나타나는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과연 어떤 보도사진이 우리 기억에 남을 수 있을까. 최근 몇 년간 보도사진을 보며 들었던 의문들이다. 그리고 동시에 현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퓰리처상 사진전 – Shooting the Pulitzer>(이하 <퓰리처상 사진전>)에 관심 있는 사람도 한 번쯤 생각해봤으면 하는 주제들이기도 하다. 어찌 됐든, <퓰리처상 사진전>에 방문한다는 것은 미디어와 보도사진, ‘우리 시대의 초상’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는 뜻일 테니까 말이다.

놓치고 있을지도 모르는 진실

미국 LA에서 일어난 인종 갈등의 현장. 로버트 코헨, <퍼거슨의 시위(Ferguson Protest)>, 2015년 BREAKING NEWS 수상작. ⓒThe Associated Press

6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은 올해의 <퓰리처상 사진전>은 조금 특별하다. 2019년 한국인 최초로 퓰리처상을 받은 ‘로이터통신’ 김경훈 기자의 카라반(Caravan, 미국으로 향하는 중남미 이민자 행렬) 사진을 만나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전시는 닉 우트, 론 올슈웽거, 에디 애덤스, 조 로젠탈, 케빈 카터 등이 남긴 ‘세상을 뒤흔든 사진’을 포함, 1942~2020년 퓰리처상 사진 부문의 모든 수상작을 선보이고 있다. <퓰리처상 사진전>을 기획한 시마 루빈은 “퓰리처상 수상작은 ‘전 세계 사진기자들의 영감과 정신을 대변’하며, ‘진실을 좇는 그들의 헌신을 목격’할 수 있다”라고 소개한다. 비록 예전만큼, 그러니까 저널리즘 초기 시절만큼 ‘퓰리처상’이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다고 할 수는 없지만, 뉴스를 취사선택해서 보는 요즘, 우리가 놓치고 있을지도 모르는 진실을 기록한다는 측면에선 분명 가치가 있다.

급박한 화재 현장에서 생명의 고귀함을 전한 사진. 론 올슈웽거, <생명을 불어넣다(Giving Life)>, 1989년 SPOT NEWS 수상작. ⓒRon Olshwanger

처음으로 돌아가, ‘보도사진’에 의문점이 생기기 시작한 건 10여 년 전부터다. 조작 측면에선, ‘미국산 소고기’ 보도를 위해 기자를 모델 삼아 사진 촬영했던 일, ‘연평도 포격’ 사진을 검붉은 색으로 과하게 후보정한 일 등이 뇌리를 스쳐 간다. 해외 사례도 있다. ‘매그넘’과 ‘내셔널지오그래픽’을 대표하는 다큐멘터리·보도사진가 스티브 맥커리가 포토샵으로 사진을 조작한 일이 대표적이다. 당시 그는 “나는 보도사진가가 아닌, 비주얼 스토리텔러다”라고 말해 충격을 준 바 있다(퓰리처상 사진 중에도 진실 논란을 일으킨 사진이 있다!). 여기에 ‘종이신문 종말론’도 한몫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표한 ‘2019 언론수용자 조사’에 의하면, 2019년 종이신문 열독율(지난 일주일 동안 종이신문을 통해 신문 기사를 본 경험이 있는가?)은 12.3퍼센트, 열독 시간(지난 일주일 동안 종이신문을 하루 평균 얼마나 읽었는가?)은 4.2분을 기록했다. 신문 시장의 침체가 본격적으로 대두된 2011년의 열독율 44.6퍼센트와 열독 시간 17.5분과 비교해 가파른 하락세를 보여준다. 반대급부로 온라인 뉴스 시장은 가파르게 성장 중이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온라인 플랫폼은 광고 비용에 따라 뉴스 순서가 달라지며, 알고리즘은 수용자 취향에 맞춰 뉴스를 필터링한다는 것. 이러한 상황에서 과연 우리는 ‘보도사진’을 통해 시대의 초상을 읽는다고 할 수 있을까.

기록성, 사실성, 예술성

베트남전쟁의 참혹한 실상을 전한 사진. 닉 우트, <베트남–전쟁의 테러(Vietnam–Terror of War), 1973년 Spot News 수상작. ⓒThe Associated Press

일반적으로 ‘사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 보도사진일 것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사회가 변화할 땐 늘 사진이 존재했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사진을 게재한 뉴스와 책을 통해 세상을 배웠다. 그렇다면 예전보다 뉴스의 가치가 현저히 떨어진, 텍스트보다 이미지를 우선시하는, 그러나 각종 조작으로 보도사진의 신뢰성이 떨어진 현시점에서 ‘보도사진’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기록성’과 ‘사실성’, ‘저널리스트의 양심’ 등은 당연히 전제되어 있다고 할 때, 결국은 ‘예술성’과 ‘진정성’이 아닐까 싶다.


<퓰리처상 사진전>은 ‘예술성’과 ‘진정성’을 체감할 수 있는 전시다. 사진의 본질은 ‘순간의 미학’이다. 하지만 이는 사진가뿐만 아니라, 보는 이에게도 적용된다. 시각적 끌림이 없다면, 사진은 순식간에 ‘부유하는 이미지’로 전락하게 된다. 스마트폰 액정 위에서 손가락으로 사진을 빠르게 넘겨보는 것이 요즘의 일상 아닌가. 이를 상쇄하는 것이 바로 ‘퓰리처상 사진’이다. <퓰리처상 사진전>을 수놓은 사진들은 네모난 프레임 안에 차가운 현실과 뜨거운 인간애를 잘 담아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쁨과 슬픔의 순간, 인간의 인간에 대한 기록’을 표현한 사진은 보는 이로 하여금 사진 앞에 머무르게 만든다. 일단, 한 장의 사진에 매료되면, 프레임 밖에 숨어 있는 것들이 자연스레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세계 근현대사의 순간을 포착한 사진을 만나는 소중한 기회 <퓰리처상 사진전>. 사진은 2014년도 전시장 모습.

어쩔 수 없이 매년 개최되는 ‘보도사진전’을 잠시 소환해야 할 듯하다. 해가 지날수록 보도사진이 현장을 깊게 설명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순간 포착’에만 신경을 쓴, 일회성 사진이라고나 할까. ‘퓰리처상’의 오랜 취재를 통한 결과물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그렇다고 ‘퓰리처상 사진’을 무조건 칭송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보도사진가들의 노고까지 깎아내리려는 것도 아니다. 그저 경쟁사보다 빠르게 사진을 마감해야 하는 언론의 구조적인 문제가 안타까울 따름이다. ‘텍스트에 충실한 그림’이 되는 곳에 우르르 몰려가 똑같은 사진을 촬영하는 일에 사진가는 물론, 대중들도 회의를 느낄 것이다. 이미지의 홍수 속 보도사진이 영향력을 가지기 위해선, ‘어떤 순간’만을 좇는 보도사진의 패러다임을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한마디 말보다 더 큰 울림을 줄 수 없는, 다시 말해 우리를 사진 앞으로 부를 수 없는 사진은 결코 그 자체로 역사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궁금증과 의문에 공감이 된다면, <퓰리처상 사진전>을 방문해보길 바란다. 보는 것 이상의 가치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을 것이다.

<퓰리처상 사진전 – Shooting the Pulitzer>


기간: 2020.7.1(수)~2020.11.5(일)
시간: 10AM~7PM(입장 마감 6PM) ※매주 월 휴관
장소: 한가람디자인미술관
관람등급: 전체관람
장르: 전시
가격: 일반 15,000원/ 청소년(만13세~18세) 12,000원/ 어린이(36개월~만12세) 9,000원
주최: 예술의전당, 제이콘컴퍼니
주관: 빅피쉬씨앤엠
문의: 070-4107-7278

사진 제공 빅피쉬씨앤엠

글 박이현 「월간사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