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변산 12경 중 으뜸, 천연기념물 수두룩한 ‘생태박물관’
산속에서 호수를 만나는 감동, 빼어난 암릉미, 홍길동의 무대
어수대 뒤쪽으로 웅장한 병풍바위가 압도한다. |
1988년 6월, 19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변산반도국립공원은 지질 암석의 교과서다. 중생대의 격렬한 화산활동에서 발생한 화산암류가 차가운 바다를 만나 압축되고 뒤틀려서 지금의 모습을 하고 있다. 변산반도는 크게 외변산과 내변산으로 나뉘며 해안 쪽에 접한 외변산은 기암절벽과 해식애가 도드라지고 채석강, 적벽강, 솔섬, 고사포해수욕장, 격포해수욕장 등 걸출한 명소가 즐비하다.
변산반도의 진풍경은 내변산이다. 내변산은 예로부터 피란처로 좋은 십승지 중 한 곳이다. 굵고 힘차게 뻗은 암릉은 없으나 깊은 계곡과 능선들은 구절양장처럼 불규칙하고 험하다. 과거 변산에는 실상사, 선계사, 청림사, 내소사의 4대 사찰이 있었는데 현재는 내소사만이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같은 듯, 다른 내변산의 암봉, 멀리 우금암이 보인다. |
의상봉, 관음봉, 쌍선봉, 옥녀봉, 선인봉, 우금암, 쇠뿔바위봉, 갑남산 등 400m급 10여 개 암봉들이 내변산의 협곡을 이루고 있다. 최고봉인 의상봉(508m)에는 공군부대가 있어 관음봉(433m)이 실질적인 정상을 대신한다.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봉우리들이 절경이다.
내변산은 직소폭포, 분옥담, 선녀탕으로 이어지는 봉래구곡을 비롯해 와룡소, 가마소, 굴바위 등 어디에나 물이 넘친다. 오랜 침식작용으로 좁고 기다란 골짜기와 절벽 지형이 많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 때문에 백제부흥운동 세력이 신라와 당나라에 대항해 마지막 항전을 벌인 중심지이기도 하며, 구한말에는 의병, 격동기에는 빨치산들의 은신처였고 수많은 고승을 배출한 구도의 도량이기도 하다.
고래등바위. 거대한 향유고래를 닮았다. |
변산반도의 진또배기 내변산
누군가는 이곳을 생태계의 보고라 부른다.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유일한 다기능 공원인 변산반도국립공원에는 다른 지역에서 보기 힘든 다양한 종이 서식한다. 복수초와 함께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변산바람꽃을 비롯해 포유류 21종, 조류 95종, 곤충류 832종, 양서류는 11종, 파충류는 14종, 어류는 24종이 살고 있으며 관속식물은 굴참나무, 신갈나무 등을 포함하여 881종류가 분포한다.
천연기념물도 많다. 도청리 호랑가시나무군락(122호), 격포리 후박나무군락(123호), 중계리 꽝꽝나무군락(124호), 청림리 미선나무자생지(370호) 등이 있다. 변산마실길 해안에는 8~9월이면 멸종 2급 식물인 노란색 붉노랑상사화가 핀다. 변산반도국립공원의 엠블럼인 호랑가시나무도 볼 수 있다.
어수대를 산행 초입으로 잡아야 체력소모가 덜하다. 어수대는 부안댐의 발원지이며 ‘임금이 물을 마시는 장소’라는 뜻을 지닌다. 이곳에서 물을 마시다 경치에 반한 신라 ‘경순왕’이 3년이나 머물렀다고 전해진다. 작은 연못 정도의 크기이지만 주변의 경관만큼은 암벽이 띠를 두른 것처럼 웅장하다.
어수대에서 우슬재까지 20여 분만 오르고 나면 평지 수준의 능선길이 이어진다. 조망 또한 사방으로 터진다. 변산에 있는 바위들은 유문암 화산암류여서 노출된 표면이 잘게 부스러진다. 낭떠러지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으므로 지정된 등산로를 벗어나지 않는 것이 좋다.
벽을 주물러 놓은 것 같은 크고 작은 기암괴석. |
쇠뿔바위봉은 내변산 12경 중 으뜸으로 여겨진다. 국립공원 지정 이후 안전을 위해 폐쇄되었다가 2011년 23년 만에 개방되었다. 주민들에게는 귀바위봉이라 불리는 쇠뿔바위봉은 우뚝 솟은 황소의 뿔을 닮았다. 전망데크가 있는 곳이 서쇠뿔바위봉 정상이고 건너편에 동쇠뿔바위봉이 있다.
전망대에서는 360도로 트인 파노라마 전경이 펼쳐진다. 동쪽으로 우금암과 우금산성, 북서쪽으로 서해 영공을 지키는 의상봉 레이더기지. 의상봉 뒤쪽으로 새만금방조제와 고군산열도. 서쪽으로는 지장봉, 구시골계곡과 부안호가 조망된다. 쇠뿔바위봉과 고래등 바위 일대는 커다란 통바위다.
의상봉 아래 깎아지른 절벽에 원효가 수도 정진했다는 원효굴이 보인다. 4~5명이 기거할 정도로 넓다. 원효굴에서는 바위 틈새에서 흘러나오는 석간수가 흐른다. 석간수는 자연필터 역할을 하는 암석에 따라 물색과 물맛이 차이가 나며 화강암과 맥반석이 가장 깨끗한 맛을 낸다고 한다. 참고로 원효굴 외에도 모악산 수왕사, 지리산 문수암, 장흥 보림사 등 전국 곳곳에서 석간수를 맛볼 수 있다.
근처에는 미륵신앙을 표방했던 진표율사가 3년 동안 망신참법(돌을 가지고 자신의 몸을 찧으면서 참회하는 수행법)으로 득도했다는 3평 크기의 석굴, 부사의방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찔한 벼랑에 있는 기도처였음이 틀림없다.
사두봉 능선에서 바라본 첩첩산중 내변산. |
두호봉에 부안호를 조망하는 전망대 필요해
청림마을로 하산하는 갈림길 새재삼거리에 이르러 사두봉 방향으로 진행한다. 새재삼거리에서 중계교 부근까지는 3km가량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다가 사두봉 암릉지대에 올라서면 첩첩산중에 나타난 부안호의 절경에 감탄사가 터진다. 변산반도에 이름값 하는 명승지가 한두 곳 아니지만 한 폭의 수묵화 같은 비경에 발걸음을 옮기기 힘들 지경이다.
부안호의 중간지점에 돌출된 두호봉이나 군관봉도 조망이 좋다. 유유히 흐르는 호수를 배경으로 쌍선봉, 흑낭봉, 마강봉, 깃대봉, 의상봉, 사두봉까지 한눈에 조망할 수 있어 기와 얹은 팔각정 전망대가 생기면 사람들이 많이 찾을 것이 분명하다.
내변산은 홍길동의 무대이기도 하다. 홍길동의 저자 허균은 우동저수지 옆 선계폭포 위에 정사암을 짓고 홍길동전을 집필했다. 정사암이 있던 우반동에는 홍길동전 속 도적소굴의 배경지로 묘사된 굴바위가 있다.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의 촬영지이기도 한 굴바위는 100명이 들어가도 될 만큼 높고 깊어 웅장한 자태를 자랑한다. 변산에 오면 한 번쯤 들를 만한 명소다.
홍길동전 속 도적소굴로 묘사된 굴바위. 장정 100명이 들어가도 될 정도로 넓고 깊다. |
산행길잡이
유동마을-어수대-우슬재-서쇠뿔바위봉-지장봉-새재갈림길-사두봉-서운봉-중계교 부근(9.31km, 4시간20분)
교통·맛집(지역번호 063)
부안터미널에서 출발하는 701번 부안버스는 변산반도국립공원 구간을 운행하며 유동마을에서 하차한다.
1일 총 6차례(06:30, 08:20, 10:25, 13:20, 15:40, 17:45 19:30) 운행한다.
중계교 부근으로 하산해 부안 개인택시를 이용하면 어수대까지 약 2만 원이다. 변산개인택시 (582-7132).
줄포에 있는 남경반점(583-8988)은 2대째 운영하는 핫플레이스 맛집이다. 담백한 국밥, 짬짜면, 바삭바삭한 탕수육 등 모든 메뉴가 괜찮고 가격도 착하다.
월간산 4월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