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기로는 한라산 코스보다 한수 위
한라산 탐방로의 명품 오름 기행… 영실~윗세오름~어리목 13km
윗세족은오름에서 본 선작지왓. 점령군이 된 제주조릿대로 인해 산철쭉이 점점 몰려나는 모양새다. |
제주의 오름 중 한라산국립공원 안에 있는 게 꽤 많다. 고도가 가장 높은 오름인 장구목부터, 방애오름, 왕관릉, 볼레오름, 사제비동산, 흙붉은오름, 골머리오름, 어후오름, 물장오리 등 그 수가 족히 40개는 넘는다. 이들은 대부분 탐방이 금지되어 있다. 성판악 코스의 사라오름, 어리목의 어승생악, 영실 코스의 영실오름과 윗세족은오름만 길이 조성되었다.
영실 등산로로 들어서면 만나는 금강송 지대. 걷는 기분 나는 곳이다. |
가장 거대한 분화구의 영실오름
영실에서 윗세오름대피소에 이르는 구간은 한라산의 여느 등산로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다고 봐도 좋을 정도다. 출발지인 영실靈室의 ‘실’은 골짜기의 옛말로, 室실이라는 한자어를 빌어 표기한 것이다. 즉 신의 기운으로 가득한 신령스러운 골짜기라는 뜻이다.
이 일대는 범상치 않은 기운으로 가득하다. 붉은 둥치를 드러내며 하늘로 쭉쭉 뻗은 아름드리 금강소나무 숲이 넓고, 한라산에서는 드물게 물이 흐르는 개울도 만난다. 영실오름에서 시작된 이 개울을 건너면 곧 오르막이 시작되며 영실굼부리의 장관이 펼쳐진다.
거대한 원을 이루는 굼부리 둘레가 3,309m에 달하고, 꼭대기에서 바닥까지의 깊이는 무려 389m, 남북이 1.5km, 동서가 1km쯤이며, 2,000개가 넘는 기암으로 둘러싸인 이곳 풍광은 보는 이들을 압도한다. 하도 넓어서 사람들은 이곳이 굼부리라고 생각하지 않고 단지 깊은 계곡쯤으로 여긴다. 사실은 제주의 368개 오름 중 가장 넓고 깊고 큰 굼부리다.
굼부리의 위쪽은 온통 절벽지대. 이곳은 바위 형태가 동쪽과 서쪽이 서로 다른 모양을 하고 있다. 서쪽은 1,200개가 넘는 주상절리가 한데 엉겨 붙은 ‘병풍바위’가 장관이고, 동쪽은 수십 미터의 돌기둥이 울창한 숲을 뚫고 우후죽순처럼 솟았다. 용암이 마구 분출하다가 그대로 굳은 것으로, 500명의 아들과 살던 설문대할망의 전설이 얽히며 ‘오백나한’ 또는 ‘영실기암’이라 부른다.
산철쭉이 한창인 선작지왓 일대. 한라산의 고산지대 평원인 이곳에 윗세오름이 있다. |
영실오름은 자체의 풍광이 빼어난 것은 물론, 흰진달래와 제주백회, 고채나무, 섬매자, 시로미 등 450종이 넘는 희귀식물의 자생지로도 주목받는다. 이 숲들이 만들어내는 봄의 신록과 여름의 울창한 숲, 가을의 황홀한 단풍, 눈 덮인 겨울 풍광은 황홀하기 그지없다. 거대한 함지박에 정성스레 채워 건네는 한라산의 선물 같다.
옛사람들이 왜 이곳을 ‘하늘로 통하는 문通天’이니 ‘신들의 거처靈室’라는 예사롭지 않은 이름으로 불렀는지 수긍이 간다. 뒤돌아보면 입이 떡 벌어지는 제주가 펼쳐진다. 볼레오름, 이스렁오름, 삼형제오름, 돌오름, 영아리오름, 왕이메오름, 당오름, 정물오름, 원물오름(원수악), 산방산, 송악산 등이 풍광을 채우며 제주가 왜 오름왕국인지를 잘 보여 준다.
윗세오름대피소에서 남벽분기점으로 이어진 길. 저 짙은 숲 오른쪽이 방애오름에 가 닿는다. |
한라산의 천상화원 선작지왓
영실오름 꼭대기를 지나며 거대한 산상 고원인 선작지왓으로 접어든다. 영실기암과 선작지왓의 경계는 한라산 구상나무군락이 넓게 띠를 이루는 곳이다. 붉은병꽃나무, 섬매발톱나무, 사스레나무, 주목 등이 어우러지며 뭍에서 만나기 힘든 한라산만의 고산 풍광이 눈길을 끈다. 허연 둥치로 서 있는 죽은 구상나무가 많아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한다. 이곳부터 윗세오름대피소를 만나기까지는 평지여서 걸음이 편하다.
명승 제91호인 선작지왓은 한라산 고원의 ‘작은 돌이 서 있는 밭’이란 의미로, 철쭉과 털진달래, 시로미, 산죽 같은 키 작은 관목류가 넓게 분포한다. 예쁜 길이 굽이굽이 돌아가는 선작지왓에 나란히 서 있는 세 개의 오름이 윗세오름이다. 1100고지 서쪽의 삼형제오름을 달리 ‘세오름’이라고 부르는데, 한라산 백록담 서쪽에 나란히 누운 이 세 개의 오름도 그렇다. 아래에 있는 삼형제오름에 비해 위쪽에 있어서 ‘윗세오름’이라 부른다.
백록담에 가까운 순으로 붉은오름, 누운오름(1,712m), 족은오름(1,701m)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이 세 오름은 모두 분화구가 없는 원추형 화산체로, 이 중 윗세족은오름에만 탐방로가 나 있다.
선작지왓의 봄철은 털진달래와 산철쭉이 차례로 개화하며 고산평원을 화려하게 수놓는다. 털진달래는 5월 중순부터, 산철쭉은 5월 말부터 펴서 윗세오름과 방애오름 일대를 붉게 물들인다. 최근에는 산불처럼 번지는 제주조릿대 때문에 진달래와 철쭉 자생지가 많이 줄고 있다. 한라산국립공원공단이 매년 조릿대를 베어내고 철쭉 묘목을 심고 있는데, 그 노력이 좋은 결실을 맺길 기대한다.
병풍처럼 펼쳐진 남벽. 그 앞에서 산철쭉이 붉고 붉다. |
영실 산행 시 유용한 정보
버스는 한라산 영실지소까지만 운행한다. 찻길을 따라 2.5km를 걸어야 등산로가 시작되는 영실통제소에 닿는다. 걸어서 40분 정도 걸리며, 택시를 이용하면 편하지만 택시가 없을 때도 많아 걸어서 오를 시간까지 감안해야 한다. 자가용으로 영실통제소까지 갈 경우 새벽같이 출발해야 한다. 주차장이 한정되어 있어 주말에는 일찍 만차가 된다.
영실 코스를 따라 오르면 윗세오름 입구에 닿는다. 영실 등산로에서 왕복 340m쯤으로 멀지 않다. 거리는 짧지만 제주의 오름 중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오름답게 정상에서 조망하는 풍광의 시원함은 말이 필요 없다.
공중에서 본 구상나무 군락지. 오른쪽이 선작지왓, 왼쪽은 영실로 이어진다. |
동쪽으로 거칠고 신비로운 자태의 한라산 화구벽이 강력한 존재감을 뽐내고, 북쪽으로는 드넓은 고산평원 끝에 솟은 만세동산, 사재비동산, 이스렁오름 등이 눈길을 끈다. 매년 6월에는 산철쭉이 불타올라 윗세오름의 인기가 한라산보다 잠깐 더 높아지기도 한다.
윗세족은오름에서 윗세오름대피소가 가깝고, 중간에 한라산의 모든 좋은 기운이 다 녹아든 듯 물맛 좋은 노루샘도 있다. 윗세오름대피소에서 선택할 수 있는 코스는 세 가지다. 하산은 차량을 가져온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어리목으로 내려선다. 영실과 어리목을 잇는 산행은 13km로 6시간 걸린다.
고산평원의 이국적 풍광이 감동적으로 펼쳐지는 남벽분기점을 지나 돈내코로 가는 것도 추천할 만한 길이지만 총 거리 18km로 길고 거칠어 난이도가 높다. 돈내코로 하산하려면 오후 2시 이전에 윗세오름통제소를 통과해야 한다. 돈내코 코스에서는 다른 행성을 보는 듯 거친 백록담 화구벽과 방애오름도 만날 수 있어 매력적이다.
윗세오름 상공에서 본 한라산 백록담. 얼마 전 내린 비로 물이 꽤 고였다. |
교통
제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중문 방면으로 가는 240번 시외버스가 영실 매표소까지 간다. 영실 통제소에서 영실 등산로 입구까지 2.5km는 택시를 타거나 걸어야 한다. 10인승 이하의 승용차는 등산로 입구 주차장까지 갈 수 있다. 그러나 자리를 구하려면 새벽같이 서둘러야 한다.
오백장군과 까마귀 |
맛집
영실탐방로 입구에 비빔밥과 고기국밥, 고기국수, 해물부추전에 어묵탕을 먹을 수 있는 ‘오백장군과 까마귀’ 휴게소가 있다. 간단한 등산용품과 간식도 판매한다. 한라산국립공원 내의 모든 대피소에서는 생수나 컵라면을 판매하지 않으니 산행 전에 먹을거리를 충분히 준비해야 한다.
1100고지 습지 |
주변 여행지
1100고지 습지 1100도로의 1100고지 휴게소 앞에 한라산 고원지대에 형성된 1100고지 습지가 있다. 지표수가 흔치 않은 한라산의 지질적인 특성을 고려할 때 무척 중요한 곳으로, 멸종위기 야생식물과 고유생물, 경관과 지질 등 보전할 가치가 뛰어나서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으며, 람사르 습지로도 등록되었다. 습지 둘레를 따라 데크가 깔린 탐방로가 조성되어 있다. 총 길이는 675m며, 둘러보는 데 30분 남짓 걸린다.
서귀포자연휴양림 350ha나 되는 광활한 면적의 휴양림이다. 숙박동과 주차장 같은 인공시설은 지극히 일부분이고, 대부분 온대·난대·한대 수종이 어우러진 원시림이다. 이 숲을 오롯이 즐길 수 있는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정문과 후문 사이를 오가는 건강산책로, 휴양림 전체를 한 바퀴 도는 숲길산책로, 휴양림 내의 오름인 법정악法井岳을 다녀오는 코스인 전망대산책로까지 다양한 걷기길이 있다.
문의 서귀포자연휴양림 064-738-4544.
월간산 7월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