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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가지 말라고 막는데도 가는 이유를 알겠다"

by월간산

<3> 용아장성 르포

국립공원공단 “새벽부터 불법 산행… 그 시간에 단속하기 쉽지 않아”

산악계 “위험하다고 무조건 막는 건 안 돼… 북한산 리지도 위험하긴 마찬가지”

고 이옥영씨의 위령비가 들어선 바위 너머로 내설악이 펼쳐진다.

2021, 2017, 2016, 2014, 2011… 


최근 설악산 용아장성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한 해다. 여기에 부상까지 합치면 거의 매년 한 사람 이상의 사상자가 용아장성에서 발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산꾼들은 용아장성을 찾는다. 이곳이 사람을 홀려 잡아먹는 용의 이빨이란 것을 알고도 국립공원공단 직원들의 단속을 피해 새벽부터 산에 오른다. 공단에 따르면, 올해만 용아장성 불법등반 단속건수가 18건에 이른다고 한다. 왜 산꾼들은 용아장성에 이토록 열광하는가? 그리고 용아장성은 대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 


이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용아장성을 찾았다. 용아장성龍牙長城은 용의 이빨을 닮았다는 이름답게 칼날 같은 20여 개의 암봉이 늘어선 능선으로, 명승 102호이자 국립공원 100경으로 지정될 만큼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곳. 공룡능선과 함께 내설악의 핵심 경관을 이루며, 북쪽의 가야동계곡과 공룡능선, 남쪽의 구곡담계곡과 서북능선 사이에 끼어 있는 산줄기다.

낙엽에 발이 푹푹 빠질 정도로 등산로는 희미하다. 

취재 전날 사망자 2명 발생


11월 중순에 접어든 설악은 벌써 정상부에 눈이 내리고 상고대가 맺힐 정도로 추웠다. 하루를 용대리에서 묵고, 산행 시작기점인 설악산 백담분소에 도착하자 분위기가 오묘했다. 바로 전날 2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 


“공룡능선에서 한 분, 다른 한 분은 대청-오색 구간에서 사망하셨습니다. 둘 다 저체온증이 문제였어요. 오늘도 어제처럼 추워요. 방한장비 충분히 챙겨서 올라가세요.” 


용아장성을 사이에 두고 위아래에서 모두 사고가 발생했다는 소식에 절로 몸이 움츠러든다. 분소에서 CCTV를 통해 확인한 대청봉은 벌써 새하얗게 물들어 있다. 하나쯤 뺄까 싶었던 핫팩을 도로 주머니에 찔러 넣고 백담사로 가는 차에 올라탄다. 백담분소에서 백담사까지 약 6km 구간은 주간에 버스가 수시로 운행한다. 


“용아장성 가시는 분들은 버스를 안 타시죠. 단속을 피하려고 새벽에 올라오시거든요.”

정규 탐방로 난간을 넘어서면서 용아장성 진입이 시작된다.

취재진의 안전과 가이드를 담당한 국립공원공단 박성신 주임이 말한다. 실제로 용아장성을 타는 산꾼들은 새벽 1시쯤 산행을 시작, 백담사를 거쳐 용아장성 입구인 수렴동대피소까지 야음을 틈타 약 9.4km를 이동한다. 단속도 피하고, 해가 떠 있을 때 하산하기 위한 궁여지책인데 이것이 용아장성의 난이도를 높이는 요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비록 수렴동대피소까지 걷는 길이 그다지 힘들지 않지만, 수면을 포기하고 계속 걸어야 한다는 점에서 피로도가 가중되기 때문. 그렇기에 류교석 백담분소장은 “가급적 용아장성은 봉정암에서 보는 것만으로 즐겨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라고 말한다. 


백담사에 도착해 본격적으로 걷는다. 영실천을 따라 평이한 숲길을 빠른 걸음으로 내달린다. 용아장성에서 시간이 얼마나 지체될지 가늠할 수 없기에 여기서 시간을 최대한 벌어야 했다. 아름다운 계곡과 고요한 숲을 즐길 틈도 없이 쉬지 않고 걸어 영시암을 쏜살같이 스쳐 지나간 뒤 수렴동대피소에 도착하고 나서야 뻐근한 발을 잠시 풀어 준다.

봉정암 방면에서 바라본 용아장성 전경. 사진 이신영 기자

“2차 피해 우려, 적극 단속 불가능” 


이제 용아장성에 들어선다. 도상 거리 3.7km, GPS 실측 주행거리 4.3km의 용아장성 중 오늘은 가장 사고가 빈발하는 초입 부분만을 답사하기로 했다. 사망사고가 날 만큼 설악의 날씨가 좋지 못했기 때문이다. 


용아장성은 잠깐 올려다보기만 해도 하늘을 향해 치솟은 위세가 등등하다. 능선이 자연스럽게 영실천으로 가라앉아 용아장성의 입구가 되는 곳은 철조망으로 굳게 막혀 있다. 그래서 대부분 중간 샛길을 이용해 용아장성에 올라탄다. 물론 공단 직원들도 이를 알고 있다. 


“지난 10월에 사망사고가 난 이후에는 한 달 중 반을 용아장성에서 단속하면서 보냈어요. 등산객들이 올라오는 시간에 맞춰 새벽 3시에 올라가서 대기했었죠. 작년에 처음 배속돼 용아장성 단속을 갔을 땐 정말 죽는 줄 알았는데 그래도 지금은 적응이 좀 됐습니다.” 


난간을 넘어 본격적으로 용아장성으로 치고 오르는 비탈길을 오른다. 가파른 경사는 그나마 감수할 만한데 밟을 때마다 묵은 낙엽에 쭉쭉 미끄러지는 발이 문제. 튼튼한 돌을 골라 밟고 싶어도 불안하게 얹어진 것이 태반이라 함부로 발을 놓을 수 없다. 박 주임은 “낙석이 워낙 많으니 서로 거리를 둬야 한다”며 “바로 뒤에 붙으면 앞사람이 밟아 굴러 떨어진 돌에 맞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어느 정도 등반 능력을 갖춰야 용아장성을 넘을 수 있다.

“용아장성은 주능선도 물론이고 능선 접속구간, 우회로 모두 이런 상태예요. 낙상의 우려가 어디든 다 높죠. 그래서 저희도 단속할 때 매우 조심하고 있어요. 저희가 단속하겠다고 등산하시던 분을 쫓아가서 잡을 수 없어요. 그러다간 2차 피해 우려가 있어요. 안전을 위해 ‘단속 중이니 이쪽으로 내려와 달라’고 요청하고 그 자리에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는 거죠. 이게 가장 큰 애로사항입니다.” 


미끄러지던 발을 힘겹게 부여잡고 기다시피 옥녀봉(811m) 턱밑 안부에 오른다. 능선은 제법 길이 다져진 상태.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다녀간 것 같다. 좁다랗고 아슬아슬한 길을 따라 능선을 타고 옥녀봉으로 향한다. 걷고, 기어오르고, 타고 넘는 재미가 쏠쏠하다. 순간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거대하게 솟은 만경대의 위용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위압적이고 장엄한 모습에 숨이 막혀 온다.

옥녀봉 바로 아래 나무에 매달려 있던 출입금지 표지판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떼 낸 것인지, 바람에 떨어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뜀바위는 오늘 못 가겠는데요?” 


옥녀봉 발밑까지 와서 다시 걸음을 돌린다. 여기서부터 직벽을 타고 올라야 하는 리지 장비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을 뿐 아니라, 용아장성이 막아 주던 바람이 능선에 올라오자 거세게 휘몰아쳐 가만히 서 있어도 몸이 휘청거릴 정도였기 때문. 올해 사고가 발생한 뜀바위는 그렇게 생략해야만 했다. 


2차 답사를 위해 다시 구곡담계곡 정규탐방로로 돌아왔다. 이번 목표는 개구멍바위. 옥녀봉과 뜀바위를 지나면 나타나는 구간으로 이 역시 사고가 빈발하는 지점이다. 100m 낭떠러지를 옆에 두고 마치 개구멍을 지나듯 몸을 웅크린 채 기어서 지나야 하는 위험구간이다.

개구멍바위 초입은 바로 옆이 낭떠러지라 아찔한 고도감이 느껴진다.

“아까랑 다르게 이번엔 바짝 붙어서 앞 사람이 밟는 곳을 잘 따라 밟아야 합니다. 허방다리가 많아서 잘못 밟으면 푹 꺼지거든요.” 


박 주임의 말대로 이곳에선 ‘오징어게임’의 5번째 게임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골짜기에는 낙석의 흔적이 가득했고, 돌 위에 살짝 얹어진 낙엽들을 밟으면 다리가 푹푹 빠졌다. 걸을 만해서 자연스럽게 생긴 길이 아니라, 단속을 피하거나 중도 포기 후 빠른 탈출을 위해 임의로 생긴 길들이다. 박 주임은 “공단조차 파악하지 못한 샛길로 다니는 등산객이 많다”고 전했다.

용아장성에서 본 오세암.

개구멍바위 바로 아래는 수십 m 낭떠러지


한참을 넘어지고 미끄러지길 반복한 끝에 개구멍바위 직전 안부에 올랐다. 여기서 옥녀봉 방향으로 가면 고 이옥영 추모비가 들어선 위령비바위, 반대로 진행하면 개구멍바위다. 개구멍바위로 가자 녹색 로프 한 동이 놓여 있다. 공단이 설치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 갖다 놓은 것이라 절대로 붙잡아선 안 되는 줄이다.  


공단에서 주기적으로 볼트를 해체하고, 로프도 수거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어느 순간 이렇게 선답자의 흔적이 남는다. 박 주임은 “예전 (공단) 선배들이 윤형 철조망까지 설치해서 막았는데, 등산객들이 다 뜯어내고 벼랑으로 밀어버렸다”고 전했다.

주기적으로 공단 직원들이 산악회 리본을 제거하고 있지만, 갈 때마다 새로운 리본이 붙어 있다고 한다.

CCTV가 설치된 개구멍바위 초입은 아찔하다. 바로 아래는 수십 m 낭떠러지. 그런데 확실히 전망은 탁월하다. 거대한 공룡능선의 중턱에 고즈넉하게 자리 잡은 오세암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조금 더 용아장성의 조망을 즐겨보고자 다시 돌아내려와 위령비바위에 오른다. 그동안 맛보지 못했던 시원한 파노라마 조망이 반갑다. 속속들이 설악의 속살을 엿볼 순 없지만 서북능선과 공룡능선이 마치 좌청룡 우백호처럼 호위하는 것 같아 든든하다. 

CCTV가 설치돼 있으나 등산객들은 이미 이를 알고 있어 사각지대로 돌아서 건넌다.

더 나아가고 싶지만 점점 더 강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눈발까지 날린다. 결국 취재진은 용의 앞니만 핥아보고는 걸음을 되돌릴 수밖에 없었다. 취재에 동행한 등산 인플루언서 윤용만씨에게 소감을 물었다. 비법정탐방로가 처음이라는 그는 최근 한국등산학교를 졸업하고 한창 바위 맛을 보고 있는 상태였다. 


“오늘 와보니 확실히 왜 사람들이 열광하는지 알겠어요. 능선 타는 재미도 있고, 비경도 엄청나네요. 그리고 왜 죽는지 알 정도로 위험 구간이 많다는 것도 충분히 느꼈습니다.

용아장성 능선으로 올라타는 길에 길은 없다. 어렴풋이 능선을 향해 손에 잡히는 대로 나무를 잡고 올려쳐야 한다

그런데 자연보전이나 야생동식물의 보호 목적이 아니라 단순 위험성으로 출입제한을 한다는 건 조금 의문이 들긴 하네요. 북한산 3대 리지도 여기 못지않게 위험한 곳이 많은데 거긴 장비만 갖고 있으면 단속하지 않잖아요? 출입을 원천봉쇄할 수 없다면 코스를 안전하게 정비하고 개방하는 것이 국립공원의 역할이 아닐까란 생각도 들어요. 


물론 그렇다고 비법정탐방로를 출입하는 분들을 옹호하고 싶진 않네요. 법적으로든 도의적으로든 마땅히 지키는 것이 맞다고 봐요. 산에서 발생한 문제는 본인의 선택에 의한 것이니 오롯이 국립공원의 탓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