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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설악산 지게꾼 임기종 인터뷰

“괜히 방송에 나갔나… 마음이 굉장히 아파요”

by월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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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짐꾼 1시간 30분에 6,000원 노동착취 논란

설악산 마지막 지게꾼 임기종 씨

설악동 소공원에서 비선대로 가다가 잠깐 쉬고 있는 임기종. 빈 지게를 지고 섰다. 얼마 전 유명 방송에 출연한 이후 일이 끊겼다. 그는 “오히려 잘 됐다”면서 개의치 않았다.

“설악산국립공원의 마지막 지게꾼이 노동착취를 당하고 있습니다. 1시간 반 동안 지겟짐을 나르고 6,000원을 받습니다.” 


지난 2월 1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이와 같은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다. 내용에 동의한 사람의 수는 2만9,000여 명이나 됐고 그동안 여러 매체에 등장해 ‘기인’ 으로 통했던 설악산 지게꾼 임기종(64)은 덕분에 여러 인터넷 사이트와 SNS를 달구는 주인공이 됐다.  


그전에 임기종은 유명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한 시간 반 동안 짐을 옮겨주고 6,000원을 받았다고 말했다. 20여 년 전 당시 상황을 설명한 이 발언이 수십 년 노동착취를 당했다는 논란으로 번졌다. 이후 그는 하던 일을 관뒀다는 소식도 들렸다. 방송이 나간 뒤 3월 초쯤 속초에서 임기종씨를 만났다. 그는 난처해하면서 복잡한 심경을 말했다.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괜히 방송에 나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오히려 잘됐다 싶기도 하고 그래요. 여러 가지로 착잡해요. 거기 안 나갔으면 70세까지 일하며 조용히 살려고 마음먹었는데, 하루아침에 낙동강 오리알도 아니고. 청원도 올라왔다고 하데요. 굉장히 마음 아팠어요. (방송에서) 그걸 그대로 내보냈더라고!”

1 그는 지게지는 일을 하면서 숱한 봉사활동을 펼쳤다. 그 일로 2012년에는 대통령 표창까지 받았다. 2 2005년 강원도 봉사대상을 수상했을 당시. 그는 이때 받은 상금 역시 불우이웃을 돕는 데 썼다. 3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 4 집 신발장에 올라와있는 등산화들. 원래 이것보다 더 많았다. 집을 잠깐 옮기면서 예전에 신었던 건 다 버렸다. 5 지게를 매만지는 임기종의 손. 그는 자기 손을 가리켜 “아기 손”이라고 했다. 생각보다 거칠지 않았다.

세상 등쌀에 짐꾼 일 그만 두게 돼 

임기종은 그동안 각종 미디어의 단골 소재였다. 지게에 짐을 잔뜩 지고(심지어 100kg이 넘는 냉장고를 등에 지고!) 가파른 산을 오르는 모습이 신기하고 대단해 보였던 까닭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를 돋보이게 한 건 ‘봉사활동’에 있다. 지게꾼으로 벌어들인 돈 대부분을 주변의 불우이웃들에게 기부한 사실이 여러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  


최근 그에게 유명세를 안긴 유명 TV 프로그램 역시 임기종의 이런 선행을 부각했다. 평생 벌어들인 돈 중 1억여 원을 남들에게 쾌척했다고 말하는 임기종의 덤덤한 태도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그의 인터뷰를 본 대부분은 “아니, 지금 세상에 저런 사람이 있을 수 있나?” 라거나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면서 임기종을 칭송했다. 세상 모두가 그의 편이었다. 그가 낑낑대면서 옮긴 짐의 값어치가 고작 6,000원이었다는 말에 사람들은 들고 일어났다. “이럴 수가 있느냐!” “노동착취다!”라면서 그를 착취했을 거라고 여긴 대상에 몰려가 항의했다. 결국 임기종은 어떻게 됐느냐? 일을 그만뒀다. 최근까지 그에게 일을 맡겼던 암자의 한 스님은 그를 인터뷰하고 있는 우리를 찾아와 울먹였다. 


“권사님(임기종), 촬영 좀 그만하세요. 왜 이렇게 여러 사람 힘들게 하냐고요. 사람들이 사찰에 항의 전화를 수십, 수백 통 했어요. 노동착취하고 인격적으로 모독하는 거 아니냐고요. 그런 적 없잖아요, 권사님. 맞죠? 아니라고 그래도 사람들이 계속 오해해요. 지게 지고 계속 왔다갔다 하는 모습이 나가면 오해가 풀리기는커녕 우리가 더 곤란해져요. 그러니 촬영 좀 자제 부탁해요. 권사님.”  


임기종은 맥없이 “그러겠다”고 했다. 그는 지금 처한 상황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헷갈렸다. 평생 해오던 일이 끊겨서 아쉬운 한편 오히려 잘됐다고도 했다. 


“최근에는 계조암까지 40kg을 지면 5만 원 받았어요. 요즘 물가가 올랐으니 더 받았으면 했지만, 돈 받으려고 한 건 아니었으니까요. 운동 삼아 한 거지. 근데 이제 나이가 들어서 짐 지고 멀리는 못 가겠더라고요. 어느 날엔 희운각까지 갔는데 발에 화끈화끈 열이 나더라고요. 도중에 쥐가 나서 오도가도 못했어요. 이제 체력도 달리고 그래요. 집사람이 온전치 못하니까 옆에 붙어서 보호하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해요. 원망하고 있으면 뭐해요. 툭툭 털고 새 출발해야지. 바람처럼 살다가 훅 사라져서 없어지겠다고 생각하면서 살았어요. 그냥 그대로 살면 되죠 뭐.”

그는 속초의 13평짜리 임대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누군가가 그에게 자신을 먼저 돌보라고 했는데, 임기종과 아내 최순덕은 부족함없이 행복해 보였다.

그를 곤란하게 만든 방송국에선 연락 없어 

임기종을 비롯해 여러 사람을 곤란하게 한 방송국에서는 일절 연락이 없었다. 해명은커녕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거기에 항의할 생각이 없었다. 그저 평소처럼 조용히 숨어 지내면 금방 잊혀질 거라고 생각했다. 방송 출연 후 나쁜 일만 생긴 것도 아니었다. 우선 국립공원에서는 산불감시일을 제안했다. 하지만 그는 거절했다. 그 일을 하려면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바깥에 나가 있어야 하는데, 정신지체와 언어장애를 가지고 있으며 거동까지 불편한 아내를 혼자 집에 내버려둘 수 없었다. 요즘 자신을 찾는 데가 많아진 것도 내심 좋았다. 


“사람들이 찾아와서 위로해 주고 격려하고 그래요. 여기저기서 등산복, 등산화도 보내주고. 별로 한 것도 없는데. 그래서 요즘 많이 기뻐요. 이전에는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방송 나가고 나서 변한 거지. 그야말로 고난의 길을 걸었어요.” 


임기종은 16세 때 지게꾼이 됐다. 4남 2녀중 셋째였고, 집은 너무 가난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남의 집 머슴이 되거나 지게꾼밖에 없었다. 그나마 지게꾼이 적성에 맞았다. 자신이 하고 싶을 때 일을 하면 됐고, 짐을 지고 산 타는 일은 의외로 견딜 만했다. 처음에는 힘들었는데, 적응되니 재능을 찾았다 싶었다. 


“직업 선택 잘했다고 생각했죠. 20대 중반 때는 돈도 꽤 벌었어요. 흔들바위까지는 하루 대여섯 번, 비선대는 열 번까지도 왔다갔다 했어요. 그땐 하루에 20만 원 정도 벌었어요.” 


체력이 좋았지만 그는 전문 산악인이 된다거나 구조대 활동에는 관심 없었다. 같이 하자고 제안하는 사람도 없었고, 무엇보다 단체에 묶이는 건 싫었다. 오로지 혼자 짐을 메고 왔다갔다 하는 게 좋았다. 


봉사활동에 나선 건 이때부터다. 집에서만 생활하는 아내가 걸려 함께 여행 가려고 계획했는데, 둘이서만 가기가 허전했다. 그래서 동네 어르신들을 모았다. 관광버스를 대절해 함께 놀러 다닌 게 봉사 이력의 시작이다. 이런 식으로 여행을 떠날 때마다 그는 무척 즐거웠고 아내 역시 굉장히 좋아했다.  


이후 속초와 고성의 독거노인 가구를 찾아 쌀과 라면 등을 사서 기부했다. 정신지체를 앓는 아들(임상용, 38)이 생활하는 요양소에도 간식거리를 들고 정기적으로 찾았다. 무려 24년 동안 빠뜨리지 않았다. 그의 이런 선행이 알려져 2005년 MBC 및 강원도 봉사대상, 2007년 대한민국 봉사대상을 받았고, 2012년에는 대통령 표창까지 받았다. 이때 받은 상금 1,800여 만 원도 모두 기부했다.

공원 중간에 걸터 앉아 얘기를 나눴다. 그는 유명인이었다. 등산객 대부분은 그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내 유일한 친구는 설악산” 

숱하게 남들을 도왔지만 그는 친구가 없다. 임기종은 자신을 가리켜 고집스럽고 내성적이고 아부하는 걸 질색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래도 주변에 친한 사람은 있을 것이라고 여겨 당장 집으로 초대해 저녁식사를 대접하고 싶은 친구가 있느냐고 물었는데 그는 서슴없이 “없다”고 답했다. 사람을 만나지 않아서 사기를 당한 일도 없다고 했다. “사람들하고 거리를 두고 다녀요. 누구와도 가까이 하기 싫어요. 저한테 별로 도움이 안 되니까요. 이전에 산장 주인들이나 매점 사람들하고도 친하진 않았어요. 커피만 얻어먹고 집으로 바로 돌아갔어요. 어렸을 때 상처 많이 받았어요. 학벌도 변변찮고 키도 작고 하니까 늘 무시당하고 놀림 받았어요. 어른이 됐어도 주변에서는 짐만 드는 걸 우습게 생각했어요. 친구라고 하면 설악산밖에 없어요.” 


무거운 짐을 지면 허리가 절로 숙여지며 보이는 건 땅뿐이다. 그렇게 누구의 말도 들을 필요 없이 땅만 보고 천천히 가면 결국 목적지에 도착한다. 임기종은 이처럼 평생 단순하게 살았다. 눈앞의 땅만 보고 산 임기종에게 다른 기회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게꾼을 그만 두거나, 다른 직업으로 갈아타거나, 전문 산악인이 된다거나, 구조대가 될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그는 또 일이 힘들 때마다 이를 악물고 성경의 한 구절을 속으로 읊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렇게 하고 나면 자신은 분명 죽어서 천국에 갈 거라고 장담했다. 하지만 임기종은 외로웠다. 그를 반기는 사람들은 봉사활동에서 만난 사람들뿐이었으니 임기종은 계속 남들을 도왔다. “제가 사람들을 돕는 걸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나와 가족들을 먼저 챙겨야지 남들에게 다 퍼 주면 어떻게 하느냐고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굉장히 언짢아요.” 


그가 가족을 등한시한다고? 아내 최순덕(61)의 말을 그대로 옮긴다. 


“우리 남편 잘 생겼죠? 살면서 속 썩인 적이 없어요. 화를 낸 적도 없고, 집에 일찍일찍 들어오고요.”

저항령 계곡에서. 그는 이제 설악산에서 지게를 질 일이 없다. 그럼에도 그는 “새 출발 할 것”이라면서 활짝 웃었다.

10억이 생긴다면… 소년소녀가장 돕고 싶어 

촬영을 위해 비선대까지 이어지는 숲길을 함께 걸었다. 그의 최근 일과는 아침 9시쯤 일어나 아내와 같이 아파트 단지를 돌면서 운동한 다음, 아내를 집에 데려다 놓고 혼자 나와서 어디든지 왔다갔다 하는 것이다. 산에는 가지 않았다. 지게를 오랜만에 진다고 했다. 등 뒤에 지게를 걸치자 임기종은 다른 사람으로 변신했다. 걸음이 빨라 수 차례 “천천히 가자”고 했지만 그는 고집대로 앞서나갔다. 촬영 경험이 많아 카메라 앞에서 포즈도 척척 취했다. 


그는 유명했다. 사람들은 지게를 진 그가 지나갈 때마다 반갑게 인사했다. 어떤 노인은 그를 보자마자 “어이, 친구!”라면서 말을 걸었다. 노인은 임기종을 이렇게 소개했다. 


“내가 이 사람을 30년 봤는데, 대단한 분이야. 지금은 이렇게 길이 좋지만 예전에 길이 안 좋을 때도 하루에 몇 탕씩 했는지 몰라. 일주일 벌어서 몇백 만 원 모이면 동네 어른들 모시고 지리산까지 일주하고. 바보 아니야! 이런 사람 본 적이 없어!” 


밖에 나오자 임기종은 “하하하!” 호탕하게 웃었다. “바깥에 나오면 기분이 좋아요. 산, 나무를 쳐다보면 왠지 힘이 나는 것 같아요. 치료가 되는 것 같아요”라고 했다.  


임기종은 행복하다고 재차 말했다. 마음에 병이 없고 삶을 잘 살았다면서 웃었다. 얼마 전엔 마라토너 황영조가 찾아와 자신한테 사인을 받아갔다고 자랑도 했다. 생계는 아내의 장애수당, 노령연금 등으로 유지하고 있고, 지금 사는 집도 나라에서 마련해 준 거라 드는 돈이 얼마 없다고 했다. 그에게 만약 10억 원이 생긴다면 뭘 하고 싶은지 물었다. 


“할 거 많죠. 가정이 어려운 분들 생계비 대주고, 소년소녀가장 장학금 주고. 노인들 쌀도 챙겨주고, 김장도 해다 주고 싶고. 사업을 한다거나 집을 이사한다거나 그런 건 생각해 본 적 없어요. 세상이 나 같은 사람으로 가득하다면 범죄가 없을 거예요. 경찰 같은 사람들이 필요 없는 거지.” 


임기종은 개척교회를 짓고 싶다고 덧붙였다. 목사가 되고 싶은 건 아니고, 그저 교회를 지으면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신흥사 입구에서 지게를 내려놓으며 그는 설악산에게 고맙다고 했다. 


“설악산은 내 부모고 형제고 친구예요. 너무 고맙죠. 설악산 때문에 내가 알려졌으니. 그럴 만한 인물도 아닌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