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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남한 최고봉 한라산 정상에 신혼부부 돌무덤…어떤 사연이

bySBS

남한 최고봉 한라산 정상에 신혼부부

남한 최고봉 한라산 백록담 남벽 정상에 1982년 대학생 신혼부부의 유해를 묻은 돌무덤이 36년째 있습니다.


긴 시간이 지나자 이 부부의 사연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으며 그만큼 잘 알고 있는 이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신혼부부의 단꿈을 간직한 이들이 어떻게 한라산 정상에서 숨졌으며 그 유해를 묻은 무덤이 해발 1천950m 백록담 능선에 있게 됐을까?


지난 10일 원희룡 제주지사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답방 시 한라산을 방문할 경우를 대비해 점검 차원에서 한라산 정상을 찾았습니다.


기자들과 동행한 당일 산행에서는 통제된 남벽 등산로가 관련 기관의 허가를 받고 임시로 열렸습니다.


남벽 정상에 올랐을 때는 낮 시간대여서 신혼부부의 돌무덤은 따뜻한 늦가을 햇살을 받고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오랜만에 끊겼던 사람의 발길이 무덤 주변으로 이어졌습니다.


봉분은 화산석으로 둘러 쌓은 모습입니다.


무덤 앞 비석에는 김 모(당시 26·홍익대 4학년)씨와 아내 김 모(당시 22·서울 마포)씨 이름과 세례명이 적혀 있습니다.


'1982년 4월 28일 신혼의 아름다움 속에 하느님 곁으로 가다'라는 글귀도 있습니다.


같은 해 4월 29일에는 이들의 사고를 알린 기사도 있습니다.


'28일 하오 1시쯤 한라산 백록담서 북벽 등산로에서 제주에 신혼여행 와 등산 중이던 신혼부부가 숨져 있는 것을 등산객이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같은 날짜 현지신문은 '대학생 신혼부부 등산길 변사'라는 제목과 함께 이 사고를 중요 기사로 다루고 있습니다.

남한 최고봉 한라산 정상에 신혼부부

대학생 신혼부부 사고를 다룬 옛 제주신문 기사

김 씨 부부 시신은 1982년 4월 28일 오전 10시 다른 등산객에 의해 처음 발견됐습니다.


최초 발견자에 따르면 등산 가방을 가지런히 내려놓고 우의를 입은 채 서로가 마주 보며 쓰러져 있었습니다.


시신 옆에는 먹던 과일이 나뒹굴고 있었습니다.


숨진 김 씨 부부는 시신으로 발견되기 20여일 전인 같은 달 4일 결혼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4일 신혼여행 차 제주에 오고서 다음 날인 25일 한라산 성판악 코스를 따라 등산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한라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에 근무하던 신용만(67)씨는 30대 초반이던 당시에 이들 대학생 신혼부부 시신 수습에 동참했습니다.


그는 "김 씨 부부가 정상에 오르기 전 마지막 대피소인 사라대피소에서 1박을 하고 갔다. 이 때문에 정상에는 26일쯤 도착한 것으로 당시 추정했다"고 말했습니다.


26일부터 시신으로 발견된 28일 오전까지 사흘 사이 백록담 정상에서 어떤 사고를 당해 숨진 것입니다.


당시 신문에는 경찰 조사를 인용해 김 씨 부부 시신이 까맣게 타서 있었다는 신고자의 말에 따라 일단 낙뢰에 의한 사망이거나 동사로 추정된다고 보도됐습니다.


그때 날씨에 대해 제주지방기상청 관계자는 "한라산 기상 상황을 1994년부터 자료화하고 있어 1982년 당시 기상을 알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신용만 씨는 "당시 비 오는 날이 있었으나 낙뢰가 있었는지는 정확히 기억할 수 없다"면서 "4월 말이더라도 해발고도가 높은 백록담에는 눈이 쌓이는 등 겨울 날씨나 다름없다"고 말했습니다.


당시에는 등산로가 자연적으로 생겨난 작은 길밖에 없었습니다.


산에서 길을 잃어도 휴대전화 등 구조를 요청할 만한 수단이 없어 조난되는 일이 잦았습니다.


신 씨는 이들 부부가 추위 속에 내려가는 등산로를 찾으며 장시간 백록담 능선을 헤맸을 가능성이 높았다고 말했습니다.


사고 이후 시신을 수습하려고 했으나 날씨가 좋지 않은 데다 요즘처럼 헬기 등 비상 운송수단도 없어 수습작업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신 씨는 "당시 유가족이 정상에 와 시신을 확인하기까지 곁에서 시신을 지키고 있었고 그 이후 여러 사정을 고려해 발견 장소 근처인 남벽 정상에 무덤을 조성하기로 합의했다"고 말했습니다.


한라산의 험한 날씨에 시신이 소실되지 않도록 정성껏 무덤을 조성했고 그 위에 돌무더기를 쌓았습니다.


이듬해인 1983년에는 묘비를 세워 이들의 가련한 죽음을 알렸습니다.


신 씨는 "이 사고를 계기로 한라산에서 조난 사고 등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당국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