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어린 나이가 범죄 자유이용권?"…中 13세 살인 사건에 '소년범 미처벌' 논란

[이슈]by SBS

"어린 나이가 범죄 자유이용권?"…中 13세 살인 사건에 '소년범 미처벌' 논란

SBS

▲ 13세 소년에게 희생된 이웃집 소녀의 유품


중국 랴오닝성 다롄에서 일어난 13살 소년의 살인 사건으로 중국이 충격에 빠졌습니다. 지난 20일 차이 모 군은 이웃에 사는 10살 소녀를 성폭행하려다 흉기로 찔러 숨지게 했습니다. 키 170cm로 어른 체구인 이 소년은 범행 전 피해자의 부모에게 소녀가 어디 있는지를 물었고, 미술 학원에서 돌아오는 소녀를 자기 집까지 유인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소녀의 시신은 집에서 100m 떨어진 덤불에서 발견됐습니다. 차이 군은 범행 이후에도 자신이 범인이 아닌 것처럼 행동했고, 예전에도 적어도 세 명의 여성을 스토킹 한 적이 있다고 중국 언론은 전해졌습니다.중국인들이 이 사건에 더욱 분노하는 건 차이 군이 형사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중국의 형사책임 연령인 14살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중국 공안은 대신 차이 군을 우리나라 소년원과 비슷한 소년관교소(少年管敎所)에 3년 동안 수용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 SBS 보이스(Voice)로 들어보세요!

중국 법상 형사책임 연령에 관한 구분은 1979년에 정해져 지금까지 그대로 적용되고 있습니다. 14살 미만의 경우 나이가 어려 지적 발달이나 사회적 지식이 아직 부족하고, 자신의 행위를 완전히 식별하고 통제할 능력이 없다고 보고 형사 처벌을 면제하고 있습니다. 중국 형법은 또 14살에서 16살 미만에 대해서도 고의살인, 고의 상해로 인한 중상 또는 사망, 성폭행, 강도, 마약 판매, 방화 등의 강력 범죄를 저질렀을 때만 형사책임을 묻습니다. 처벌을 받더라도 성인 범죄보다 처벌 수준이 낮습니다.


● 끊이지 않는 미성년자 잔혹 범죄


중국에서 어린 미성년자들의 범죄는 예전부터 논란이 됐습니다. 2015년 중국 후난성에서는 11세~13세 소년 3명이 기숙사 당직 여교사를 때리고 질식시켜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학생들은 침대 밑에 시신을 숨긴 뒤 교사의 2천 위안, 약 34만원을 훔쳐 달아났습니다. 이들은 부모가 외지에 나가있는 이른바 '리우셔우(留守) 아동'이었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중국 사회에서 많은 논란이 됐습니다.

SBS

최근인 지난해 12월부터 1월 사이에도 중국에서 어린 미성년자가 저지른 살인 사건이 3건 발생했습니다. 한 12살 소년이 담배를 몰래 피우다 어머니에게 들켜 혼나자 흉기로 어머니를 찔러 숨지게 했습니다. 또 13살 소년이 둔기로 부모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13살 소년이 12살 동급생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했습니다.


중국 언론들은 이들 사건의 일부 아이들은 나이 때문에 처벌을 면할 수 있고 다른 범죄를 계속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고 보도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차이 군 사건의 경우도 자신이 14살 미만이라고 말해 처벌을 받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 "형사책임 연령 낮춰야" VS "연령 낮춘다고 범죄 줄어들지 않아"


중국 SNS인 웨이보 등에서 네티즌들은 어린 학생들의 잔혹한 범죄에 경악하며 “형사책임 면제 연령이 범죄를 저지르는 자유이용권이 돼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14살로 돼있는 연령을 낮추는 것이 범죄를 막는 길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중국 언론들은 가정과 학교에서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하거나 인터넷 등 유해한 사회환경 때문에 미성년자들의 범죄가 저연령화, 폭력화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가족과 사회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형사책임 연령을 낮추는 것의 필요성을 조심스럽게 보도하고 있습니다.


물론 반대의 목소리도 적지 않습니다. 보호자와 학교, 사회의 지원 없이는 범죄 연령을 낮춘다고 해서 청소년 범죄가 줄어들지는 않을 거라는 이유입니다. 베이징 청년법심리상담센터의 중춘산 소장은 “소년범들의 특징 중 하나는 범죄를 저지를 때 그 결과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형사책임을 지는 나이를 낮추는 것이 그들이 잘못을 저지르는 것을 막지 못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베이징사범대 펑신린 교수는 “형사책임을 지는 연령에 대해 명확한 규정을 한 것은 처벌보다 교육이 중요하다는 원칙에 따른 것으로, 청소년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와 청소년 범죄자를 교정할 수 있는 센터 설립에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 커지는 형사처벌 연령 하향 조정 목소리


미성년자들의 범죄가 사회문제가 되면서 중국 입법기관 내에서도 법 개정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21일부터 26일까지 베이징에서 중국의 의회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의 상무위원회가 미성년자 범죄예방법과 미성년자 보호법 개정 초안을 심의했습니다.


미성년자 범죄예방법 개정 초안은 미성년자의 범죄 행위를 세가지 등급으로 구분하고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도록 했습니다.(그동안 법상 구체적인 기준이 없다 보니 공안 당국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처벌 수위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 미성년자 보호법 개정안은 학생들의 집단 괴롭힘이나 인터넷 중독 문제 등에 대한 해결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SBS

이번 심의에 참석한 위원들 가운데 일부는 형법에 14세로 된 형사책임 연령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강하게 권고했습니다. 저우민 상무위원은 “범죄를 저지른 14세 미만 미성년자 가운데 일부는 공개적으로 자신은 형사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에 사람을 죽여도 상관없다고 말했다”며 “여러 번 극단적인 잔인한 행동을 하는 이들을 다른 미성년자들과 똑같이 보호해야 하냐”고 말했습니다. 보호자의 책임을 더욱 무겁게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탄린 상무위원은 “미성년자 범죄가 보호자의 직무 수행이 부적절하고, 단속이 엄격하지 못한 것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며 “범죄를 저지른 미성년자의 보호자에게 상응하는 교육과 처벌을 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앞서 올해 3월 열린 전인대에서도 30명의 인민대표들은 14세로 된 형사책임 연령을 12세로 낮추자는 건의를 내놓았습니다. 중국 법조계에서도 많은 인사들이 이에 동조하며 12세로 나이를 낮추고, 현재 14세에서 16세에 적용하는 방안(강력 범죄에 대해 경감해서 처벌) 을 적용하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수원 노래방 집단폭행’ 사건이 일어나면서 14세 미만 청소년을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촉법소년’으로 규정한 현행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논란이 다시 일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와 답변 요건인 20만명이 넘게 참여했습니다. 앞서 소년법 처벌 강화와 관련한 4건의 청원에서 청와대는 “사회는 변화하고 있는데, 1953년에 만들어진 형사미성년자 기준이 지금까지 적용되는 것에 대해 조정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도 있다”며 “처벌 연령을 14세 미만에서 13세 미만으로 낮추는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2018년 8월에 밝혔는데, 행정부와 입법부의 충분한 논의가 필요해 시간이 걸린다”고 밝혔습니다.


중국 정부는 미성년자 형사책임 연령을 낮출 것인지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은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중국 네티즌들은 “비슷한 사건들이 계속 일어나는데 왜 법을 개정하지 않냐”는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중국 CCTV의 앵커는 이번 사건에 대해 “작은 악마'가 활보하고 다니는 것은 비통하고 분노를 자아내는 일이다. 가해자 엄벌뿐 아니라 유사한 비극이 재발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관영언론에서 이번 사건과 최근의 연령 하향조정 필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들을 전하고 있는 것을 보면 중국 정부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송욱 기자(songxu@sbs.co.kr)


▶ [인-잇] 사람과 생각을 잇다

▶ 내가 보낸 영상이 SBS 뉴스로! 제보하기 '클릭'


※ ⓒ SBS & SBS Digital News Lab. : 무단복제 및 재배포 금지

2019.11.04원문링크 바로가기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Copyright © ZUM internet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