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는 이제 범법자 되는 거예요"…꽉 찬 돼지분뇨 통을 어쩌나

[트렌드]by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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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화천 돼지농가, 가축분뇨 이동금지 어느덧 한 달

올해 첫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발생 농가는 10월 9일, 강원도 화천에서 나왔습니다. 긴급행동지침(SOP)에 따라 방역 10km 내 두 농장도 함께 살처분 대상에 포함됐습니다. 나머지 화천 돼지농가 12곳도 바이러스 차단을 위해 돼지 이동은 물론 가축분뇨 반출도 금지됐습니다.


가축분뇨 반출 금지가 시행된 지 한 달이 다 되어 갑니다. 농가의 가축분뇨 저장조는 포화 직전입니다. 우려했던 일입니다. 돼지가 축사에 그대로 남아 있는데, 분뇨를 언제까지 저장조에 담아둘 수 없는 노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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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뇨 통 넘치면 저희는 다 범법자입니다."

10월 15일에 화천 돼지농장주인 장기호 씨를 만났습니다. 살처분은 피했지만, 분뇨 반출 금지가 가장 깊은 고민이라고 얘기했습니다. 분뇨 반출 금지가 장기화하면 축사 내 저장조가 포화하기 때문입니다. 길게는 2주 정도 버틸 수 있다고 말합니다.


장기호 씨는 "분뇨 통이 넘치면 저희는 다 범법자 입니다."라고 자조적인 말투로 얘기합니다. 만에 하나 분뇨가 흘러 하천에라도 흘러가면 지자체로부터 행정처분이나 형사처벌을 받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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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버틸 수 없습니다."

배상건 한돈협회 강원도협의회장은 요새 생업을 제쳐두고 세종청사를 자주 내려갑니다. 강원 화천 농가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만큼 분뇨 포화 문제를 농림축산식품부와 함께 해결하기 위해서입니다. 배상건 회장은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농가의 전화를 수시로 받는다고 합니다. 돼지 농가가 사느냐, 죽느냐 문제가 걸린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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꽉 찬 돼지분뇨 통을 어쩌나…타 지차체 반출 vs 자체 처리

농림축산식품부도 화천 농가의 사정을 잘 알고 있습니다. 분뇨 반출을 허용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화천에는 분뇨 공공처리장이 없습니다. 화천 농가는 그동안 분뇨를 정화방류하거나 농가에 액비(液肥)화하여 살포해 왔습니다. ASF 바이러스는 가축 분뇨에도 묻어있을 수 있는 만큼 농식품부나 지자체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작업입니다.


농식품부는 화천 농가 분뇨를 강원 홍천 소재 분뇨공공처리장으로 옮기는 방안을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홍천 농가도 사정이 녹록지 않습니다. 홍천에도 농가 10여 곳이 있는데, 화천의 분뇨까지 받아줄 만큼 상황이 여유롭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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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 농가는 기존 방식대로 정화방류나 액비(液肥) 살포를 허용해 달라고 호소합니다. 농식품부나 지자체가 원한다면 반출 전에 ASF 검사를 한 번 더 받겠다고 말합니다. 수의 공중방역 전문가인 최농훈 건국대학교 교수도 "화천 12 농가는 발생 농가에서 10km 떨어져 있고, 바이러스 잠복기도 지난 만큼 문제 될 게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합니다.

'가축분뇨 반출 딜레마'가 주는 또 하나의 교훈

애초에 화천에 분뇨 공공처리장이 있었으면 쉽게 해결될 문제였습니다. 이번 사례를 계기로 돼지 농가가 있는 지자체마다 분뇨공공처리시설을 만들어 투명하게 관리하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공동 처리시설이 있으면, 분뇨 반출 차량의 이동 경로도 정해져 관리가 용이할 것입니다. 돼지농가가 개별적으로 분뇨를 처리하다 '본의 아니게' 생기는 방역 허점도 보완할 수 있습니다.


박찬범 기자(cbcb@sbs.co.kr)

2020.11.09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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