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드림' 이룬 어르헝,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들

[트렌드]by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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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저축은행에서는 목포여상 어르헝 선수를 지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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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대로 2022~2023시즌 여자 배구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의 영광은 몽골 출신 최장신 센터 어르헝이었습니다.


어제(5일) 열린 여자 배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 지명권을 가진 페퍼저축은행의 김형실 감독은 가장 먼저 어르헝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어르헝은 벌떡 일어나 단상으로 올라갔습니다. 김형실 감독이 건네는 페퍼저축은행의 붉은 점퍼를 입고 꽃다발을 받은 뒤 환하게 웃었습니다. 현장을 찾은 어르헝의 어머니는 감격에 젖었습니다. 말 그대로 '코리안 드림'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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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의 주인공, 어르헝. 페퍼저축은행의 김형실 감독과 함께 섰다.

프로배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외국 국적의 선수가 전체 1순위에 지명된 건 사상 처음입니다. 행사가 종료된 뒤 어르헝에게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습니다. 어르헝은 "지금 엄청 떨려요. 부모님께서 엄청 좋아해요. 지명이 되고 진짜 울까 말까 고민하다가 울면 안 될 것 같아서 일단 참았어요. 페퍼저축은행에 가서 빨리 언니들과 진짜 친해지고 엄청 열심히 하고 싶습니다"라며 소감을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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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헝은 5년 전 몽골의 한 클럽에서 배구를 시작했습니다. 부모님이 농구 선수 출신이지만, '몸싸움'이 싫다면서 배구를 택했습니다. 배구의 매력에 빠지고 있을 때 어르헝은 인터넷으로 '김연경의 경기' 영상을 보게 됐습니다. 실력은 물론 카리스마까지 넘치는 김연경의 모습에 어르헝은 프로배구 선수가 되겠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부모님께 한국으로 배구 유학을 가겠다는 '폭탄 선언'을 했습니다. 한국 배구를 좋아하던 어르헝의 어머니는 처음에는 유학을 반대했지만, 딸을 결심을 말리지 못했습니다.


에이전시를 통해 한국 유학을 알아보던 어르헝은 2019년 목포여상에 입학했습니다. 190cm가 넘는 큰 키를 자랑하는 어르헝의 신체 조건을 본 목포여상과 정진 감독이 배구부 입단을 허락했습니다. 한국말을 전혀 하지 못했지만, 배구에 대한 열정을 막지 못했습니다. 1학년 때부터 어르헝의 존재가 배구계에 알려졌고, 관심이 쏟아졌습니다.


그러나 국내 V리그에서 뛰려면 반드시 귀화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귀화 단계는 1차 필기시험, 2차 면접으로 진행되는데, 아직 한국말이 익숙하지 않은 어르헝에게 1차 필기시험부터 쉽지 않았습니다. 이때 목포여상 선배이자 국가대표 센터 염혜선의 가족이 어르헝에게 '입양'을 제안했습니다. 입양을 하게 되면 1차 필기시험이 면제되기 때문에 귀화가 한결 수월해집니다. 어르헝의 부모는 처음엔 입양을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배구에 대한 딸의 열정과 염혜선의 가족이 보여주는 진심에 입양을 허락했습니다. 지난해 8월 그렇게 어르헝은 '염 어르헝'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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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헝은 목포여상에서 배구 기본기를 배우며 나날이 성장했습니다. 195cm 역대 최장신에서 나오는 타점 높은 공격과 블로킹은 어느 구단도 탐낼 재능이었습니다. 1순위 지명은 당연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어르헝은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지 않았습니다. 지난 2일 목포에서 만난 어르헝은 "드래프트가 이제 사흘밖에 남지 않았는데, 너무 떨려요. 가장 먼저 이름이 불리면 울 거 같아요. 지금까지 버텨온 힘든 시간이 생각날 거 같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우선지명권이 있는 페퍼저축은행이 전체 1순위로 어르헝을 지명하면서 어르헝은 프로배구의 일원이 됐습니다. 그러나 코트를 밟기 위해선 앞서 언급한 귀화 시험을 반드시 통과해야 합니다. 한 차례 면접에서 탈락한 어르헝은 당분간 면접 준비에 매진할 생각입니다. "면접에 역사 과목이 나오는데 정말 어려워요. 다 외워야 하고, 해야 할 게 많아요. 그런데 저는 더 열심히 할 겁니다. 빨리 면접을 통과하고 코트에 서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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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헝은 감사 인사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학교 선생님들이랑 학교, 배구부 친구들 덕분에 지금까지 버틴 거 같아요. 저희 혜선 언니와 한국 아버지, 어머니께서 지금까지 엄청 도와주셔서 이 자리에 서게 된 거 같아요.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인사드리고 싶어요."라며 고개를 꾸벅 숙였습니다.


목포여상에는 '제2의 어르헝'이 되기 위해 몽골에서 온 1학년 후배들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어르헝은 자신처럼 '코리안 드림'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후배 선수들에게도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제가 몽골에서, 외국에서 왔잖아요. 처음에는 '엄청 힘들겠다'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지금까지 해보니까, 후배들에게 '이렇게 할 수 있다'라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그냥 '꿈은 이루어지니까. 꿈은 이루어야 된다'라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후배들이 열심히 했으면 좋겠습니다."


유병민 기자(yuballs@sbs.co.kr)

2022.09.11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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