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여행 ]

쪽빛 품은 한반도···
서해는 눈 부셨다

by서울경제

충남 '태안 8경' 가의도


죽도·사자바위 등 거쳐가는 40분 뱃길

다도해 유람선 탄 듯 눈이 호사를 누려

선착장 도착하니 이국적 해변이 맞이해

기암괴석·해식동굴···곳곳 볼거리 가득

남쪽끝엔 '솔섬 비경·푸른 바다' 낭만적

인근 궁시도선 괭이갈매기떼가 장관

서울경제

‘나는 혼자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것을 수없이 꿈꾸어 보았다. 그러면 나는 겸허하게 아니 남루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그렇게 되면 비밀을 간직할 수 있을 것 같았다.(장 그르니에의 산문집 ‘섬’ 중에서)’

‘섬’이라는 단어는 프랑스 철학자 그르니에의 이 글귀를 떠올리게 한다.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고, 아무나 들어갈 수 없으며, 전설로 가득한 곳. 미지의 땅인 섬은 뭍사람들에게 늘 호기심의 대상이다. 차를 타고 가서 다시 배로 이동하는 것부터 배편이 많지 않고, 인프라가 취약한 것까지 섬 여행은 외지인들의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감내할 만큼 섬 여행은 매력적이다.


충남 태안은 유독 섬이 많은 곳이다. 지도를 펴보면 육지 주변으로 크고 작은 섬들이 흩뿌려지듯 자리하고 있다. 그중 가의도는 만리포·몽산포·꽃지해변 등과 함께 ‘태안 8경’에 꼽힐 정도로 빼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태안에서는 가의도를 ‘서해의 하와이’로 소개하기도 한다. ‘가의’란 이름을 가진 중국 사람이 이 섬에 유배를 살아 그때부터 가의섬으로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데, ‘가의’를 따라온 수행원만 남겨져 지금은 주씨 성을 가진 이들이 많다고 한다.


가의도는 육지(근흥면)로부터 5.5㎞가량 떨어진 태안 지역 유일의 유인도다. 최근 안흥과 신진도를 연결하는 신진대교가 완공되면서 가의도는 육지와 더 가까워졌다. 안흥외항에서 출발하는 게 가장 빠르지만 신지항이나 모항항에서 출발해도 큰 차이는 없다. 가장 거리가 먼 모항항에서 낚싯배를 타고 가도 가의도까지 4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가의도로 가려면 죽도·부억도·목개도·정족도·사자바위·거북바위 등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날씨가 좋으면 유람선을 타고 인근 섬까지 한꺼번에 둘러보는 듯한 호사를 누릴 수 있다.

서울경제

가의도로 가려면 숫사자가 갈기를 날리며 앉아 있는 모양의 사자바위를 통과해야 한다.

배를 타기 전에는 멀미약부터 챙겨 먹는 게 좋을 것이다. 아름다운 섬으로 소문 난 가의도로 가는 길은 험난하다. 서해에서 가장 조류가 거세기로 유명한 ‘관장목’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대형 해난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던 곳으로 도성으로 곡식을 실어나르던 조운선·세곡선이 수없이 침몰했다. 지난 2007년 허베이스피리트호 원유 유출 사고가 난 지점도 바로 이곳이다. 하지만 거친 파도를 뚫고 가의도 북항에 도착하면 보상이라도 하듯 ‘선물’ 같은 조망이 펼쳐진다. 선착장 바로 옆 작은 몽돌해변은 고운 모래와 에메랄드빛 바다가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물고기 떼가 노는 장면도 볼 수 있다.


방파제를 따라 마을로 연결된 오르막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길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그중 북항에서 남항으로 이어지는 전망대길은 섬의 절반을 뚝 잘라 가로질러 가는 길이다. 가의도 주민들은 대부분 육지와 가까운 북항 주변에 모여 살고 있다. 전망대길은 섬마을을 관통하는 길이기도 하다. 길 주변 곳곳에 만개한 관상용 양귀비꽃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마을이 끝나간다. 마을 정상에 다다를 무렵 수령이 500년가량 된 은행나무 한 그루가 마을을 내려다보고 선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앞에서 소개한 ‘가의’라는 중국인이 가져다 심었다고 한다.

서울경제

가의도 남항은 북항에 배를 대지 못할 때 이용하는 예비 항구다.

마을을 통과해 작은 고갯길을 넘어가면 저 멀리 작은 항구가 눈에 들어온다. 이 섬의 또 다른 항구인 남항이다. 남항과 북항은 바다 색감부터가 다르다. 북항이 짙고 강렬한 색상을 띤다면 남항은 쪽빛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낭만적인 색감의 바다가 펼쳐진다. 이곳 주민들에게 남항은 파도가 거세 북항에 배를 대지 못할 때나 사용하는 예비 항구다. 평소에는 파도가 거세고 바람이 많이 불어 사람이 살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한다. 2010년 태풍 곤파스로 방파제가 부서졌을 정도다. 하지만 여행객의 눈에 남항은 더없이 좋기만 하다. 보수공사를 마친 높은 방파제 위로 올라서면 항구 바로 앞에 작은 솔섬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해 질 녘 사진찍기 좋은 포인트다. 물이 빠지면 걸어 들어갈 수도 있다.

서울경제

가의도는 육쪽마늘 종구 생산지로 유명하다.

이 작은 섬에 뭐 특별한 게 있을까 싶지만 신장벌해수욕장, 독립문바위 등 기암괴석, 해식동굴 같은 볼거리가 곳곳에 숨겨져 있다. 사방에서 보는 섬의 모양이 다 다르고, 특히 해가 뜨고 질 때 풍경은 큰 매력이다. 최근에는 북항 주변으로 민박·펜션이 들어섰고 안흥외항에서 하루 두 차례 정기여객선이 운항 중이다. 인원이 많다면 어선을 빌려 타고 들어가는 방법도 있다. 가의도는 육쪽마늘 종구(種球) 생산지로도 유명하다. 육쪽마늘이라면 서산을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태안이 서산에서 분리되기 전에는 주로 태안지역에서 마늘을 생산했다고 한다. 가의도에서 수확된 씨마늘은 육지 마늘 농가에 보급된다. 밭을 일굴 만한 공간이 부족한 탓에 섬 여기저기에 마늘을 심어놓은 모습이 강원도 오지 산골 마을을 떠올리게 한다.

서울경제

궁시도는 매년 3만여마리의 괭이갈매기떼가 산란을 위해 찾는다.

섬을 빠져나오기 전에 꼭 들러야 할 곳을 꼽으라면 가의도 인근 궁시도를 빼놓을 수 없다. 섬 모양이 활시위에 걸린 화살을 닮았다고 해서 ‘궁시도’다. 가의도에서 배를 타고 다시 서쪽으로 40분가량 달리면 도착하는 이곳은 인근 난도에 살던 괭이갈매기들이 서식지를 찾아 날아들어 알을 낳기 시작해 지금은 연간 3만여마리가 산란을 위해 찾는다고 한다. 보통 4~5월에 알을 낳은 뒤 5~6월 부화하는데, 하늘을 가득 메운 괭이갈매기떼가 장관이다. 9월이면 섬이 텅 빈다고 한다.

서울경제

온갖 꽃과 식물로 가득 찬 천리포수목원에 들어가면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다.

다시 육지로 돌아와 태안에서 들를 만한 곳으로는 천리포수목원이 있다. 우리나라 초창기 수목원으로 1만6,700여종의 식물이 식재돼 있으며 인근 천리포해변과 꽃이 한데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천리포해수욕장과 태안 해변길 5코스 노을길, 해변길 7코스 바람길, 안면도자연휴양림, 청산수목원 등도 여행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글·사진(태안)=최성욱기자 secret@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