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컬처 ] 인터뷰

'사라진 시간' 정진영 감독 "내가 하고 싶은 스타일로···어떤 평을 받더라도"

by서울경제

서울경제

33년간 연극, 영화, 드라마, 시사교양 프로그램 등 다양한 활약을 펼쳐온 배우 정진영이 ‘신인 감독’으로 변신해 관객을 만난다. 오랜 시간 연출의 꿈을 품어왔던 그가 직접 각본을 쓰고, 심혈을 기울여 연출을 한 영화 ‘사라진 시간’이 관객들의 평가를 받을 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정진영은 첫 연출작 개봉을 앞두고 “발가벗겨진 느낌이다. 굉장히 이상하다”며 한껏 긴장한 모습이었다.


“개봉을 앞둔 기분이 이럴 줄 몰랐어요. 후반 작업을 작년에 다 끝냈는데 담담할 줄 알았어요. 이준익 감독이 ‘이제 개봉 앞두면 미칠걸’ 이러시더라고요. 작품 연출을 그렇게 많이 하고도 개봉 전엔 떨린다고 하셔서 ‘유난이다’ 싶었죠. 근데 제가 겪어보니까 발가벗겨지는 느낌이더라고요. 배우도 평가를 받는 자리에 있지만, 자신의 캐릭터와 연기를 평가받는 거잖아요. 이번 작품은 제가 연출에 시나리오까지 쓴 거라 나를 발가벗기고 다 드러내는 상황이란 생각이 들어요. 굉장히 이상해요.”


‘사라진 시간’은 의문의 화재사건을 수사하던 형사가 자신이 믿었던 모든 것이 사라지는 충격적인 상황과 마주하면서 자신의 삶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를 그린다. 자신의 삶을 추적해 나가며 예측 불허의 과정을 그리는 이 영화는 삶이란 무엇인가를 되돌아보게 한다. 일반 상업영화에서 볼 수 없는 기묘한 이야기와 설정은 관객에게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어렵다기 보다 논리적인 해석과 다른 경로로 와 닿는 이야기라 생각해요. 사실 그 안의 이야기는 단순하고 쉽죠. 오히려 관객들이 막 웃으면서 볼 수 있는 영화이길 바라요. 이 영화로 말하고 싶은 화두 같은 것들이 다소 관념적일 수는 있어요. ‘나는 누구인가’라는 이야기인데, ‘내가 생각하는 나’가 있고 ‘남이 생각하는 나’가 있는데 우리는 끊임없이 그것과 갈등하잖아요. 직장이나 친구사이에서도 ‘진짜 나는 뭐지?’, 남들이 생각하는 나로 맞춰 사는 건 아닌가, 대부분 그렇게 살고 있잖아요. 이런 생각을 러닝타임 내내 관객들과 함께 이야기의 파도를 타고 놀고 싶었고, 계속 다른 파도를 넘어가는 이야기 구조로 가고 싶었죠. 어려운 도전이라기보다는 이런 방식으로 그 화두를 전달하고 싶었어요.”


정진영은 이번 영화 시나리오를 쓰면서 논리적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관습적 이야기는 버리고 기존의 시나리오 작법과는 다른, 관객들이 익숙하지 않은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일부러 시나리오를 쓰면서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단다. 규칙에 어긋난 자신의 시나리오를 본 이들이 지적을 하며 고치라고 할 게 뻔하기 때문이었다. 정진영은 동그란 돌이 아닌 모난 돌이 되길 원했다.


“처음으로 초고를 보여준 사람이 조진웅이에요. 초고를 쓰자마자 조진웅에게 보냈는데, 하루 만에 하겠다고 답이 왔죠. 정말 고마웠어요. 보통의 경우에 주연배우 의견 받아서 시나리오를 조금씩 고쳐주는데 조진웅이 ‘내가 나온 부분 토씨하나 바꾸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그가 시나리오를 좋게 보고, 이야기를 믿어준다는 게 고마웠어요. 조진웅을 캐스팅하고 어깨가 으쓱해져서 다음으로 이준익 감독에게 시나리오를 보여드렸어죠. 다행히 좋은 시나리오라고 해주셨어요. 그러면서도 ‘영화를 만들어졌을 때는 평가가 분명히 엇갈릴 수 있어. 그건 네가 감당해나가야 해’ 하시더라고요.”

서울경제

정진영의 연출 데뷔 소식에 유명 배우들이 영화에 우정출연을 해주겠다고 여기저기서 연락이 왔다. 그러나 정진영은 이를 모두 고사했다. 시나리오 쓸 때부터 주인공으로 염두에 둔 조진웅부터, 배수빈, 정해균, 차수연, 이선빈, 신동미, 장원영까지 연기파 배우들 하나하나 정진영이 직접 캐스팅했다.


“저와 함께 연기를 했던, 좋아하는 후배들에게 책을 줬어요. 거의 다 대부분 한 번에 오케이를 해줘서 너무 고마웠죠. 제가 연기를 같이 안 해봤던 배우는 차수연씨 밖에 없어요. 시골 마을 분들은 어줍잖지만 오디션을 봤어요. 아직 얼굴이 안 알려진 분들을 모시고 싶었거든요. 배우 출신이다 보니 영화 연출 소문이 나니까 여기저기서 ‘하나라도 해줄게’, 품앗이 하는 느낌으로 도와주려고 했지만 다 고사했죠. 굉장히 낯선 이야기를 다루는데 유명한 얼굴이 있으면 이상해질 것 같았거든요. 그래도 응원을 해주고 관심을 가져줘서 고마웠어요.”


정진영이 이처럼 용기를 내고 감독에 도전하게 된 건 배우 겸 싱어송라이터 김창완의 영향이 컸다. 드라마 ‘화려한 유혹’을 통해 김창완과 호흡을 맞춘 정진영은 김창완의 이야기를 듣고 망설였던 감독의 꿈을 조심스럽게 펼칠 수 있었다.


“드라마 ‘화려한 유혹’ 이후 연출의 꿈이 피어올랐어요. 김창완 선배와 같이 연기를 한 적이 있는데, 선배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했을 줄 알았는데 대학교 때 기타를 배웠다고 하더라고요. 말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그렇게 음악을 하세요?’ 물어보니 ‘나는 젊었을 때 비틀즈 음악도 안 듣고, 내가 생각하는 대로 음악을 해’ 이러시더라고요. 장말 놀랐어요. 저런 아티스트가 대학교 때 기타를 배워서 어떻게 음악을 할까 생각했죠. 저도 체계적인 연출 학습이 안 돼 있어요. 연출과 연기는 전혀 다른 일이죠. 주춤주춤 망설일 수 밖에 없었는데 김창완 선배의 이야기를 듣고 나도 할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학습하고 그런 것보다 내가 느끼는 대로 자신만의 것을 한다면 그게 하나의 언어가 될 수 있겠구나.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스타일로 가보자 생각했어요. 그게 어떤 평을 받더라도요.”

서울경제

수많은 고민 끝에 만들게 된 영화 ‘사라진 시간’은 처음엔 독립영화로 만들 생각이었다. 다소 실험적이고 낯선 이야기에 예산을 많이 투자하게 되면 영화가 방향을 잃는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조진웅이 캐스팅되고, 다른 제작자가 투자를 하면서 제법 큰 영화의 모습을 갖췄다. 결과적으로 개봉하는 판세가 상업영화가 됐다.


“처음엔 누구에게 피해를 끼치면 안 될 거 같아서 제 사비로 만들려고 했어요. 공동제작자에 제 이름이 올라간 이유죠. 조진웅이 자신이 출연한다고 선언을 해버려서 이렇게 커졌어요. 그래도 제가 예산 한계선을 정했어요. 규모가 커지면 제가 하고자 하는 방향과 달라졌을 거예요. 큰 영화로 보이지만, 예산이 작은 영화예요. 예산이 적다고 우습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결과적으로 첫 작품을 보다 더 많은 관객들에게 보여줄 수 있게 된 정진영이다. 오랜 꿈을 성공적으로 이룬 만큼 그의 두 번째 작품의 계획에 대해서도 궁금해졌다.


“다음 작품이요? 아직은 모르겠어요. 첫 작품은 오랜 꿈이니까,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작품 하나를 하는 건 할 수 있지만, 두 번째 영화는 그런 마음 가지고는 할 수 없어요. 영화적 가치가 있어야 하잖아요. 다음 작품을 하겠다는 계획은 없어요. 지금은 개봉이라는 산꼭대기에 올라가 있는것 같아요. 그 다음 산은 언제 갈지 모르겠어요.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곳에 던져진 느낌이에요.”


이혜리기자 hyer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