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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크 ]

“아이돌도 빠졌다”···수박 게임으로 돌아보는 팬 게임의 역사

by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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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BTS), 아이유, 엑소, 트와이스, 세븐틴, 하이라이트··· 아이돌부터 해리포터,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 모바일게임 ‘로드 오브 히어로즈’까지.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팬들에 의해 ‘수박 게임’의 주인공으로 재탄생했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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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싸’ 게임으로 주목을 받은 수박 게임은 누구나 간단하게 즐길 수 있는 기본적인 형태의 테트리스 게임입니다. 포도알, 귤, 레몬, 복숭아, 파인애플, 수박 등 여러 종류의 과일을 떨어뜨리고 같은 모양끼리 합치면 점수를 얻을 수 있습니다. 가장 큰 과일인 수박을 완성시키면서 오래 버티는 게 목표입니다. 간단하면서도 중독성이 만만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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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단순한 게임이 갑자기 인터넷상에서 인기를 얻은 배경에는 ‘팬덤’이라는 비밀이 존재합니다. 이 게임에서는 PNG 파일 형식의 각 과일 이미지를 원하는 이미지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개발 플랫폼인 깃허브에 접속해서 누구든 간단하게 커스터마이즈를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 배우 혹은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속 주인공 버전의 수박 게임을 만들어서 배포하고, 같은 팬덤 사람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것이죠. 이런 점이 폭발적인 확산을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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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 게임은 중국에서 왔는데요. 중국에서도 현재 수박 게임은 2021년 첫 인기 게임 반열에 올랐습니다. SNS인 웨이보상에서 이 게임과 관련한 토론 수가 14억건이 돌파했다고 하니 놀라운 수준이죠. ‘총공(팬덤이 특정 목표를 위해 단체로 투표 등 집단행동을 하는 것)’을 하듯 게임 점수를 경신하기 위해 밤을 샜다는 경험담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아이돌 그룹 하이라이트의 가수 양요섭 역시 인스타그램에 점수 인증샷과 함께 “상위 10% 진짜 딱 한 번만 해보자”라는 글을 게시하며 전의를 불태우기도 했습니다.


이 게임은 전통적인 게임 전문 개발사가 아닌 모바일 소셜 게임을 기반으로 한 비즈니스 홍보 플랫폼 ‘미더어 테크'에서 제작했다고 합니다. 간단한 게임으로 사람들의 심리를 건드렸으니 이미 엄청난 마케팅 효과를 얻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최근 국내에서 급격하게 확산하고 있는 ‘퍼스널 컬러 테스트’, ‘직장 내 유형 테스트’ 등 각종 심리 테스트 역시 이와 유사한 마케팅 수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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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 게임은 “내 우상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팬심(Fan+心)을 건드려 성공했죠. 이런 ‘팬 게임(Fan game)'은 이미 역사가 깊습니다. 일종의 2차 창작물이면서도 하나의 장르를 형성하고 있죠. 팬 게임은 ‘쯔꾸르’라고 불리는 일본 카도카와사의 게임 제작 툴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복잡한 코딩 작업 없이 게임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패미콤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는 게임계 조상님, 록맨이 대표적인데요. 2017년 록맨의 팬들이 모여 내놓은 ‘메가맨 2.5D(록맨 2.5D)’는 원작의 매력을 잘 살린 팬 게임이라는 호평을 받았습니다. 록맨 특유의 플랫폼 액션을 원근감 있는 2.5D(2.5차원)으로 구현했고, 기존 록맨과 달리 협동 모드도 추가됐습니다. 록맨 시리즈 신작 출시가 줄어들고 제작사 캡콤에서 내놓은 후속작들이 혹평을 받으면서 오히려 팬 게임이 더 큰 인기를 누린 케이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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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게임 플랫폼 ‘스팀(Steam)’으로 잘 알려진 밸브 코퍼레이션의 1998년작 ‘하이라이프’를 리메이크한 팬 메이드 게임, ‘블랙 메사(Black Mesa)'도 빼놓을 수 없겠죠. 2006년 프로젝트 시작 후 무려 14년 만인 지난해 3월 정식 버전을 출시했으니 여느 게임 못지 않은 스케일입니다. 블랙 메사는 FPS(1인칭 슈팅게임) 게임으로, 하프라이프의 세계관 속 블랙 메사 연구소에 착안해 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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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도 디지몬, 단간론파, 죠죠 등 각 원작의 세계관과 ‘밈(meme)’을 바탕으로 한 팬 게임들이 다수 출시돼 있습니다. 최근에는 게임 스트리밍 산업 규모가 커지면서 라이브 방송을 하는 전문 스트리머나 유튜버 팬덤이 커졌죠. 이들이 직접 팬들이 만든 게임을 플레이하는 장면을 방송하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간단한 쯔꾸르 게임도 있지만, 일반 게임과 비견할 만한 퀄리티의 팬 게임도 종종 눈에 띕니다.


팬 게임은 창작의 기반이 팬심에 있다는 점에서 평가절하되기도 합니다. 원작이 따로 있기 때문에 어엿한 하나의 창작물로 인정받기도 쉽지 않죠. 하지만 누군가를 힘껏 좋아하는 마음이 넘쳐흘러 창작의 동력이 된다는 것, 이보다 더 멋진 일은 찾기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오지현 기자 ohjh@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