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항포에 봄바람 살랑부니 돛을 높이 올려라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바람과 태양 온 몸 맞으며 인생도 쾌속행진/이순신 장군 호령하던 고성 당항만 요트천국·서퍼낙원으로/‘올록볼록’ 송학동 고분군 SNS 뷰맛집 등극/‘알록달록’ 무학마을 골목길은 동화나라/통영 나폴리농원 편백 피돈치드 샤워로 힐링
고성 당항포 크루저요트 |
당항포에 따뜻한 봄바람 분다. 파도를 따라 천천히 미끄러지다 돛을 높이 활짝 펼치자 배는 한순간 휘청하더니 먼바다로 쏜살같이 나아간다. 머리카락을 마구 휘날리는 바람, 온몸으로 쏟아지는 태양의 따뜻함 , 힘차게 물살을 가르는 소리, 손님이 반가운 갈매기들의 노래. 앞으로 펼쳐질 삶들은 지금처럼 늘 쾌속 항해하기를. 눈을 감고 잠시나마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며 마법의 주문을 걸어본다.
고성 당항포 요트 |
#당항포에 봄바람 분다, 돛을 높이 올리자
경남 고성군 당항포. 화려하고 멋진 하얀 옷을 입은 크루저요트 서너 척이 푸른 바다에서 봄바람을 즐기는 풍경이 아주 평화롭다. 높이 솟은 돛은 바람을 잔뜩 머금어 한껏 부풀어 올랐다.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아름다운 풍경에 마음도 부푼다. 편안하게 바다를 즐기는 크루저요트에 올랐다. 속도를 올리자 뺨을 스치는 상쾌한 바닷바람과 신나게 울려 퍼지는 팝음악의 리듬이 어우러지며 바다여행의 낭만을 더한다. 새우깡을 꺼내 들자 갈매기들이 귀신같이 알아챈다. 어디선 갑자기 떼로 몰려 바다 여행의 동반자가 돼 주니 심심하지 않다. 갑판 한복판에는 출렁출렁하는 그물망을 만들어 놓았다. 아래가 뻥 뚫려 있어 그물에 누우면 아찔하게 푸른 바다에 안긴 듯하다. 팔베개를 하고 푸른 하늘과 떠가는 하얀 구름을 올려다본다.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달콤한 스파클링 모스카토 다스티 한 잔까지 곁들이면 요트를 타고 세계일주하는 영화 속 주인공으로 만들어 버린다.
당항만 풍경 |
당항포관광지를 끼고 있는 당항만은 고성군 회화면과 동해면에 걸쳐 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선조 25년(1592)과 27년(1594) 두 차례에 걸쳐 왜선 57척을 전멸시킨 ‘당항포해전’ 대첩지로 잘 알려진 곳이다. 장군이 호령하던 바다는 이제 사계절 ‘요트 천국’, ‘서퍼들의 낙원’이 됐다. 전국에서 해양스포츠 마니아들이 몰려들 정도로 뛰어난 천혜의 환경을 갖췄기 때문이다. 어장이 없어 선박의 왕래가 많지 않은 데다 바다이지만 사방이 막혀 거대한 호수처럼 생겨 큰 파도가 거의 없다. 또 겨울 평균 기온이 섭씨 5∼6도로 영하로 떨어지지 않아 일년 내내 바다를 즐길 수 있다는 점도 큰 매력이다. 이 때문에 초등학생은 물론, 성인 초보자들도 아주 안전하게 해양레포츠를 시작할 수 있는 곳으로 인기가 높다.
제트스키와 크루저요트 |
고성군에서 운영하는 고성해양레저스포츠학교를 찾으면 된다. 매년 6000명 정도가 다녀가며 딩기요트, 크루저요트, 윈드서핑, 카약, 래프팅 등 취향에 맞게 즐기는 다양한 해양레포츠 시설이 마련돼 있다. 딩기요트와 윈드서핑은 초보자들도 30분∼1시간 정도의 교육을 받으면 당일 요트와 서핑보드에 올라 봄바람을 즐기며 스트레스를 실컷 날릴 수 있다. 해양레저스포츠학교 유근원 수석교관은 “해양레포츠의 가장 큰 매력은 자연을 온몸으로 만끽하면서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내는 과정”이라며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우울증이나 일상의 스트레스 해소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인근 고성마리나리조트에서도 크루저요트, 제트스키 등을 이용할 수 있다. 2019년 8월 문을 연 리조트는 투숙객들에게 한시적으로 25인용 대형 크루저 요트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투숙객이 아닌 일반인들도 오는 4월부터는 유료로 크루저요트를 타고 당항포를 1시간 정도로 항해할 수 있다.
당항포는 바다를 곁에 두고 운전하는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로도 인기가 높다. 동진교 인근 동해면 해맞이공원에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해안도로를 따라 마동호 방조제 방면으로 달리다 보면 좌부천항 등 아담하고 예쁜 항구가 끊임없이 등장한다. 포구에 차를 잠깐 세우고 호수 같은 푸른 바다를 감상하며 멍때리기도 좋다. 마동호 방조제를 건너 다시 동진교 방면으로 길을 잡으면 만나는 당항포 관광지는 코로나19로 운영을 중지했다 지난달부터 외부시설만 다시 문을 열었다. 충무공 테마 중 당항포 전승기념탑과 충무공 기념사당인 송충사 등을 둘러 볼 수 있다. 공룡 테마 중에는 공룡 인형들로 꾸민 공룡동산이 개방됐고 실내시설인 공룡나라식물원도 운영 중이다.
송학동 고분군 |
#SNS 뷰맛집 송학동 고분군과 무학마을 벽화골목
‘공룡의 고향’인 고성은 고대국가 소가야의 흔적도 남아있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는 소가야를 고성이라고 지목하는데, 대표적인 유적이 송학동 고분군이다. 경주 대릉원 고분이나 대구 불로동 고분처럼 규모가 크지 않지만 올록볼록 작은 동산 같은 고분 14기가 파란 하늘 아래 아름답게 펼쳐진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다. 이 때문에 연인들이 예쁜 사진을 찍는 핫플레이스로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입소문이 났다. 국가사적으로 관리하는 곳으로, 정해진 산책로만 따라 가야 한다. 길을 벗어나거나 고분에 오르면 관리인에게 혼쭐 날 수 있다.
송학동 고분군 |
마을 사람들이 즐겨 찾는 쉼터이기도 하다. 고분 아래 드넓게 펼쳐진 잔디밭에는 개구장이 두 아들과 엄마가 꼬리잡기 놀이를 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평화롭다. 이곳에서 보면 산책로를 따라 걷는 이들 뒤로 고분군이 그림처럼 어우러진다. 고분군은 이 지역 소가야 지배층의 묘역으로 추정되는데, 인근 고성박물관에서는 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과 고성의 역사·문화를 살펴볼 수 있다.
무학마을 벽화골목 |
무학마을 벽화골목 |
고분군 아랫동네는 무학마을. 골목 입구 항아리 위에 걸터앉은 귀여운 소년소녀 인형이 낯선 여행자에게 반갑게 인사한다. 소가야문화보존회와 고성미술협회가 낡은 골목을 동화세상으로 알록달록 꾸몄다. 많은 벽화거리를 가보았는데 무학마을 벽화가 으뜸일 정도로 수준이 아주 높은 이들이 담벼락을 예쁘게 단장해놓았다. 덕분에 어디서 찍어도 예쁜 인생샷을 얻는다. 벽화마을 존재를 모르고 우연히 찾은 여행자들에게는 뜻밖의 선물이다.
나폴리농원 동백 |
나폴리농원 명상의 길 |
#편백나무 피톤치드 샤워하는 통영 나폴리농원
차를 몰아 ‘한국의 나폴리’ 통영으로 달린다. 코로나19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기 아주 좋은 숲 ‘나폴리 농원’을 찾았다. 산양읍 미륵산 편백나무 숲에 있는 농원에 들어서자 활짝 핀 동백이 화사하다. 입구에서 신발과 양말을 모두 벗으란다. 맨발만 허용되는 이유가 있다. 숲의 오솔길은 편백나무 톱밥이 두툼하게 깔려 있으며 톱밥에 선구효소인 지모겐(zymogen)을 섞어 자연발효 시켜 놓았다. 주인장이 매일 오전 4시 새로운 톱밥을 깔아주는데 맨발로 걸어야 발바닥을 통해 이 효소를 흡수해 인체의 면역력을 높여준다고 한다.
나폴리농원 톱밥길 |
나폴리농원 기(氣) 충전소 |
엄마 품처럼 푹신푹신한 오솔길에 발을 살포시 얹는다. 수지침을 맞는 듯 톱밥이 발바닥을 건드리는 자극이 신경세포를 따라 온몸으로 퍼진다. 그리고 강렬한 편백나무 특유의 편백향. 숲으로 들어서자마자 피톤치드로 샤워하는 기분이 들 정도다. 다른 편백나무 숲보다 향이 훨씬 강한 것은 나무 수령이 13∼25살로 젊기 때문이란다.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는 전성기가 있듯, 편백나무도 이 정도 나이 때 피톤치드가 가장 많이 방출된다고 한다. 천천히 걸으면서 호흡하니 폐 속의 공기들이 맑게 정화되는 기분이다. 편백 피톤치드는 아토피, 비염, 감기 등에 효과가 좋고 스트레스 해소에도 큰 도움이 된다.
나폴리농원 풍욕 |
편백나무통 족욕 |
피라미드 모양의 기(氣) 충전소와 음이온길을 지나면 풍욕을 즐기는 잔디밭이 등장하는데 전체 코스 중 이곳의 편백향이 가장 강렬하다. 편백나무를 잘라 곳곳에 놓았기 때문이다. 잔디밭에 편안히 누워서 한숨 자면 된다. 몸을 이리저리 굴리다보면 피톤치드가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이어 피톤치드가 유입되는 치유의 돔에서 폐를 청소하고 원예 테라피의 길을 지나면 해먹쉼터다. 흔들거리는 해먹의 그물망에 몸을 맡긴 채 눈을 감고 자연의 소리에 푹 빠진다. 걷느라 고생한 발은 피톤치드 족욕으로 위로하면 된다. 따뜻한 물이 담긴 편백나무 통에 발을 담그자 하루의 피로가 사라진다.
고성·통영=글·사진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