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짱' 보디빌더의 성공 편법…'약물의 유혹'에 빠지다

심층기획

도핑 적발 10건 중 7건 ‘보디빌딩’… 잇단 ‘약투’ 파문 / 약물 이용은 선택 아닌 필수 인식 / 대회 한달 전까지 매일 약물 복용 / 사전 검사 뒤 일주일 전까지 먹어 / 심근경색·심장마비 등 부작용 불구 / 우승 따른 큰 보상위해 기꺼이 감수 / PT에 필요한 스펙 얻으려 참가 늘어 / 일반인도 온라인 통해 손쉽게 구입 / 의약품 불법유통 2018년 2만여건 달해 / 판매자만 벌주는 약사법 개정 지적

'몸짱' 보디빌더의 성공 편법…'약물

“약물이 두려운 건 육체의 파괴가 아니라 정신의 파괴입니다. 외면이 아닌 내면을 찾길 바라요. 나는 사랑받지 못한 트라우마를, 주변 탓하고 내 탓을 하면서 이런 괴물이 됐어요. 여러분은 이런 슬픔을 경험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지난해 말 보디빌더 박승현씨가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 자신의 약물 이용 사실을 공개하면서 고백한 내용이다. 그간 쉬쉬하던 보디빌딩·피트니스 업계의 광범한 약물 이용 행태와 그 부작용을 폭로한 박씨의 영상은 이후 다른 보디빌더의 고백으로 이어지면서 일명 ‘약투’(약물과 ‘미투’가 합쳐진 말) 운동이 일고 있다. 실제 보디빌더의 금지약물 이용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도핑(운동선수의 약물 이용) 검사 적발 선수 중 70% 이상이 보디빌딩 종목에서 나올 정도로 해당 업계 내 약물 이용은 이미 광범하게 퍼진 상태다. 더 큰 문제는 전문 선수만이 아닌 일반인까지 부작용에 대한 충분한 인식 없이 약물에 손을 뻗고 있다는 사실이다.

'몸짱' 보디빌더의 성공 편법…'약물

“약물은 선택 아닌 필수”

약물 문제는 전체 스포츠 종목 중 보디빌딩에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22일 바른미래당 이동섭 의원실이 한국도핑방지위원회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간 각 스포츠 도핑검사 적발 현황’ 자료에 따르면 도핑 적발 10건 중 7건 이상이 보디빌딩 종목에서 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2014∼2018년 전체 전문체육 종목 도핑적발 건수는 157건이었고 이 중 73.2%에 달하는 115건이 보디빌딩 종목 적발 건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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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는 보디빌더의 일반적인 약물 이용 행태를 고려하면 극히 일부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관계자의 공통된 증언이다. 약 5년간 선수 활동을 하다 현재 트레이너 생활을 하는 A(32)씨는 “전문 선수로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 약물 이용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면서 “경기 기간에 진행되는 도핑검사는 일정한 규칙만 지키면 쉽게 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남녀 선수 8명을 면담한 결과를 담은 2013년 논문 ‘보디빌딩선수의 불법도핑에 대한 인식 및 최소화 방안’(임번장·임승엽)에 따르면 보디빌딩 선수들은 보통 대회 시작 한 달 전까지 금지 약물을 매일 복용한다. 이후 사전 도핑검사를 받고 다시 대회 일주일 전까지 약물 복용을 한다고 했다. 해당 논문은 “연구 참여자들이 근육·근력·경기력 향상 등을 목적으로 많은 종류의 약물을 과다복용하고 있으며, 이를 보디빌딩 선수로서 당연한 행위로 간주하고 있었다”고 했다.


이 선수들이 심근경색, 심장마비, 성기능 문제 등 약물 이용에 따른 부작용 가능성을 기꺼이 감수하는 건, 대회 우승에 따르는 커다란 보상 구조 때문이다. 논문은 “최근 많은 보디빌더가 퍼스널 트레이너(개인 트레이너)로서 필요한 ‘스펙’을 쌓기 위해 보디빌딩 대회에 참가하는 경향이 많다. 그들은 전문 보디빌더가 아닌 퍼스널트레이너로 성공하려는 또 다른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대회에 참가해 ‘타이틀’을 따려 한다”며 “이는 성공에 대한 집착을 키워 정당한 수단과 방법보다 승리를 쟁취하기 위한 손쉬운 방법으로 불법 도핑의 유혹에 쉽게 빠지게 한다”고 지적했다.

'몸짱' 보디빌더의 성공 편법…'약물

SNS로 확산하는 ‘약물의 유혹’

더 큰 문제는 일반인 또한 온라인을 통해 이런 금지 약물을 너무나 쉽게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약사법상 일반인의 전문의약품 판매는 5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는 불법행위다. 최근 자유한국당 신상진 의원실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제공받은 자료에 따르면 근육 성장 약물을 포함한 전체 의약품 불법유통 적발 건수는 지난해 1∼9월 2만1596건, 2017년 한 해 동안엔 2만4955건이었다. 식약처는 지난해 사이버조사단을 꾸려 모니터링을 강화했지만 온라인 의약품 불법유통을 전면 차단하기엔 한계가 있는 게 현실이다. 실제 기자가 온라인 카페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약물 명칭을 검색하니 약물 종류·제조사별 가격, 판매자 연락처 등 약물 구매 정보를 손쉽게 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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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온라인 외에 일부 트레이너가 일반인 강습생에 약물을 공급하기도 한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증언이다. 전직 보디빌딩 선수 출신 트레이너가 일종의 약물 브로커로 활동한다는 것이다. 보디빌딩 경력 30년 이상인 한 트레이너는 최근 약투 운동에 동참하면서 유명 트레이너가 개인 강습을 받는 수강생에게 약물을 팔고 거액의 수수료를 챙기는 경우가 있다고 공개했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선 현재 판매자에 한해서만 처벌이 이뤄지도록 한 약사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바른미래당 이동섭 의원은 “현행법상 전문의약품은 의사 진단과 처방이 있어야 구매·사용이 가능하지만 국내선 단백동화 스테로이드 등 소위 ‘몸짱약품류’가 온·오프라인상에서 널리 판매되고 있다”며 “이 약품류는 심리적 의존성이 매우 강하고 부작용 또한 심각하기 때문에 무분별한 구매를 금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의약품 소비자는 의약품을 판매할 수 있는 자 이외의 자로부터 의약품을 구매하지 못하도록 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 1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약사법 개정안을 지난해 발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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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물로 만든 몸’으로 홍보하는 것은 사기”

“솔직하게 약물 부작용을 고백하는 사람이 없어요. 일반인들이 섣불리 약물을 접하고 부작용을 얻는 일을 예방하자는 생각에서 제 얘기를 꺼낸 겁니다.”


보디빌더 경력 13년 차인 김동현(29·사진)씨는 최근 전화 인터뷰에서 자신이 일명 ‘약투’에 참여하게 된 계기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약투는 전·현직 보디빌더가 약물 이용 사실과 함께 그 부작용을 고백하는 운동을 가리키는 단어로, ‘약물’과 ‘미투’가 합쳐진 말이다. 김씨는 유튜브 영상을 통해 스테로이드 등 약물 이용에 따른 부작용으로 성기능 장애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는 약 7년간 약물을 사용했다. 현재는 약물을 이용하지 않는 상태로, 끊은 지 약 6개월 정도 됐다.


김씨는 “제가 얘기한 부작용은 정말 창피할 수 있는 부분이라 약물을 이용하는 선수들 사이에서도 쉬이 말하지 않는 부분”이라며 “선수를 동경하는 일반인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켰으면 했다”고 말했다.


그가 현재 보디빌딩·피트니스 업계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한 건, 관련 업체나 트레이너들이 일반인들에게 잘못된 인식을 주입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김씨는 “저는 개개인이 약물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갖고 이용하는 것에 대해선 문제 삼고 싶지 않다”면서 “대신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에서 자신이 ‘내추럴’(약물을 이용하지 않는 보디빌더)이라고 거짓 홍보하는 트레이너가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트레이너에게 비용을 내고 강습을 받는 소비자 입장에서 거짓 홍보는 바로 사기와 다를 게 없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었다. 그는 “보통 일반인이 1∼2년 운동한다고 트레이너처럼 절대 될 수 없는데도, 트레이너는 ‘자신은 하루 10시간 이상 운동했다’는 식으로 말한다”며 “거기에 넘어간 일반인은 그만큼 비용을 지출하는 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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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김씨는 일반인 외 전문 선수들 사이에서 약물이 근절될 가능성에 대해선 회의적이었다. 그는 “개인 간에 경쟁하는 선수들 사이에서 이미 약물은 필수인 게 현실이라 완전히 없애는 건 불가능할 거라 생각한다”며 “현 상황에서 중요한 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보디빌더들의 이미지가 아니라 일반인이 약물 없이 다다를 수준이 어디까지인지를 정확히 알려주는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약투와 관련, 일부 네티즌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상에서 특정 보디빌더나 유명 트레이너를 ‘마녀사냥’하는 상황에 대해선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김씨는 “약투가 많은 관심을 받으면서 정확한 사실관계 확인 없이 일부 유명 선수들이 비난받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며 “선의의 피해자가 더는 나오지 않도록 하면서 약물 문제에 대한 관심이 지속할 수 있는 방향으로 약투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승환 기자 hwan@segye.com

2019.03.0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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