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감성 가득한 가을 섬 여행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예술이 어우러진 ‘섬티아고’ 전남 신안 기점·소악도/보석 같은 섬을 예술로 채색한 제주 추자도/고혹적인 정원이 된 충남 보령 죽도 상화원
건강의집(베드로) 한국관광공사 제공 |
눈부시게 하얀 벽. 그리고 파란 지붕과 문. 그리스 산토리니 이아마을의 상징이다. 종교와 예술이 어우러진 기점·소악도에 들어서면 마치 산토리니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을 부른다. 푸른 하늘과 바다를 배경으로 선 예술작품들.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예술감성이 가득한 섬들은 가을여행의 낭만을 더한다.
예술이 어우러진 ‘섬티아고’ 전남 신안 기점·소악도
전라남도에는 섬 2200여개가 흩어져 있는데 요즘 가장 핫한 곳이 신안의 기점·소악도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콤포스텔라 순례길을 본떠 ‘섬티아고’로 불리는데 이유가 있다. 한국, 프랑스, 스페인의 건축·미술가들이 기점·소악도에 머물며 예수의 열두제자를 모티프로 작은 예배당을 지었기 때문이다. 주민 대다수가 기독교인이고 인근 증도에 한국 기독교 최초의 여성 순교자 문준경 전도사의 순교지가 있는 것도 섬티아고가 탄생한 배경이다.
생각하는집(안드레아) 한국관광공사 제공 |
순례자의 길은 대기점도∼소기점도∼소악도∼진섬∼딴섬까지 이어지며 모두 12㎞로 3시간가량 걸린다. 아름다운 예배당 12곳이 바닷가에 서 있다. 대기점도선착장에서 만나는 건강의집(베드로)이 여행의 시작이다. 파란 지붕과 하얀 외벽이 그리스 산토리니를 꼭 닮아 사진 한 장 찍으면 산토리니라 해도 모두 믿을 정도다. 이어 등장하는 생각하는집(안드레아)은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을 해와 달로 형상화했다. 작은 그리움의집(야고보)은 프로방스풍 오두막에 오래된 목재를 이용해 동서양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생명평화의집(요한)을 지나면 나타나는 행복의집(필립)은 붉은 벽돌과 삼나무 등을 활용해 프랑스 남부의 정취를 잘 담았다.
행복의집(필립) 한국관광공사 제공 |
소기점도로 넘어가면 감사의집(바르톨로메오)과 인연의집(토마스)이 반긴다. 스테인드글라스로 예배당을 지은 바르톨로메오의집은 해의 위치에 따라 다채로운 색감을 빚어낸다. 소기점도와 소악도 사이에는 기쁨의집(마태오)이 자리 잡았다. 러시아정교회의 황금빛 양파 모양을 닮은 예배당 지붕이 이국적인 정취를 물씬 풍긴다. 소악도에 들어서 소원의집(작은야고보)을 둘러보고 진섬으로 들어가면 칭찬의집(유다다대오)과 사랑의집(시몬)이 나타난다. 이어 딴섬에 홀로 있는 지혜의집(가롯유다)까지 둘러보면 섬티아고 길을 완주한다. 열두제자 중 한 명으로 은화 30냥에 예수를 배반한 가롯유다의집은 사람이 살지 않는 외딴섬에 지어서인지 순례길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비하면 아주 짧은 거리이지만 예배당이 뛰어난 건축미를 지녀 가을여행 추억이 가득 담긴 사진을 남기기에 좋은 여행지다. 섬과 섬은 노두로 이어져 있는데 노두는 밀물 때 사라지기 때문에 무리하게 건너면 위험하다. 대기점도 선착장에서 전기자전거를 이용하면 좀 더 편하게 둘러볼 수 있다. 자전거는 소악도에서 반납하면 바로 여객선에 오를 수 있다.
추자항 조형물 한국관광공사 제공 |
보석 같은 섬을 예술로 채색한 제주 추자도
추자도는 지도에서 보면 전남 보길도와 더 가깝지만 제주시에 속한 섬이다. 제주도에서 배를 타고 한 시간을 가야 하며 42개 섬 중 유인도는 상추자도, 하추차도 등 4개뿐이고 나머지는 무인도이다. 추자항 여객선터미널 뒤쪽 골목을 따라가면 나타나는 치유의 언덕을 지나 대서리 벽화골목에 들어서면 추자도 여행의 시작이다. 벽화 골목은 동화 같은 푸른 바다로 채워졌는데 춤을 추듯 일렁이는 파도를 따라 추자10경을 담은 벽화가 펼쳐진다. 골목 곳곳에 물이 귀한 시절에 쓰던 100년 넘은 우물이 남아 있다. 영흥리 벽화골목은 바닷속 세상과 예쁜 꽃밭을 색색의 타일 벽화로 꾸몄다.
영흥리 벽화골목 한국관광공사 제공 |
대서리 후포해변의 후포갤러리에서는 이달 20일까지 추자예술섬프로젝트에 참여한 작가들의 ‘잠시 멈추자, 바람과 춤을 추자’전이 열리고 있으며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평화롭고 한적한 갤러리 주변 풍경은 덤이다. 추자대교를 건너 묵리로 향하는 고갯길의 포토존에서는 바다를 꾸민 아름다운 추자도의 섬들을 배경으로 인생샷을 얻을 수 있다. 날이 아주 맑은 날이면 수평선 위로 한라산도 보인다. 언덕을 내려오면 언어유희를 즐기는 묵리 낱말고개가 등장한다. 건물 안의 글자들로 여행의 느낌을 표현하는 추억의 문구를 만들어 외벽 글자판을 장식한 뒤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면 ‘좋아요’가 마구 눌러질 것이다.
눈물의 십자가 한국관광공사 제공 |
추자도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신양리 바닷가 절벽바위에 세워진 눈물의 십자가. 정약용의 조카이자 신유박해 때 능지처사를 당한 황사영의 아내 정난주는 두 살배기 아들 황경한과 제주도로 유배 가다 죄인으로 살아갈 아들을 걱정해 추자도에 몰래 두고 떠났고, 황경한은 추자도에서 자라 결혼하고 자손을 낳았다고 한다. 신양리 산 언덕의 황경한의 묘에서 절벽의 십자가를 내려다보면 모자의 슬픈 사연이 밀려온다.
상화원 회랑 한국관광공사 제공 |
고혹적인 정원이 된 충남 보령 죽도 상화원
대천해수욕장과 무창포해수욕장 사이에 있는 죽도는 대나무가 많아 대섬이라고 불렸다. 1990년대 후반 남포방조제 지어지면서 육지와 연결됐고 한국식 전통 정원 ‘상화원’ 덕분에 여행자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자연미를 최대한 보존해 섬 전체를 거대한 정원으로 꾸몄다. 상화원 입구에 들어서면 수령 200년 된 팽나무와 고풍스러운 한옥 의곡당이 여행자를 반긴다. 고려 후기나 조선 초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경기도 화성 관아의 정자를 이전했는데 단아하고 고풍스러운 자태가 가을 풍경에 잘 녹아 있다.
상화원 조형물 한국관광공사 제공 |
섬 둘레를 따라 지붕을 설치한 회랑이 2㎞ 이어져 궂은 날씨에도 편안하게 섬을 둘러볼 수 있다. 해송과 죽림이 우거지고 나무 사이로 드러나는 바다 풍경은 웅장하고 아름답다. 회랑 입구 쪽에서는 취당 장운봉, 출구 쪽에서는 소치 허련의 후손인 임전 허문의 작품 등 단아한 우리나라 정원을 잘 담은 작품을 만난다. 노을이 내릴 때쯤 바다와 가까운 석양정원의 나무 벤치에 앉으면 시원한 가을바람과 파도가 넘실거리는 푸른 바다가 만드는 가을여행의 낭만을 만끽할 수 있다.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