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 송송 사리 탁! 팍팍한 삶이 빚어낸 칼칼한 맛…‘원조’는 어디?

의정부식 ‘허기숙 오뎅식당’

초기 국물 없는 부대볶음 형태에서 변화

63년 전통… 기본 재료만으로 깔끔한 맛

송탄식 ‘최네집부대찌개 본점’

소시지 풍성… 치즈·사골로 육수 등 진해

가장 대중화… 햄버거 패티 등 첨가 변형도

파주식 ‘삼거리식당’

향긋한 쑥갓으로 청량감↑… 해장으로 인기

큼직한 브렉퍼스트 소시지는 식감 ‘쫄깃’

그 밖에

‘쇠고기 육수’ 군산식, 송탄식 보다 순해

‘존슨탕’은 김치 대신에 양배추 등 넣어

부대찌개, 의정부냐 송탄이냐.

기다리던 점심시간. 직장인들이 서너 명씩 어울려 쉽게 찾는 음식 중 하나가 부대찌개다. 부대찌개는 순대국밥이나 감자탕에 비해 호불호가 적고, 인원 수에 따라 소시지, 햄, 떡, 라면 사리 등을 추가해 맛과 양을 조절할 수 있어 인기가 높다. 고깃집에 비해 비용이 저렴한 데다 술안주로도 적당해 서민들이 모이는 자리 음식으로 잘 어울린다.

세계일보

‘햄, 소시지, 치즈 등에 김치·고추장 등을 섞어 오래 끓여서 여러 가지 재료가 함께 어울려 얼큰한 맛을 내는 진한 한국식 국물 음식.’ 각종 요리 전문 서적이 적은 부대찌개의 정의다. 한국전쟁 직후의 생활은 몹시 피폐했다. 미군 부대 주변에 살던 사람들은 부대에서 쓰고 남은 햄, 소시지, 치즈 등 잉여 음식을 빼내 왔다. ‘부대고기’라는 별칭이 붙은 이유다. 햄과 소시지를 처음 접한 사람들은 ‘고기로 만들었지만 고기는 아닌’ 맛에 흠뻑 빠져들었고, 전골 판에 버터와 햄, 소시지, 양배추, 양파 등을 올려 막걸리 안주 삼아 즐겨 먹었다. 하지만 얼큰한 국물 음식을 좋아하는 한국인들은 여기에 고추장을 풀고 김치와 육수를 넣어서 찌개를 탄생시켰다. ‘부대찌개’의 원조다.


부대찌개는 미군 부대가 다수 주둔해 있었던 의정부와 송탄(평택) 지역에 밀집해 번성해 왔다.


사실 의정부 스타일, 송탄 스타일을 명확하게 구분하기는 어렵다. 식당마다 들어가는 식재료가 다르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재료가 변화해 왔기 때문이다.


의정부의 경우 맑은 육수를 사용하고 적당량을 넣은 소시지와 햄이 김치 맛과 잘 어우러져 개운한 반면, 송탄 부대찌개는 따로 추가 주문할 필요가 없을 만큼 소시지와 햄을 듬뿍 넣고 여기에 치즈까지 녹여 맛이 한층 걸쭉하다.


의정부와 송탄 외에도 파주(문산), 동두천, 군산 등 주요 미군 부대 인근에는 지역별로 특유의 맛과 형태를 띤 부대찌개가 발달해 있다.


동서양 식문화의 조합으로 태어난 부대찌개는 음식 역사치곤 다소 짧지만 대한민국 최초의 퓨전 요리로 전문점까지 내고 말았다. 최근엔 중국 베이징이나 일본 도쿄까지 진출하는 등 세계인의 입맛 잡기에 나섰다. 당당히 국어사전에도 등재된 부대찌개는 외국인도 즐기는 한국 음식 중 하나가 되었다. 격동의 세월 한국 현대사를 상징하는 음식으로 평가 받기도 한다.

#의정부식

세계일보

의정부 오뎅식당 부대찌개. 햄, 김치, 파, 다진 고기 등 기본 재료만 넣어 깔끔한 맛을 낸다. 당면과 두부가 인상적이다.

의정부가 부대찌개의 ‘대명사’가 된 이유는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종로와 명동이 서울의 중심이던 때, 의정부는 서울 강북권보다 월등하게 번화했다. 지하철 1호선 등 서울과의 교통편이 유리했다.


또 하나는 제306보충대대 덕이다. 전국에서 입영을 위해 청년들이 몰려왔다. 그들의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외박이나 휴가 나온 군 장병들이 대부분 부대찌개를 접했다.


의정부와 동두천에는 부대찌개 이전 형태인 ‘부대볶음’을 내놓는 식당이 있다. 부대찌개 역사보다 부대볶음이 앞선다. 지금의 부대볶음은 부대찌개의 사이드 메뉴로만 남아 있다.

세계일보

의정부 ‘부대찌개 거리’에 있는 오뎅식당 전경. 간판 속 고 허기숙 할머니가 눈에 띈다.

다른 지역의 경우 ‘원조’ 다툼이 진행중이지만, 의정부에서는 1960년 문을 열었다는 ‘허기숙 오뎅식당’이 시로부터 공인받았다. 일찌감치 교통정리가 된 셈이다. 이 지역에서 가장 오래전 부대찌개를 만들어 낸 할머니를 이어 아들, 손자가 운영 중이다. 고 허기숙 할머니의 증언에 따르면 초기 부대찌개는 국물 없는 볶음 형태였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지금 형태로 변화했다.


의정부시는 오뎅식당이 있는 거리를 ‘부대찌개 거리’로 지정하고 ‘부대찌개 축제’를 벌이기도 한다.


식당에 따라 부대찌개에 떡, 콩나물, 통조림 콩 등을 넣는 경우가 있지만, 오뎅식당 부대찌개는 햄, 김치, 파, 다진 고기, 당면 등 기본 재료만으로 깔끔한 맛을 낸다. 두부가 들어 있는 게 인상적이다. 물론 개인 식성에 따라 베이컨, 수제비, 어묵면, 감자만두 등을 추가할 수 있다.


맛에 대한 평가는 당연히 다르다. 주변의 다른 부대찌개 식당을 선호하는 식객들도 있다. 전국 배송이 가능한 기업으로 성장하다 보니 ‘옛 맛을 잃었다’는 댓글이 붙기도 한다. 손님들의 입맛 자체가 변해 가는 이유도 있다.

#송탄식

세계일보

송탄 최네집부대찌개. 많은 양의 소시지와 사골 육수, 치즈를 넣어 국물이 걸쭉한 게 특징이다. 가장 대중화한 부대찌개다.

소시지 투입량이 압도적이다. 사골 육수와 치즈가 특징. 청년 데이트족과 ‘초딩 입맛’에 더 잘 맞아 미래 시장 확장 가능성이 더욱 커 보인다.


감칠맛을 내는 다진 쇠고기, 마치 무채처럼 가늘고 길게 잘라 낸 프레스 햄, 소시지 등은 수입 기성품을 사용하고 대파와 양파, 매장에서 직접 담는 김치에 별도의 양념장이 더해져 국물맛이 만들어진다.


국물이 끓기 시작하면 간마늘을 한 큰술 반쯤 넣는데 이것이 잡내를 잡고 먹음직한 향을 배가한다. 사리는 찌개용 사리면이 아닌 ‘신라면’을 사용한다.


송탄 현지 최네집부대찌개 본점에서 먹어 보면 사실 소시지와 햄은 식감을 더할 뿐 ‘훈제향’이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는다. 되레 진한 쇠고기 스튜에 김치가 더해진 맛에 가깝다. 이 진한 쇠고기 육수의 깊은 맛이 프랜차이즈와 송탄 현지 부대찌개의 결정적인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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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탄 최네집 전경. 최네집 본점은 넓은 주차장을 갖춰 고객들이 편리하다.

부대찌개 가운데 가장 대중화한 형태인데, 햄과 사골 육수와 양념장이 맛 비중에서 가장 크다 보니 개량하기 쉬워 수많은 변형이 이뤄지고 있다. 어차피 양념장에서 매운맛이 나오므로 애매한 비중을 차지하던 김치가 빠지거나, 두부와 버섯 혹은 떡 등이 생략되기도 한다. 만두, 베이컨, 우삼겹, 차돌박이, 햄버거 패티, 맥앤치즈 등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고기 종류를 집어넣는, 매운 고기전골 형태까지 나오고 있다.


치즈와 사골 육수에서 알 수 있듯이, 부대찌개 프랜차이즈 간판 회사인 놀부부대찌개나 송탄부대찌개, 모박사 부대찌개 등은 모두 송탄식 부대찌개를 표방하고 있다. 최네집 또한 이름과 인지도를 확장해 나가며 경기·충청권 중심으로 분점을 개설 중이다.

#파주식

세계일보

파주 문산 삼거리식당 부대찌개. 수북하게 넣은 쑥갓이 압권이다. 크게 썰은 대파와 야채가 깨끗한 국물 맛을 낸다.

잔뜩 집어넣은 쑥갓이 압권이다. 시각적인 청량감도 좋다. 크게 썰어 넣은 대파와 야채들이 시원하고 깨끗한 국물 맛을 만들어 낸다. 해장용으로도 우수하다. 중년층 등 찌개 좀 먹어 봤다는 이들 사이에서 인기를 누린다.


수도권 부대찌개 가운데 인지도가 가장 낮다. 1980년대부터 수도권 전철과 육군훈련소에 힘입어 전국적 명성을 얻은 의정부식이나 이른 체인사업화로 인지도를 쌓은 송탄식에 비해 파주는 지역 접근성이 경의선 전철 개통 후에도 그다지 좋아진 편이 아니어서 주로 아는 사람들이나 지역 주민만 찾아가 먹는 경우가 많다.


실제 오전 8시 개점 시간에 가면 야간 교대 근무하고 퇴근하는 사람들, 아침 일찍 외박이나 외출을 나온 주변 군부대 장병이 손님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다만 2010년대 들어 유튜브 등을 타고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해 한창 퍼져 나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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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삼거리식당 전경. 나란히 붙어 있는 삼거리부대찌개는 30여년 전 확장한 가게로, 한집이다.

문산 읍내 53년 전통 삼거리식당이 대표적이다. 옆에 나란히 붙은 삼거리부대찌개와 한집이다.


채소 혹은 김칫국물 베이스로 보이는 맑은 육수를 쓴다. 이게 과연 부대찌개 맛이 나긴 할까 싶을 정도지만 이렇게 졸여 먹는 경우도 많기에 무조건 담백한 맛만 나는 것은 아니며 이런 식으로 먹으면 의정부식과 송탄식의 중간 가까운 느낌으로 먹을 수도 있다.


쑥갓만큼이나 큰 특징은 모닝햄이라 불리는 브렉퍼스트 소시지다. 어묵 같이 생긴 햄이다. 이걸 큼지막하게 썰어 넣어 특유의 쫄깃한 식감을 즐긴다. 여기에 프레스 햄은 튤립햄을 쓰는 경향이 있다. 의정부 오뎅식당에서는 사라졌다는 무짠지가 문산 삼거리식당에서는 나온다.

#그 밖에

군산식은 쇠고기 육수를 사용하며 얇은 쇠고기도 들어가는, 조금 이질적인 형태다. 치즈를 넣는 것은 송탄식과 같지만 비교적 순한 맛을 낸다.


존슨탕(Johnson湯)은 부대찌개의 다른 이름처럼 사용되기도 한다. 이름의 유래에 대한 여러 설이 있는데, 미국 대통령 린든 B 존슨의 이름에서 따왔다는 것이다. 1966년 존슨 대통령의 방한과 관련이 있다. 당시 이 음식을 청와대에서 배달시켜 먹어 이런 이름이 붙었다는 주장이 있고, 한 주한 미군부대를 시찰하다가 먹은 음식을 극찬했는데 그것이 바로 부대찌개였고, 이때 존슨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주장도 있다. 혹은 미군에서 흔한 이름이라서 그렇게 불렸다고도 한다. 한국으로 치면 철수탕, 영희탕 식. 미군 부대에서 물건 빼 주던 병사 이름이 존슨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런데 존슨탕은 의정부가 아닌 서울 이태원의 한 식당에서 개발한 음식이다. 부대찌개와는 재료와 조리법이 다르다. 콘킹소시지와 튤립촙드햄을 썰어 넣고 사골 육수를 부어서 끓여 만든다. 김치 대신 양배추가 들어가며, 치즈도 넣지만 라면 사리는 없다. 또 끓이면서 먹는 게 아니라, 미리 끓여서 나온다는 것도 다르다.


의정부·파주·평택=김신성 선임기자, 사진=이재문 기자

2023.06.20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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