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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드 ]

천고마비의 계절 맛있는 여행 떠나볼까

by세계일보

강진 병영돼지불고기 불맛·육향 일품

강진에서 7년 산 하멜 흔적도 만나

천안 병천 순대국밥 담백하고 깊은 사골 국물 뛰어나

하동 재첩국 아미노산 등 영양소 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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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병영돼지불고기.

“지글지글지글♩♬∼” 연탄불 위에 오른 석쇠에서 돼지불고기가 맛있게 익어가며 노래를 부른다. 주방을 뚫고 새어 나온 뒤 비강으로 마구 파고드는 냄새. 아! 도저히 참을 수 없다. 침을 꼴깍꼴깍 삼키기를 몇 차례, 드디어 쟁반에 담겨 나온 매콤한 붉은 양념을 두른 돼지불고기의 맛있는 자태. 허겁지겁 젓가락 몇번에 접시는 순식간에 동나니 힘껏 외친다. “이모! 여기 한 접시 추가요!” 하늘은 높고 말이 살찌는 계절, 한국관광공사가 추천하는 가을날 맛집을 찾아 미식여행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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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병영돼지불고기거리 황금소원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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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영돼지불고기거리 벽화.

◆강진 병영돼지불고기 먹어봤나요

전남 강진군 병영면 남삼인길 병영돼지불고기거리로 들어서자 커다란 황금소원돼지 조형물이 여행자를 반긴다. 엄마 돼지 주변엔 볼에 빨간색 연지를 찍은 분홍색 아기 돼지들이 앙증맞게 도열해 ‘맛있는’ 미소를 짓는다. 마을 담벼락마다 ‘돼지불고기의 3원소’ 연탄, 석쇠, 돼지 그림으로 도배를 했고 돼지병사, 돼지셰프 등 온통 돼지 그림이다. 돼지불고기 맛집을 소개하는 안내판도 내걸렸다. 한옥으로 꾸민 병영시장에 가까워지자 냄새가 진동하며 돼지불고기의 천국에 도착했음을 알린다.


마을 이름 병영면도 재미있지만 이곳에 왜 돼지불고기거리가 생겨났을까.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병영면에는 전라병영성이 있는데 1417년(태종 17년) 병마절도사 마천목이 쌓았고 1895년(고종 32년)까지 500년 가까이 전라도와 제주도 육군을 총괄하는 지휘본부 역할을 했다. 어느 해 전라병영성에 병마절도사가 새로 부임했는데 하필 강진 현감의 친조카였다. 병마절도사보다 직급이 낮은 강진 현감은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조카의 부임을 축하하기 위해 전라병영성을 찾았다. 하지만 병마절도사는 집안의 웃어른인 현감을 극진히 모시며 잔칫상을 차렸는데 상에 오른 대표 음식이 맛있는 양념을 발라 구운 돼지불고기였다. 이런 일화 때문에 병영면은 오래전부터 돼지불고기를 귀한 손님에게 대접하는 음식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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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영돼지불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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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영설성 막걸리.

맛있어 보이는 식당을 골라 자리를 잡자 정갈한 반찬이 한 상 가득 차려 나온다. 돼지불고기가 지글지글 익어가는 소리에 이끌려 주방을 살짝 엿보니 도열한 연탄불에서 불기둥이 치솟고 석쇠에선 매콤한 양념옷을 두른 돼지고기가 춤을 추며 익는 중이다. 타지 않게 앞뒤로 현란하게 뒤집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는 주인장의 손기술을 보니 맛집임이 틀림없다. 파채를 솔솔 뿌린 돼지불고기 한 점 허겁지겁 밀어 넣자 입안 가득 불맛과 육향이 퍼지고 살점은 씹을 것도 없이 입안에서 녹아 버린다. 역시 미식가들이 울고 갈 맛이다. 여기에 병영설성 생막걸리 한 잔 더하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식당마다 앞다릿살, 삼겹살 등 부위가 다르고 양념도 제각각이다. 한정식처럼 홍어, 편육, 구운 생선, 젓갈 등이 한 상 가득 푸짐하게 차려져 나오는 곳이 있으니 입맛대로 골라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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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금불파 행사. 한국관광공사제공

가을은 병영돼지불고기가 더욱 맛있어지는 계절. 이달 28일까지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불금불파’가 진행된다. ‘불타는 금요일 불고기 파티’란 뜻. 지난 5월부터 병영5일시장 일원에서 야외 돼지불고기 파티가 진행됐는데 여름에 잠시 쉬었다가 9월에 다시 시작됐다. 파티는 오후 4시부터 병영5일시장 광장에서 열리며 마을 부녀회 관계자들이 직접 원형 테이블에서 불고기를 굽는다. 상추와 밑반찬, 강진 토하젓을 곁들이는 메뉴는 1인당 9000원으로 매우 저렴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EDM(일렉트로닉 댄스 뮤직) DJ와 지역 가수가 흥을 돋우고 마당극 ‘장사의 신’도 한바탕 신명 나게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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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막신을 든 하멜 조형물.

◆나막신을 든 하멜을 만나다

병영돼지불고기거리에는 돼지 조형물뿐 아니라 ‘나막신을 든 하멜’ 조형물도 설치돼 눈길을 사로잡는다. 우리나라를 최초로 서양에 알린 ‘하멜표류기’로 유명한 헨드릭 하멜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일원으로 1653년 일본으로 이동하던 중 표류해 제주도에 도착한 뒤 서울, 강진, 여수에서 13년 동안 유배됐고 강진에서는 7년을 살았다. 전라병영성은 하멜과 동료가 머무는 동안 쌀을 지급했지만 옷이나 다른 생활용품들은 알아서 마련해야 했다. 이에 산에서 나무를 해다 팔거나 때로는 흥미진진한 네덜란드 이야기를 마을사람들에게 들려주며 도움을 받았다. 그중 가장 큰 수입원은 바로 네덜란드 전통 나막신 클롬펜(Klompen). 하멜은 힘든 일상 속에서 먹고살기 위해 수많은 나막신을 만들어 팔았고 나막신을 만들면서 고향의 그리움을 달랜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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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만생태공원 갈대. 한국관광공사제공

병영돼지불고기거리 인근에 하멜기념관이 조성돼 있다. 망망대해를 표류한 조난선 스페르베르호를 상징하는 디자인으로 건축한 하멜기념관 입구에서 하멜동상과 하멜표류기의 복사본을 만난다. 전시관에는 하멜의 생애와 조선에서의 13년 동안 유배 생활이 잘 정리돼 있고 17세기 조선과 네덜란드의 문화, 역사적 상황 등 흥미로운 내용이 많다. 기념관 옆에는 하멜 일행의 영향을 받아 지어진 것으로 추측되는 빗살무늬 돌담길도 조성돼 있다. 강진만생태공원도 들러보길. 갈대밭이 끝없이 펼쳐져 가을여행 낭만을 만끽하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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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천순대와 순대국밥. 한국관광공사 제공

◆병천 순대 먹을까 하동 재첩 먹을까

충남 천안을 대표하는 먹거리는 가을만큼 푸짐한 순대국밥이다. 1960년대 병천 인근에 돈육 가공 공장이 들어서면서 부산물로 순대를 만들기 시작했다. 장날에만 순대국밥을 팔다 맛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1968년 병천순대 원조 청화집을 시작으로 충남집, 돼지네 등이 잇달아 문을 열었다. 현재 아우내순대길에서 순대국밥 전문점 20여곳이 매일 손님을 맞는다. 병천순대는 작은창자로 만들어 누린내가 적고 특히 일반 순대와 달리 당면이 아예 없어 담백하다. 생강, 대파, 각종 한약재 등을 넣고 사골을 우려 깊은 맛이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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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재첩회무침. 한국관광공사 제공

경남 하동군 하동읍에는 하동재첩특화마을이 조성돼 술꾼들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재첩은 모래와 진흙이 많은 강바닥에서 서식하는 민물조개로 글리코겐, 타우린, 아미노산 등 영양소가 풍부하다. 강에서 나서 강조개(갱조개), 까만 아기 조개처럼 생겨서 가막조개 등으로 불린다. 주로 낙동강 하구인 부산 하단과 김해, 양산, 섬진강 하구인 하동과 광양에서 자라며 하동의 섬진강 재첩을 으뜸으로 친다. 2009년 신기리에 조성된 하동재첩특화마을에선 재첩국, 재첩회무침, 재첩회덮밥, 재첩부침개 등 다양한 재첩 요리를 즐길 수 있다.


강진=글·사진 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