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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너의 비밀을 보고싶다"… 관음증에 취한 대한민국

by세계일보

몰카로 웃다가 울다

"너의 비밀을 보고싶다"… 관음증에

‘몰래 카메라’. 과거 한 공중파 방송에서 인기를 끌던 개그맨 이경규씨가 진행하던 프로그램의 이름이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많은 연예인들이 당혹스러운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가 시청자들의 주목을 끌었고,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10여년이 지난 지금 몰래카메라는 대한민국 많은 시민들을 공포에 떨게 하고 있다. 지하철, 대로변, 대형마트, 학교, 직장 등에서 불특정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몰카범죄는 개인적 범죄를 넘어 사회적이고 국가적인 범죄로 확산됐다.


사회지도층부터 회사원, 대학생 등 사회적 지위나 연령과 관계없이 광범위하게 연루돼 사회문제가 된 몰카범죄의 원인과 해결책을 살펴봤다.

지도층도 가세...경찰간부에서 국회 공무원, 판사까지

“잠시만 검문 있겠습니다.”


지난해 8월 젊음의 거리로 유명한 서울 홍대역은 퇴근시간까지 겹치며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이때 홍대입구역 계단 끝에는 몰카를 단속 중이던 지하철경찰대 수사관들도 잠복을 하고 있었다.

"너의 비밀을 보고싶다"… 관음증에

한국 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구성원들이 몰카 근절을 호소하고 나섰다. 한국 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계단에서 20대 여성의 치마속을 휴대전화로 촬영하던 A씨가 불신검문에 걸렸다. 경찰은 현장에서 A씨의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A씨의 휴대전화 사진첩에서는 여성들의 신체를 촬영한 사진이 발견됐고, A씨는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신분을 확인한 경찰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A씨는 현직 서울경찰청 소속 간부였던 것이다.


사회 지도층의 관음증 문제는 비단 경찰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법부와 입법부를 가리지 않고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지난해 7월에는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내 지하철에서 휴대전화로 맞은편에 앉아있던 여성의 신체를 몰래 촬영하던 현직 판사가 경찰에 붙잡혔다. B판사는 휴대전화를 보는 척하며 맞은 몰래 촬영을 했는데, 당시 주변에 있던 시민들이 몰카를 찍고있던 그를 제압한 뒤 경찰에 신고했다. 현직 판사가 몰카를 촬영하다가 시민들에게 붙잡히는 웃지못할 일이 벌어진 것이다. 역시나 B씨의 휴대전화에는 여성을 몰래 촬영한 사진이 발견됐다.


자유한국당 중진의원의 아들인 B씨는 “휴대전화의 카메라 애플리케이션이 저절로 작동해 찍힌 것 같다” “나도 모르게 사진이 찍혔다” 등의 말로 혐의를 부인했다.

"너의 비밀을 보고싶다"… 관음증에

지난 7월 강원 강릉시 경포해수욕장에 등장한 ‘몰카는 범죄’라는 경찰의 홍보물. 연합뉴스

지난 6월에는 경기도 의정부의 한 상가 여자화장실에 숨어있던 의사 C씨가 경찰에 붙잡혔다. 그는 여성들이 용변을 보려고 화장실 칸막이로 들어오면 휴대전화로 몰래 촬영하려한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다.

몰카, 카타르시스의 프로그램에서 범죄로 추락

몰카가 일반인들에게 각인된 것은 1990년 인기를 끌었던 이경규의 방송프로그램 코너 ‘몰래카메라’ 덕분이다. 당시 비슷비슷했던 오락 프로그램의 성격을 과감히 탈피한 이 프로그램은 연예인들이나 정치인들의 꾸미지 않은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일반인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특히 스타들의 당혹스러운 모습을 본 시청자들은 웃음과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베일에 쌓여있던 연예인이나 김대중 전 대통령 같은 사회 저명인사들의 인간적인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큰 호감을 불러 일으켰다. 1988년 11월 27일 첫 방송이 나간 후 20년 만인 2008년 12월 14일에 1000회 방송의 대기록을 세웠다. ‘몰래 카메라’를 장착한 프로그램 ‘일요일 일요일 밤’이 20년 이상 지속하며 장기 인기를 누릴 수 있었던 것도 당시 비슷비슷했던 오락 프로그램의 성격을 탈피한 과감한 시도 때문이었다.

"너의 비밀을 보고싶다"… 관음증에

결과적으로 ‘몰래 카메라’ 코너는 누군가의 사생활을 몰래 지켜본다는 것이 선사하는 특별한 쾌감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 이후 마치 판도라 상자를 연 것처럼 몰래 카메라가 주는 은밀한 쾌감을 불순한 의도로 이용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몰래 카메라의 줄임말인 ‘몰카’가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누군가의 사생활을 엿보는 행위를 일컫는 말로도 사용되는 것은 이때부터다. 결국 1998년 일어난 ‘O양 비디오 사건’을 계기로 몰래 카메라에 대한 처벌 규정이 신설됐고,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타인의 신체를 그 의사에 반해 촬영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법률 조항이 마련됐다.

개인 관음증 넘어 ‘돈벌이 범죄’로...2차피해로 우는 여성들

범죄화된 몰카는 성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목적에서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되며 2차, 3차 피해를 확산하고 있다. 특히 최근 문제가 된 헤비업로더의 손에 들어간 몰카 영상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로 확산돼 피해자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만들어낸다.


음란 동영상이나 여성의 신체를 촬영한 몰카는 적게는 수만원에서 많게는 수십만원에 거래된다.


웹하드나 P2P는 보통 회원제로 운영된다. 운영자는 업로더들이 올린 파일을 상대방이 다운로드할 때 필요한 사이버머니를 제공하고 이윤을 얻는다. 업로더들은 자신이 올린 파일의 다운로드 횟수가 많을수록 많은 돈을 챙긴다.

"너의 비밀을 보고싶다"… 관음증에

경찰은 시민단체들이 불법촬영물 등 음란물 유통 온상으로 지목한 음란사이트 216곳, 웹하드 30곳, 헤비 업로더 아이디 257개, 커뮤니티 사이트 33곳을 우선 수사 대상으로 삼았다. 이 가운데 ‘일간베스트(일베)’와 ‘오늘의 유머(오유)’ 등도 포함돼 있다. 그동안 음란물 유통의 온상으로 지목돼 온 해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텀블러 등도 국제수사 공조를 통해 단속을 강화할 계획이다.


최근 서울 혜화역과 광화문에서 대규모로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시위’를 주최한 여성단체 측은 “웹하드에서 공공연하게 거래되는 여성 대상 불법촬영물에 대해 지금까지 유포 방조죄를 묻지 않았던 경찰이 오로지 워마드만 주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일베뿐 아니라 도탁스, 아이러브싸커, 뽐뿌, 엠팍, 루리웹, 디시인사이드, 디젤매니아, 보배드림, 오늘의 유머, 클리앙, FM코리아 등 남자 커뮤니티 등에도 수사를 착수하고 운영자 체포영장을 발부받으라”고 촉구했다.


김건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