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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박상현의 일상 속 미술사(26)

감성·낭만적 묘사 벗어나 평범한 사람들의 사실적 일상 담아내

by세계일보

이 작품은 왜 사실주의라고 부를까

여성이 얕은 욕조서 힘겹게 몸 씻는

에드가르 드가作 ‘욕조’ 목욕 모습

전통적 美 아니지만 자연스러움 담겨

귀스타브 쿠르베作 ‘오르낭에서의…’

얼굴이 벌겋게 취한 성직자들 등장

익숙하지 않은 사실적 묘사 큰 이슈

19세기 이전엔 역사·종교적 내용 집중

사실적 묘사가 사실주의적 화풍 아냐

무거운 주제 탈피 주변 생생하게 표현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1992년 작품 ‘저수지의 개들’에는 ‘멕시칸 스탠드오프(Mexican standoff)’ 장면이 등장한다. 두 명 이상의 사람들이 서로서로 총을 겨누는 바람에 교착상태에 빠진 상황을 가리키는 멕시칸 스탠드오프는 할리우드 영화에서 긴박감을 더하기 위해 즐겨 사용하는 장치. 하지만 대부분 서로 합의를 보고 동시에 총을 내려놓거나, 주인공이 악당들을 모두 쓰러뜨리는 대부분의 영화와 달리, ‘저수지의 개들’은 모두가 총을 쏘는 최악의 선택을 한다.


그뿐 아니라, 총을 맞고 쓰러져 있던 인물은 곧바로 죽지 않고 계속 피를 흘리며 신음을 낸다. 대부분의 영화라면 컷을 해도 한참 전에 했겠지만 타란티노는 이 장면을 심할 정도로 길게 끌고 가면서 할리우드 영화의 문법을 깨버린다. 그 바람에 이 영화는 사실성을 획득하는 동시에 관객들로 하여금 그 전에 나온 영화들이 틀에 박힌 묘사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우쳐 준다.


그런데 이는 우리가 흔히 사실적(realistic), 혹은 사실주의(realism)이라고 부르는 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하나의 단서가 된다. 사실주의는 문화 속에 다양한 형태로 퍼져 있다. 영화와 미술 같은 시각예술뿐 아니라 문학에도 사실주의가 존재한다. 도대체 무엇이 사실적이며, 무엇이 사실주의일까?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영문으로 대문자 ‘R’를 사용하는 리얼리즘(Realism, 사실주의)은 특정시대의 유파를 가리키는 고유명사라는 사실이다. 특히 미술에서는 ‘만종’을 그린 장 프랑수아 미예(밀레), 귀스타브 쿠르베, 오노레 도미에 같은 19세기 중반의 프랑스 화가들의 작품들을 가리켜 사실주의라 불렀다. 이전 시대에 유행하던 감정적이고 낭만적인 묘사, 혹은 역사적인 소재를 그리던 습관에서 벗어나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그린 것이 그들 작품의 특징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그리다 보니 유독 더러운 옷과 지저분한 환경이 자주 등장한다.


물론 우리는 단순히 그 유파의 작품들만을 사실적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엄밀하게 말하면 추상화가 아닌 그림들은 모두 ‘사실적’이다. 하지만 예술에서 “사실주의적”이라고 부르는 작품은 단순히 눈으로 보이는 장면과 똑같이 생겼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미켈란젤로와 같은 르네상스 화가의 작품 속 등장인물이나 사물은 마치 만져질 듯하게 사실적으로 묘사되었지만 우리는 미켈란젤로를 사실주의 화가라고 부르지 않는다.

세계일보

에드가르 드가(1834-1917)의 작품 ‘욕조’(1886). 목욕하는 여인의 모습은 서양 미술사에서 숱하게 그려져 왔지만, 드가의 작품 속 여성은 과거의 어떤 작품에서 볼 수 없는 포즈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사실주의’란 무엇일까? 사실주의에 대한 연구로 유명한 미술사학자 린다 노클린은 19세기 프랑스 화가 에드가르 드가의 작품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가령 그의 ‘욕조’를 보면 서양 미술사에 등장했던 무수한 목욕하는 여인들의 나체서 본 적이 없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과거 어느 작품에서도 본 적이 없던 자세라는 말은 흔히 말하는 ‘신체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드러내는 포즈가 아니라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 포즈들은 이미 선배 화가들이 모두 찾아내어 그렸기 때문이다.


평범한 가정주부가 얕은 욕조에서 힘겹게 몸을 씻는 장면은 여신이나 요정이 아름다운 포즈(라고 하지만 결국 남성관객들의 시선을 만족시키는 포즈)를 취한 과거의 그림들과 크게 다르다. 따라서 전통적인 회화에 익숙했던 당시 사람들에게 드가의 작품 속 인물들은 낯선 포즈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겠지만, 현대인들에게는 그저 자연스러운 포즈일 뿐이다. 드가의 관심은, 그리고 많은 19세기 유럽화가들의 관심은 과거에 그려진 형식, 혹은 스키마(schema)를 따르지 않고 자신의 눈으로 본 것을 그리는 데 있었다. 물감을 덕지덕지 칠한 흔적이 그대로 살아있는 클로드 모네의 ‘해돋이의 인상’이 인물이 살아 숨쉬는 듯한 신고전주의 작품들보다 ‘사실주의적’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결국 미술에서의 사실주의는 그 결과물이 사진처럼 생생하게 묘사된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과거부터 사용되어 왔던 오래된 묘사의 틀을 거부하고 아티스트의 눈으로 본 것을 묘사하겠다는, 전통으로부터의 탈피라는 의미가 강하다.


1950년대 미국의 전설적인 시트콤 ‘아이 러브 루시(I Love Lucy)’의 주인공 루실 볼은 극중에서 임신한 것으로 나왔지만, 임신(pregnant)이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임신은 성행위의 결과이니 가족이 보는 TV에서 절대 나와서는 안 된다는 이유였다. TV에 변기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71년이지만, 변기를 등장시키면 안 된다는 반대에 부딪혀 변기 뒤의 물통 부분만 나와야 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마지막 작품 ‘아이즈 와이드 셧’(1999)에서는 여주인공이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고 휴지로 밑을 닦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놀랍게도 할리우드 영화 사상 여성이 볼일을 보고 휴지를 사용하는 장면은 그 영화가 처음이었다. 모두 당시에는 화제가 되고 논란이 되는 장면들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여진다.

세계일보

‘오르낭에서의 매장’(1850)은 귀스타브 쿠르베(1819-1877)의 사실주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우리가 흔히 장례식에서 생각할 수 있는 의미가 완전히 결여되어 있다.

쿠르베의 대표작 ‘오르낭에서의 매장’에는 얼굴이 벌겋게 취한 성직자들이 등장한다. 성직자들의 행동에 익숙한 관객들의 눈에는 사실주의적인 묘사였지만 당시 성직자 사회는 이런 묘사에 크게 분노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쿠르베는 더욱 유명해졌다. 성(性)과 종교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민감한 주제이고 그렇기 때문에 불문율이 유독 오래 지속되는데, 쿠르베가 그것을 깬 것이다.


하지만 ‘오르낭에서의 매장’이 깬 것은 성직자에 대한 존경만이 아니다. 길이가 6.6미터나 되는 대작이지만, 과거의 대작들이 가지고 있는 엄중하고 성스러운 주제는 찾아볼 수 없다. 우선 제목부터가 오르낭이라는 마을에서 일어난 매장, 즉 하관식이다. 하지만 우리는 제목에서 죽은 사람의 이름조차 알 수 없다. 화가는 ‘나는 삶과 죽음, 내세와 같은 거창한 주제는 물론이고, 죽은 사람이 누군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다’는 태도인 것이다.


언뜻 생각하면 거창한 의미에 관심이 없는 것이 사실주의적인 태도와 무슨 관련이 있을까 싶을 수 있다. 하지만 19세기 이전의 화가들이 관심이 있었던 주제들이 대개 역사와 종교 같은 무거운 주제였던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풍경화를 제외하면 대개의 그림은 (심지어는 정물화까지도) 중요한 주제를 갖고 있었고, 특히 인물이 등장할 경우 관객은 그 주제를 ‘읽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쿠르베는 그런 관습과 분명하게 단절을 선언했고,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 ‘오르낭에서의 매장’이다. 관객이 많은 의미를 부여할 수밖에 없는 하관식을 굳이 선택한 것은 그가 자신의 의도를 얼마나 과격하게 전달하려 했는지를 보여준다.


큐브릭의 영화에서 여주인공이 화장실에서 휴지를 사용하는 장면은 그냥 일상의 모습일 뿐이고, 특별한 성적인 암시나 의미가 들어있지 않다. 여성이 손을 그곳에 가져 간다는 것만으로 성적인 의미를 부여하려는 것은 쿠르베의 작품이 성직자와 조문객이 참석한 하관식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작품에서 삶과 죽음, 특별한 종교적 의미를 찾으려는 태도와 전혀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쿠르베가 이 그림을 그린 의도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드가의 사실주의가 관습적 시각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면, 쿠르베의 사실주의는 관습적 사고로부터의 탈피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