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비즈 ]

아시아나 인수 재협상 요구,
가격 낮추기? 인수 포기수순?

by세계일보

HDC현대산업개발 속내는


코로나19 돌발변수 만나 ‘멈칫’

“계약 당시보다 부채 크게 늘어”

재협상의 근거 조목조목 나열


“승자의 저주 우려 포기 움직임”

“가격 깎기 노림수”… 해석 맞서

당사자는 “인수의지 변함없다”


HDC현대산업개발이 9일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원점에서 재검토하자고 채권단에 요구하면서 그 진의에 관심이 쏠린다. 현산의 요구가 인수 가격을 대폭 낮추기 위한 작업이라는 전망과 인수 포기를 위한 출구 전략이라는 관측이 갈린다.

세계일보

인천국제공항 계류장에 아시아나항공 여객기가 멈춰서 있다. 뉴스1

현산은 이날 “KDB산업은행에 아시아나항공 인수 상황을 재점검하고 인수조건을 재협의하자”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했다고 밝혔다. 이는 산업은행 등 아시아나항공 채권단이 2주 전 “이달 말까지 인수 의사를 명확히 하라”고 압박한 데 대한 회신이다.


현산-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은 지난해 말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 주식 매매계약을 맺으면서 오는 27일까지 거래를 끝내기로 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세계적 대유행 사태에 항공업이 직격타를 맞으면서 인수가 미뤄지고 있다.


현산은 장문의 보도자료를 통해 재협상 요구의 근거를 조목조목 나열했다. 우선 아시아나항공의 부채가 작년 말 기준 2조8000억원이 추가로 인식되고, 1조7000억원의 추가 차입으로도 부채가 4조5000억원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또 1분기 부채비율이 작년 말 대비 1만6126% 급증했으며, 자본총계는 같은 기간 1조772억원 감소했다고 강조했다. 특히 현산은 2019년 감사보고서에서 감사인이 아시아나항공 회계에 대해 부적정 의견을 표명해 계약상 기준인 재무제표 자체의 신뢰성 또한 의심스러운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세계일보

이밖에도 현산은 아시아나항공이 지난 4월 현산 컨소시엄에 긴급자금 1조7000억원 추가 차입 및 차입금의 영구전환사채 전환 계획 등을 통보했지만, 사전동의 없이 다음 날 이사회에서 이를 처리했다고 비판했다. 현산은 이런 상황에 대해 두 달간 11회에 걸쳐 공문을 발송했으나 충분한 공식적 자료를 받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현산이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아시아나항공의 경영 악화와 귀책에 해당하는 부분은 유독 볼드체로 강조되어 있었다.


전격적인 공개 입장 발표에 일각에서는 현산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포기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업계 관계자는 “‘승자의 저주’를 피하기 위해 현산이 결국 인수를 포기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현산은 “아시아나항공 인수 의지에 변함이 없다”며 인수 포기설을 부인했다. 현산은 인수 의지를 강조하기 위해 코로나19 사태에도 기업결합 승인을 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유상증자 등을 차질 없이 진행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에 따라 이날 현산의 입장은 채권단과의 재협상 과정에서 인수대금을 낮추기 위한 노림수라는 분석에 더 힘이 실린다. 현산은 아시아나항공의 구주 인수 가격을 내리고 인수대금 납부 시기 등을 조정하는 방안을 채권단에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현산 컨소시엄은 작년 말 금호산업이 보유한 아시아나항공 주식(구주) 30.77%를 주당 4700원에 인수하기로 했다. 현재 아시아나항공 주가는 지난 3월19일 2270원까지 떨어지는 등 계약 때보다 훨씬 낮다.


아시아나항공과 6개 자회사를 한꺼번에 통매각하는 방식도 분할매각으로 선회할지 관심이다. 모회사와 마찬가지로 대규모 적자에 허덕이는 에어부산과 에어서울을 인수 대상에서 떼어 내면 그만큼 현산에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금호산업의 반발이 문제다. 구주 대금가치가 낮아지면 이를 그룹 재건의 종잣돈으로 쓰려던 금호산업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 이와 관련해 재계 관계자는 “재협상의 주도권은 채권단에 있기 때문에 현산 입장이 상당부분 반영될 것”이라며 “현산이 재협상 요구를 금호산업이 아니라 산업은행에 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금호산업 측은 “매각가격 조정 등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없다”고 반발했다.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10일 이 문제와 관련한 입장을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나기천 기자 n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