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여행 ]

축제 취소됐지만 가을 꽃 지천으로 피네

by세계일보

9월엔 꽃길·숲길만 걷자 / 평창 메밀꽃·백일홍 지천에 흐드러지길 / 울진 금강송숲길·후포항 푸른 바다가 주는 힐링 / 차 향 가득한 장흥 보림사 비자나무숲

세계일보

평창 봉평 효석문화마을 메밀꽃밭 2019년 풍경

아직 한낮은 뜨겁지만 저녁이면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서서히 더위가 물러가는 9월은 예전 같으면 곳곳에서 가을 꽃축제가 시작될 시기다. 하지만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잔인하게도 모든 것을 앗아갔다.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대부분의 축제가 취소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꽃이 피는 것을 어떻게 막으랴. 흐드러지게 만발한 가을 꽃에 쫓겨 코로나19가 물러가기를 빌어본다.

세계일보

봉평 효석문화마을

세계일보

이효석문학관 봉평장 재현

희고 붉은 꽃 만발하는 봉평의 9월

강원도 평창 봉평은 9월이면 희고 붉은 꽃으로 덮인다. 바로 메밀꽃과 백일홍이다. 보통 이맘때면 꽃이 피기 시작하는데 올해는 날씨가 꽃의 생장에 적합하지 않아 개화시기가 9월 말로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사람뿐 아니라 꽃마저 코로나19에 짓눌렸나 보다. 봉평이 고향인 한국 단편문학의 백미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 가산 이효석을 기리기 위해 매년 9월이면 봉평 효석문화마을에서 하얀 메밀꽃밭을 중심으로 평창효석문화제가, 평창읍 평창강 제방길 주변에서 평창백일홍축제가 펼쳐진다.

세계일보

평창 백일홍 꽃밭 2019년 풍경

세계일보

평창 백일홍 꽃밭 하트포토존 2019년 풍경

지난해에는 백일홍 1000만송이를 심어 알록달록 다양한 백일홍이 하늘하늘 만개하며 장관을 이뤘다. 하지만 올해는 안타깝게도 코로나19로 모든 축제가 취소됐다. 백일홍도 지난해보다는 적은 규모로 식재한 데다 이상기온까지 겹쳐 꽃을 제대로 볼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100일 동안 붉게 핀다는 백일홍의 꽃말은 ‘행복’인데 코로나19가 가을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이런 행복을 앗아갔으니 야속하기만 하다.


멕시코에서 태어난 백일홍은 국화과 한해살이풀로 초여름부터 가을까지 100일이 넘도록 꽃을 피운다. 백일홍이지만 실제 꽃의 빛깔은 빨간색, 주황색, 분홍색뿐 아니라 희거나 노란 꽃까지 다양해 이들을 섞어 놓으면 꽃밭은 동화의 나라에 온 듯 알록달록한 색으로 물든다. 야구공처럼 둥글게 피기도 하고 원반처럼 납작하게 핀 꽃도 있어 한참을 걸어도 지루하지 않다.

세계일보

울진 금강송숲길

세계일보

울진 금강송숲길

울진 금강송과 푸른 바다가 주는 힐링

오지 중의 오지인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 금강소나무숲길은 쭉쭉 뻗은 붉은 빛깔의 금강송이 신비로운 자태로 거대한 군락을 이루고 있다. 면적은 여의도보다 8배나 큰 1800ha에 달하며, 수령 200년이 넘는 금강송이 무려 8만그루가 자란다. 수백 가지 허브와 꽃향기도 가득해 지친 영혼을 기대기 좋다. 쉬엄쉬엄 걸으면 2시간 정도 걸린다. 6개 코스로 이뤄졌는데 짧게는 9㎞에서 길게는 16.3㎞ 코스로 구성됐고 4∼7시간 정도 소요된다. 코로나19에도 개방되던 곳이었지만 태풍 마이삭으로 피해를 당해 지난 3일부터 일시적으로 탐방로 출입이 통제되고 있으니 출발 전에 개방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세계일보

울진 죽변항 하트해변

세계일보

울진 등기산 스카이워크

금강소나무숲길은 죽변항·후포항과 함께 묶어 여행하기 좋다. 죽변항에는 2004년 방영된 드라마 ‘폭풍 속으로’의 세트장이 그대로 남아 있다. 절벽 위에 홀로 서 있는 1970년대 빈티지풍의 빨간지붕 집이 눈길을 끈다. 집 뒤로는 ‘하트 해변’이 자리 잡고 있어 연인들이 사랑을 약속하는 명소로 인기를 끈다. 1910년 11월 24일 점등돼 100년이 훌쩍 넘은 죽변등대도 좋은 사진을 건질 수 있다. 후포등기산공원에서는 시원하게 뻗어나간 스카이워크와 쪽빛 바다가 어우러지는 절경을 만끽할 수 있다.

세계일보

보림자 비자나무숲. 한국관광공사 제공

차 향 가득한 장흥 보림사 비자나무숲

860년(헌안왕 4)에 창건된 통일신라시대 고찰 보림사 뒤쪽에는 수령 300년 넘은 비자나무 500여그루와 참나무, 단풍나무, 소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세월이 묻어나는 고즈넉한 고찰과 피톤치드를 쏟아내는 숲은 천천히 걷는 것만으로도 코로나19로 지친 심신을 달래준다.


비자나무 군락은 한여름에도 한줄기 빛조차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초록의 물결을 이룬다. 덕분에 깊은 사색과 명상에 잠기며 온몸을 생명력 가득한 초록으로 가득 채울 수 있다. 비자나무는 회색이 약간 도는 갈색 껍질을 두르고 있으며 열매의 기름이 기침을 멎게 하고 배변에도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목재 질이 좋아 바둑판이나 가구에도 많이 쓰인다.

세계일보

보림자 비자나무숲. 한국관광공사 제공

비자나무 숲 사이로 난 정겨운 오솔길은 천천히 걸어도 20분 정도면 충분하고 경사가 급하지 않아 가볍게 산책하기 좋다. 걷다 보면 다른 숲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식구를 만난다. 비자나무 사이사이에 잡초처럼 무성하게 자란 야생 차밭이다. 주로 장흥에서 유명한 1200년 역사의 전통 발효차 청태전(靑苔錢)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 보림사 비자나무 숲이 ‘청태전 티로드’로 불리는 이유다. 삼국시대부터 전해진 청태전은 가운데 구멍을 뚫어 엽전을 닮은 모양으로 3년 동안 정성들인 발효과정을 통해 완성된다. 장흥에서는 예부터 감기에 걸리거나 배앓이를 할 때 약 대신 달여 먹었을 정도로 효능이 뛰어나다고 한다. 장흥다원이나 평화다원에서 청태전을 맛볼 수 있다.

세계일보

보림사 대웅보전. 한국관광공사 제공

장흥 보림사는 인도 가지산 보림사, 중국 가지산의 보림사와 함께 ‘동양의 3보림’으로 불리며 원감국사와 각진국사 등 대선사들이 이곳에 머물렀다고 한다. 천년고찰인 만큼 귀중한 보물들이 많다. 대적광전의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은 우리나라 철불 가운데 가장 오래됐으며 한국전쟁 때 피눈물을 흘렸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쇠 2500근을 사용한 불상 왼팔 뒷면에 858년(헌안왕 2) 김수종이 왕의 허락을 받아 불상을 조성했다는 글이 적혀 있어 신라시대에 지방 유지가 개인 재산으로 불상을 조성할 만큼 불교가 전국적으로 퍼졌음을 보여준다. 대웅보전 앞에 오래된 약수도 마셔 보자. 비자림과 차밭의 자양분이 스며들어 물맛이 상쾌하고 미네랄도 풍부하다.


평창·울진=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