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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박상현의 일상 속 문화사

미군의 베트남전 철수를 이끈 한 장의 사진, 그 진실은…

by세계일보

⑤ 사진은 모든 것을 알려주지 않는다

세계일보

1968년 2월1일 베트콩의 ‘구정 대공세’ 때 길거리에서 행해진 즉결처형. 이 사진으로 미국의 여론은 크게 바뀌게 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사진 뒤에 담긴 이야기를 알지 못했다.

“그 장군은 베트콩을 죽였고, 나는 그 장군을 내 카메라로 죽였다. 사진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다. 사람들은 사진을 믿지만, 사진은 조작하지 않아도 거짓말을 한다. 사진은 절반의 진실일 뿐이다.”


베트남 전쟁터에서 AP통신을 통해 전쟁의 생생한 모습을 전 세계에 전했던 사진기자 에디 애덤스의 말이다. 애덤스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들도 그가 찍은 한 장의 사진은 기억한다. 바로 ‘사이공의 처형’이라는 이름이 붙은 사진이다.


‘역사를 바꾼 사진 한 장’이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애덤스가 찍은 그 사진이 그랬다. 1968년 유명한 ‘구정 대공세’ 때 벌어진 시가전에서 잡힌 베트콩 한 사람을 베트남 장군이었던 응우옌 응옥 로안 장군이 재판도 없이 현장에서 즉결처형하는 장면을 그 자리에 있던 애덤스 기자가 촬영한 사진이다. (그 현장에는 한국 사진기자 김용택도 있었지만, 차마 방아쇠를 당기는 장면을 찍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김용택 기자의 사진은 처형 직전과 직후의 모습을 담고 있다.)


지금은 포토샵을 이용한 사진조작은 물론 딥페이크(Deep Fake)라는 방법으로 비디오까지 감쪽같이 조작할 수 있는 세상이지만, 20세기 중반만 해도 사진조작이 일상적인 일은 아니었고, 어쩌면 그게 많은 사람들이 사진은 무조건 진실을 말한다고 착각했던 이유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애덤스의 말처럼 사진은 조작하지 않아도 거짓말을 한다. 그런데 엄밀하게 말하면 그 거짓말은 사진이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보는 사람들이 스스로에게 하는 것이다. 정지된 순간의 모습을 보고 이야기를 만들어 채워 넣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가깝다.


미국인들은 이 사진을 보고 미군이 돕고 있는 나라의 군인이 민간인(복장을 한 사람)을 재판도 없이 길거리에서 잔인하게 쏴 죽이고 있다고 생각했고, 베트남전 반대와 미군철수를 강력하게 외쳤다. 당시 린든 존슨 대통령은 나빠진 여론에 밀려 단계적 철수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이야기에서 사진 속 베트남 장군은 극악무도한 악당이 되었다.


하지만 나중에 밝혀진 이야기는 사람들의 짐작과는 달랐다. 당시 사이공(지금의 호찌민시) 치안국장이던 응우옌 장군에게 붙잡혀 온 남자는 구정 대공세 때 도시를 돌아다니며 군인과 가족들을 죽이고 다니던 암살단원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그가 죽인 사람들 중에는 응우옌 장군의 동료와 아내, 자식들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는 현장에서 체포된 적군이므로 바로 사살해 버린 것이다.


물론 지금의 기준으로는 용납될 수 없는 행동이다. 하지만 이 사진은 이 상황에 대한 자세한 설명 없이 미국 매체에 실렸고, 방아쇠를 당긴 장군은 전쟁에 반대하는 미국인들에게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애덤스 기자는 이 사진으로 퓰리처상까지 받았다. 그는 시상식에서 “나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죽이는 장면을 보여준 대가로 돈을 받는다. 두 명의 인생이 망가졌는데 나는 돈을 벌고 영웅대접을 받는다”며 착잡해했다.


응우옌 장군은 이 사진으로 전 세계적으로 지탄의 대상이 되었지만, 이 사진을 찍은 애덤스 기자와는 친구가 되었다. 전쟁터를 함께 돌아다녔을 뿐 아니라 베트남이 무너진 후 이민으로 미국에 정착해서 베트남 식당을 운영하며 살 때도 애덤스가 종종 찾아갈 만큼 가깝게 지냈다고 한다.


역할이 분담된 언론 환경에서 사진기자는 사진을 찍어서 매체에 전달할 뿐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많은 경우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자세한 상황을 알지 못할 때가 많다. 그야말로 지나다가 현장을 본 목격자일 뿐 사진 속 인물들의 이야기는 모른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야기는 그 사진을 보는 사람들이 머릿속으로 지어낸다.

세계일보

1945년 8월14일 일본이 항복할 것이라는 소식에 기뻐 타임스스퀘어에 달려나온 사람들. 종전의 상징이 된 이 사진 속 수병의 애인은 키스상대가 아니라 수병 뒤에 보이는 여성이다.

‘해군과 간호사의 키스’로 알려진 유명한 사진이 그렇다. 1945년 8월15일은 우리에게는 광복절이지만 미국에는 V-J(Victory over Japan)데이로 알려져 있다. 이 사진은 일본이 항복한다는 소식이 전해진 8월14일에 뉴욕 매해튼에서 찍힌 사진이다. 많은 사람들이 ‘전쟁터에서 돌아온 해군 수병이 종전 소식에 기뻐 간호사인 애인과 열렬히 키스를 나누는 사진’으로 이해하고 있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사진 속의 여성은 수병의 애인도 아니고, 심지어 (알려진 바에 따르면) 간호사도 아니다. 그리고 수병은 전쟁에 참여한 병사는 맞지만, 완전히 돌아온 것도 아니고 휴가를 받아 나와 있다가 다음날 다시 복귀해서 출정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물론 저 두 사람이 모두 지긋지긋한 전쟁이 끝난 것을 기뻐하며 타임스스퀘어에 나온 것은 맞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 모르는 사이였고, 치과에서 조무사로 일하던 여성(그레타 짐머)을 길거리에서 본 남성(조지 멘도자)이 와락 껴안고 기습키스를 하는 장면을 유명한 사진잡지 ‘라이프’의 기자가 포착한 것이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멘도자(수병)는 데이트를 하러 나온 상황이었다. 사진에서 멘도자의 오른팔 너머로 얼굴만 빠꼼 보이며 웃고 있는 여성이 그의 데이트 상대인 리타 페트리. 이들은 멘도자가 휴가를 나온 후 처음 만났고, 이때가 두번째 데이트였다. (이 둘은 이듬해에 결혼을 해서 2019년 멘도자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다.) 그런데 어떻게 남자는 다른 여성에게 키스를 하고 있고, 데이트하던 여성은 그냥 웃고만 있을까?


이날 미국 전역이 기뻐서 어쩔 줄 모르며 들떠 있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거리로 몰려나와서 모르는 사람들과 포옹하고 웃으며 아무 술집이나 들어가서 주인이 공짜로 주는 술을 마시고 다시 거리에 나와서 아무나 붙잡고 종전을 기뻐했다. 데이트 중이었던 멘도자 역시 그렇게 (훗날 아내가 될) 리타와 함께 길을 걸으며 술을 받아 마셔서 살짝 취한 상태였다.


사실 멘도자는 다음날 복귀하게 되면 살아서 돌아오지 못할 전투에 참가할 것으로 알고 있었다. 일본이 항복하지 않고 버티는 중이었기 때문에 미군은 일본 본토에 상륙을 계획하고 있었고, 노르망디 전투를 생각하면 일본상륙작전은 많은 전사자를 낼 것임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복귀를 하루 앞두고 일본의 항복 소식이 들려온 거다.


사진을 찍은 기자에 따르면 기분좋게 술에 취한 멘도자가 이 사람 저 사람을 안고 키스하는 것을 보고 몰래 뒤따르며 완벽한 순간을 기다렸다가 찍었다고 한다. 그렇게 낯선 사람과 포옹하고 키스하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멘도자는 군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최적의 피사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키스 상대였던 여성인 그레타 짐머는 그날 멘도자 외에 다른 남성에게도 키스를 받았다고 한다. (두 번째 남성은 멘도자와 달리 정중하게 허락을 구하고 뺨에 했다.) 도시가 온통 그런 분위기였기 때문에 데이트 상대였던 리타 페트리도 별로 개의치 않고 웃으며 좋아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알지 못한다. 사람들은 이 사진을 보는 순간 머릿속으로 피사체의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사진은 그들이 각자 만들어낸 이야기를 증명하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사진이 증명해 주는 게 있다면 그건 인간은 이야기가 없이는 눈에 보이는 것을 인식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