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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이중섭이 사랑한 ‘환상의 섬’ 통영 욕지도 가보셨나요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by세계일보

아찔한 모노레일 타고 욕지도 날아볼까/숨이 멎을 듯 삼여 풍경에 ‘심쿵’/이중섭 그린 ‘욕지도 풍경’ 자부랭개 어촌마을 예쁨 ‘뿜뿜’/욕지도 할매 바리스타 고구마 라떼 홀짝이니 멀리서 봄이 오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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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본 전망대 욕지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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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지도 모노레일

놀이동산의 롤러코스터. 공포의 레이스를 시작하기 위해 천천히 정상으로 오를 때 시시각각 조여 오는 그 숨 막힘을 기억하는가. “덜커덩”하고 잠시 요동친 모노레일이 가파른 경사면을 따라 오르기 시작하자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심장이 “쿵쾅쿵쾅” 방망이질을 시작한다. 하지만 1분여 남짓 이어지는 짧은 공포는 순식간에 짜릿한 스릴과 희열로 바뀐다. 발아래 드러나는 신비로운 쪽빛 바다와 오밀조밀한 섬들이 만들어내는 신비한 풍경. 고도를 좀 더 높이자 아예 초능력자가 된 듯 하늘을 날기 시작한다. 화가 이중섭이 그린 ‘환상의 섬’ 욕지도 바다 위를 자유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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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덕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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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덕항 바다와 장군봉

#아찔한 모노레일 타고 욕지도 날아볼까

에메랄드빛 물감을 커다란 붓에 찍어 바다에 휘휘 저어 풀어 놓았나 보다. 경남 통영 삼덕항을 떠난 배가 힘차게 물살을 가르자 물빛은 바닷속 깊이 깔려있던 에메랄드가 수면 위로 떠오른 듯, 보석처럼 반짝인다. 쪽빛과 영롱한 초록이 솜씨 좋은 화가의 팔레트에서 절묘하게 섞인 듯 태어나 처음 경험하는 신비한 바다색은 살을 에는 찬바람도 잊고 한참을 쳐다보게 만든다.


욕지도(欲知島). 이름이 아주 독특한 섬 이름은 ‘알고자 하는 의욕’이라는 뜻이다. 욕지도 인근에는 연화도, 두미도, 세존도가 있는데 모두 화엄경 구절인 ‘욕지연화장두미문어세존(欲知藏頭尾問於世尊)’에 따온 것이다. ‘연화장(극락세계)을 알고자 하면 그 시작과 끝을 부처(세존)에게 물어보라’는 뜻이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지상낙원이 따로 없을 정도로 아름다우니 말이다. 하루를 둘러봤는데 섬의 절반도 구경 못 했다. 한 사흘 정도 천천히 음미하며 구석구석 모두 다녀보고 싶은 ‘의욕’이 솟구치는 매력 넘치는 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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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덕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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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덕항 앞 쑥섬

통영항 여객선터미널과 삼덕항에서 출발하는 유람선을 타고 욕지도로 들어가는데 삼덕항을 추천한다. 통영항은 욕지도행 배편이 하루 세 차례뿐이고 연화도에 들렀다 가기에 1시간20분가량 걸린다. 삼덕항에서는 하루 7차례 왕복 운항하며 50분이면 욕지도에 닿는다. 유람선에 승용차를 실을 수 있으니 차를 가져가는 것이 가장 좋다. 차가 없다면 주요 관광지를 따라가는 동백관광의 투어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사전 예약 또는 현장 예약도 가능하고 성인 1인당 비용은 1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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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지도 모노레일

욕지도와 주변의 보석 같은 섬들이 남해 바다를 장식한 풍경을 가장 아름답게 즐기려면 해발 392m 천왕산 대기봉 전망대에 올라야 한다. 2019년 10월 개통한 관광모노레일은 이전에는 볼 수 없던 욕지도 바다의 환상적인 풍경을 선사했다. 천혜의 비경으로 가득 찬 동항마을에서 대기봉까지 2km 궤도를 따라 16분 동안 오르는 모노레일은 스릴이 넘친다. 매우 가파른 산비탈을 좌우로 굽이치며 오르는데 마치 허공에 떠서 날아가는 것 같다. 더구나 고도가 높아질수록 달라지는 비경 덕분에 숨이 멎을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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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지도 대기봉 전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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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봉 전망대 포토존

대기봉 전망대에서 섰다. 누가 통영을 ‘한국의 나폴리’라고 했나. 몇 해 전 가본 나폴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나폴리에 다시 간다면 반드시 “판타스티코! 이탈리아의 통영!”이라고 외칠 테다. 일출봉(190m), 망대봉(205m), 옥동 정상(155m), 출렁다리, 펠리컨바위로 이어지는 욕지도의 능선과 해식절벽이 쪽빛 바다를 품고 있는 경이로운 모습. 그대로 조각칼로 잘라 내어 거실에 걸어 놓고 싶은 수채화다. 초고해상도로 카메라로 촬영했으니 크게 출력해 매일 들여다볼 작정이다. 욕지도 너머에는 우도와 연화도의 용머리를 장식한 섬들이 오른쪽으로 곡선을 그리며 가지런하게 바다 위에 놓여 있다. ‘통영팔경’의 하나인 용머리에 닿으면 석양에 황금으로 물드는 바위가 장관이라니 저 신비로운 섬에도 꼭 가봐야겠다. 멀리 소매물도, 매물도, 거제도가 희미하고 오른쪽에 외초도, 내초도, 국도, 좌사리도가 오밀조밀 바다를 수놓은 모습은 파라다이스가 따로 없다. 전망대에 놓인 짙은 개나리색 달 조형물에 앉으면 쪽빛바다, 푸른하늘과 완벽하게 어울리는 근사한 인생샷을 남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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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여전망대

#숨이 멎을 듯 삼여 풍경에 ‘심쿵’

전망대에서 섬 동쪽 끝으로 새가 부리를 바다에 대고 누운 듯한 절벽이 보이는데 펠리컨바위다. 모노레일 탑승장에서 서쪽 욕지일주로를 따라 가다보면 만나는 새천년기념공원에서 보면 영락없이 펠리컨 머리를 닮았다. 공원을 지나 700m가량 떨어진 삼여전망대는 욕지도 여행의 필수 코스. 대기봉 전망대에서 욕지도와 섬들이 그리는 풍광을 파노라마로 조망할 수 있다면 삼여전망대는 아름다운 해식절벽과 섬, 쫓빛 바다를 코앞에서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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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삼여, 상여도, 삼례도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작은 섬 삼여, 상여도, 삼례도가 차례로 바다에 놓인 풍경이 예사롭지 않다. 용왕과 세딸, 이무기의 전설이 담겼다. 900년이 넘은 이무기가 도술을 부려 멋진 청년으로 변신했고 용왕의 세 딸은 청년을 사모하게 된다. 이를 알게 된 용왕이 세 딸을 바위로 만들어 버렸고 화가 난 이무기는 산을 부숴 두 개의 섬을 만들어 바다를 막아버렸다는 얘기다. 세 여인이 변한 바위는 삼여로 불리게 됐다. 보는 순간 탄성이 저절로 터지는 절경이다. 끊임없이 푸른 파도가 밀려와 포말로 부서지는 해식절벽이 멀리 펠리컨바위까지 이어지고 그 앞에 떠 있는 광주리를 닮은 광주여(가동섬)까지 수채화 속에 잘 녹아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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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지도 펠리컨 바위 출렁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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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리컨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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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렁길 고래강정 인근 풍경

길을 되돌려 출렁다리로 향한다. 이곳에서는 펠리컨바위를 좀 더 가까이서 볼 수 있다. 펠리컨 머리 부위로 연결되는 출렁다리는 건널 때 비로소 드러나는 절벽의 비경이 압권이다. 칼로 두부를 내리쳐 잘라낸 듯, 둘로 나뉜 반듯한 절벽 사이로 쪽빛 바다가 담긴다. 다리를 건너면 넓은 바위가 등장하고 삼여전망대 쪽 해식절벽이 펼쳐진다. 다시 출렁다리를 건너와 왼쪽 고래강정 쪽으로 산책로를 따라 걷는다. 쪽빛 바다를 조망하며 걷는 ‘비렁길’로 숲과 바다를 모두 품으며 힐링하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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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부랑개 마을

#이중섭이 사랑한 자부랭개와 욕지할매 고구마 라떼

욕지도 여행은 하루로는 무리다. 오전 11시 배로 들어왔지만 여유를 부리다보니 섬의 절반도 못 돌았는데 마지막 배 출항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당일치기 여행자라면 첫배를 타고 들어가야 넉넉하게 둘러보겠다. 욕지도 선착장으로 내려와 차로 5분 거리의 자부랑개 마을로 향한다. 낮은 언덕을 배경으로 둔 아담하고 예쁜 어촌마을이다. 노랑, 빨강, 연두, 파랑의 원색 지붕이 솜씨 좋은 화가의 작품 같다. 근대미술의 거장 이중섭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다. 그는 6·25전쟁 때 통영에 머물면서 나전칠기기술원양성소 강사로 일하던 1953년 봄 욕지 출신 학생의 귀갓길에 우연하게 동행했다가 아름다운 풍경에 반해 버렸다. 그는 아예 자부랑개에 눌러앉았고 생명력 넘치는 굵은 선과 쪽빛 바다가 어우러지는 ‘욕지도 풍경’을 그렸다. 마을 입구에 이 그림을 그린 이중섭 전망대가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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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부랑개 근대어촌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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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지도 할매 바리스타

일제강점기에 욕지도는 자부랑개를 중심으로 어촌 근대화를 이루면서 많은 어선과 어부들이 욕지항으로 밀려 들어왔다. 이에 게이샤를 둔 일본 명월관과 안방술집 40여 곳이 생겨나 밤마다 지친 하루를 달래던 뱃사람들의 노랫소리가 넘쳐났다. 지금은 근대문화역사거리로 흔적만 남아 당시의 모습을 전한다. 일제 시절 일본인 운영하던 당구장, 목욕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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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지도 할매 바리스타 빛바랜 흑백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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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지도 유람선 가마섬 노을

요즘 자부랑개에는 욕지도 할매바리스타가 가장 유명하다. 할매들이 직접 로스팅하고 커피를 내린다. 그런데 커피보다는 고구마 라떼를 ‘강추’한다. ‘욕지 고매’로 불리는 욕지도 특산품 고구마는 일반 고구마와 달리 맛의 농도가 아주 짙어 입에서 구수한 향이 길게 이어진다. 따뜻한 햇살이 쏟아지는 나무 벤치에 앉아 이중섭이 즐기던 욕지도 풍경을 감상하며 고구마 라떼를 홀짝인다. 저 멀리서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통영=글·사진 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