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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황용호의 一筆揮之]

“모든 어려움 이겨내
나의 ‘인생 대장정’ 잘 마쳤으면”

by세계일보

조리사로 ‘인생 2막’ 김성배 前 행자부 장관 비서실장

맥도날드 매장서 10년 째 근무

노숙자 등에 ‘빵’ 봉사하다 시작

조리학원서 6개월과정 수료인정

일하다 갈등으로 숱한 좌절감도

“78세 되는 ‘7000일’ 까지 최선”

세계일보

환갑에 조리사로 인생 2모작을 시작해 10년째 일하고 있는 김성배 씨가 28일 경기도 용인시 맥도날드 수지 DT점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남제현 선임기자

김성배(68세)씨는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 장관 비서실장, 원내 제1당 기획조정국장 등을 지낸 후 환갑에 맥도날드 매장의 조리사로 인생 2모작을 시작해 10년째 일하고 있다.


김씨는 28일 자신이 근무하는 경기도 용인시 맥도날드 수지 DT점에서 기자와 만나 “동네 아파트 경비원들에게 매일 야간 간식 배달, 전철 주변 생활이 어려운 행상 할머니들에게 점심식사 배달, 서울 강남고속터미널 주변 노숙인들에게 빵 배달 봉사활동을 하다가 맥도날드에 몸담게 된 것”이라며 공직자로 은퇴 후 맥도날드에 입사한 동기를 밝혔다.


집 근처 제과점 등을 돌며 남는 식빵을 얻어 경비원과 행상 할머니, 노숙인에게 배달 봉사하는 게 눈치가 보이고 부담스러워 빵 확보 차원에서 맥도날드 문을 두드렸다는 것이다.


그는 “2012월 12월 서울 강남 뉴코아백화점 1층에 있는 맥도날드 뉴코아 DT점을 무작정 찾아가 여기서 일하고 싶다고 간청했다”며 “그곳에서 내가 직접 땀 흘려 일해서 번 돈으로 노숙인 등의 식빵 비용을 충당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맥도날드 매장의 인사담당 매니저가 면접을 보며 ‘행정부에서 국장급 고위공직자를 지낸 분이 험한 일을 할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며 “과거는 모두 잊고 제2의 인생을 굳은 결의로 헤쳐나가려고 한다는 자신에 찬 답변을 듣고 이해한다는 눈치를 보였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입사 후 조리학원의 6개월과정 수료 경력을 인정받아 그릴 주방 조리사 요원으로 결정된 그는 3개월간의 수습직원 생활을 시작했다.


김씨는 “평생 사무직으로 펜대만 잡았던 손은 거칠게 부르텄고, 하루 8시간 동안 서서 일하는 노동으로 발이 퉁퉁 부었다”며 “익숙하지 않은 주방 환경으로 처음 며칠간 화상은 필수였고 온몸에 늘어나는 멍 자국과 함께 저녁에는 몸살로 끙끙 앓았다”고 회상했다. 이어 “그렇게 3개월이 지나 교육생 딱지를 떼고 정식 직원(크루·Crew)이 됐고, 2년을 버틴 끝에 무기계약직으로 신분이 전환됐다”며 “법적으로 무기계약직이나 우리 비정규직끼리는 우스갯소리로 ‘종신 직원(정년이 없다는 뜻)’이 된 것”이라며 활짝 웃었다.


그는 근무 6년차, 7년차 연말결산회의에서 연속으로 우수직원상을 받았다. 서울시가 역점사업으로 추진한 외국인 전용 공항택시 운행 자격증과 함께 호텔 종사원 자격증, 관광 가이드 자격증까지 ‘관광 자격증 3종 세트’도 취득했다.


그는 에피소드도 소개했다. “어느 날 아침, 매장에 온 고객 한 분이 카운터에서 자기가 원했던 햄버거가 나오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젊은 매니저를 큰소리로 혼내고 있었다”며 “주방에서 조리하던 나는 본능적으로 뛰어나가 ‘손님, 제 나이가 올해 70세입니다. 매니저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지만 저를 봐서라도 한번 용서해 주세요’라고 애처롭게 하소연했더니 그 손님은 나를 힐끗 쳐다보더니 사라져 버린 일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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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맥도날드 레스토랑의 40평 주방 공간에서 매일 3km 정도에 해당하는 거리를 분주히 오가며 지낸다. 여름철이면 섭씨 200도의 커다란 대형 그릴 판 2개 앞에서 쏟아지는 땀방울과 전쟁을 치른다.


김씨는 “솔직히 아들 딸 같은 매니저와 일하며 부딪히게 되는 갈등에 따른 좌절감, 그 속에서 쌓여가는 무력감과 육체적인 부상의 두려움, 마음속 나태함 등 수없이 많은 나 자신과 싸움 또한 견디기 힘들었다”고 그간의 고충을 털어놨다. 평생 이념주의자가 아닌 실용주의자로 살아왔다는 그는 “그때마다 오늘날 중국의 기초가 된 마오쩌둥(毛澤東)의 1만2500km 대장정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다독이고 위로했다”며 “모든 고난을 뚫고 나이 78세가 되는 2030년까지 나의 7000일 대장정을 멈출 수 없다는 굳은 결의를 다지며 이를 악물곤 한다”고 의욕을 보였다.


시니어 크루로 일하고 있는 김씨는 맥도날드 20년 연속 근무 인생 대장정 목표의 반환점을 앞두고 중간결산 의미에서 60세부터 10년간 체험담을 담은 ‘어떤 대장정 칠천일(七千日)’ 상권을 펴냈다. 그는 상권에 국가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5대 덕목’으로 통찰력, 판단력, 결단력, 추진력, 포용력을 꼽으며, 이에 부합하는 인사로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지목해 눈길을 끌었다.


김씨는 하권도 출판할 계획이다. 그는 “50년 전 작은 탁구공 하나가 미·중 국교 수립을 가져왔듯이 미·중 갈등이 최고조인 지금 맥도날드 햄버거가 양국 화해 무드 조성에 일조할 수 있는 실천방안을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황용호 선임기자 drago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