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 넘어 쓴 시 '풀꽃' 덕분에… 인생은 아름다워~

[컬처]by 세계일보

풀꽃 시인 나태주 ‘황혼의 반전 스토리’



세계일보

‘내 마음을 내 마음같이 표현하는 것’을 문학적 화두로 삼는다는 ‘풀꽃’의 시인 나태주는 “시가 좋아지려면 변용과 반전이 있어야 하듯이, 인생도 성공하려면 후반부에 변용과 반전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툴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다”며 “사랑은 늘 서투른 것이고, 짝사랑이며, 늘 첫사랑”이라고 웃었다.

초등학교 교장하던 때, 아이들과 풀꽃을 그렸어요.“자세히 보고 오래 보고” 그리라고 가르치며 봤더니… 아이들이 풀꽃이더라구요. 말 안듣고 못생긴 아이도 오래 보니 이쁜 풀꽃이었죠. 사람이 사랑스러워지는 건, 관계 속에서 나오는 거잖아요. 시에서 “너도 그렇다”고 말하니, 내게도“너도 그렇다”는 답이 돌아왔어요. 내 마음 편하고 좋아서 쓴 시가 환갑 넘어 사랑받으니 인생의 반전 아닐까요. 홀로 사시던 외할머니댁서 초등학교 졸업때까지 살았어요. 그때 외로움이 어린 마음에 그냥 콕! 와서 박혀버렸죠. 시인이 될 운명이었던거지.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풀꽃’ 전문)


겨우 24자에 불과하지만 강렬한 메시지의 대표 시 ‘풀꽃’을 설명하던 시인 나태주는 ‘너도 그렇다’는 대목의 ‘변용과 반전’을 설명하다가 자신의 인생 쪽으로 급하게 핸들을 틀었다. “‘너도 그렇다’는 부분은 변용과 반전인데, 제 인생도 그렇습니다. 대단한 회심은 아니지만, 60세 이후 시 ‘풀꽃’을 쓰고 나서 제 인생에 변용과 반전이 있었어요. 60세 이전은 ‘자세히 봐야 예쁘고 오래 봐야 사랑스럽다’의 삶이었다면, 60세 이후부터는 ‘너도 그렇다’로 바뀐 삶을 살려고 했어요. 너를 생각하며 살려고 노력한 것이죠.”


나 시인은 “나중에야 알게 됐다”며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의 회심 이야기를 꺼냈다. “톨스토이도 50세 즈음, 인생의 변용과 반전이 있었어요. 자기만을 위해 살았던 그가 50세 이후부터 남을 위해서도 살겠다고 생각했지요. 톨스토이는 이때 회심을 하고 ‘참회록’을 쓰고 이전과 다른 삶을 30년간 살게 된 것이지요.”


시 ‘풀꽃’ 이후 그의 시도, 시인의 삶도 바뀌었다. 인터넷에서 인기 있던 시들을 모은 시선집 ‘꽃을 보듯 너를 본다’(지혜)는 2015년 출간 이래 50만부 이상이 팔렸다. 2019년 1월 한 달 동안에만 무려 10만부가 팔렸고, 지난해엔 시집으로 이례적으로 교보문고 종합 순위 2위에 랭크되기도 했다. 현재 일본과 인도네시아, 태국 등 해외에서도 속속 번역 출간되고 있다. 시 ‘풀꽃’이 인기를 끌면서 그의 다른 시집이나 시선집도 불티나게 팔린다. 바야흐로 ‘나태주 신드롬’이다.


“변용과 반전이 나와야 할 시기는 장년이나 노년기입니다. 지금까지 실수하고 남에게 신세지고 잘못해온 것을 바탕 삼아서 장년기나 노년기에는 이전처럼 살아선 안 된다고 자각해 변용과 반전이 있어야지요.”


“졸렬한 인간인데,” 그는 커리어를 확인하는 기자에게 일일이 설명해 주면서 쉼 없이 달려온 자신의 삶과 자신을 보듬어준 세상에 감사해했다. ‘졸렬’이라는 단어를 서너 차례 반복했다. “이럴 수가 없어요. 졸렬한 사람인데,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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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시인을 지난 1일 공주 ‘풀꽃문학관’에서 만났다. 사진을 몇 컷 찍은 뒤 문학관 안으로 들어갔다. 아담한 앉은뱅이책상이 가운데 놓여 있고 그 주위에 시집이나 책들이 널려 있었다. 그는 손수 차를 꺼내왔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에게 무엇입니까.


“지구적으로 보면, 인간이 막살아와서 이런 게 오지 않았을까요. 코로나19는 에이즈처럼 짐승과 동물의 바이러스였는데, 이것이 경계를 넘게 한 것 자체가 인간의 잘못 아니었을까요. 지구 환경이 더 나빠졌고, 인간의 삶이 순결하지 못하다는 얘기죠. 그런 측면에서 하나의 징벌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금 벌을 받고 있는 것이죠.”


―시 얘기로 들어가서, 시 ‘풀꽃’은 어떻게 탄생했나요.


“1995년부터 풀꽃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한 5, 6년 그렸을까요. 초등학교 교장을 하던 2002년쯤 아이들과 풀꽃을 그렸는데, 아이들이 풀꽃과 닮지 않게 그리더군요. ‘자세히 보고 오래 보고 그리라’고 가르쳤지요. 그러고 봤더니, 아이들이 풀꽃이더라고요. 제가 그리는 풀꽃도 풀꽃이지만, 말을 잘 듣지 않는 아이들도, 풀꽃답지 않게 그리는 아이들도 모두 풀꽃이었어요. 말을 잘 듣지 않고 예쁘지 않은 아이들을 어떻게 하면 예쁘고 사랑스럽게 봐야 할까 생각하다가 자세히 보고 오래 봐야겠다고 생각한 것이죠.”


―장미나 튤립, 백합 등 아름다운 꽃을 놔두고 왜 하필 풀꽃을 노래한 겁니까.


“풀꽃은 존재감이 분명하지 않은 어떤 존재, 크기나 의미나 돈 등으로 따졌을 때 대단하지 않은, 버려질 수도 있는, 자존감이 매우 떨어진 존재를 의미하지요. 그런 존재도 자세히 보고 오래 보면 예쁘고 사랑스럽게 됩니다. ‘자세히, 오래’가 중요하지요. 우리는 지금까지 자세히, 오래 보지도 않으면서 예쁘고 사랑스러운 존재를 바란 것이죠. 자세히 보고 오래 보면, 미미하고 보잘것없는 존재라도 예쁘고 사랑스럽게 됩니다. 모든 존재, 모든 천지만물이 다 예쁘고 사랑스럽다는 그런 취지이죠.”


―‘풀꽃’에서 ‘너도 그렇다’라는 대목은 놀라운 반전인데요.


“변용과 반전이죠. 내가 ‘너도 그렇다’고 하니까, 다른 사람도 저에게 ‘너도 그렇다’고 하더군요. 결국 ‘너도 그렇다’는 건 ‘나도 그렇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예뻐지고 사랑스러워지는 건 관계 속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지요. ‘풀꽃’을 쓰고서 제 인생이 바뀌었어요. 제 시가 독자들의 손에 들려지기 시작한 것이죠. 쉽지 않은, 놀라운 일입니다.”


―시가 의외로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많습니다.


“인기를 바라고 쓴 게 아니라 제 자신을 건지기 위해서 씁니다. 내 마음이 편하고 내가 좋아지기 위해서 시를 쓰는 것이죠. 잘 모르겠어요. 누구나 다 아는 일상적인 얘기를 쓰면서도 나태주식으로 단순하고 쉽게, 짧고 명징하게 써서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요. 내용이나 대상은 굳이 특별하지 않은 것, 다 알고 있는 것을 쉽고 짧고 분명하고 단순하게 써서 그러지 않을까 싶어요. 저의 시에는 ‘너(네)’가 많이 들어갑니다. 예를 들면 시 ‘꽃을 보듯 너를 본다’처럼, ‘너는 꽃이다’는 말을 에둘러 하지만 ‘너는 하류가 아니다’ ‘너는 귀하고 아름답다’라고 강력하게 얘기하는 것이지요. ‘나를 꽃이라고 불러주네’, ‘나를 꽃이라고 불러준 사람이 나태주네’, 그래서 사람들이 ‘시집을 사주자’고 하지 않았을까 하는 게 제 나름의 해석입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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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충남 서천군 기산면 막동리(幕洞里)에서 출생한 시인은 1963년 공주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1964년부터 43년간 교단에 섰다가 2007년 장기초등학교 교장을 끝으로 퇴임했다. 문학적으론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 ‘대숲 아래서’가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라이프 스토리를 조금 들려주시죠.


“아버지 어머니가 생존해 있었지만, 어렸을 때 외할머니의 집에 ‘던져져서’ 살았어요. 외할머니가 36세 어린 나이에 과부가 됐지만 개가를 할 수 없어 4살인 제가 외할머니와 살아야 했지요.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외할머니 집에서 자랐어요. 그때 저는 외로움과 가정적인 결핍 같은 것을 알게 됐고, 시인이 될 수밖에 없었어요. 인생이 불행에 던져졌고, 불행이 나의 일생을 바꿔놓았지요. 12세에 저의 운명이 결정됐고, 시인으로 살 수밖에 없었어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서 시의 세계로 들어온 것인가요.


“16세 때인 고등학교 1학년 때, 동급생 여자가 예뻐 연애편지를 썼는데, 제 마음을 잘 전달할 수 없었어요. 전달할 수 없는 시대였지요. ‘어떻게 하면 좋아하는 마음을 전달할까’ 하다가 내 마음이라도 표현해야 살 것 같아서 시를 쓰게 됐어요. 제 평생 하고 싶었던 것은 ‘내 마음을 내 마음같이 표현하는 것’인데, 그게 잘 되지 않습니다. 내 마음을 표현하면 엉뚱한 것이 되곤 했어요. 내 마음을 내 마음같이 표현하는 것이 저의 문학적 화두가 됐어요.”


그는 1973면 첫 시집 ‘대숲 아래서’를 펴낸 이후 ‘막동리 소묘’, ‘사랑하는 마음 내게 있어도’, ‘빈손의 노래’ 등 40권 이상의 창작시집을 포함해 시선집과 산문집 등 100여권의 책을 펴냈다.


―16세부터 시를 써왔으니, 시력 60년이 넘습니다.


“사실 16세부터 76세까지 60년 동안 시만 썼어요. 어떻게 60년 동안 시를 썼을까요. 그건 좋,아,서,입니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아니지만,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인생에서도 마찬가지이지요. 직장을 잡더라도 적성에 맞고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행복하고 결국 성공합니다. 돈이나 성공만 바라거나 또는 잘 되는 곳만 쫓아가는 사람은 아무것도 못해요. 공자 선생도 ‘지자 불여호자(知者不如好者)요, 호자 불여락자(好者不如樂者)라’, ‘잘 아는 사람보다는 좋아하는 사람이 낫고, 좋아하는 사람보다 즐기는 사람이 낫다’고 했어요. 저는 시를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 시를 좋아하는 사람, 지자(知者)가 아닌 호자(好者)였어요. 낙자(樂者)까지 이르는지는 모르겠지만, 호자인 것만은 분명해요.”


“한국시,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합니까”라고 묻기도 전에, 그는 자신의 시론을 펼쳐놨다. 그것도 자리에 앉자마자 모두에서. “차를 탈 때마다, 젊은 시절 들은 한의사의 이야기를 생각하곤 합니다. ‘1악(握)이 얼마인가’를 계량하고 깨닫는 것이 한의사로서의 일생이었다고 하더군요. 1악은 한 주먹인데, 이것도 한 주먹이고 요만큼도 한 주먹인데, 도대체 1악은 얼마나 되는가 하고 말입니다. 사랑을 깨닫는 것도 한 세월인데, 사랑이라는 것을 알 때가 되면 사랑이 끝납니다. 인생도 알 때가 되면 인생 역시 끝나고요. 결국 사람은 사랑이 뭔지, 인생이 뭔지를 모를 때 출발해 그것을 알 때쯤이면 끝나지요.”


한의사의 화두 ‘1악’ 이야기로 시작한 그의 이야기는 동양 고전의 숲으로 가로질러 나아갔다. 말은 조곤조곤했지만, 한마디 한마디가 요즘 한국시와 시인들에 대한 진심 어린 조언이었다. “노자 ‘도덕경’을 보면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는 말이 있어요. ‘하늘과 땅은 어질지 않다’는 뜻인데요. 하늘과 땅이 가는 길이 따로 있고 인간이 가는 길도 따로 있는데, 인간이 하늘과 땅의 길을 거스르지 않고 맞춰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요즘 시들이 너무 길고 어려워지고 있어요. 이는 하늘과 땅이 가는 길에 반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본래 시는 길지 않고 짧았어요. 인터넷 시대에도 맞지 않고요. 그러면 어떻게 되겠어요. 독자들이 (시를) 외면합니다.”


인터뷰가 끝나자, 시인은 마감 전에 은행에 가야 한다고 서둘러 몸을 일으켜 세웠다. 문학관 입구를 날렵하게 좌회전한 그와 그의 하늘색 자전거는 곧 주차장을 벗어나더니 시내로 스며들어 갔다. 그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나는 오랫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공주=글·사진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나태주 시인은… ●1945년 서천군 막동리 출생 ●1963년 공주사범학교 졸업 ●43년간 교직(1964-2007년)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등단 ●첫 시집 ‘대숲 아래서’를 펴낸 이후 ‘막동리 소묘’, ‘사랑하는 마음 내게 있어도’ 등 창작시집 40권을 비롯해 시선집과 산문집 등 100여권 출간 ●박용래문학상, 편운문학상, 정지용문학상, 공초문학상, 유심작품상 등 수상 ●충남문인협회장, 충남시인협회장, 공주시문화원장 등 역임 ●현재 한국시인협회장 및 공주풀빛문학관 운영

2021.03.08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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